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메이커 – 디지페디

유튜브 시대 뮤직비디오 감독들의 세대교체. 요즘 SNS상에서 화제가 되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들은 케이블TV와 인터넷이라는 감각의 제국에서 자란 80년대생 감독들이다. 디지페디, 이기백, GDW, 비주얼스 프롬. 독창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네 팀의 비주얼 메이커들을 만났다.

디지페디1

디지페디의 4차원 스펙트럼

‘‘누가 만들었을까?’ 싶은 뮤직비디오엔 성원모와 박상우 감독이 있다. 아름다운 인어 공주가 초밥이 되어 식탁에 오르는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 처음부터 끝까지 세로 프레임으로 찍은 에픽하이의 ‘Born Hater’, 초현실주의 영화 같은 존 박의 ‘Falling’, 세계 최초의 최면 뮤직비디오 시장을 개척한 노라조의 ‘니 팔자야’까지. 디지페디(Digipedi)는 세상에 없던 색다른 뮤직비디오의 다른 이름이다.

사무실 입구에 걸린 로고가 특이하더라.
원래는 둘이서 티셔츠 브랜드를 만들려고 했었다. 그래서 디지페디란 이름과 로고를 만들었는데 그건 망했다. 흐흐. 아무 뜻은 없다.

티셔츠 브랜드라고? 영상 스튜디오가 아니라?
대학 시절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둘 다 일러스트를 했으니까. 초·중·고 동창인 박상우 감독은 졸업 후 디자인 스튜디오에 다녔고, 난 Mnet에서 OAP PD로 일했다. 영상은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다뤄본 게 전부였다. 재미 삼아 친구들 뮤직비디오도 찍어주고. 공식적인 첫 뮤직비디오 작업은 다이나믹 듀오의 ‘복잡해’다.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처음엔 티셔츠 제작 때문에 얘기가 오갔는데 흐지부지됐다. 얼마 후 다이나믹 듀오 측에서 앨범 속지에 들어갈 일러스트를 그려달라는 연락이 왔고, 그렇게 뮤직비디오 작업까지 연결이 됐다. 운이 좋았던 셈이다. 다이나믹 듀오 공연 연출을 담당한 감독님이 그 영상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를 플럭서스뮤직 쪽에 소개해줬고.

이전 뮤직비디오 감독들이 광고나 영화계 출신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우리를 비롯해 80년대생 뮤직비디오 감독들은 대부분 디자인과 출신이다. 촬영 장비가 많이 싸졌고 카메라 기술이 좋아진 데다 편집도 간단해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영상을 대하는 접근 방식부터 장비까지 전과 다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전 세대 감독들이 아이디어 작업을 할 때 워드프로세서를 켜고 스토리텔링부터 시작한다면 우린 포토샵을 열고 디자인부터 본다. 그렇다 보니 톤 자체도 다른 느낌이 날 수밖에 없고.

컨셉도 기발하다. 올 초 장안의 화제였던 노라조의 ‘니 팔자야’도 그렇고. 그런데 그건 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나?
방송 심의를 넣으려면 ‘최면은 과학적인 사실이 아니고’ 식의 멘트를 넣어야 한다더라. 조빈 씨가 뭘 그런 걸 쓰냐고 그냥 가자고 했다. 처음 기획할 때부터 방송 못 나갈 것 같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만들어달라고도 했고. 근데 나중에 조빈 씨가 그걸 갖고 언론 플레이를 한 거다. 마치 방송을 하고 싶었는데 못한 것처럼. 흐흐.

최면 영상 컨셉부터 “실제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착시입니다. 두 눈을 깜박이며 노라조를 영접하세요” 같은 깨알 같은 자막도 웃겼다.
우린 완전히 망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이다. 일부러 톤을 통일시키지도 않고 각자 소스 만들어 붙이고 이야기도 막 때려 넣었는데, 우리끼리는 ‘좀더 재미있게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소위 그런 걸 ‘약 빨고 만든 뮤비’라고 한다. 어디서 그런 아이디어를 얻었나?
일단 약을 빨고 만든 게 아닌 건 확실하다. 흐흐. 노라조가 이미 ‘야생마’에서 말 분장을 하고 나오기도 해서 그런 식의 접근은 더는 재미없을 것 같았다.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 이후, ‘나처럼 해봐요’ 뮤직비디오를 찍을 때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초밥까지 했으니 뭘 해야 하나. 그래서 숨은그림찾기처럼 만들었다. 이번에도 뮤직비디오라는 매체 자체에 대해 좀더 고민해보기로 했다. 처음 기획 의도는 이 뮤직비디오의 정확한 사용법을 만들자는 거였다. 자기 전에 보면 좋은 꿈을 꾸게 되는 그런 걸 한번 만들어보려 한 거지. 그럼 좋은 꿈이 뭐가 있나? 용꿈, 똥꿈, 돼지꿈 모티브들이 나오게 된 거다. 사람들이 일종의 놀이처럼 즐기길 바랐다.

‘까탈레나’의 경우 여자 친구랑 초밥집에서 밥을 먹다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들었다.
연어를 간장에 담갔는데 뭔가 되게 야해보였다. 어, 이걸로 뮤직비디오 만들어야지 했는데, 바로 1~2주 후에 오렌지캬라멜 측에서 연락이 왔다. 마침 또 우리 조감독 이 인어 공주 이야기를 하기에 인어 공주에서 시작해 <미스터 초밥왕>으로 끝나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대체 평소엔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
멀쩡하게 산다. 다음 작업에 대해 고민하면서. 우린 되게 성실한 직업인들이다.

가장 까다롭고 힘든 작업은 무엇이었나?
존 박의 ‘Falling’. 진짜 당시 유튜브랑 비메오 에 있던 웬만한 영상은 다 본 것 같다. 발라드곡이 특히 어렵다. 꿈속에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싶어 일부러 잘 때도 음악을 플레이해놓고 자고. 반대로 최근에 작업한 빈지노의 ‘How Do I Look?’ 같은 경우는 너무 쉽게 딱 ‘이건 이거야!’라는 확신이 들더라.

에픽하이의 ‘Born Hater’ 뮤직비디오가 막 공개됐을 때 타블로를 만났는데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굉장히 뛰어난 감독들”이라고 극찬하더라.
세로 프레임으로 뮤직비디오를 만든다는 컨셉도 ‘까탈레나’처럼 원래 갖고 있던 생각이었는데, ‘Born Hater’랑 진짜 잘 맞을 거 같았다. 일종의 트래시 토크(Trash Talk) 같은 가사니까 화장실이랑 어울리고, 공중화장실은 병렬 구조다. 이건 무조건 된다 싶었다. 세로 프레임 뮤직비디오가 생소했으니까 처음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는데, 전화로는 설득이 안 될 것 같았다. 인천에 있다기에 에픽하이 인천 숙소를 찾아가 설명했다.

어떤 뮤지션들과 작업할 때 본인들의 실력이 100% 발휘된다고 생각하나?
우리가 재미있게 작업하려면 일단 컨셉이 독특해야 한다. 동시에 그걸 받쳐줄 만한 예산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팬덤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작업하기 제일 좋은 아티스트들은 7~8년 차 아이돌? 소속사와 재계약하고 솔로 앨범을 내는 그런 친구들이 뭔가를 좀 재미있게 할 만한 상황이 된다.

디지페디는 파격의 아이콘이다. 매번 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클 것 같다.
맞다. 참신한 건 원래 처음 한 번만 통하는 거라고들 하지 않나. 매번 사람들에게 참신한 인상을 주는 건 되게 어려운 일이다. 우리가 컨셉을잘못 잡았다. 상당히 후회가 많이 된다. 정 안 되면 다시 티셔츠나 좀 팔아야지. 흐흐.

연말마다 자체적으로 뮤직비디오 시상식을 열어왔다. 올해는 후보군이 어떻게 되나?
지난해에 비해 좋은 작품이 별로 없는 것 같아 살짝 부담되긴 하는데, 올해도 열리긴 할 거다. 김예림의 ‘Awoo’, 노라조 ‘니 팔자야’ 정도가 괜찮지않았나 싶다. 다음 주에 EXID 신곡 뮤직비디오를 찍을 건데 이것도 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