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말린 생선 5

겨울바람에 꾸덕꾸덕 말린 반건조 생선은 생선이 원래 가진 단맛에 더해 다채로운 맛을 낸다. 버릴 것도 거의 없고 별다른 손질도 필요하지 않은 간편한 식재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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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잘못 다뤄도 비리고, 조금만 덜 신경 써도 부패하기 시작하는 생선은 물론 싱싱한 게 제일이지만, 반건조 생선은 생물 생선과 확연히 다른 장르다. 잘 말린 생선은 원래의 생선 살이 가진 흰 단맛에 고소한 감칠맛과 슬쩍 숙성취까지 얹었다. 건조기로 말린 것, 냉동해둔 생물을 해동해 말린 것, 말리다 말고 냉동한 것 등, 시장에는 분명 반건조 생선에 대한 악평을 낳는 맛없는 반건조 생선도 흔하다. 하지만 제대로 찾아 먹으면 그 악감정이 다 사르르 녹는다. 누가 싼 맛에 반건조 생선을 먹는다고 모함했나? 반건조 생선은 생선 맛의 입체적인 업그레이드다.

1 청어 과메기

꼬리를 잘라내고 얇은 껍질을 벗겨내자, 손에 기름이 흥건하게 흘러내렸다. 약간 노란 기운을 띤 기름은 맑고 투명했다. 단백질이 숙성된 고소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겨울에 접어들어 바람이 차지자 구룡포에서 이제 갓 널기 시작한과메기는 기름이 오동통하게 올라 있었다. 청어 과메기는 겉이 적당히 말라 두툼한 살집이 입안 가득 씹혔다.

몇 년 사이 청어 어획량이 늘어 이제 별 품 팔지 않고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비린내는 전혀 나지 않고, 입에 쩍쩍 붙는 달큼한 맛이 일품이다. 물미역과 다시마, 말린 김으로 바다 향을 더하고, 쌈 채소며 마늘종, 저민 마늘 따위로 땅에서 자란 강렬한 향을 덧붙인다. 접착제처럼 두 가지 맛을 딱 붙여주는 것이 매콤하고 새콤하게 잘 배합된 초고추장이다. 하지만 잘 말린 과메기라면, 있는 그대로 집어 먹어도 충분하다. 기름기를 씻어낼 알코올과 함께라면 끝도 없이 먹을 수 있다.

2 코다리

한반도 남동쪽 해안에 온통 청어며 꽁치가 널려 있는 풍경을 뒤로하고 동해안을 북상하면 이제 코다리 차례다. 내장을 뺀 명태를 과메기와 매한가지로 차가운 바닷바람에 말린다. 생태를 반 정도만 말린 게 코다리, 바싹 말리면 북어, 얼렸다 녹였다 하며 말리면 황태, 그냥 얼리면 동태다. 꾸덕꾸덕한 상태로 반건조한 코다리는 메마른 북어나 황태가 줄 수 없는 쫀득쫀득한 식감을 갖고 있다. 단단한 무를 듬성듬성 썰어 매콤한 양념, 혹은 짭짤한 간장 양념에 졸이면, 겨울 내내 밥도둑과 겸상할 수 있다.

3 가자미

동해안에서는 이렇게 반건조한 생선을 다 피데기라고 부르는데, 오징어 피데기 못지않게 이 동네에서 또 입맛 돋우는 것이 가자미다. 반건조 가자미도 쓸 데가 많지만, 가자미라고 하면 딱 떠오르는 것은 단연 가자미식해. 말리는 대신 소금에 절여 수분을 빼는 염장법을 응용한 이 저장 음식은 곡물과 함께 발효시켜 알싸한 감칠맛을 낸다. 늦가을 제철 가자미로 식해를 담가두면 단백질 버전의 김치가 겨우내 활약하는 셈이다.

4 굴비

반건조 생선 중 사시사철 활약하는 대표 선수를 꼽자면 단연 굴비다. 조기를 염장해 말린 굴비도 예전에는 바싹 말렸지만 요즘은 반건조에 가깝게 덜 말려 냉동해두고 먹는 경우가 더 많다. 보리굴비도 반건조 생선이지만, 보리를 담은 항아리에 묻어 말리는 것이 독특하다. 요즘은 조기보다 부세로 만드는 것이 더 많다. 보리굴비가 저렴하다 싶으면 다 부세라고 보면 된다.

5 물메기

동해안에서 과메기와 코다리 외에 독특한 말린 생선을 또 꼽자면 물메기(동해에서만 나는 건 아니지만)부터 시작해야한다. 옛날 어부들은 얼굴 보자마자 바다에 도로 집어 던졌을 정도로 못생긴 이 생선의 다른 이름이 곰치인데, 반건조해 슬쩍 굽거나 조림, 탕으로 먹으면 겨울이 녹을 정도로 맛나다. 맛에 걸맞게 가격대 또한 고급스럽기 그지없다. 보통 저렴해서 먹는다고 생각하는 반건조 생선에 대한 선입견을 확 깨는, 마리당 1만원대의 호화스러운 몸값을 자랑한다.

*이 콘텐츠는 2015년 12월호 기사를 재구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