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버섯

가을 숲에는 이미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축축한 이끼와 바스락거리는 낙엽 더미를 헤치고 강인한 향이 피어오른다.단단히 가을을 머금은 버섯 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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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버섯? 그건 봄에 많이 나요. 라면에 넣어 먹으면 아주 끝내주죠.” “모렐(Morel)을 라면에 넣어 드신다고요?” 야생버섯이 모여든다는 충북 괴산의 청천푸른내시장에 들렀을 때다. 버섯 상인의 말에 깜짝 놀란 앤드다이닝의 오너셰프 장진모의 입에서 탄식 섞인 반문이 흘러나왔다.

한국에서는 모렐을 곰보버섯이라고 부른다. 봄에 주로 나는 곰보버섯은 딱히 값어치가 없어 ‘잡버섯’이라 이름 붙은 온갖 야생 버섯 무더기에 섞어 팔 때가 부지기수다. 하지만 서양에선 트러플만큼은 아니어도 꽤 비싸다. 한국에서 요리사들이 쓰는 수입 건조 모렐 가격이 kg당 40만~50만원을 넘는다. 그마저도 아껴서 소스에 주로 사용하는 것을, 시장 상인은 생으로 라면에 듬뿍 넣어 먹는다니 그야말로 요리사의 주리를 트는 소리다.

가을이 차기 시작하면 세상이 온통 산해진미다. 물론 버섯마을에서도 잔치 소식이 들려온다. 모렐은 없어도 시장엔 버섯 향이 물씬했다. 산느타리, 싸리버섯, 참버섯, 오이꽃버섯 등 야생 버섯이 철마다 시장에 나오는 이유는 모두 송이버섯에서 비롯된다. 특히 추석을 앞두고 버섯을 찾아 산을 타는 버섯꾼들의 목표는 오로지 송이버섯. 둘째가 능이버섯이다. 당연히 가격순이다. 맛을 따지는 버섯 애호가들도 “첫째는 능이, 둘째가 송이, 셋째가 표고”라고 한다.

가을에 송이버섯 한 번 구워 먹지 않고서야, 미식가 명함에 면이 서지 않는 문화가 형성돼 있다. 장진모 셰프의 얘기에 따르면 버섯갓이 피었어도 송이는 송이다. “버섯 따는 사람들이 송이버섯은 꼭 캐요. 일본에서 사들이거든요. 버섯갓이 피지 않은 송이는 일본으로 보내죠. 하지만 모양이 중요한 요리가 아니라면 버섯갓 핀 송이버섯도 좋아요. 훨씬 저렴하고요.”

능이버섯은 향의 강도만으로 치자면 트러플 못지않다. 쿰쿰한 군내가 찌르르한 이 버섯도 추석 대목을 앞두고 인기가 좋은 버섯이다. 송이버섯 가격의 4분의 1쯤 한다. 버섯 미식가들이 세 번째로 꼽는 표고버섯은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야생 표고버섯 얘기다. 재배한 것과 모양새부터도 다르지만, 향도 더 강하고, 복잡하다.

하지만 버섯마을 잔치에선 덜 알려진 버섯 역시 강렬하게 향기를 내뿜는다. 시장에서 만난 버섯을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 맛봤다. 산느타리는 재배한 것과 다른 버섯처럼 느껴질 정도로 달달하다. 싸리버섯은 식감이 재미있고 살짝 쏘는 마무리가 특징이다. 참버섯은 나무의 향이 스며 있다. 서양에서는 샨트렐(Chanterelle)이라고 부르는, 모렐만큼은 아니어도 꽤 고급 재료로 통하는 오이꽃버섯(꾀꼬리버섯)은 오이꽃 같은 모양과 색도 아름답지만 고급스러운 살구 향도 일품이다.

“서울 시내 한가운데 뒷산에서 먹을 수 있는 버섯을 땄다고요?” “그럼, 물론이죠. 오늘도 잠깐 돌아서 이만큼. 평소보다 운이 좋은 날이네요.” 여행 같은 삶을 살다가 한국에 정착한 그는 경리단길 댄디핑크(Dandy Pink)의 오너 셰프다. 스테디셀러이자 간판 메뉴는 양고기 등 꼬치 요리지만 숲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식물과 버섯으로 근사한 요리를 만든다. 철마다 시골로 다니며 산도라지를 캐고 잣나무를 턴다.

근처 산에서 땄다는 그 버섯들은 경리단길의 세련된 카페 안 가득 코끝까지 훅 다가와 가을 향을 풍겼다. “이쪽 버섯들은 그물버섯 가족들, 포르치니(Porcini), 페니번(Penny Bun)과 같은 종인데 생김새나 맛이 조금 다르니 사촌쯤 되려나? 과일이나 채소와 마찬가지로 버섯도 같은 종이 기후만 맞는다면 세계 어디에서나 나요. 그리고 이건 야생 영지 버섯… 약재로 쓸 거라면 야생 영지버섯이 좋아요.”

“독버섯은 아무리 조심해도 모자라지 않아요. ‘죽음의 천사(Destroying Angel)’로 불리는 독우산광 대버섯 같은 버섯은 한국 산에도 정말 많은데, 이 버섯은 이름 그대로 맛있게 먹고 하루 뒤 구토 증상이 나타난 후 아무 일 없는 것 같다가 2주 후 독성이 작용해 죽게 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버섯이에요. 무섭죠?”

버섯은 맛있다. 특히 가을에 맛이 좋고, 야생 버섯은 강인한 향이 좋은 치즈나 와인, 싱글 몰트위스키 못지않다. 미식가들이 가을마다 찾는 능이버섯, 송이버섯, 표고버섯은 올해도 가을의 미각을 흠씬 채워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