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올과 랑방을 떠난 라프 시몬스와 알버 엘바즈

일주일 간격으로 라프 시몬스와 알버 엘바즈가 디올과 랑방을 각각 떠났다. 그들을 패션 현장에서 직접 만나 취재하고 교감을 나누던 패션 에디터가 두 건의 이별에 대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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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ge of Innocence

라프 시몬스(Raf Simons)가 크리스찬 디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직을 사임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모든 일을중단했다. 다른 이들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의미에서 놀랐다기보다 감명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2012년 엄청나게 갈채를 받은 첫 번째 꾸뛰르 쇼 이후 그가 내게 한 말에서 놀라우리만치 정직한 성격이 느껴졌으니까. “나는 더 이상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오면 멈출 겁니다.” 당시 라프는 이렇게 말했다. “패션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건 아니거든요.”

3년 6개월이 지난 지금 디올을 떠나겠다는 결정이 그가 디올에서 아이디어 고갈을 느꼈는지 여부와 관련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공식 성명에는 ‘개인적 이유’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임의 변에서 자신의 감정을 진실하게 밝히고 있다는 것, 일과 삶 사이에서 균형이 필요하다는 걸 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렇다고 패션계를 완전히 떠난건 아니다. 여전히 앤트워프에서 남성복 컬렉션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크리스찬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같은 기념비적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건 용감한 행동이면서 선구적 행동이다. 어느 세대나 삶의 균형을 찾으려는 현실에서 그의 선택은 패션계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의 본보기다. 그리고 라프 시몬스 같은 유명 인사가 끊임없이 미디어에 노출되기보다는 자신의 관심사와 행복에 더 큰 가치를 두는 모습을 보일 때, 그건 다소 급진적으로 비친다.

이번 결단은 늘 자신의 영웅으로 언급하던 롤모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효과를 낳은 것 같다.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마르탱 마르지엘라와 헬무트 랭도 할 만큼 한 뒤 어느 때보다 존경받는 시기에 커리어를 내려놓았다. 시몬스가 어떤 이유로 사임했든 록 스타처럼 자신의 명성에 흠집 하나 남기지 않고 대중이 그를 더 원하는 시점에 떠난 것이다.

 

 

디올 하우스에 문제가 있다는 경고의 조짐은 조금도 감지되지 않았다. 시몬스의 올봄 컬렉션은 엄청난 영감을 줄 만큼 역작은 아니더라도 패셔너블했고 좋은 평가를 얻었다. 언론이 그를 등지지 않을 거란 사실은 명백했다. 그가 선봉에 서서 이끈 스펙터클한 패션, 예술, 건축의 시나리오(특별히 꾸뛰르 쇼와 관련해)를 둘러싼 기대는 어느 때보다 무르익었다. 그리고 얼마 전 디올 본사는 2015년 2분기 수익이 13% 증가한 4억7,100만 유로를 기록했다는 수치를 발표했다. 디올 매니지먼트는 시몬스가 필요로 하는 작업 방식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외에 다른 움직임이나 낌새 또한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존 갈리아노가 떠나고 크나큰 낭패를 겪은 후, 어떻게 하면 새 디자이너가 회사 구조 속에서 제대로 기능하는지 신경 쓰는 게 가장 우선이었기에 시몬스의 업무는 파트 타임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내가 라프 시몬스를 뉴욕에서 인터뷰했을 때(당시 시몬스는 디올 때문에 10대 시절의 테크노 뮤직 영웅이자 플라스틱맨(Plastikman)으로 알려진 DJ 리치 호틴의 꿈의 연주를 들을 기회를 날리고 말았다) 그는 자신이 질 샌더 시절과 비슷한 수준으로 협상했다는 사실을 밝혀 나를 놀라게 했다. “저는 제 브랜드를 계속 유지하기로 결정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일주일은 밀라노, 그리고 또 다른 일주일은 앤트워프에 머무르곤 했죠.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일주일은 앤트워프, 그다음 일주일은 파리.” 핵심은 이것이다. 그가 라프 시몬스의 레이블(90년대에 설립한 이후 남성복계의 전설이 됐다)을 계속 유지하고 지원하는 일에 헌신했다는 사실 말이다.

모든 사람이 새로운 시작을 기쁘게 받아들인 듯 보였다. 프레데릭 청이 감독해 지난해 개봉한 라프 시몬스의 디올 하우스 입성을 다룬 아름다운 다큐멘터리 <디올 앤 아이>는 그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지 엿볼 기회를 제공했다. 벨기에 출신이자 시몬스의 오른팔 어시스턴트 피터 뮤리에르는 시몬스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관할하고 디자이너와 경영진으로 구성된 거대한 내부 팀과의 조율을 맡기 위해 디올에 합류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완벽한 대규모 점검이 이뤄졌다. 맨 먼저 매장을 현대화했다. 퍼스펙스 소재 힐과 매끈한 코스튬 주얼리로 이뤄진 색색의 구두 컬렉션도 도입했다. 또 브랜드 이미지와 미학은 시몬스의 앤트워프 사단인 스타일리스트 올리비에 리조, 포토그래퍼 빌리 반더르페르가 새 단장했다. 그리고 여배우 제니퍼 로렌스(비록 오스카 시상식에서의 작은 사고에도 불구하고)는 디올 드레스로 사람들을 단숨에 매혹시켰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몬스 시대의 종말을 초래했나? 시몬스는 디올과 계약한 이래 컬렉션을 위해 어느 때보다 재빨리 질주해왔다.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 리조트 컬렉션은 뉴욕과 남부 프랑스에서 무려 두 차례나 열렸다. 지난 6월 시몬스는 칸의 언덕 위에 위치한 피에르 가르뎅의 버블하우스로 관객들을 초대했다. 저물녘엔 스펙터클한 불꽃놀이가지중해 하늘을 수놓았고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있었다. 정말이지 즐거운 쇼였다.

하지만 두 가지 역할에 대한 그의 압박감이 그 즐거운 찰나를 압도한 건 아닐까? 시몬스는 디올 하우스가 규정한 페미니티 코드 안에서 그가 말하려는 이야기가 결말에 도달했다고 느낀 걸까? 혹은 파리와 앤트워프 사이를 오가는 끝없는 여행이 버거워진 걸까? 그런 거라면, 그건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광적인 속도로 질주하는 패션계의 전반적 시스템에 대한 거라기보다 특정 디자이너와 특정 하우스에 대한 반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창조적 에너지로 패션 아이디어의 발전을 꾀하는 본능이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렇게 빨리 소진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이런 흐름이 결국 어느 방향으로 나가게 될지 짐작할 수 없다. 우리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두 가지 역할을 맡은 디자이너들이 점차 자취를 감추는 결과를 재차 확인할지도 모른다. 특별히 크리스찬 디올처럼 맡은 역할 중 하나가 엄중한 경우에 말이다. 혹은 이제 패션 하우스 내부를 다시 돌아보고 무대 뒤편의 재능을 가진 이들을 발굴할 때인지 모른다. 어쨌든 그곳(무대 뒤편)이야말로 구찌가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발렌시아가가 니콜라 제스키에르를 처음 발견한 곳이니까. 라프 시몬스는 내가 아는 한 철저히 리얼리스트다. 또 애초의 좋은 의도와 달리 흘러간다면 맨 먼저 제동을 걸 인물이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라면 다음 스텝을 아주 조심스럽게 밟을 게 분명하다.

 

 

 

The Golden Era

극적인 드라마가 펼쳐지는 가운데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만약 그 드라마의 스토리가 알버 엘바즈(Alber Elbaz), 다시 말해 가장 많이 사랑받고, 가장 왕성한 창조력을 선보였으며, 오랫동안 열정적으로 충직하게 일해온 디자이너 중 한 명의 해고에 대한 것이라면 어떨까? 이 믿기 어려운 소식은 엘바즈가 직접 보내온 편지 한 통에 의해 언론에 알려졌다. 그는 이렇게 썼다. “회사 대주주의 결정에 따라 랑방을 떠나는 시점에서 저는 지난 14년간 랑방의 부흥을 위해 열정적으로 함께 일해온 모든 이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랑방에서 함께 창조적인 도전을 거듭했고, 랑방의 찬란한 영광을 되찾았으며, 프랑스의 절대적인 명품 하우스 사이에서 랑방에 걸맞은 지위를 회복했습니다.”

우리는 라프 시몬스가 디올을 떠난 이래 계속 입가를 맴돌던 피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정확히 오늘날 패션계는 왜 불화의 장으로 변모하고 있나? 어떤 폐단이 우리 시대 최고의, 그리고 가장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이 경영진과 대립하는 상황을 불러온 걸까?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러러보고, 열광적으로 쇼에 참석하고, 매 시즌 쇼를 조심스럽게 분석하고 감상하는 패션 리더들에 대한 지식을 옷을 사는 여성 관객들에게 정당화시킬 것인가?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 죽어나가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지금으로선 알버 엘바즈가 랑방이라는 하우스에 발을 들인 이래 그를 알아온 사람으로밖에 말할 수 없다. 난 지난 수년간 그가 어떻게 그를 위해 일해온 모든 사람(그가 잘 알고 또 매일 가족까지 지원해온 숙련된 재봉사들, 그가 키워온 젊은 디자이너팀, 그리고 그의 세계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인 친근한 언론인들)을 존경하고 돌봤는지 목격해왔다. 그렇기에 포부르 생토노레 거리에 위치한 랑방 본사에서 벌어진 풍경을 상상하는 게 너무 고통스럽다. 해고당한 알버 엘바즈가 그의 책상을 비우는 모습 말이다.

알버를 마지막으로 본 건 엄청나게 강렬한 데다 평단의 좋은 평가까지 받은 2016년 봄 시즌 쇼를 며칠 앞두고 그의 스튜디오에서였다. 여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다양한 현실 세계를 가공하는 과정(그리고 오늘날의 상업화 공정)을 차분히 설명하는 그와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그는 수사적 질문을 하고 있었다. 불평하거나 섣불리 판단하는 게 아니라, 인터넷에 의해 가속화된 패션계의 속도가 빚어낸 도전에 대한 창조적 답안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디자이너에게 개발자와 메이커가 아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기를 기대하는 변화, 그리고 레드 카펫에서 근사하게 보일 만한 드레스를 만들어야 하는 필요성 같은 것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노출이 심하고 거의 반나체에 가까운 ‘행사용’ 드레스가 현실의 여성에게 의미하는 바를 고심하고 있었다(이에 대해 고심하는 디자이너가 또 누가 있단 말인가!). “올가, 들어와요.” 그가 출입구에 서 있던 모델 한명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올가는 드레이핑된 누드 코르셋 보디수트 위에 드레이핑된 에메랄드빛 새틴의 ‘행사용’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올가는 내 눈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이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알고 있었다. 하나의 천재적 구조물로서, 위트 넘치는 코멘트로서, 그리고 신중한 의미가 담긴 그 무엇으로서 말이다.

랑방의 이번 봄 쇼(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알버의 마지막이 된 쇼)는 극명한 흑백 대조를 이루는 테일러링부터 섹시한 느낌이 감도는 이브닝 웨어, 퇴폐적으로 찬란하게 반짝이는 세퀸, 그리고 풍자적 익살스러움을 담아 구두와 가방에 수놓은 랑방 로고에 이르는 방대한 컬렉션이었다. 그야말로 패션 경계를 모두 아우르는 컬렉션. 뒤돌아보면 그는 여자들이 원하는 것에 공감하기 위해 매진하는 가운데,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의 상업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비록 그런 시도조차 상사들을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알버의 랑방 컬렉션을 쭉 훑어보던 중 나는 그가 얼마나 혁신적이고 많은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랑방 룩이 세월의 흐름 가운데 여전히 뒤처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만약 당신이 그의 초기 컬렉션을 구입한 운 좋은 고객이라면, 목선에 보석 장식이 달린 드레스를 맨 먼저 만져봤을 테고, 한쪽 어깨가 흘러내리는 여신 드레스에 투자했을 테며, 리본이 달린 지퍼를 통해 그가 창안한 아름답고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감상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 옷을 즐겨 입었다면(나처럼) 당신은 남은 생애에도 영원히 알버의 옷을 꺼내 입을 거란 사실마저 깨닫게 될 것이다.

모든 것을 고려할 때 세월이 흘러도 변치 않는 섹시함과 우아함의 절묘한 조화가 알버 엘바즈의 명함 그 자체다. 만약 누군가 지금 당장 알버에게 자리를 하나 제안하려고 접근한다면, 그 누군가는 운 좋은 사람이다. 그리고 옷장에 랑방 룩을 가진 우리 모두는 이 사실을 알릴 필요가 있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고 말이다. 물론 알버를 낚아챈 누군가가 그를 꼭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