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멍의 뎀나 즈바살리아

혁신적인 파리 브랜드 ‘베트멍’이 ‘실용적인 힙(Wearable Hip)’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있다. 파리의 게이 바에서부터차이니스 레스토랑에서 패션쇼를 열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베트멍의 숨은 실세, 그리고 발렌시아가의 새로운 수장이 된 뎀나 즈바살리아를〈보그〉가 만났다.

“우리는 여기서 다섯 명의 여성을 캐스팅했어요. 에이전시에 갈 수가 없었거든요.” 베트멍(Vetements)의 수석 디자이너이자 설립자 뎀나 즈바살리아(Demna Gvasalia)는 오 마레(마레 지구 북쪽)의 중심에 위치한 카페 크렘에서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설명했다. 그곳은 개들이 손님들의 발 아래로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힙스터 아기들의 울음소리가 소음을 더하며, 호리호리한 젊은 손님들이 모델로 동원되기도 하는 그런 곳이다.

최근에 발굴된 이 모델들이 베트멍의 2015 F/W 쇼의 임시 런웨이를 걸었다. 무대는 전설적인 파리의 게이 바 ‘르 데포’의 뻔뻔하게 지저분한 공간에 설치됐다. 칸예 웨스트와 자레드 레토를 포함한 관객들은 재정비 된 바이커 재킷, 큼직한 오버 코트, 헐렁한 진, 후디, 그리고 스웨트 셔츠 패널을 넣기 위해 가위로 자른 꽃무늬 드레스를 감상했다. 그건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 프록이 마르탱 마르지엘라의 초창기 작품과 지저분한 주말을 보낸 것처럼 보였다.

 

 

“우리의 아이디어는 드레스가 하늘거리고 여성스러우면서도 그것을 지저분하고 쿨하게 만드는 것이었어요”라고 즈바살리아는 말한다. 이것은 컬렉션 전체를 관통하는 지침이다. “우리는 늘 이미 존재하는 옷, 우리가 사랑하는 옷으로 작업하고 싶습니다. 가령 데님 팬츠, 남성용 더블 브레스티드 코트, 고전적인 이브닝 드레스 같은 것 말이에요.” 대부분의 옷은 새로운 옷감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몇 벌은 재활용 소재를 사용했다. 새로운 것이든 빈티지든 간단히 말해 ‘모 아니면 도’였다. 그렇다고 이런 과장된 비율이 디자이너가 의상 핏에 대해 꼼꼼하지 않다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그의 모델들은 덜 세심했지만. “런웨이에 선 남자들은 여자 옷을 입고 싶어 했어요. 그들은 다트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라고 즈바살리아는 웃으며 말한다.

그의 작품이 파리에 부는 새로운 바람(빛의 도시 파리 하면 종종 떠오르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감성보다 고스(Goth)와 레이브(Rave)에 뿌리를 둔 전 세계적 관심사)의 예라면 그건 그의 국제적 성장 배경 때문일 것이다. 즈바살리아는 조지아(애틀랜타가 주도인 미국의 조지아 주가 아닌)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했고 앤트워프에서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다녔다. 6년 전 그는 파리로 왔고 2년 후 메종 마르탱 마르지엘라에 합류했다. 그는 그곳을 ‘패션 스쿨 이후 제2의 교육기관’이라고 묘사한다. “우리는 같은 생각을 갖고 아주 열심히 일했어요.” 34세인 그는 자랑스럽게 삭발을 하고 ‘애슬레토-레이브(Athleto-Rave)’, 그러니까 클럽에 자주 가는 젊은이가 쉴 때 입는 편안한 룩을 선호한다. 카무플라주 팬츠, 헐렁한 코트, 운동화 등등.

즈바살리아는 루이 비통에서 일한 후 1년 6개월 전에 몇몇 친구와 함께 베트멍을 시작했다. 그리고 베트멍은 지금도 어느 정도 집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시도에서 쿨하고 무심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해도 오해하진 마시라. 즈바살리아는 가장 전통적인 파리의 디자이너만큼 장인의 기술과 구조에 엄격하다. “우리는 파리의 수많은 소규모 아틀리에와 작업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구조에 아주 엄격합니다. 우리가 늘어진 칼라를 만들기 위해 패턴 제작자에게 상세한 요구 사항을 얘기하면 그들은 우리에게 전화로 이렇게 묻습니다. ‘진짜 그렇게 해요?’” 즈바살리아는 명목상 이 하우스의 수장이긴 하지만 뭐가 괜찮고 뭐가 별로인지 얘기해줄 가까운 협력자 3인방과 친구들에게 의지한다. “우리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 회의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뭔가를 시도하고 스스로에게 그것이 충분히 직관적인지 묻기도 합니다.” 마침내 즈바살리아는 단호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태도는 옷 그 자체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