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럭셔리, 라텍스

페인트로 코팅한 듯 매끈한 곡선과 유리알 같은 광택을 선사하는 라텍스. 좀 유별난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요물’ 라텍스야말로 진정한 럭셔리 패션이라는 사실.

 

“대중이 낮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인식하게 된 데에는 킴의 역할이 가장 크죠.” 라텍스 의상 디자이너 아츠코 쿠도(Atsuko Kudo)의 남편이자 매니징 디렉터 사이먼 호어는 킴 카다시안이 자신의 향수 론칭 행사 때 입었던 살구색 아츠코 쿠도 펜슬 스커트와 브라톱에 대해 말했다. 레이디 가가, 마일리 사이러스, 케이티 페리도 무대에서 라텍스 의상을 선보였지만 은은한 색감과 심플한 디자인의 라텍스 투피스는 ‘비정상적’인 성적 취향보다 여체를 강조할 수 있는 신선한 원단처럼 보였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하이패션계에 등장한 라텍스 또한 우리가 이 오묘한 소재에 익숙해지는 데 한몫하고 있다. 힐리에와 바틀리가 지난봄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EDM펑크 걸들을 위해 런던의 라텍스 란제리 레이블 ‘하우스 오브 할롯’의 로빈 아처(Robin Archer, 마크 제이콥스, 루이 비통, 디올, 하우스 오브 홀랜드 등과 협업했고 영화 의상도 제작한 인물)에게 제작을 의뢰한 라텍스 레깅스와 브라, 케이프, 스커트 등등. 그리고 모델들이 신는 데 상당히 애를 먹은(그러나 여자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신어보고 싶은) 프란체스코 루소가 디자인한 디올 스키니 부츠, 아틀리에 베르사체 가을 오뜨 꾸뛰르 쇼에서 머리에 화관을 얹은 플로라들이 꽃밭 위를 걸었던 라텍스 소재 플랫폼 부츠까지.

“매장에서 판매하는 부츠는 라텍스가 아니라 페이턴트 레더와 PVC 소재입니다. 싸이하이 부츠는 신었을 때 쇼에서 본 것처럼 타이트한 핏이 연출되지만 아주 많이 길어요. 앵클 부츠 쪽이 편하고 실용적이긴 한데, 발목이 아주 가는 경우엔 딱 붙지 않고 헐렁하게 신을 수도 있어요.” 하우스 오브 디올에서는 두 스타일 모두 37 반 사이즈는 완판됐다며 38 사이즈 예약을 권했다. 루이자비아로마의 한국어 사이트에서도 킴 카다시안과 리타 오라, 케이트 모스, 디타 본 티즈를 단골로 둔 아츠코 쿠도의 기본 라텍스 아이템을 살 수 있다. 루이자비아로마의 여성복 헤드 바이어 카를로타 카르니아니 역시 셀럽들이 입었던 라텍스 옷의 반응이 가장 좋다고 전했다. “미니 드레스와 스커트 판매율이 꽤 높죠. 구입할 땐 정 사이즈, 혹은 한 사이즈 작게 선택해서 뷔스티에처럼 딱 맞게 착용하라고 조언합니다.” 마돈나와 니키 미나즈의 의상을 제작한 뉴욕의 라텍스 디자이너 더 배러니스(The Baroness)는 처음 라텍스를 시도하는 이들을 위해 짧고 타이트한 미니스커트나 무릎길이의 검정 스커트를 추천한다. “좀더 과감해질 수 있으면 팔락거리는 스케이터 스커트도 첫 시도로 적당하죠.” 케이티 페리, 리한나에게 의상 주문을 받곤 하는 아비가일 그레이다너스(Abigail Greydanus)는 섣부른 시도가 좋지 않은 기억을 남길 수 있다고 충고했다. “처음부터 너무 조이는 옷을 입어 불쾌한 기억을 가지면 두 번 다시 입지 않게 돼요. 제 경우엔 덜 끼는 옷부터 시작한 게 많은 도움이 됐어요.”

 

라텍스 의상은 하이패션계에서 새로운 도전의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금쯤 여러분도 도전 의식이 불타오른다면 ‘나와는 다른 세상 이야기’라는 고정관념부터 버리는 게 우선이다. 더 배러니스도 20년 전 처음 라텍스 의상을 선물 받을 당시 기분이 최악이었다고 회상했다.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니었죠. 게다가 억지로 몸을 밀어 넣었더니 터지기 일보 직전의 소시지가 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원래 란제리 디자이너였던 그녀는 그 일로 도전 의식이 생겨 라텍스 의상만 전문적으로 디자인하고 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덥지 않느냐는 겁니다.” 디자이너의 답은 옷이 얼마나 타이트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라텍스 의상도 엑스트라 스몰부터 엑스트라 라지까지 사이즈가 다양하고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맞는 사이즈를 입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통기성 있는 소재는 아니죠. 몸에서 땀이 나면 그대로 고일 겁니다.”

라텍스 디자이너 대부분은 실용적인 소재가 아니라는 데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마찰력이 큰 고무 소재인 데다 매우 얇기 때문에 피부에 달라붙거나 찢어지는 걸 방지하기 위해 입기 전, 피부와 옷 안쪽에 베이비파우더, 혹은 실리콘 베이스의 윤활제(일반 오일 제품은 라텍스를 손상시킨다)를 바르는 건 기본! 손톱에 걸려 찢어지는 경우도 많아서 면장갑을 착용하는 건 권고 사항이다. 또 집에 돌아오면 바로 벗어서 따뜻한 물에 비누나 세제 없이 헹군 뒤 부드러운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말려야 한다. 다 마르면 옷이 서로 달라붙지 않도록 소량의 베이비파우더를 고루 뿌리고 통풍이 잘되는 어두운 장소에 보관할 것. 짙은 색 물건이나 금속 제품이 닿으면 얼룩이 생길 수 있으니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금속 액세서리는 피하는 게 상책).

웬만한 보석이나 고가 원단보다도 관리법이 까다로운 만큼 제작 과정에도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언뜻 보기에 고무 조각을 대충 이어 붙였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라텍스 의상은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붙인 부분이 떨어지거나 이음새가 올록볼록하게 울기 십상. “라텍스의 세계는 소규모지만 숙련된 기술자들로 꽉 차 있습니다. 매우 특화돼 있죠.” 로빈 아처는 라텍스 전문가들은 장인 정신과 예술적 기질을 동시에 갖춘 이들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고정관념이나 선입견을 배제하고 보면, 라텍스는 현존하는 소재 중 체형에 상관없이 가장 모던하고 관능적인 방식으로 몸을 감싼다. 사이먼 호어는 한번 매력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올 수 없다고 장담했다. “라텍스 펜슬 스커트를 입고 거울을 보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죠. 우아하고 매끄러운 곡선과 그 반짝임이란!” 아츠코 쿠도는 라텍스야말로 럭셔리 패션이라고 단언했다. “라텍스를 입을 땐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입어야 합니다. 서두르지 말고 그 과정을 즐겨요. 라텍스는 당신의 즐거움을 위한 겁니다. 페티시 패브릭이니 하이힐이나 코르셋과 같은 거죠.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소재는 아니지만 아주 섬세한 소재입니다.” 자, 라텍스 하면 피가학적 변태 성욕의 이미지를 떠올렸다면 이제 지울 때도 됐다. 라텍스 꾸뛰르야말로 진정한 럭셔리 중의 럭셔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