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걸으세요?

몇 년 전 세그웨이가 등장했을 때까지만 해도 스마트 모빌리티는 신기하지만 크고 값비싼 눈요깃거리에 불과했다.하지만 요즘 TV와 거리를 점령한 전동 보드는 훨씬 저렴하고 다양하다. 걷지 않는 미래가 바로 집 앞 골목까지 찾아온 것이다.

스트랩 샌들은 쥬세페 자노티 (Giuseppe Zanotti).

스트랩 샌들은 쥬세페 자노티 (Giuseppe Zanotti).

올봄 칸국제영화제에서 래퍼 크리스 브라운은 영화제 역사에 없던 광경을 만들어냈다. LA에서 즐겨 타던 투 휠 전동 보드를 타고 나타난 것이다. 크리스 브라운이 신기한 탈것에 올라 몰려드는 시선을 즐기며 유유히 거리를 활보하는 사이, ‘앙투라지’들은 잰걸음으로 그를 따라가고 있었다. 곧 그 광경이 한국에서 재현되기 시작했다. <무한도전>에서 정준하는 투 휠 전동 보드를 타고 노래했고, <나혼자 산다>의 도끼는 투 휠 전동 보드 ‘씽씽이’를 타고 설거지를 한다. 급기야 드라마 <후아유>에서 육성재는 외발 전동 휠을 타고 도로를 폭주하기까지 했다. 얼마 전엔 지드래곤의 인스타그램에도 투 휠 전동 보드가 등장했으니, 이제 걷는 건 유행에 뒤처진 일이 된 게 아닐까?

전동 킥보드, 투 휠 전동 보드, 외발 전동 휠, 예전 ‘세그웨이’ 형태의 전동 휠 등 바퀴 수나 손잡이 유무, 모양새는 각기 다르지만 이 모두를 ‘스마트 모빌리티’라 부른다. 쉽게 말해 전기 동력을 이용한 개인용 이동 수단이다. 속도는 시속 10km부터 좀 빠른 것은 시속 40km까지, 한 번 충전으로 대개 20~40km 내외를 거뜬히 주행한다. 무게중심을 감지해 평형을 알아서 맞춰주는 자이로센서 등 첨단 기술이 사용됐다는 점은 굳이 몰라도 된다. 아무튼 과학자들은 지혜를 짜내 이 새로운 문물이 익스트림 스포츠 대신 레저,혹은 이동 수단으로 쓰일 수 있도록 매우 쉽게 만들었다. ‘나는 걷지 않는다, 다만 이동할 뿐이다’라는 진화된 인류의 명제에 동참해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한강변을 중심으로 동네마다 대여점이 생기는 추세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건 전동 킥보드. 어릴 때 골목깨나 누비던 이라면 킥보드는 이미 몸에 익숙한 탈것이다. 하지만 전동 킥보드는 일반 킥보드와 좀 다르다. 뒷발을 굴려 앞으로 나아가고 뒷바퀴의 브레이크를 이용하거나 발을 내디뎌 멈추는 원리는 같지만 전동 킥보드는 손잡이에 달린 레버를 당기면 된다. 뒷발을 굴리는 동작이 생략되니 그저 보드 위에 올라타 균형을 잡는 것 외엔 할 일이 없다. 브레이크 역시 레버로 조종할 수 있어 매우 안락한 이동이 가능하다. 마치 서서 타는 경량급 스쿠터 같다. 고급 모델에는 노면의 충격을 흡수하는 ‘쇼바’도 장착돼 있어 보도블록의 요철이나 턱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속도는 보통 20km 내외까지 나지만 적응되기 전까지는 실제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전동 킥보드 다음으로 도전한 것은 투 휠 전동 보드. 투 휠 전동 보드는 오로지 몸의 중심을 이동시켜 조작한다. 양발을 발판에 올리면 자이로스코프가 평형을 맞춰준다. 앞으로 가려면 무게중심을 앞으로, 뒤로 가려면 뒤로, 옆으로 가려면 그 방향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기만 하면 섬세하게 반응해 빠르게 전후좌우로 움직인다. 가속과 감속, 정지 역시 마찬가지 원리. 쉽게 말해 생각하는 대로 움직인다. 누구라도 30분 내로 적응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전동 킥보드에 비한다면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특히 탈 때는 먼저 올린 한 발의 중심 이동에 따라 기기가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요령이 필요하다. 하지만 적응된 후에는 마치 손오공의 근두운이나 마법의 양탄자를 타고 있는 기분! 스노보드를 탈 때처럼 무게중심을 낮추고 온몸을 이용하는 것이 포인트. 도끼가 타던 자이로드론(zyrodrone.co.kr)을 빌려 집안에서 충분히 연습한 후 한강변으로 나갔다. 평평한 집 안과 달리 바퀴가 작은 탓에 노면의 충격이 그대로 전해지고,그때마다 균형을 잃기 쉽다는 것이 단점. 얕은 턱은 잘 올라가지만 조금만 높이가 달라도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아무래도 한국의 인도는 아직까지 스마트 모빌리티에 준비돼 있지 않은 모양! 편의점에 타고 나가기엔 적당하지만 출퇴근용으로는 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바퀴가 하나인 것과 두 개인 것이 있는데, 하나짜리는 3시간은 타야 적응할 수 있을 거예요. 두 개짜리는 그래도 1시간 정도 열심히 연습하면 탈 수 있고요” 외발 전동 휠 중 대표적인 에어휠(roristore.com)의 홍보 담당자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조언할 때까지만 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외발자전거 모양의 외발 전동 휠 역시 투 휠 전동 보드와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기기다. 앞뒤뿐 아니라 좌우로도 균형이 이동하는(쉽게 말해 휘청거릴 방향이 더 많은) 탓에 선 채로 발판 위에 오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한 발을 올리면 바로 쏠리는 탓에 앉은 채 양발을 올린 후 일어나는 것이 초심자에게는 적당한 방법. 일어난 후에도 사방팔방으로 휘청거리는 무게중심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나사로 쉽게 뗐다 붙일 수 있는 보조 바퀴를 단 채로 연습한 후 보조 바퀴를 졸업하는 과정이 필요한 기기. 하지만 익숙해질수록 매력적이기도 하다. 스키를 탈 때처럼 몸의 균형을 옮길 때마다 중력과 원심력이 느껴지는 재미있는 탈것이었다. 속도감 역시 투 휠 전동 보드보다 시원시원하다. 마찬가지로 노면 충격에 예민해 장거리 주행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스마트 모빌리티가 모두의 탈것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아마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강변에서 가을바람을 맞으며 이 새로운 탈것을 타고 노는 건 꽤나 재미있는 일이었다. 집 안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얼마 전 파리 패션 위크에서 모델들은 다른 모델의 어깨에 거꾸로 매달리는 해괴한 워킹을 연습해야 했다. 릭 오웬스의 괴팍한 쇼였다. 다음 패션 위크의 이색 워킹은 뭘까? 스마트 모빌리티가 등장하지 않을까? 감히 예견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