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레포시의 수장, 가이아 레포시

2017.07.13

by VOGUE

    레포시의 수장, 가이아 레포시

    그녀는 자신의 주얼리를 건축물에 비유했다. 아름다운 미학과 정확한 기술이 동시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이아 레포시를 직접 마주하게 되면, 그녀 자신 또한 그렇다는 걸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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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작 스무 살 나이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대를 이어 주얼리 하우스를 이어받은 가이아 레포시는 마치 엄격하고 정교하게 지어진 신고전주의 건축물 같았다. 정갈한 회백색에 모든 것-겉모습뿐 아니라 머릿속까지도-은 아름답고 정확하게 정돈돼 있었다. 동시대 가장 급진적인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조나단 앤더슨의 현대적인 로에베를 입고 있었지만 말이다. 4월 27일부터 5월 초까지 진행된 분더샵 청담점의 레포시 컬렉션 전시를 위해 그녀가 서울을 방문했다. 그녀 주위에는 공기조차 서늘하고 고요하게 흐르는 듯했고, 약간 구부정한 자세로 성큼 발걸음을 내딛거나 반지를 끼는 작은 동작까지 매우 신중해 보였다. 사실 그녀는 그랬다.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야 겨우 들릴 듯 작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하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 또 하나의 대답으로 생각의 흐름을 따라 이어졌다. 만약 그녀를 스트리트 스타일 유명 인사나 부유한 주얼리 하우스의 나이 어린 상속녀로 알고 있었다면 잘못 알았을 가능성이 크다(심지어 그녀는 스트리트 패션의 보여주기식 겉치레를 싫어한다). 만약 그런 걸 기대했다면 그녀의 지적인 대답들이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화창한 봄날 아침, 분더샵 3층의 정갈한 레포시 전시 공간에서 그녀를 만났다.

    레포시의 아이코닉한 ‘베르베르’ 컬렉션 링,

    구불거리는 곡선 디자인의 초커, 뱅글, 블랙 로듐 반지는 ‘화이트 노이즈’ 컬렉션.

    구불거리는 곡선 디자인의 초커, 뱅글, 블랙 로듐 반지는 ‘화이트 노이즈’ 컬렉션.

    구불거리는 곡선 디자인의 초커, 뱅글, 블랙 로듐 반지는 ‘화이트 노이즈’ 컬렉션.

    구불거리는 곡선 디자인의 초커, 뱅글, 블랙 로듐 반지는 ‘화이트 노이즈’ 컬렉션.

    구불거리는 곡선 디자인의 초커, 뱅글, 블랙 로듐 반지는 ‘화이트 노이즈’ 컬렉션.

    원석이 장식된 반지는 ‘세르티 수르 비드’ 컬렉션.

    VOGUE(이하 V) 어릴 때부터 주얼리가 늘 익숙했을 텐데, 화려하게 착용한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GAIA REPOSSI(이하 R) 10대 때 본 메종 레포시 주얼리들은 매우 클래식한 여자들을 위한 것처럼 보였어요. 우리가 흔히 입는 스웨터나 재킷에도 어울리지 않고 격식 있는 저녁 모임에도 조금 과하게 느껴질 정도로요. 왜냐하면 그것들은 늘 장신구 이상(부를 과시하는)의 의미를 담고 있었거든요. 10년 전만 해도 주얼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원석이었으니까요. 모두가 크고 아름다운 원석에 투자하고, 훌륭한 원석 자체가 주얼리를 만드는 이유가 되기에 충분했죠. 그렇지만 저는 디자인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원석의 크기나 형태도 내가 봤을 때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기준에 따르고. 사실 지금 작업 중인 스톤 컬렉션도 기존과 달리 원석의 크기를 줄이는 방향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원석이 도드라져 보이도록 세팅하거나 크기를 과시하는 건 내가 지난 10년간 해온 작업과는 정반대죠.

    V 당신 디자인이 동시대 여자들에게 이렇게 큰 호응을 받을 거라고 예상했나요?
    R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그렇지만 브랜드에 대한 강한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확신이 있었죠. 그건 매우 중요해요, 내가 보기에 다른 주얼리 하우스들은 우리 세대가 좋아할 만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고 감동받을 만한 예술적, 역사적 이미지와 이야기를 충분히 담고 있지 않아요. (손가락에 낀 반지를 가리키며)이걸 가까이 들여다보면 일종의 ‘컬렉티브 이미저리(Collective Imagery. 어떤 대상을 봤을 때 연관된 과거나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것)를 불러일으켜요. 이 반지가 무의식적으로 과거에 봤던 것을 떠오르게 하는 거죠. 예를 들면 북아프리카 원주민 문신이나 그들이 착용했던 장신구 같은 거요. 나는 미래적인 참조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가 결여돼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실제로 상품화됐을 때 이렇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줄은 정말 몰랐어요! 사실 16~17세 때 본 다이아몬드나 진주는 당시 내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얼리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죠.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조금씩 내 자신에게 어울리는 주얼리를 발견하고 직접 만들게 됐어요. 다른 여자들이 내가 만든 주얼리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V 자신이 디자인한 주얼리와 전통적인 주얼리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R 그럼요. 처음 이 일을 하게 됐을 때도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주얼리를 더 젊게 만드는 거였어요. 이쪽 업계는 이를테면, 느리거든요. 파인 주얼리에서 디자인은 여전히 자산적인 가치에 비해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하우스를 새롭게 재탄생시키기 위해서는 그게 가장 중요했어요. 항상 요즘 여자들에게 어울릴 만한 주얼리가 없다고 느꼈거든요.

    V 한국에서도 파인 주얼리는 장신구보다는 일종의 재산으로 여기는 게 일반적이에요. 당신은 주얼리가 장신구 외에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나요?
    R 분명 투자 가치도 있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주얼리 디자인은 예술이나 공예처럼 묘사와 서술의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해요. 특정한 룰을 따르면서 재해석되고 과감한 변화가 있게 되죠. 각 시대에 따라 어떤 이유로 인해 진화하기도 하고요. 나는 주얼리가 가지는 이런 ‘하이브리드’적인 면이 좋아요. 그러니까, 피부 위에서 일어나는 의사 소통의 도구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착용한 사람에게 강한 정체성을 부여하죠.

    V 왜 당신이 동시대 주얼리 디자인을 새롭게 정의했다고 평가받는지 알 것 같군요.
    R 주얼리 디자인을 시작한 지 겨우 9~1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런 말을 듣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죠. “이 업계에서 전문적인 수준에 이르렀다”라고 말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 아니지만요.

    V 그렇지만 이미 당신은 하이 주얼리 디자인의 경계를 넓혔죠. 정교한 세공의 너클 링, 다이아몬드가 빼곡히 박힌 이어 커프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R 처음 이어 커프를 선보였을 때 모두가 펑크나 피어싱에서 영향을 받은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후에 광고 이미지를 통해 보여줬듯이 그건 신체의 선과 표현을 따라간 거였어요. 몸의 곡선을 따라가면 매우 우아해 보이죠. 손가락의 형태를 따라 만든 반지들처럼요. 아버지는 늘 신체를 길어 보이게 해야 그 부분이 돋보인다고 가르치셨어요. 정말 그래요, 실제로 몸의 움직임이 매우 우아해 보이죠.

    레포시가 착용한 이어 커프는 ‘세르티 수르 비드’ 컬렉션.

    레포시가 착용한 원형 모티브 반지는 ‘라 린느 C’,

    V 혹시 다음 컬렉션을 위해 계획 중인 새로운 아이템이 있나요?
    R 최근에 폭이 넓은 팔찌를 많이 만들었고 요즘엔 목걸이를 작업 중이에요. 이렇게(어깨와 가슴 부위를 손으로 덮으며) 신체 일부를 넓게 덮는 것처럼 보여요. 아주 먼 과거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V 그럼 상반신을 완전히 덮는 건가요?
    R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글쎄요. 어떤 것이 될지는 두고봐야죠.

    V 사담이지만 당신이 겨우 스물아홉 살이라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예요. 마치 30~40대 주얼리 디자이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드는 걸요.
    R 아,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책도 많이 읽지만, 미술과 문화에 늘 관심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리고 이 업계에 충분히 존경심을 갖고 있고 그 가치를 인정하기 때문에 아마 더 그렇게 보일 거예요.

    V 당신은 원래 화가가 되고 싶어 했죠?
    R 하루 평균 다섯 작품을 완성시키곤 했어요. 주로 풍경의 색채를 이용해 느낀 걸 그대로 표현하는 추상화였죠. 그림은 진짜 내 속에서 우러나온 나 자신의 반영이었어요. 차이점이라면 주얼리 디자인 쪽이 일일이 지시해야할 섬세한 디테일이 훨씬 많다는 거예요.

    V 혹시 조각을 해본 적은요?
    R 전혀. 그래요, 충분히 이상하죠! 드로잉도 하고 페인팅도 하고 주얼리 디자인도 했지만 한 번도 조각에 관심을 가진 적은 없어요. 남자 친구(아티스트 제레미 에버렛)가 조각을 하는데, 종종 그에게 영감을 받기도 해요.

    V 그럼 당신 작업에 대한 그의 코멘트를 듣고 싶은데요?
    R 한번은 내가 보여준 반지(앙티페 컬렉션의 8줄 반지. 블랙 골드 소재에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파베 세팅된 것)를 몹시 마음에 들어 하면서 “와, 예술 작품과 다를 게 없어. 이거야말로 진짜 디자인인데!”라고 감탄하기도 했어요. 아, 얼마 전에 세계적인 건축가와 협업했을 때도 그의 첫 반응은 “마치 건축물 같다”는 거였어요. 보석 세공에도 상당한 공학적 기술이 필요하죠, 나는 디자이너라서 기술적인 부분은 잘 모르지만 고맙게도 팀원들이 그 부분을 담당하고 있죠.

    V 그 건축가가 누구죠?
    R 미안하지만 그들이 말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그렇지만 곧 알게 될 거예요. 아주 큰 프로젝트거든요.

    디자인에 영감을 준 쿠사마 야요이의 초기작 이미지와 숲 사진.

    V 주얼리 디자인이 그림을 그리고 싶은 욕구에 대한 충분한 대리만족이 되나요?
    R 그걸 기대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그래요. 주얼리 디자인과 비주얼 작업에서 내 자신을 100%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더 중요한 건 현재뿐 아니라 ‘다음’ 단계까지 내 자신을 투영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을 하면서 가장 크게 배운 건 다음에 무엇이 올지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의 중요성이죠. 기계와 레이저가 등장하면서 100년 혹은 1,000년 이상 된 수작업 세공이 위협받고 시장에는 너무 많은 복제품이 돌아다녀요. 그것들은 전혀 흥미롭지도 않고 전문적이지도 않죠. 주얼리를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훨씬 깊이 있는 연구와 진지한 작업이 필요해요, 오뜨 꾸뛰르처럼요. 위험에 처한 수작업 세공을 다시 시장에 선보이는 것도 내가 생각하는 ‘다음’ 중 하나예요.

    V 벌써 8개의 컬렉션을 선보였어요. 개인적으로 최근 것들은 익숙한 느낌이고 오히려 초기 컬렉션이 비전형적이고 참신하게 느껴져요.
    R 혹시 이런 게 아닐까요. 사람들이 그 디자인을 익숙하게 느끼는 건 또 하나의 클래식이 됐기 때문이라고. 처음에 시작했을 땐 새로웠지만 점점 내 디자인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이브 생 로랑은 “디자이너에게 가장 중요한 건 정체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했어요.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자신만의 시그니처가 될 수 있도록. 그림 작품만 보고 작가가 누군지 알 수 있는 것처럼요.

    V 당신은 예전에 “우리가 패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의복의 일부이며, 문화적인 정체성 또는 사람들 사이의 미학”이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 관점에서 당신 주얼리는 지금의 무엇을 보여주고 있죠?
    R 지금 이 시대를 특징짓는 것은 고도로 발달된 기술과 전자 기기들이에요. 우리는 바쁜 시대를 살고 있고, 옷을 입을 때조차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죠. 내가 레포시 주얼리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이유예요. 물론 만들기까지 수많은 것들을 참고했지만 착용할 때는 조금 다르게 매치하는 것만으로도 빠르게 변화를 줄 수 있고 충분히 매력적이죠. 사실 주얼리에서 흔한 컨셉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프레타 포르테도 그런 개념에서 시작됐고, 요즘엔 가구도 계속해서 바꾸는 추세니까요. 제가 추구하는 건 동시대가 필요로 하는 빠르고 다양한 변화, 그리고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가치를 동시에 가지는 주얼리예요.

    V 당신이 말한 ‘속도전의 시대’에 과연 당신은 매일 아침 옷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말해줄래요? 당신은 취향이 좋기로 유명하니까요.
    R 오, 그건 꽤 정치적이고 어려운 질문인데요! 우선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입어야겠죠. 같은 균형, 같은 비율을 가진 걸로요. 사실 난 새로운 거라면 뭐든 끌리는 편이에요. 예술 운동, 문학, 독립 영화 등 기존의 범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건 뭐든 좋아해요. 그런 게 나와 맞는다고 느끼거든요. 늘 그렇듯 자신을 유행에 맞추기 보다는 자신이 누구인지 표현할 수 있는 걸 선택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가이아 레포시 영상 ‘GAIA THEORY’ 보러 가기

      에디터
      송보라( 2015년 6월호)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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