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생선

가을엔 산과 들에 먹을 것이 지천이고, 바다에서도 군침 도는 풍어 소식이 들려온다. 겨울이 오기 전, 이 짧은 가을 맛을 온전히 봐두자. 물론 보름달 같은 뱃살은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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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대방어로 태어날 걸 그랬지. 이렇게 뱃살이 칭찬을 받으니 말이야.” 제철보다 서둘러 맛본 대방어 한 접시에 누군가 농을 쳤다. 그렇다. 대방어의 두툼한 뱃살은 발군이다. 기름기가 찰랑찰랑 차올라 고소한 단맛이 일품이다. 가을이 깊어 겨울이 들어찰수록 방어 맛도 깊어진다. 대방어 팬으로는 마포에 또 한 명 대단한 이가 있다. 마포에 있는 ‘목포낙지’의 사장 최문갑 씨다. 계절마다 온갖 해산물을 자연산, 최상급으로만 구비해놓는 그는 전직 사진기자다. 전국을 다녀본 경력에 걸맞게 산지마다 세 좋은 어부를 알고 지낸다.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대방어가 시작되죠. 겨울 장사는 방어, 대방어가 도맡아요.”

겨울 장사를 방어가 한다면 낙지는 방어보다 먼저 오는 가을의 제철 진미다. 1년생인 낙지는 여름에 태어나 두어 달이면 성체가 된다. 우리는 가을마다 인생의 청춘기에 막 들어선 낙지를 미안하게도 실컷 맛보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낙지가 환경에 따라 꽤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낙지에 도가 튼 최문갑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낙지는 펄밭에서 온 것과 바닷물에서 온 것이 달라요. 펄에 사는 낙지들은 바닥을 기어 다니다 보니 다리가 얇고 길죠. 이게 세발낙지예요. 작은 낙지가 세발낙지인 줄로 아는 사람도 많은데, 세발낙지도 큰 것은 엄청 커요. 완도, 여수 쪽 바닷물에서 헤엄치는 낙지는 다리가 짧고 도톰한 게 특징이에요. 파도를 견디자니 다리가 억세지죠. 신안 쪽 펄에서 자란 낙지는 황토가 섞인 펄을 먹다 보니 단맛이 돌아요. 장흥 쪽은 같은 펄에서 자랐어도 황토가 없어서 단맛이 덜하죠. 고흥 쪽에는 꽃낙지라고 하는 낙지도 있어요. 크기가 작은데 청량감 있는 맛이죠. 가격이 엄청 싼데, 가끔 이게 세발낙지로 둔갑할 때가 있어요. 문어처럼 다리가 말려 있는 낙지는 꽃낙지라고 보면 돼요. 세발낙지 다리는 기다란 게 축 늘어져 있죠.”

얇게 썬 박속을 함께 넣고 끓인 박속낙지탕, 매콤한 양념의 낙지볶음, 그리고 꼬치에 꿰 간장과 참기름 양념이나 매운 양념을 묻혀 굽는 호롱구이 등 다양한 조리법이 있지만 마포 낙지 도사가 최고로 치는 것은 따로 있다. “그냥 먹어야죠. 아니면 살짝 데쳐서요. ‘산낙지’를 통째로 먹는다고요? 그건 위험할 뿐, 맛에 도움이 되지 않아요. 뱃사람들은 머리는 떼 버리고 다리를 하나씩 뜯어서 먹곤 해요. 머리에 아연 성분이 많은데, 10여 분 낙지의 파란 피를 빼내고 먹으면 그것도 괜찮죠. 그런데 뱃사람들은 낙지 머리는 뭘 굳이 먹느냐면서 버리더라니까!”

일본 츠지조리사전문학교를 졸업한 정호영 씨 역시 못지않은 해산물 전문가다. 서교동에서 이자카야 카덴 등 일본식 식당 몇 곳을 하고 있는 그는 제주도와 노량진에서 생선을 낚는다. 희귀한 해산물도 딱 알아보고 뚝딱 썰어낸다. 가을의 무늬오징어가 그중 하나다. “일반 오징어의 네다섯 배 크기로 큼직한 오징어예요. 더 부드럽고 단맛이 강한 오징어죠. 회로 먹는 게 가장 좋고, 살짝 데쳐도 괜찮아요. 몸통은 부드럽기 그지없고, 다리는 데쳐서 쫄깃한 맛에 먹고, 귀 부분은 꼬들꼬들하게 씹히는 질감을 즐기죠. 먹물도 훨씬 농후해서 통으로 쪄 먹는 것도 좋아요. 11월이면 끝나는 오징어라 서둘러 먹어야 해요.”

횟감 중에선 대표적인 어종인 광어와 도미가 제철을 맞지만, 사시사철 흔하다 보니 계절감을 느끼기엔 김이 빠진다. 대신 한국에서는 덜 먹는 생선인 줄무늬전갱이가 그의 도마에 오른다. 등 푸른 생선과 흰 살 생선의 맛을 둘 다 가진 이 생선은 일본에선 양식도 하고 있어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만큼 맛이 좋다는 얘기다. “회로 먹는데, 방어와 도미를 동시에 먹는 듯한 맛이죠. 맑은데 기름기가 싹 도는 오묘한 맛!”

이자카야의 인기 메뉴이자 일본의 3대 진미 중 하나라는 아귀 간도 가을에 맛있다. 간장 베이스 양념에 삶는 아귀 간은 녹진한 기름기가 혀에 착 감긴다. “비인도적인 방법으로 생산되는 거위 간(푸아그라)의 대체재로 인기 좋은 재료이기도 하죠. 아귀 간은 자연에서 아귀가 겨울을 나고 봄에 산란하기 위해 제 몸속에 영양을 압축해두는 것이니까요.” 양양 남대천에서 나는 국내산 연어알 역시 가을에 쏟아진다. 산란을 위해 제가 태어난 남대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 배 속엔 짭짤한 알이 가득하다. 꼬막과 가리비도 가을부터 맛이 차오른다. 굴도 가을부터다. 홍합 역시 빼놓고 갈 수 없다. “섭이라고 부르는 자연산 홍합과 양식 홍합 두 종류가 있는데, 양쪽 다 장점이 있어요. 양식 홍합 중 2년 된 것은 한 해 기른 것보다 가격이 더 비싸긴 한데 두툼한 살집이 들어차 자연산 홍합 못지않아요.”

양식이나 자연산이나 매한가지로 맛난 가을 생선은 또 있다. 바로 고등어! 기름이 자르르한 그 두툼한 살집은 겨울로 다가갈수록 맛있어진다. 고등어는 양식 고등어 덕분에 활어회로 먹기도 쉬워졌다. 하지만 역시 백미는 구이다. 특히나 자반으로, 아니면 생으로라도 구워내면 바삭바삭한 껍질 속에 육즙 가득한 살이 저항할 수 없는 향취를 뿜어낸다. 고등어뿐인가, 같은 등 푸른 생선 집안의 막냇동생 꽁치와 큰형님 삼치도 가을에 몰려온다. 순결한 흰 살 생선은 절대 줄 수 없는 말초적이고 쾌락적인 맛이 가을을 살찌운다. 가을의 등 푸른 생선은 심하게 맛있다. 고등어 파스타를 서울에 퍼뜨린 요리사 박찬일처럼, 올리브유의 향과 어우러지는 서양식으로 조리하면 또 색다른 맛이 난다.

꽃게 역시 가을에 먹고 지나야 할 해산물이다. 10월까지 꽉꽉 살을 채우는 가을 꽃게는 수게를 먹는다. 알이 없는 대신 그만큼 살이 들어차 발라 먹는 보람이 있다. 게는 꽃게뿐이 아니다. 홍게, 대게도 가을에 살이 찬다. 박달대게라 부르는, 살이 꽉 찬 대게 다리 하나를 발라내 그 달콤한 살을 베어 물면 배도 꽉 찬다.

하지만 가을엔 뭐니 뭐니 해도 대하를 빼놓고 갈 수 없다. 4~5월 알에서 깬 대하는 9월부터 꽤 큼지막하니 먹을 만해진다. 10월 말이 되면 몸집도 장대해지고 힘도 세진다. 이때가 대하 맛의 절정이다. 11월이 되어 바다가 차지고 대하가 깊은 바다로 들어가기 전에 먹어둬야 한다. 다만 문제는 진짜 대하를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산은 대부분 대하가 맞지만, 양식이라면 다 흰다리새우라는 의미로 보면 된다. 물론 흰다리새우라고 맛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흰다리새우는 물 밖에 나오면 곧 죽어버리는 대하와 달리 산 채로 펄떡거리며 횟집에 당도하는 미덕도 있다.

사실 해산물의 제철은 기후에 따라 제멋대로 이동하기도 한다. 특히 요즘같이 바닷물이 과하게 따뜻하거나 이상하게 차가운 시대엔 가을 생선을 여름부터 이미 먹기도, 여름 생선이 가을이 다 되고서야 풀리기도 한다. 어부들의 사정과도 관련이 있다. 다음 제철 어종이 쫓아오기 전에 서둘러 잡다 보니 시장의 제철은 점차 빨라진다. 요 몇 년 여름마다 더위가 한풀 가셨다 싶을 때 이미 가을의 대표 어종 전어가 시장에 다 풀렸다. 여기엔 기후 변화뿐 아니라 전어 양식이 활발해진 탓도 있다. 그만큼 전어 맛도 덜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가을마다 전어가 흔해지다 보니 특별한 맛을 추구하는 최문갑 씨는 기어코 득량만으로 갔다. 고흥에 있는 작은 만이다.

“다른 동네 전어랑 달라요. 득량만 전어는 원래 체구가 작더라고요. 그래서 다 자라 살이 꽉 차도 크기가 작으니 먹기가 좋아요. 다른 지역에서 나는 전어는 가을까지 기다리면 사실 너무 커버려요. 이런 걸 ‘떡전어’라고 부르는데, 이름 어감대로 억세고 맛도 별로죠.” 득량만에서 온 야들야들한 전어, 그 고소한 맛 좀 보려면 얼른 서둘러야겠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