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춘부에겐 특별한 것이 있다

그녀는 지금 새로운 연극, 책, 레스토랑, 그리고 패션쇼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강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매춘부에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을까?

 

<몰 플랜더스(Moll Flanders)>에서 <귀여운 여인(Pretty Woman)>에 이르기까지 매춘부라는 인물은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를 유혹하고, 슬프게 하고, 자극하고, 겁먹게 하고, 기쁘게 하고, 불안하게 만들어왔다. 하지만 왜 갑자기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 직업이 현대 여성의 흥미를 끌게 된 것일까? 왜 생로랑의 캣워크를 비롯해 연극 무대, 박물관, 심지어 레스토랑에 이르기까지 매춘부, 창녀, 윤락 여성, 그리고 마담을 그렇게 많이 참고하는 걸까?

“평판이 나쁜 인물들은 늘 흥미를 끌 겁니다”라고 캐서린 휴이트(Catherine Hewitt)는 말한다. 그녀의 신간 <The Mistress of Paris>는 19세기 유럽에서 가장 야망 넘치고, 가장 성공하고, 가장 막강했던 창녀 중 한 명인 발테스 드 라 비뉴(Valtesse de la Bigne)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런 여성들은 규범 바깥에 있습니다. 착한 여자들에게 기대되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지요.” 발테스는 그처럼 아주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사회 규범을 내팽개친 여성. 그녀는 빨래를 담당하던 하녀의 가난한 딸에서 황제와 동침하고, 중요한 미술품을 수집하고, 그 과정에서 정치적 영향력과 부를 지닌 여인이다.

“아마도 당시엔 창녀가 되는 게 그녀가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겁니다”라고 휴이트는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분명 아버지, 그리고 나중엔 남편에게 예속되었을 테니까요. 그것이 그녀의 이야기가 놀라울 정도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에도 여성은 온갖 기대와 관습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까요.”

독립적인 여성으로서 매춘부라는 개념은 문제가 많다. 그것은 푸시업 브라만큼이나 성노동에 인공적인 광채를 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현재 일고 있는 매춘 산업에 대한 관심을 관통하고 있다. “창녀는 결혼의 제약을 받지 않고 사교계에서 활동할 수 있습니다”라고 돈마 웨어하우스(Donmar Warehouse, 코벤트 가든에 있는 비영리 극장)의 아트 디렉터 조시 루크는 말한다. 그녀가 새롭게 각색해 12월에 막이 오를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에는 미셸 도커리(Michelle Dockery), 재닛 맥티어(Janet McTeer), 그리고 도미닉 웨스트(Dominic West)가 출연한다. “그녀는 생활을 위해 다른 방법으로 타협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결혼과 엄마 역할이라는 족쇄에 대한 이런 대안은 정말 엄청난 해방일까? 자신의 몸을 파는 것이 남편의 셔츠를 빠는 것보다 덜 희생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번 9월에 극작가이자 연출자인 제시카 스웨일(Jessica Swale)의 새로운 작품인 <넬 그윈(Nell Gwynn)>이 글로브 극장 무대에서 바로 이런 논쟁을 펼쳐 보일 것이다. 2013년 시대극 <Belle>의 주인공이었던 구구 음바샤-로(Gugu Mbatha-Raw)가 넬 역으로 출연한다. “넬이 자신의 연인인 찰스 하트에게 ‘나는 지금 자유예요. 과거엔 자유로운적이 없었어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어요”라고 스웨일은 설명한다. “매춘부로서 그녀는 섹스의 대가로 돈을 받았고, 여배우로 활동했어요. 창녀로서 그녀는 혼자 힘으로 자유롭게 살았지요. 하트는 그녀의 말에 이렇게 답합니다. ‘아니야. 당신은 그저 조금 비싼 창녀일 뿐이야.” 현대의 페미니스트에게 넬 같은 인물이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자신의 독립을 희생하지 않고 사랑과 경제적 안정을 쟁취하기 위해 이렇게 고군분투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시즌 무대에 찢어진 타이츠, 모피 코트, 빨간 립스틱, 금이 간 가죽이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제로 섹스 산업의 매력과 슬픔을 갈망하진 않는다. 다만 늘 그런 결과를 낳아온 투쟁에 공감할 뿐이다. 우리는 자유롭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자유로운 여성과 매춘부 사이의 애매한 경계는 9월 22일에 시작된 오르세 미술관의 전시회 <Splendour and Misery: Picture of Prostitution in France(1850~1950)>에서 탐구한 주제이기도 하다. “매춘부는 19세기 후반 도시화로 인한 사회적인 모호함의 증상 중 하나일 뿐입니다”라고 이번 전시의 공동 큐레이터인 리처드 톰슨은 말한다. “거리에서 누가 매춘부인지-그녀는 할까, 하지 않을까?-구별하는 건 상당히 중요했어요. 카페 테라스나 뮤직홀에서 매춘부는 메이크업과 노출된 가슴골을 통해, 혹은 스커트를 들어 올림으로써 자신을 분명히 드러내곤 했을 겁니다. 반면에 그녀는 그것에 대해 아주 신중했을 거예요. 경찰의 관심은 끌지 않으면서 남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말이에요. 남자들은 단순히 여자를 돈 주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그녀를 유혹하고 있다는 생각에 성공한 기분을 느꼈어요.” “난잡한 여자”로 낙인찍히지 않으면서도 성적으로 접근 가능해 보이는 것 사이의 이런 절묘한 줄타기는 현대 여성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19세기 뮤직홀은 21세기 레스토랑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구애 방식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그 시기의 산업 성장은 처음으로 여성이 무엇을 입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오늘날 여성이 허벅지 위까지 올라오는 멋진 생로랑 가죽 부츠를 고를 수 있는 것처럼-재미를 위해-당시엔 몸을 파는 여성들도 자신의 옷을 구입할 수 있었다. “여성의 차림새를 보고 그녀가 매춘부인지 아닌지 구별하는 건 상당히 힘들었어요”라고 휴이트는 설명한다. “당시는 최초의 백화점이 등장한 시대였어요. 그래서 갑자기 옷을 비롯한 패션 관련 아이템을 손에 넣기가 훨씬 더 쉬워졌습니다.”

미술 작품의 매춘부 묘사에 대해 그녀가 매춘부인지 아닌지, 기꺼이 그 일을 할지 그렇지 않을지에 대한 의문이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그것은 굉장히 사람을 감질나게 한다. 드가의 그림 ‘L’Absinthe’-여인은 중간 부분을 응시하면서 옆에 앉은 남성 쪽으로 슬그머니 발을 기울이고 있다-같은 이미지의 애매모호함은 보는 관객들에게 뚜쟁이 역할을 강요한다. 즉 그녀에게 접근할 여지가 있는지 파악하려고 애쓰게 만드는 것이다. 톰슨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런 배치를 해석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100%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고양이의 다 아는 듯한 눈짓, 구겨진 침대 시트, “갓 피어난 꽃을 꺾은 것”의 이중적 의미-처녀성을 빼앗았다는 뜻이다-등이 마네의 ‘올랭피아(Olympia)’를 고전적인 누드화에서 매춘의 상세한 묘사로 탈바꿈시킨다. 두 경우 모두 몸짓, 뉘앙스 등이 문제이다. 그리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생활을 위해 성적으로 적극적인 여성이 된 매춘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처녀 여왕, 성인, 혹은 고전 영화 속 여주인공보다 훨씬 더 공감을 불러온다-만약 당신이 선택을 강요받는다면 더욱더 그럴 것이다. 그녀는 사회적으로 계층 이동을 할 수 있고, 남성들을 조종할 수 있지만 감정적인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투쟁해야 한다.

“넬은 그 태도에 있어 너무나 현대적이에요”라고 스웨일은 말한다. “그녀가 처리해야 하는 일들이 있어요. 진정한 사랑과 경제적 안정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것, 누군가를 사귀고 있지만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 진짜 함께 있고 싶은 사람과 일부다처 관계를 맺는 것과 보다 안전한 사람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 등등. 그런 면에서 그녀는 지금도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어요.”

 

1967년 영화 <세브린느(Belle de Jour)>에서 카트린 드뇌브가 연기한 벨 같은 인물이 매력적인 건 너무나 시크한 YSL 의상과 실버 블론드 미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성적 욕구 불만을 충족시키기 위해 매춘을 선택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는 자신의 정사의 주체자이다. 그런식으로 그것은 대행사(에이전시), 그리고 욕구의 문제이다.

“저는 이런 비밀 엄수와 배타성이 아주 흥미로웠어요”라고 올여름 메이페어의 마운트 스트리트에 문을 연 레스토랑 르 샤바네(Le Chabanais)의 주인 바런 탈레자(Varun Talreja)는 말한다. 이 레스토랑의 이름은 파리의 전설적인 사창가에서 따왔다. 전성기에 이 사창가는 툴루즈 로트레크와 에드워드7세 같은 아티스트들과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캐리 그랜트와 험프리 보가트 등을 접대했다. 셰퍼드 마켓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인 키티 피셔(Kitty Fisher)-친밀하게 놓인 테이블은 패션계 사람들과 식도락가들을 유혹하고 있다-역시 악을 낭만적으로 미화한 아이디어를 참고했다. 키티는 그 지역에 살았던 창녀로 조슈아 레이놀즈 같은 유명한 그 시대 화가들은 그녀를 그림으로 남겼다. 이 레스토랑의 주인 페넬로페 밀번은 키티 피셔 레퍼런스가 향수를 자극한다고 말한다. “당신은 오늘날-원하면 누구와도 잘 수 있는 시대-왜 사람들이 매춘부를 이용하는지 궁금할 거예요.” 분명 섹스와 예술, 음식과 쾌락, 영향력과 욕망 사이의 관계는 벨 에포크 시대만큼이나 지금도 막강하다. 물론 많은 경우 매춘에 대한 이런 문화적인 묘사는 남자들에 의해 창조되고, 연출되고, 그려지고, 거래되고, 기록된다. 여성 성 노동자들의 실제 경험과 그런 묘사와는 거리가 있다. 창녀나 거리의 여자의 몸은 그저 인간의 경험을 묘사한 세 폭짜리 그림-섹스, 돈, 권력-을 그리기 위한 캔버스에 불과하다.

그러나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옷핀으로 고정하고 1시간에 100달러를 받는,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비비안 워드를 비롯해 <버터필드 8>에서 잠옷을 입고 위스키를 마시는 콜걸 겸 모델,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연기한 글로리아에 이르기까지 가공의 매춘부들은 현대 여성들을 계속 매료시키고 있다.

그건 아마도 여성들이 여전히 남자들의 규칙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헤픈 여자’로 보이지 않으면서도 섹시해야 한다는 통념이 지배하는 경제적으로 불확실한 시대에 이런 인물들이 규칙을 깨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역사라는 안전거리를 두고 섹스, 돈, 권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얘기한다. 그들은 남성들의 기대로 규정되는 세상, 그러나 우리 중 많은 사람이 더 이상 그렇게 살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들은 게임을 하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도 새로운 룰을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