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에 눈뜰 때-김상우

김상우와 권철화, 이 두 명의 톱 모델에겐 ‘패션계가 아끼고 사랑하는 남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재능 넘치는 비주얼 아티스트로서의 지명도와 유명세가 따른다는 사실. 지극히 패셔너블한 두 남자가 아트에 눈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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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우는 런던에서 40분쯤 떨어진 햄프턴 코트의 자기 집 정원에서 작업한다(헨리 8세가 살았던 곳). 충분한 자연광과 좋은 공기는 그가 작업하는 데 있어 물감이나 캔버스만큼 중요한 요소다.

재능 있는 김상우 씨 

초등학교 5학년생 소년은 영국 BBC에서 주최한 포스터 공모전에 응모한다. 빅벤, 런던 아이, 유로스타 등을 크레용과 사인펜 등으로 묘사한 포스터는 덜컥 1등으로 뽑힌다. 평소 집에서 그림을 자주 그리는 엄마와 패션 회사의 텍스타일 분야에서 일하는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이 소년은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 초상화를 그려 난생처음 그림을 팔았다. 부모님의 권유로 건축학과 진학을 준비했지만 끝내 미술에 대한 본능을 억누르지 못해 런던 세인트 마틴 스쿨에 입학한 뒤 파인 아트를 공부한다. 그러던 청년은 느닷없이 세계가 알아주는 톱 모델로 성장했다(지금도 베니스 리알토 다리와 밀라노 두오모 성당의 대형 전광판엔 이 청년이 단독 출연한 ‘디젤’ 광고판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다. 뉴욕에도 그가 출연한 아르마니 익스체인지 빌보드가 어느 5층 빌딩 옥상에 우뚝 솟아 있다). 최근에는 소더비 런던이 꼽은 전도유망한 비주얼 아티스트로 선정될 정도.

자, 이 놀라운 성공 스토리는 지난달 <보그> 화보 ‘Hello! New Faces’의 모델 12인 가운데 청일점이었던 김상우의 작은 역사다. 물론 성공 스토리의 도입부일 뿐이다. 모델로 일한 지 고작 2년, 게다가 예술가로서의 작품 활동은 3년이 조금 넘었으니까. “모델은 저에게 어떤 플랫폼을 제공했습니다.” 아이스크림콘을 쭉쭉 핥아 먹으며 <보그> 편집부에 놀러 온 김상우의 화술은 유재석이나 김제동 저리 가라다. “모델 이력이 예술가로 일하는 데 도움이 됐을 거라며, 그 자체를 썩 좋지 않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러나 모델이 아닌 예술가로서의 김상우를 원한 하비 니콜스와 테이트, 레드불, 소더비 등의 안목과 변별력이 아마추어가 아닌 한, 그건 성립되는 얘기가 아니다.

데미안 허스트가 졸업한 골드스미스를 휴학 중인 그의 프로 모델 입문은 패션의 관점에서 전형적인 사례다(세인트 마틴에서 순수 미술을 공부할 무렵, 패션 전공 학생들의 부탁으로 무대에 모델로 설 때만 해도 그저 재밋거리나 아르바이트 개념이었다). 친구처럼 지내는 <보그 코리아> 패션 에디터를 런던 패션 위크 쇼장 부근에서 기다리던 중, 즉석에서 어느 모델 부커에게 캐스팅된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면 ‘길캐’. 셀렉트 에이전시에 들어가 사무실을 오가던 중(런던 모델 에이전시 사람들은 모델을 편하게 ‘방치’하며 자립심을 갖고 모델로 성장할 수 있도록 느긋하게 지켜본다) 노즈 링을 한 이 한국 청년을 눈여겨본 브랜드 ‘스톤 아일랜드’ 관계자에게 발탁돼 사무실을 드나든 지 하루 만에 광고 계약을 땄다. “정원사, 건축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델 에이전시에 등록돼 있더군요.”

 

견고한 팔각형 얼굴에 가로 일직선으로 놓인 눈썹과 눈매, 그 아래 Y자 형태로 홀쭉하게 들어간 볼로 완성된 첫인상만 보면 상우가 꽤 무뚝뚝할 거라는 선입견이 생겨 거리감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대화 중에 툭툭 튀어나오는 과장된 제스처와 영국식 영어(생후 6개월 때부터 영국에서 살고 있다) 덕분에 선입견은 단숨에 박살 난다. 그건 타고난 ‘귀요미’기질 덕분이다. 낙천적 성향과 유머 감각, 눈웃음(무표정한 그의 포트레이트 사진만 본다면 정말이지 대반전!)으로 인해 그는 전 유럽 패션쇼 무대 뒤와 촬영장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로 떠올랐다.

이렇듯 찰나의 분위기와 감정에 충실한 그는 작업 방식 역시 즉흥적인 편이다. “본능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을 즉석에서 표현하는 게 좋아요. 그 자체가 아티스트로서 저 자신이니까요. 뭔가 골몰하고 기획하다 보면 최초의 의도나 순수성이 좀 떨어지지 않겠어요?” 아크릴은 그런 순간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 데 적절한 도구다. 제품 특성상 빨리 건조되기에 그 위에 덧칠하고 또 다른 감정을 덧발라 질감으로 표현하고, 여기에 플라스터, 레진, 필러 등을 섞어 평면 위에 양감을 표현하다(이런 울퉁불퉁한 표면은 세로 2m짜리 화폭에 주로 담긴다).

이 과정을 토대로 하되 ‘레드불’ 프로젝트를 위해선 새로운 접근을 시도했다(아티스트 다섯 쌍의 협업으로 기획된 전시로, 여러 장르에서 촉망받은 신예 아티스트들이 각자 협업 상대를 선정했다). “세인트 마틴 시절 영문학을 공부하던 친구가 떠올랐습니다. 시를 써서 랩을 하는 친구죠.” 괴짜 시인과 상우는 서로의 작품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각각 네 작품씩 준비했다. 갤러리 안 한쪽 입구에서 보면 상우의 작품이 있지만, 반대편 출구에서 보면 친구의 시가 적힌 액자가 동전의 양면처럼 짝지어 걸려 있다. “이 작품을 앞뒤로 보며 관객은 자기식대로 해석합니다. 그 해석 자체로 또 하나의 창조물이 관객의 머릿속에서 탄생하는 거죠.” 그러면서 “미술은 무조건 대화!”라고 강력히 주장한다(인터뷰 내내 두세 차례 이 말을 반복했다). “그래서 그림에는 제목이 없습니다. 제목이 보는 사람의 해석과 상상에 방해나 한계가 될 테니까요.”

소더비 경매를 위해선 두 점을 준비했다. 소더비사는 영국의 권위 있는 미술 잡지 <Avenir>와 함께 처음으로 채러티 옥션을 마련했다. 프리즈 아트 페어의 창시자가 기획한 행사로 참여한 영 아티스트 7인 중 한 명으로 상우가 선정됐다. 사실 상우는 중학교 때 수학 선생님께 처음 그림을 팔았고, 작년엔 화가로서 처음으로 작품을 공식 판매했다(어느 수집가가 약 400만원 에 사갔다). “몹시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모델 일을 하며 번 돈과는 완전 달랐죠. 그건 다른 종류의 성취감이었어요. 그래서 그 돈은 다른 은행에 입금했습니다. 진짜 돈 같았으니까요.” 이번 소더비 경매 시작가는 무려 1,000만원으로 점프!

 

20~30년대 인텔리겐치아의 인상부터 철딱서니 없는 10대 소년까지 모델로서 백 가지 표정을 보여주듯, 상우의 예술적 본능 역시 회화에 제한되지 않는다. 하비 니콜스와 테이트가 함께 준비한 상우 단독 전시에는 사진 작업이 공개됐다. “지난 6월과 7월에 열린 남성복 패션 위크 때 럭셔리 똑딱이 카메라로 지칭되는 콘탁스 T2로 여러 풍경을 찍었습니다. 패션쇼 풍경, 백스테이지, 모델 친구들 등등. 컴퓨터 리터칭 작업을 거쳐 이미지 북 같은 개념의 새로운 비주얼을 만들었죠.” 사진을 향한 애정은 또 다른 형태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어느 남성지를 통해 제가 직접 찍은 패션 화보를 보여줄 겁니다. 유럽 현지에서 만나는 모델 친구들과 놀면서 즐기듯 촬영하는 이미지 등 다양한 사진을 작업하려고 해요.”

그렇다고 사진 촬영이 그림 작업을 추월하는 건 아니다. 그는 날이면 날마다 그림을 그린다. 습관적일 수 있지만 의무감과는 다른, 반강제성을 띠는 일이다. 덕분에 그의 웹사이트(www.sangwoo.kim)엔 매일 습작이 올라온다(요즘처럼 일이 우발적으로 몰릴 때는 제외). “한 작업이 끝나면 기분이 급속도로 침체될 때가 있어요.” 상우가 자신의 웹사이트를 열어 그림을 보여준다. “하루 이틀 쉬다 보면, 그게 일주일, 다시 2~3주가 금세 지나죠. 그 휴식에 오래 머물수록 더 힘들어요. 그래서 무조건 매일 그림을 그립니다. 지속성을 띠어야 하니까요.” 그는 루치안 프로이트를 존경하고 사랑한다고 덧붙인다. “처음부터 끝까지 포트레이트만 작업했어요. 그런 일관성은 피카소에게도 없는 부분이었죠.”

그는 작업실을 함께 쓰던 친구들이 ‘뭔가 다른 것에 의지하거나 힘을 빌려’ 그림을 그리는 것과 달리 철저히 ‘제정신’을 유지한다. “새 작업을 위해선 잠도 푹 자야 하죠. 맑은 정신의 말짱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립니다. 이를테면 모범생 스타일이죠. 하하! 복잡한 마음에서 비롯된 작업은 제 마음이 담긴 작품이 아닌 듯 여겨져요.” 하지만 얼마 전엔 그런 방식과 규칙에 유연함이 생겼다. 심기가 무척 불편하던 시기에 작업하다 보니 자꾸 불만족스러워 뭔가 더하고 덧붙이고 새로운 것을 추가하게 됐다는 것. 완성한 뒤 다시 보니 자신의 새로운 면이 작품 안에 깃들어 있었다는 것. “그 역시 저의 또 다른 면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습니다.”

모델이 ‘문’이었다면, 미술은 세상을 향한 ‘노크’였다고 그는 전한다. 그러면서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라고 얼떨떨한 표정이다(여전히 해맑은!). “제가 두드렸더니 그쪽에서 받아줬습니다.” 스물한 살짜리 청년에겐 다양한 경험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성장 과정이다. “경험을 통해 현명해지고 철이 드는 것 같습니다. 너무 많은 일과 경험이 오히려 제겐 행운이죠. 모든 게 ‘a means to an end’, 그러니까 긍정적인 면에서 ‘목적을 위한 수단’입니다. 저는 스물한 살이지만 가끔 스물여덟 살처럼 느껴지기도 해 요. 2년 동안 모델 일과 미술 작업을 병행하면서 6년처럼 밀도 있는 시간을 보냈으니까요. 그래서 20대 후반 형과도 친구처럼 대화가 돼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