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셰프의 옷

2017.07.13

by VOGUE

    셰프의 옷

    브라운관을 떠나 주방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온 정창욱 셰프가 뜻밖의 패션 메뉴를 선보인다. 패셔너블한 양말을 선보여온 ‘모스그린’의 김민석과 의기투합해 만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Standard’다. 음식과 여행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제안하는 스타일의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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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은 앞치마였어요. 형이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굉장히 오래 사용해서 해져 있었거든요. 제가 똑같이 만들어줬더니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새로 만든 데님 소재 앞치마를 질끈 두른 채 주방과 테이블 사이를 분주히 오가는 정창욱 셰프를 보며 김민석이 말했다. 2013년 감각적인 양말 브랜드 ‘모스그린’을 론칭하며 신발 속 패션의 새 기준을 제시해온 그가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STD(Standard)’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모스그린의 사무실은 정창욱 셰프의 운니동 레스토랑 ‘비스트로 차우기’에서 불과 10분 거리. 그렇게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들 간의 의리와 배려로 탄생한 STD는 작은 선물처럼 따뜻하고 자연스럽다.

    STD가 다루는 아이템은 주방용 앞치마뿐만이 아니다. 주방은 물론 일상에서도 착용 가능한 캠프 캡을 비롯, 아우터와 가방까지 고루 갖췄다. 기본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은 브랜드의 이름처럼 색감은 담백하고 딱 떨어지는 실루엣은 단순한 듯하면서도 독특하다. 가격대는 10만~20만원대로 합리적이다. 활동성을 고려한 세심한 디테일도 돋보인다. 여기엔 두 남자의 낭만적인 감성이 반영되었다. 붉게 노을 진 바다와 석양을 상징하는 브랜드 로고에서도 알 수 있듯 둘에겐 여행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같이 여행한 횟수만도 이미 스무 차례가 넘는다. “이 바지는 태국에 갔을 때 아이디어를 얻은 거예요. 제가 시장에서 바지를 하나 딱 집었는데, 그걸 보고 민석이가 유레카를 외친 거죠. 몇백벌을 사려고 하는 걸 간신히 말렸어요.” 직접 한번 만들어보라는 정창욱의 응원에 용기를 얻은 김민석은 태국의 어부들이 입던 바지의 소재와 디자인을 변용해 새로운 스타일의 랩 팬츠를 제작했다.

    누구보다 먼저 그 옷을 입고 생활해본 정창욱이 불편한 점을 지적하면 김민석은 이를 보완해나갔다. 예를 들어 일본 농부들의 가드닝 팬츠에서 영감을 얻은 바지는 격자무늬 천이라 아무리 입어도 무릎이 안 나오고 바람도 잘 통한다. 허리도 고무줄이라 누구라도 소화할 수 있다. 옛날식 프랑스 군복을 연상시키는 도톰한 재질의 프렌치 재킷은 스판 소재라 더없이 편하다. 방수 기능을 갖춘 점퍼는 넉넉한 수납공간을 갖춘 데다 지퍼도 투웨이라 원하는 스타일을 연출하기 좋다. 아무 데나 옷을 걸 수 있도록 등산복처럼 고리도 달려 있다. 단추가 두 개 달린 둥근 칼라의 귀여운 셔츠는 배 위에서 주로 생활하던 해군들의 제복 스타일을 차용한 것이다. 양옆에 주머니가 달려 무엇이든 집어넣을 수 있고 품도 넉넉하다. “그래서 저처럼 덩치가 큰 사람도 예쁘게 입을 수 있죠. 기왕이면 편하면서도 멋들어진 게 좋잖아요?” 정창욱은 자신의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에게 멋진 요리를 내놓을 때만큼이나 자신만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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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홍보대사 자격으로 하와이를 찾은 정창욱은 현지의 유명 셰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선물로 STD의 앞치마를 잔뜩 챙겨 갔거든요. 그런데 로이스(Roy’s) 레스토랑의 로이 야마구치가 제가 입고 있는 바지를 가리키며 어디서 샀느냐고 묻더군요. 이것도 우리 브랜드 제품이라고 했더니,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해서 당장 그 자리에서 벗어줬죠.” 결국 정창욱은 트렁크 팬티 바람으로 숙소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미 국내 셰프들 중엔 STD의 팬이 여럿 있다. 프랑스식 샤르퀴트리를 선보이는 임기학 셰프는 청담동 ‘꺄브 뒤 꼬숑’의 훈제실에서 살라미와 초리조를 만들다 그 옷차림 그대로 손님들을 맞이하고, 오세득 셰프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STD의 옷을 입고 출연하기도 했다. ‘비스트로 차우기’의 스태프들도 착용했음은 물론이다. 전쟁터와도 같은 주방을 매일같이 오가는 셰프들이 인정할 정도면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는 얘기다.

    “추리닝처럼 자기 몸에 편한 옷은 보통 남이 보기엔 불편하잖아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도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은 거죠. 기본에서 시작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차별화된 스타일과 감성을 보여주고 싶어요.” 전통적인 스타일을 현대적인 감각과 실용적인 디자인으로 재해석해낸 STD는 손맛 좋은 친구가 차려낸 집밥처럼 친근하고 건강하다. 두 남자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면서도 어느 구석 하나 과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부대낌이 없다. 브라운관을 떠나 주방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온 정창욱 셰프와 디자이너 김민석이 정성을 담아 차려낸 이 맛깔스러운 패션 메뉴는 STD의 온라인 사이트와 편집매장 ‘맨케이브’에서 만날 수 있다. ‘맛 깡패’가 자신한 만큼 그 맛은 믿어도 좋다.

    에디터
    이미혜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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