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팡파르 뒤에서 찜찜한 이면을 찾았다

클래식 앨범을 사기 위해 레코드 숍 앞에 2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다. 한국인 최초로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된 조성진은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됐다. 하지만 이 환호와 난리를 클래식 음악에 대한 순수한 애호로만 볼 수 있을까? 조성진의 팡파르 뒤에서 찜찜한 이면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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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간 공석이었던 쇼팽 콩쿠르의 우승자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주인공은 역대 최연소 우승자이기도 했고, 음악적 내력이 없는 평범한 부모 아래에서 그저 피아노가 좋아 연주를 시작한 피아니스트였다. 이름은 윤디 리. 중국 최초의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한 수식어였을 것이다. 우승 직후인 2001년, 그는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을 맺어 음반을 발매했고, 전 세계를 돌며 투어를 시작했다. 슈퍼스타의 탄생이었다. 중국은 물론, 세계 어디를 가든 팝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이 한참 흐른 2015년. 내한 공연을 가진 윤디 리는 수없이 반복했을 쇼팽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던 도중 실수를 저질렀다. 전날부터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던 그는 좀처럼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고 연주는 잠시 중단되었다. 그는 곧 연주를 다시 시작했지만, 기대에 가득 찬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앙코르와 팬 미팅은 무산됐다. 윤디 리는 그렇게 한국에서의 공연을 마무리했다. 그 후, 그의 실수는 이례적이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전파되었고 가십거리가 되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어떻게 녹음됐는지 모르는 실황 음원이 유튜브에 떠돌기 시작했고, SNS에는 그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극적인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공연 후 앙코르도 없이 떠난 행동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요, 얼마 전 있었던 쇼팽 콩쿠르 심사에 연예인 결혼식 참가를 핑계로 자리를 비운 일까지, 비난성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일부에서는 며칠 전 쇼팽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조성진과 비교하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슈퍼스타의 추락이었다.

대신 한국에선 새로운 슈퍼스타가 탄생했다. 한국 최초의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나온 것이다. 이날 곳곳에선 조성진 얘기로 들썩였는데 내 주변에서 그 뉴스를 가장 먼저 화제에 올린 사람은 평소 클래식엔 별 관심 없는 배불뚝이 본부장이었다. “한국 최초로 쇼팽 콩쿠르 우승자가 탄생한 거야.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사건이야.” 본부장뿐이 아니었다. 조성진의 우승 소식이 알려진 후, 이 정도로 국내에 클래식 팬이 많았나 싶을정도로 주변은 온통 조성진에 대한 얘기였다. ‘조성진 열풍’과도 같았다. 콩쿠르 실황 녹음을 담은 앨범은 아이돌 가수들 앨범 판매량과 비교되기도 했는데, 앨범 발매 첫날에는 클래식 전문 레코드 숍 풍월당에 새벽부터 많은 사람이 찾아와 줄을 서기도 했다. 2016년 2월에 있을 갈라 콘서트 예매는 오픈하자마자 사이트가 다운되는 등 열기를 보였다. 이 광경만 보면 대한민국은 굉장한 클래식 애호 국가였다.

이제 막 스물하나가 된 슈퍼스타 조성진의 지난 인터뷰를 찾아봤다. “집이 분당이라 에버랜드에 자주 갔어요. 7년간 연간 회원권을 가지고 있었고,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에버랜드에 가서 신나게 놀았어요. 방학 때마다 여행을 많이 다니고요.” 그의 연주에서 느낄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의 원천이 무엇인지 물어보자, 조성진은 친구, 가족과 함께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했다. 지금처럼 유명한 스타가 될 거라는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때의 다른 잡지 인터뷰도 인상적이다. “아직까지 음반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제안도 없었어요. 안 낸다고 서러워하지도 않고요.” 그는 주위에선 ‘주목받는 연주자’라고 하는데 누구에게 주목받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 순수한 소년의 우승 소식 이후 언론을 도배한 건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이었다. 일부에선 윤디 리 스캔들을 언급하며 두 피아니스트의 인성을 비교하기도 했고, 콩쿠르 파이널 라운드 심사에서 1점을 준 심사위원을 비난하기도 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조성진처럼 키울 수 있을지에 대해 논하는 한 신문기사는 화룡점정이었다. 그렇게 그저 좋아서, 행복하게 피아노를 연주하던 조성진은 고국에 발을 딛기도 전에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애국자, 동시에 아이돌이 되었다.

쇼팽 콩쿠르의 우승은 분명 슈퍼스타의 자리를 마련해준다. 피아니스트의 커리어란 게 콩쿠르 이후 공연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지만, 역대 우승자 마우리치오 폴리니도, 마르타 아르헤리치도 슈퍼스타급 명성을 누렸다. 그리고 조성진 역시 분명 그 길을 갈 것이다. 하지만 콩쿠르의 우승이 모든 걸 결정하지는 않는다. 윤디 리와 조성진 모두 콩쿠르 이전에도 훌륭한 연주자였다. 클래식 마니아로서 조성진 열풍이 싫지는 않다. 좋은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큼 행복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유가 어찌 됐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에 잠시 마음을 두었다는 사실 또한 반갑기만 하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가 전해주는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이 도를 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정말 클래식을 즐기고 있나? 지방의 실력 좋은 오케스트라는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던가? 그저 1등에 환호하기보단 클래식 전반에 관심을 갖고 토양을 다지는 게 진정으로 클래식을 사랑하는 태도일 것이다. 조성진을 너무 쉽게 슈퍼스타로, 아이돌로 만들어버려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