스티브와 요니의 플래그십 스토어

2007년 런던에서 브랜드를 론칭해 2010년 서울에 돌아오자마자 일약 스타덤에 오른 스티브와 요니. 4년간의 한남동 시대를 마친 그들이 가로수길에 플래그십 스토어와 디자인 스튜디오를 마련해 두 번째 도약을 준비한다.

 

“레드 카펫이 아니에요. 보시다시피 옐로 카펫이죠!” 요니가 다갈색으로 태운 피부에 노랑머리를 반짝이며 짙고 날렵하게 아이라인을 그은 눈매로 옐로 카펫을 가리켰다. “레드 루프가 아닌 블루 루프, 또 테이프 커팅 때도 하양, 노랑, 빨강, 파랑, 초록이 아닌 노랑과 파랑뿐이에요.” 가로수길, 예전 ‘페이퍼 가든’ 사거리에 컬러 게임이라도 벌이는 걸까? 9월 10일 오전 11시, 신사복 차림의 말쑥한 중년 남자들 사이에 노랑머리 여자와 예수님처럼 머리를 긴 남자가 흰색 철조망으로 뒤덮인 4층짜리 건물 모퉁이에서 파랑과 노랑 테이프를 싹둑 잘랐다.

가로수길과 테이프 커팅식, 왠지 어색한 조합 아닌가? 멋쟁이 젊은이들로 바글바글한 동네에서 이런 전형적인 행사라니! 그러나 이 어색한 장면은 서울 패션 비즈니스 역사에서 인상적인 순간으로 남을 듯하다. 스티브와 요니가 독립 디자이너 생활을 끝내고 대기업에 몸담으며 실현한 첫번째 프로젝트니까.

신사동 534-24번지, 스티브와 요니의 패션 팩토리로 여러분을 초대한다(이 아담한 거리는 ‘스티브·요니 사거리’로 불릴지 모르겠다)! 정혁서와 배승연(본명을 아는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될지) 부부는 4년간의 한남동 시대를 마치고 6개월 전 가로수길로 돌아왔다. 2010년 런던에서 귀국한 그들은 가로수길에 아틀리에를 마련해 10개월쯤 머물렀다. 그런 뒤 엔젤 투자자에 의해 날개를 달고 이태원으로 날아가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아우르는 3층짜리 패션 빌딩을 운영했다(스티브가 푹 빠져 있는 보드 컬처를 보여줄 공간까지). 그리고 이번에 공개한 빌딩은 ‘스티브J & 요니P’와 ‘SJYP’ 플래그십 스토어 겸 디자인 스튜디오다. 솔직히 요즘 같은 불경기에 플래그십 스토어의 존재 여부를 두고 누군가는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그러나 얼마 전 시몬 로샤, 어덤 등 재능 넘치는 영국 디자이너들이 런던 번화가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플래그십 스토어가 남다른 개념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렇다면 스티브와 요니에게 플래그십 스토어는 어떤 의미일까? “브랜드의 상징입니다”라고 요니가 스티브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그러자 스티브가 이렇게 덧붙였다. “중심점, 정체성, 심장부!”

두 사람은 심장부 1층을 누구나 부담 없이 드나들 수 있도록 세컨드 브랜드 ‘SJYP’에 할애했다(가로수길 중앙 도로 반대편 지역에서 운영하던 매장처럼 블루, 화이트, 큐브 위주로, 식물 몇 그루를 더해 청결하게 편집됐다). ‘데님 바’를 지나 다소 경사가 높은 계단을 내려가면 살롱 형식의 ‘스티브J & 요니P’ 매장이 오붓하게 고객을 기다린다. “한남동 매장은 ‘쇼룸’ 성격이 강했어요. 그래서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었죠.” 시그니처와 세컨드 라벨의 정체성을 명확히 나누기 위해 시그니처의 방향을 ‘영 클래식’으로 정해 인테리어 컨셉을 정했다고 요니는 설명했다(‘SJYP’를 맡았던 인테리어 디자이너 양태오의 솜씨). “보세요! 유럽풍의 아치형 구조, 빈티지 문양의 나무 바닥, 런던 시내 가스등 느낌의 조명, 장식을 겸하는 이국적 문짝 등등.”

‘스티브J & 요니P’ 라벨은 2007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데뷔 쇼 이후 현지에서 3년간 성장한 뒤 서울 한남동에서 4년간 <잭과 콩나무>의 콩나무처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무럭무럭 자랐다. 이 부부가 큰아이에 이어 낳은 여동생 ‘SJYP’는 언니의 고향 런던으로 돌아가 유명세를 얻었다. 얼마 전 런던 셀프리지스 백화점과 함께 기획한 ‘미니언즈 벨로 옐로 컬렉션’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사실 한반도에서 패션이 소수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성을 지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이들이다. 전략적 동맹을 위한 디자이너와 연예인의 일시적 사교가 아닌, 의리가 기본이 된 이 커플과 몇몇 셀러브리티의 의기투합은 ‘패션+연예 비즈니스’의 긍정적 사례가 됐다. 또 명랑 만화 주인공들 같은 독특한 용모와 낙천적 기질에서 비롯된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패션과 균형을 이루자 국내외에서 장르를 불문한 수많은 협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친한 패션 기자들이 그들에게 ‘협업은 당분간 금지!’라며 농담할 만큼 인기 절정).

 

이렇듯 지나치게 소비될 위기에 놓여 있던 두 사람이 비로소 안정된 분위기에서 ‘패션 크리에이티브’에 집중할 기회가 왔으니, 그게 바로 패션 대기업 SK네트웍스의 인수·합병이었다. 한남동 시절 10명 안팎이던 스태프들은 가로수길 시대에 들어 세 배로 늘었다(매출이야 두말하면 잔소리!). “소재 디자이너, 액세서리 디자이너, 니트 디자이너 등이 충원됐어요. VMD도 더 뽑아야 하고.” 스티브가 어깨를 으쓱하며 얘기했다. 물론 몇몇 사람은 이제 대기업에 소속됐으니 괴짜처럼 일을 저지르는 스티브와 요니 특유의 모습을 보기 힘들지 않겠느냐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전혀!”라며 걱정 말라는 투로 대답한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독립 디자이너의 형편상 구현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지만 이제 맘껏 할 수 있어요.” 회사 고위 간부들 역시 두 사람에게 하고 싶은 건 맘껏 해보라고 판을 깔아줬다. 그러니 마무리가 다소 아쉬웠던 지난 몇몇 프로젝트에 완성도 200%를 기대해도 될 듯하다.

두 사람의 뇌 속에서 꿈틀거리는 여러 기획은 코너형 건물이기에 가능한 두 개의 대형 쇼윈도를 통해서도 보여줄 수 있다. 이 쇼윈도에 서울 패션 피플들이 기대하는 건 오프닝 세레모니나 꼴레뜨 못지않은 기발하고 창의적인 볼거리일지 모른다. “꽤 넓은 주차장은 플리 마켓 등으로도 활용할 수 있죠.” 가만있자, 또 뭐가 있을까? 사실 그들을 ‘애정’하는 서울 패션 전문가들은 두 사람만 만나면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쏟아놓기 바쁘다. 스티브와 요니만큼 세상을 향해 눈과 귀가 열려 있고 뭐든 할 준비가 된 디자이너를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뜻이다. 게다가 특정 아이디어를 공유하면 그들만의 재치 있고 번득이는 발상을 곁들여 참신한 것으로 재탄생시키는 재능까지 겸비했으니 자꾸 참견하고 싶을 수밖에.

한편 2층과 3층 디자인실과 기획실을 건너뛰면 서울의 ‘슈페트’쯤 되는 타쉬와 래쉬와 함께 스티브와 요니가 일하는 4층이 있다. 건물 파사드처럼 그곳은 흰색 철조망으로 둘러싸였다. 대기업에 들어갔으니 징역살이하듯 이곳에 감금된 채 일하는 거냐고? 천만에! “우리 고양이들이 준 아이디어예요”라고 스티브가 피식 웃으며 얘기한다. “고양이들이 바깥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지만 바깥을 볼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접이식 철조망 문이 떠올랐어요.” 4층 디자인 사령부 역시 새파란 SMEG 냉장고와 함께 왁다글닥다글 채운 온갖 소품이 두 사람의 취향을 드러낸다. 물론 한남동 작업실의 쇼킹하고 유머러스한 발상대로(그곳에 들른 사람이라면 폭탄 맞은 듯 한쪽 벽을 뚫어놓은 인테리어를 절대 잊지 못한다) 계속 바뀔 것이다. 보나 마나 별의별 잡동사니가 엉망진창으로 쌓이겠지만, 나름대로 질서와 규칙을 유지할 예정.

동시대 경향을 신속히 채집하는 요니의 본능적 감각, 현실성을 곁들여 색다르게 결론 내는 스티브의 판단력, 여기에 모기업과 서울 패션 피플들의 애정과 지지가 섞여 구현될 두 번째 프로젝트는? 10월 16일 서울 패션 위크 첫날 저녁의 2016 S/S 패션쇼다. 이 컬렉션은 SK네트웍스 울타리 안에서 여는 첫 쇼이자 서울 패션 위크 바깥에서 발표하는공식 행사. 그래서 그들의 패션 역사에 또 다른 ‘모먼트’로 기록될 듯하다. “대기업을 통해 선보일 런웨이 쇼라면 다들 특급 호텔 그랜드 볼룸을 예상하겠지만, 그런 방식은 우리 스타일이 아니죠. 대신 서울의 과거,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곳을 찾던 중 청계상가 2층이 딱 눈에 들어왔어요.” 가로수길 플래그십 스토어 건물처럼 첫눈에 반한 그곳에서 시그니처 브랜드의 새로운 비전이 공개될 거라고 요니는 얘기한다. “영 클래식을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