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로봇

아톰을 상상한 이래 우리는 로봇에게 끊임없이 인간이 되어주길 바라왔다. TV 예능 프로그램에 로봇이 출연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고 말하는 로봇이 출시된 지금, 1가구 1로봇 시대는 언제쯤 현실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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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할매네 로봇>은 로봇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현실을 동시에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아들딸 자식들을 도시로 떠나보내고 농촌을 지키는 할머니들의 일손을 도와주고 적적함을 달래주는 역할을 로봇이 맡는다는 것. 조만간 우리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대단히 현실적인 미래다. 하지만 막상 농촌에 간 로봇들은 영 힘을 못 쓴다. 할머니들이 밭일 다녀오면 구첩반상 차려놓고 어깨라도 주물러줘야 할 것 같은데 비포장도로를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들다. 로봇이 뭔가를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출연진이 열심히 깔아놓은 멍석에서 꽹과리 치기, 소금 뿌리기, 옆집 심부름 등만 가까스로 해내고 있을 뿐. 세계 유수의 로봇 대회에서 상위권 수상 소식이 연일 들려오는 요즘, 얘들은 왜 이러는 걸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로봇의 잘못이 아니다. 농사일이나 집안일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아니라서 그렇다. ‘머슴이’는 재난 구조 로봇이요, ‘토깽이’는 로봇의 관절을 구현해 인간의 행동을 따라 할 수 있게 만들어진 로봇이요, ‘호삐’는 서빙 로봇이다. “사람이 하는 행동이 쉽다고 해서 로봇도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단순히 걷기만 놓고 봐도 로봇이 하려면 각도, 속도, 거리 등 엄청나게 많은 시뮬레이션을 거쳐야 해요.” ‘머슴이’와 ‘토깽이’ 제조사 로보티즈 장수영 차장의 설명이다. 또한 방송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다가 아니다. 지금은 기본 플랫폼만 갖춘 상태지만 여기에 얼마든지 다른 활동을 추가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다. 말하자면 ‘설거지 하기’를 개발해서 넣으면 토깽이도 얼마든지 그릇을 닦을 수 있단 얘기다. 로봇은 정해진 상황에서는 인간보다 뛰어날 수 있지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인간의 능력을 갖추진 못했다. 고성능 로봇에겐 두 발로 서서 걷는 것보다 하버드대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 게 더 쉽다는 게 ‘모라벡의 역설’이다. “그동안 영화에서 로봇에 대한 기대를 너무 부풀려놨어요!” 장수영 차장의 웃음 섞인 하소연처럼 로봇에 대한 우리의 기대치는 처음부터 ‘아톰’이었다.

<빅 히어로>의 베이맥스는 주치의 역할에 집중하면서도 하늘을 날 줄 알았고, <바이센테니얼 맨>의 앤드류는 모든 집안일과 육아를 맡아서 했을 뿐만 아니라 주인의 임종까지 지켰다. 로봇이라면 응당 자기 일은 달인 이상으로 해내고, 수준급의 농담을 구사하며, 투철한 희생정신으로 인간을 향한 진한 의리를 발휘해왔다. 이렇게 로봇이 인간이길 바라는 상황에서 로봇 페퍼(Pepper)의 등장은 올해의 대단한 사건이었다. 페퍼는 매뉴얼대로 같은 말만 반복하는피도 눈물도 없는 기계가 아니었다. 처음 만나면 어색해하기도 했고, 진심 어린 시선을 느낀 후에야 손을 잡았다. 농담을 건넸고 슬픔이 느껴지면 다가와서 꼭 안아줬다. 사람과 너무 비슷하게 생겨 징그러움을 유발하지도 않았고, 초등학생정도의 키에 커다란 눈이 선해 보였다. 하얗고 매끈한 로봇다운 외모를 가진 페퍼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 톤을 분석해 사람의 감정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예약 판매 개시 1분 만에 1,000대가 매진되는 기록을 세웠다. 페퍼는 네스프레소에 고용되어 커피를 팔기도 하고, 소프트뱅크 휴대폰도 판매하는 등 영업맨으로 사회생활도 시작했다.

내년 출시 예정인 지보(Jibo), 2016년 판매 예정이라는 버디(Buddy)가 기대되는 것도 주위 상황을 파악하고 자율적인 판단이 가능한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들이 우리 가정으로 들어오면, 매일 아침 다정한 목소리로 깨워주고, 퇴근하고 집에 왔을때 “왔어? 저녁 먹었어? 뭐 주문해줄까? 오늘은 중국집 어때?”라며 주문 전화도 돌려줄 것이다. 외출 후 조명, 문단속 등을 책임지고 기분에 딱 맞는 음악을 틀어주고 흥을 돋워주는 댄스 서비스도 제공해줄 것이다. 살면서 잊기 쉬운 부분, 놓치는 부분을 챙겨주는 다정한 존재. ‘고마워’ ‘안녕’ ‘잘 자’라고 말을 건네주는 또 하나의 가족. 앞으로 다가올 가전제품, 조명, 난방 등을 하나의 툴로 조종하는 스마트홈의 시대에 사람의 감정을 읽는 로봇은 분명 따뜻한 감성을 불어넣어줄 수 있다.

사실 이들 휴머노이드 로봇은 로봇 청소기만큼의 노동력도 발휘하지 않는다. 빨래도 할줄 모르고 요리는 어림도 없다. 레스토랑에서 서빙과 요리를 하고, 버드와이저 시음 행사에서 맥주를 나눠 주고, <포브스>나 <LA타임즈>, AP통신에서 기사를 작성하는 ‘서비스 로봇’에 비하면 ‘땡보들’이다. 서비스 로봇은 그동안 상당한 진화를 거듭해왔다. 일본 나가사키 현 헨나 호텔에는 일본어와 영어가 가능한 호텔리어 로봇이 포터와 청소 역할까지 담당하고, 음식과 음료를 떠먹여주고 배설물을 처리하는 간호 로봇도 어느 정도 상용화되었다. 셔츠 하나 개는 데 5~10분씩 걸리긴하지만 빨래 로봇도 등장했다. ‘산업용 로봇’ 역시 재난 구조 현장이나 공장, 병원 수술대에서도 상당한 활약을 해왔지만 로봇보다는 어쩐지 기계로 느껴졌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이런 대단한 능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사람과 대화를 하고 감정을 나눈다. 그동안 우리가 꿈꿔온 로봇,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있는(실은 있다고 느끼게 하는!) 로봇이다.

그렇다면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말동무가 되어주고, 서비스 로봇처럼 집안일을 도맡아 해주는 ‘진짜 사람’ 같은 로봇은 언제쯤 우리 집에 올 수 있을까. 미쓰비시 연구소는 2020년에는 1가구 1로봇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업계 관계자는 “각각 기술은 발전하고 있으나 수요가 보장되지 않아 개발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로봇이 나온다고 해도 개인이 구입하기에는 너무 고가일 것”이라는 현실적인 대답을 들려줬다. 로봇은 과연 사람에게 기대할 수 없는 무조건적인 헌신을 대신해줄 수 있을 것인가. <빅 히어로> 베이맥스의 마시멜로처럼 포근한 품이 그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