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본색

짜장이냐 짬뽕이냐, ‘부먹’이냐 ‘찍먹’이냐 정도의 레벨이 아니다. 이제 사람들은 사천성 못지않고, 광동성 버금가는 중국요리를 서울 한복판에서 즐긴다. 철가방 배달 음식에서 어엿한 테이블의 주인공이 된 근래의 중화본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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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이 풍년이다. 서울의 차이나타운이라 불리는 연남동엔 맛집이라 불리는 중국집이 수십 곳이고, 지난 10월 케이블 채널 SBS플러스에선 중식 셰프 이연복, 여경래, 유방녕, 진생용을 멤버로 요리 대결 프로그램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이하 ‘중화대반점’)>을 론칭했다. 짜장면, 짬뽕의 카테고리를 넘어서는 본격 중식 테이블이다. 덩달아 중국산 맥주도 인기다. 칭타오는 지난해 하반기 밀러, 버드와이저를 제치고 수입 맥주 판매량 1위를 차지했다. 수입사인 롯데마트는 올해 안에 하얼빈 맥주도 들여올 예정이라고 한다. 가게는 대부분 남루하고 짜장면과 짬뽕의 맛은 대동소이라 그저 집 가까운 곳에 주문했던 중국 음식이 이제 다양하고 풍부한 옵션을 달고 새롭게 주목받는 것이다. 인천 차이나타운과 고급 호텔 주방 출신의 셰프들을 대동원한 <중화대반점>의 옥근태 PD는 프로그램 설명서에서 “궁극의 식재료를 통한 미식의 향연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동네 중국집의 철가방 음식 중식이 이탤리언이나 프렌치 못지않은 어엿한 외식 테이블의 메뉴가 되었다.

근래의 중국요리 인기를 이끄는 건 역시 연남동 음식점들이다. 연희동의 남쪽, 본래 화교들이 모여 살아 중국집이 많았던 이곳은 사실 별 볼일 없는 주택가였다. 홍대, 신촌 등과 가깝지만 교통이 애매하게 불편하고, 대형 복합 시설이 없었기에 굳이 자주 찾는 동네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터무니없이 비싸진 임대료를 피해 홍대에서 이사 온 젊은 아티스트들, 크고 작은 카페, 그리고 잡화점이 늘어나면서 연남동이 재정비됐다. 더불어 2003년 시작된 경의선 폐철도의 산책로 조성 사업으로 완성된 경의선숲길은 연남동을 시끄러운 신촌이나 홍대와 다른, 아직은 덜 상업적인 동네로 꾸며가고 있다. 심지어 요즘 사람들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갖다 붙여 재미 삼아 ‘연트럴파크’라고도 부른다.

연남동의 중국집은 웬만큼 다 맛있거나 혹은 그저 그렇다. 이연복 셰프가 운영하는 ‘목란’이나 코리아나 호텔의 중국집 대상해 대표였던 왕육성 셰프의 ‘진진’ 등 고급 중식을 타깃으로 하는 곳은 맛의 섬세한 차이나 요리의 구성, 그리고 볼륨감 등을 기호에 따라 찾아 즐길 수 있겠지만, 그 외 대부분의 중국집은 그저 화교 출신 주방장들이 본토의 레시피를 살려 만들어낸 요리이기 때문이다. 맛이 없진 않지만 굳이 호들갑 떨 수준은 아니다. 그래도 수십 곳의 중국집 중 몇 곳을 골라보면 단연 ‘송가’가 있을 것이다. 연남동이 핫 플레이스로 뜨기 이전부터 인기를 누렸던 이곳은 포장마차식 주점의 중국집이다. 짜장면이나 짬뽕은 아예 없고, 누룽지 탕수육이나 마파두부, 그리고 가지튀김이나 숙주볶음 등 술안주용 메뉴가 충실하다. 영업시간 역시 술집답게 오후 5시부터 새벽 2시까지. 중식 경력 40년의 주방장이 어느 하나 모자라지 않을 정도의 맛을 뽑아낸다.

최근 tvN 미식 프로그램 <수요미식회>에 소개돼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진 ‘편의방’은 만두가 맛있는 집이다. 만두소로 배추를 푸짐하게 넣는 산둥 지역의 만두를 파는데 만두피는 쫄깃하고 육즙과 향은 적절하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생선 만두. 삼치 살을 돼지비계와 섞어 속을 채운 뒤 삶지 않고 익혀서 내오는 생선 만두는 생선 향 탓에 호불호가 갈릴 순 있겠지만 담백함이 으뜸이다. 물만두, 군만두는 쉽게 품절되며, 포장 구매는 불가하지만 먹다 남은 음식은 싸갈 수 있다. 편의방에서 10분쯤 걸어가면 별미 메뉴를 파는 중국집이 하나 더 있다. 이름은 ‘산왕반점’. 테이블이 예닐곱 개뿐인 작은 가게지만 이곳에선 고급 중식당에서나 판다는 멘보샤를 맛볼 수 있다. 새우 살을 다진 뒤 이를 식빵 사이에 넣어 저온에 튀겨내는 멘보샤는 식빵의 파삭함과 새우의 진한 맛이 어우러진 음식이다. 새우 살과 함께 다양한 채소를 넣어 만들기도 하지만, 산왕반점은 통통한 새우 살만 가득 넣어 튀긴다. 식빵이 기름을 빨아들이는 탓에 다소 느끼할 수 있어도 술안주로도, 간식거리로도 꽤 괜찮은 메뉴다.

중식 마을 연남동의 거리 풍경은 사실 별 특징이 없다. 랜드마크가 될 만한 건물이 없거니와 유일한 특징이라 할 중국집의 간판은 대개 다 비슷하게 촌스럽기 때문이다. 근데 근래 유독 눈에 띄는 간판이 하나 등장했다. 대만 시장통의 요리를 재현하겠다는 ‘대만 야시장’이다. 중화 느낌 가득하게 주황색으로 도배된 이 집은 연남동에서 만두로 유명한 ‘이품분식’ 주인의 아들 며느리가 오픈한 곳이다. 가게는 대만 야시장의 분위기를 살려 요란스럽게 꾸며졌고, 가격이 저렴한 만큼 모든 서비스가 셀프다. 소스를 뿌려 먹지 않는 대만식 탕수육이나 야시장의 고정 메뉴 양꼬치 등을 맛볼 수 있다. 대만 야시장을 얼마나 충실히 재현했는지는 다소 의문스럽지만 가을 저녁 가볍게 즐기기엔 나쁘지 않다. 다소 징그러워서, 때로는 비주얼이 너무 대범해 겁냈던 중국의 본격 요리. 이제는 이 대륙의 테이블이 꽤나 친숙하게 다가왔다. 가격도 저렴해 지갑 사정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무엇보다 술안주로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린다. 식탐이 샘솟는 계절 가을. 중식 테이블이 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