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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능적이고 자유로운 본드걸, 레아 세이두

2016.03.15

by VOGUE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본드걸, 레아 세이두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어느 하녀의 일기〉 〈더 랍스터〉까지 레아 세이두가 뿜어내던 고유한 빛은 〈007 스펙터〉 본드걸 까지 변신시켰다. 지난 반세기 동안 이토록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본드걸은 없었다.

    블랙 PVC 캣수트는 팸 호그(Pam Hogg), 가죽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블랙 PVC 캣수트는 팸 호그(Pam Hogg), 가죽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당신이 본드걸과 2시간을 함께한다면 웃음이 절로 나올 것이다. ‘본드걸’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섹스, 복종, 그리고 20세기 중반의 이중적인 의미로 가득하다. 따라서 레아 세이두를 만날 거라고 얘기할 때 진지한 표정을 짓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만나는 곳이 호텔일 경우에는 말이다.

    그러나 그건 내 탓이 아니다. 이안 플레밍, 앨버트 ‘커비’ 브로콜리, 숀 코네리, 로저 무 어, 그리고 손바닥에 땀이 흥건한 늙은 영감들을 탓하라. 그들은 2년에 한 번씩 제임스 본드가 대변하는 영웅과 남성성을 위협하지 않을 여자를 찾아내 인류의 절반을 섹스머신으로 평가절하하며 한 세기의 3분의 2를 보내온 인물들이다.

    50년대 초 제임스 본드는 남성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탁월한 판타지를 대변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남성이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떤 차를 운전하고,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고, 어떻게 얘기하고, 어떤 여성을 욕망할 것인지에 대해 본드를 참고해왔다.

    그리고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바뀐 적이 없다. 본드가 원하는 것은 비키니에 멋진 엉덩이, 완벽한 머리, 그리고 허니 라이더, 푸시 갤로어, 플렌티 오툴 같은 스트리퍼의 이름을 가진 자기 나이의 절반 정도 되는 젊은 여성이다. 일단 관객에게 소개된 본드걸이 하는 일은 물에 젖고, 남자와 놀아나고, 죽임을 당하는 것이다. 가능한한 최대한 섹시한 방법으로 말이다(발가벗겨진 채 황금빛 페인트를 온몸에 바르고 질식하거나, 기름 속에서 알몸으로 익사하거나, 물고기에게 먹히거나, 어뢰를 맞는다…) 그것은 분명 에밀리 데이비슨(여성 참정권 운동가)이 몸을 던져 말에 깔려 죽었을 때 생각하던 상황은 아니다.

    가끔 그 ‘여자’를 현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입에 발린 소리에 그쳤다. <007 스카이폴>에서조차 제임스 본드와 사랑을 나누는 성 노동자는 짧은 농담 한마디와 함께 곧 총에 맞아 죽는다. 그리고 주디 덴치가 맡은 M은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멍청한 늙은 박쥐이기 때문에 살해당한다. 이 영화에서 제임스 본드와 섹스를 즐기지 않는 유일한 젊은 여자 머니페니(나오미 해리스 분)는 그의 비서라는 직업에 걸맞은 자제력 덕분에 보상을 받는다.

    그러므로 본드 영화에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만 현실 세계에선 아주 드문 동굴 같은 세계적 호텔에서 현기증 나는 대리석 바에 앉아 최신작 <007 스펙터(Spectre)>에서 본드걸 역을 맡은 세이두를 기다리고 있을 때 앞서 말한 바대로 생각했다고 해서 나를 비난하진 마라.

    울 소재 크레이프 재킷과 레더 점프수트는 생로랑(Saint Laurent).

    울 소재 크레이프 재킷과 레더 점프수트는 생로랑(Saint Laurent).

    그녀는 늦었다. 10분, 20분, 30분…. “술 드릴까요?” 보타이를 맨 바텐더가 슬그머니 물었다. ‘보드카 마티니, 젓지 말고 흔들 어주세요’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지만 결국 이렇게 말했다. “물 주세요. 수돗물도 괜찮아요.” 왜냐하면 나는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들어왔을 때 땀을 흘리며 횡설수설하고 싶진 않았다.

    그 순간 문가에서 작은 움직임이 있었고 나는 마침내 세이두가 도착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 심장은 뛰기 시작했다. 내가 그녀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본 건 <가장 따뜻한 색, 블루> 에서 아델 에그자르코풀로스의 다리 사이에서였다. 이 영화는 2013년 칸국제영화제에 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막 성년이 된 두 여성의 사랑을 담은 레즈비언 예술영화이다. 이 작품은 두 사람이 ‘그것’을 했는지 안 했는지를 두고 역사상 가장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세이두와 악수를 했다. 그녀의 발음을 교정해주는 연기 코치와도 악수를 했다. 코치는 인터뷰에 동석해 세이두의 언어 문제를 도와줄 것이다.

    우리는 자리에 앉았고 세이두는 다이어트 콜라를 주문했다. 그녀가 너무 부드럽게 얘기해서 나는 종종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리고 동시에 정신이 딴 데 팔려 녹음기를 툭 치는 바람에 녹음기가 그녀가 아니라 나를 향하기도 했다. 세이두는 그날 오후 내내 그랬다. 그래서 내 테이프에는 중년 남자의 목소리는 대부분 크게, 여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녹음되었다. 제임스 본드 영화와 흡사했다.

    그녀는 스칼렛 요한슨을 닮았지만 바네사 파라디나 브리짓 바르도의 벌어진 앞니를 갖고 있었다. 파리의 여배우들은 어떻게 그런 앞니를 갖게 된 걸까? 전족처럼 어린 시절에 강요받은 관습일까? 세이두는 인조 모피 재킷을 입고 있었는데 벌어진 재킷 사이로 검은 레이스가 보였다. 그러나 나는 예의를 지키느라 눈을 돌렸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그것을 자세히 설명해줄 수 없다.

    영화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들려줄 수 없다. 내가 MI6 수준의 보안 아래 본 장면에는 대중에게 선보이지 않은 재규어와 애스턴 마틴 모델이 로마에서 벌이는 자동차 추격 신, 레이스 커튼 사이로 보이는 반쯤 옷을 입은 세이두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세이두는 침대 위에서 무릎을 꿇고 본드에게 “가까이 오면 죽여버릴 거예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007 스카이폴>의 성공 이후 두 번째 작품으로 돌아온 감독 샘 멘데스는 세이두가 맡은 캐릭터인 매들린 스완을 의사로 설정, 그녀가 진지한 역을 맡았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크리스마스 존스도 의사였다. 본드의 세계에선 공부에 몰두하는 대학원생이 섹시한 매력을 지닌 젊은 여성이라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세이두는 지쳐 있었다. 바로 전주 토요일에 파인우드 스튜디오와 멕시코, 오스트리아, 이태리, 그리고 모로코에서 6개월에 걸쳐 촬영을 끝내고 월요일에 영화 홍보를 시작했다. 그 사이에 쫑파티가 있었다. 화려하진 않았다고 했다. 세이두는 모든 사람과 너무 친했기 때문에 파티에 참석했다.

    “이번 영화는 굉장한 경험이었어요. 엄청났지요. 대작에서 이렇게 큰 역할을 맡은 건 처음이었어요. 언젠가 본드걸이 될 거라고 꿈꿔본 적도 없습니다…”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나는 놀랐다. 그녀는 프랑스의 위대한 영화 가문 출신의 진지한 배우다. 세이두의 할아버지 제롬 세이두는 프랑스의 거대 미디어그룹 파테(Pathé)의 회장이고, 증조부 니콜라스 세이두는 영화사 고몽(Gaumont)의 회장이며, 아버지는 프랑스 무선 기기 업체인 패럿(Parrot)의 CEO이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까지 맡은 역할로 엄청난 상을 수상했다. 그럼에도 그렇게 통렬하게 느꼈을까? “영화가 끝났을 때 울었어요. 마지막 촬영을 하고 나서 말이에요. 전에는 영화가 끝났을 때 울어본 적이 없습니다.”

    블랙 스트레치 가죽 점프수트는 지트루아(Jitrois), 페이턴트 레더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블랙 스트레치 가죽 점프수트는 지트루아(Jitrois), 페이턴트 레더 슈즈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이번 역할은 <가장 따뜻한 색, 블루>보다 대체로 덜 힘들지 않았나요?” “그 캐릭터를 하면서 덜 힘들었느냐고요? 아니요.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너무 참혹해서 스스로 ‘창녀’ 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007 스펙터>는 아주 집중해야 했어요.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훨씬 강합니다. 단순한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그녀는 성실하고 날카롭고 전혀 끈적이지 않았다. 재킷 안으로 몸을 웅크리며 눈을 반짝였고 자주 웃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은 연기 코치가 가까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연기 코치는 그녀의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세이두는 내가 아닌 코치에게 거의 대부분을 얘기했다. 부끄러움 때문인 것 같진 않았지만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마이클 잭슨의 엄청난 팬이라고 말하며 그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그리고 그의 전기를 얼마나 반복해서 읽었는지, 평소에는 수줍고 조용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외향적인 퍼포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길게 얘기했다.

    그녀는 내가 <007 스카이폴>을 페미니스트 관점으로 해석한 것에 대해서도 큰 감명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현대적인 남성처럼 보이기 위해 무진장 애썼고 내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사실과 정반대의 태도를 취했다. 대부분의 여성은 본드걸을 사랑한다. 그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본드걸의 외모와 그녀가 입고 있는 것을 좋아한다. 세이두도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007 스카이폴>이 섹시한 영화였다는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고 이번 영화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007 스펙터>는 여성에 대해 더 많이 다룹니다. 그들이 심리적인 갈등과 싸워야 하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에요. 어떻게 자신의 자유를 찾는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그렇다면 그녀는 본드의 팔에 안 긴 장식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 어쨌든 저는 본드걸에 대한 틀에 박힌 생각은 신경 쓰지 않아요. 그러나 매들린은 달라요. 그리고 그것은 저를 본드걸로 선택하기 위한 설정이었어요. 저는 전형적인 본드걸이 아닙니다.”

    나는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세이두는 아름다우며 그녀의 멋진 몸매는 이국적이다. 그것은 내게 상당히 전형적으로 보인다. 그녀는 여느 본드걸에게 필수적인 연약함을 보여준다. 자신의 새로운 영화인 <더 랍스터(The Lobster)>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그녀는 현대성(Modernity)에 대한 두려움을 묘사했다. <더 랍스터>는 싱글들이 사랑에 실패하면 동물로 변하는 벌을 받는 세상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역시 칸에서 상을 받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인간성이 부재하는 세상이에요. 저는 집에 TV도 없고, 인터넷도 연결돼 있지 않습니다. 인터넷은 무서워요. 운전도 못합니다. 이것이 제가 이 일을 하게 된 이유예요.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돌보도록 하지요. 배우가 된 건 일종의 도피입니다. 사람들이 배우를 세상 어디든 데려가고, 멋진 호텔에 묵을 수 있게 합니다. 모든 사람이 배우를 돌보고, 배우에게 옷과 음식 등을 사다 주죠.”

    그리고 제임스 본드보다 여성을 더 잘 돌보는 사람은 없다. 그는 그녀와 섹스를 하려고 시도할까? “네, 물론입니다”라고 그녀는 웃으며 말한다. “우리는 키스를 합니다. 제임스 본드 영화니까요. 열정적인 키스를 하죠.” “그래요, 그런데 당신은 갈 데까지 가나요?” “네, 늘 그와 함께합니다.” 세이두는 연기 코치가 질문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네, 물론이에요. 합니다”라고 말하고는 낄낄 웃었다. “하지만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때와는 달라요!” 그녀는 배를 부여잡고 웃었다.

    “그렇다면 당신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살아 있나요?” 나는 이 작품이 그녀를 어떻게 죽일지 궁금해서 물었다. “네, 물론이에요. 그래서 지금 여기 있잖아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캐릭터를 물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살아 있나요, 아니면 죽나요? “오, 끝에도 살아 있어요”라고 세이두는 말했다. “그녀는 살아 있어요. 아마도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살아 있을 거예요.” ‘좋아, 멋진 시작이군’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실크 소재 블랙 점프수트는 베르사체(Versace), 블랙 페이턴트 가죽 스틸레토 힐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실크 소재 블랙 점프수트는 베르사체(Versace), 블랙 페이턴트 가죽 스틸레토 힐은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자일스 코렌(Giles Coren)
      스타일 에디터
      케이트 펠란(Kate Phelan)
      포토그래퍼
      CRAIG McDEAN
      헤어
      샘 맥나이트(Sam McKnight)
      메이크업
      발 갈랜드(Val Garland)
      네일
      샤를렌 코카르(Charlène Coquard)
      세트 디자인
      장 미셸 베르탱(Jean Michel Bertin)
      프로덕션
      Brachfeld Paris
      디지털 아트워크
      D To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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