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광고 전쟁

인터넷에서 뉴스를 클릭할 땐 무차별적인 광고 폭격을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 늦여름 모기처럼 성가시고 선정적이기까지 한 데다 쉴 새 없이 쏟아지지만 이를 막을 방법은 거의 없다. 보여줘야 하는 자, 보기 싫은 자. 인터넷 뉴스 광고를 두고 벌어지는 지금 가장 뜨거운 두뇌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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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없애보려 애쓰고 피해보기도 했지만 더 최악의 상황만 초래할 뿐이다. 인터넷 뉴스 본문을 덮고 있는 광고 배너 얘기다. 요즘은 창을 닫으려고 화살표를 클릭하는 순간 새로운 창이 열린다. 열기 버튼이 순식간에 생성되기 때문이다. 눈을 부릅뜨고 개미 오줌보다 작은 닫기 버튼을 찾고 있노라면 지뢰 찾기 게임이라도 하는 기분이다. 기사를 둘러싼 번쩍거리는 배너는 또 어떤가. 블랙헤드 수십 개가 콧등에 등장했다 사라지길 반복하고, 흉측한 잇몸에 철심이 박힌다. 정체 모를 ‘산낙지’가 꿈틀거리는가 하면 이름 모를 여인이 엉덩이를 흔들 때도 있다. 지라시로 뒤덮인 유흥가 한복판에 서 있는 상황과 다를 바가 없다. 광고로 뒤덮인 인터넷 뉴스 페이지가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점점 지능형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곳은 무법 지대이다.

이는 우리가 인터넷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더 이상 누구도 과거처럼 신문을 구독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내려가지 않는다. 포털 뉴스 섹션에서 뉴스를 클릭하거나 키워드 검색을 통해 나열된 뉴스를 골라 읽는다. 어떤 신문사 기사인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독자가 신문사의 이름을 기억 못하듯 신문사도 독자 앞에서 이미지 메이킹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광고가 어떤 경로로 독자에게 도달하든 매달 광고비만 입금되면 된다. 인터넷 뉴스 신문사는 자체 광고팀을 두지 못하고 네트워크 사업자에게 일임한다. 이들 네트워크 사업자는 여러 매체를 묶어 광고주와 거래를 대행한다. 혐오스러운 광고를 문제 삼아도 “어떤 광고가 들어올지 우리도 알지 못한다”는 변명이 돌아오는 이유다. 광고주 입장에서는 소액 광고가 가능하며 여러 매체에 나갈 수도 있다는 장점이 있다. 대출 상담, 비만 관리, 발기부전 치료제 등 정체가 의심스러운 광고도 그들의 리그에서는 중요한 수입원이다. 사실 종이 신문의 ‘얼굴’이라 불리는 1면조차 효능이 확인되지 않은 의약품, 건강식품 등의 광고로 채워진 지 오래다.

늦여름 모기처럼 성가시고 선정적이기까지 한 콘텐츠가 전달되고 있지만 사실 이를 막을 법이라는 게 없다. 그나마 네이버, 다음 등 거대 포털은 정부로부터 압박을 받기 때문에 유해한 광고는 받지 않고 시간대별로 노출되는 광고를 조절하는 등 자체 내규를 정해 지키고 있다. 이름을 알 만한 매체는 어느 정도 광고 거름망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도덕성을 따지기에 너무 배가 고픈 수천 개에 달하는 소규모 매체이다. 이들을 관리 감독하는 건 인터넷신문위원회가 유일하다. 인터넷신문위원회는 인터넷 광고에 대한 심의 체계를 구축해 ‘자율 규제’를 한다. 현행 법령에 직간접적으로 저촉되는 광고에 한해 ‘삭제하거나 고쳐주지 않을래?’ 식으로 간신히 청하고 있다는 뜻이다. 당연히 솜방망이 처벌조차 없다. 작년 초까지 심의 건수는 고작 400여 건에 불과했다. 매체 수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다. 인터넷 뉴스 광고를 규제해야 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아직까지 강제적인 법망의 손길이 닿지 못한 상태다.

물론 무차별적 광고 폭격에 대항하는 방패가 있긴 하다. 광고 차단 프로그램이다. 몇 년 전부터 크롬, 파이어폭스 브라우저 유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으며 광고 폭격을 막아내고 있다. 실제로 차단 프로그램을 깔면 진공청소기로 밀어낸 듯 산뜻한 화면을 마주할 수 있다. 지난 9월 크롬은 플래시 광고를 아예 차단해버렸다. 웹 페이지에서 플래시 광고가 정지되도록 브라우저를 업데이트한 것이다. 모바일 환경으로 옮겨가면 차단 프로그램은 더 빛을 발한다. 광고를 차단하면 브라우저가 빠르게 작동해 데이터와 배터리 소모량이 줄어든다. 애플은 iOS9부터 웹 브라우저 사파리에 광고 차단 앱을 서비스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몇몇 매체는 이에 맞서 강수를 뒀다. <워싱턴 포스트>는 광고 차단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이 기사를 클릭하면 “우리는 안전한 광고를 내보내고 있고, 당신의 개인 정보는 건드리지 않는다. 계속 읽고 싶으면 광고 차단 프로그램을 지워줘”라는 메시지를 내보내며 기사를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가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니 광고는 감수하라는 강력한 의사 표현이다. 독일 주간신문 <디 차이트>와 경제신문 <한델스블라트>는 다운로드 1위 광고 차단 프로그램 ‘애드블록’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수입원을 빼앗아가 경쟁을 저해한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다. 독일 법원은 독자는 광고를 보지 않을 권리가 있다며 애드블록의 손을 들어줬지만, 애드블록이 뒷돈을 받고 광고를 차단하지 않는 ‘화이트리스트’를 운영하고 있다는 등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 와중에 광고 차단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구글이나 애플의 검은 속내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차단을 내세워 이용자를 확보한 뒤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콘텐츠만 골라서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광고계에서 차단 프로그램은 생존이 달린 중대한 문제다. 하지만 ‘극혐’ 이미지로 인터넷 뉴스를 도배하는 우리나라에서 이들 두고 조용한 건, 차단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사용자가 2%에도 미치지 않는 현실 때문이다.

보여줘야 하는 자, 보고 싶지 않은 자. 무조건적인 차단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좁히기 위한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다. 사실 속을 들여다보면 이들 광고에도 엄연한 수요라는 게 있다. 오리콤 배은진 차장은 “누군가에겐 공해지만 성적인 고충이 있거나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중요한 콘텐츠가 된다. 실제로 광고 차단 프로그램을 깔았던 사람 열 명 중 세 명은 프로그램을 지운다”고 말한다. 대체 누가 클릭할까 싶지만 19금 광고일수록 클릭 수는 엄청나다. 노출당 과금에서 클릭당 과금으로 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기 위한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 광고는 자극적인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보여줘 남녀노소 모두에게 각인되도록 하는 게 목적이다. 태생 자체가 짜증을 유발해 바이럴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인 강요는 오래갈 수가 없다. 지금까지 인터넷 뉴스 광고는 싫다는 독자를 붙잡고 억지로 광고를 보여줬다. 광고가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자양분이고 그 자체로도 정보로서 의미를 갖는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불신을 떨쳐버리기 위해선 진화가 필요하다. 그간 광고는 살아남기 위해 발전을 거듭해왔다. 인터넷 뉴스 광고 역시 서서히 형태를 달리하게 될 것이다. 현재까지 가장 힘이 실리는 광고 형태는 내러티브 광고다. 대단한 기술적 진화라기보다 처음부터 광고임을 밝히되 정말 가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형태다. 그동안의 눈속임과는 완전히 반대다. 사실 실수로 클릭하도록 함정을 심어두는 그 기발함이라면 세상에 못 만들 광고가 없다. 광고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