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 놈들이 나타났다. AOMG의 박재범과 사이먼 도미닉, 그리고 그레이와 로꼬의 요즘 기세는 가히 ‘매드맥스’급이다.

음원의 0시 공개가 익숙해진 지금, 야밤의 ‘차트 줄 세우기’가 이제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지난 8월 이 남자의 줄 세우기는 의미 있는 일이었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던 사이먼 도미닉이 복귀 앨범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박재범과 함께한 ‘₩&Only ’선공개곡이었던 ‘사이먼 도미닉’ 등이 수록된 이 앨범은 음원 오픈과 동시에 모든 음원 사이트 차트 정상에 올랐고, 수록곡 수만큼 랭킹 상위권을 점령했다. 게다가 <₩&Only>는 AOMG 소속 아티스트 그레이가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고, 또 다른 소속 아티스트인 박재범, 엘로도 피처링으로 함께했다. 그러니까 사이먼 도미닉의 이번 앨범은 설립 이후 싱글 위주의 곡만 발표하던 AOMG의 능력치를 가늠하는 리트머스였던 셈이다. “차트 성적에대한 부담감은 없었어요. 다만 스스로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죠.”(사이먼 도미닉) 앨범을 함께 프로듀싱한 그레이는 이 흥행보가 올해 가장 기쁜 뉴스라고도 했다. “쌈디 형이 전 차트 1위를 한 게 가장 컸던 것 같아요. 방송 활동도 안 했는데 모든 차트를 다 털었고. 목표를 달성한 느낌이이었죠.” 이제 갓 기둥을 세우기 시작한 AOMG가 그럴듯한 지붕을 하나 얹은 순간이다.

얼핏 의약품 이름 같지만 AOMG는 ‘Above Ordinary Music Group’의 줄임 말이다. 박재범의 비보잉 크루 AOM(Art of Movement)에서 가져온 말인데, 간단히 풀면 그저 평범하지 않은 녀석들의 집단. 2013년 박재범이 차렸고 사이먼 도미닉 표현대로라면 당시 “FA 시장에 나와 있던” 그가 합류하며 대략의 얼개를 갖췄다. 이후 평소 친분이 있던 그레이, 로꼬 등이 합류하며 완성. AOMG는 현재 박재범, 사이먼 도미닉의 공동 대표 체제다. “녹음실에 가면 저랑 엔지니어밖에 없는 게 싫었어요. 영감을 얻어야 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았죠. 제가 비보잉할 때 항상 어딜 가도 ‘AOM’ 외치고 다녔거든요. 크루 느낌으로 음악 하는 거죠.”(박재범) AOMG는 올해 사이먼 도미닉의 맥시 싱글을 포함, 로꼬의 ‘Respect’, 그레이의 ‘하기나 해’ 등 10여 곡의 음원을 발표했다. 타 레이블 아티스트들과의 작업을 더하면 이들의 손을 거친 음악은 수십 곡이다. 뮤지션 사장 둘이 운영하는 음악 공장치곤 생산력이 좋다.

지난 11월 박재범은 앨범 쇼케이스를 가졌다. 세 번째 정규 앨범인데 질도, 양도 두툼하다. 부클릿은 웬만한 소책자 두께고, 수록곡은 무려 18곡, 참여한 아티스트의 수는 27명이다. 박재범은 이 앨범을 랩으로만 가득 채운 작품이라 말했는데, 그만큼 거칠고 과감한 에너지가 폭발한다. 문을 여는 ‘Worldwide’에선 “무릎 꿇고 살 바엔 차라리 서서 / 난 죽어”라 선언하고, 타블로와 합을 맞춘 ‘When’에선 “1위 가수 아닌데 나는 / 1위 가수 돈 벌어 / 3년 전에 몇 번 해봤어 / 별거 없어”라 내갈긴다. “힙합이 대세라 하지만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위주잖아요. 좀 제대로 된 힙합 앨범 내서 지금 사람들이 관심 있는 힙합에 대한 흐름을 깨보고 싶었어요.” <쇼미더머니 4>의 참여 역시 같은 의도로 결정한 일이다. “시즌 1부터 제안은 있었어요. 근데 그때까지만 해도 전 댄스 가수여서 거기 나가는 것 자체가 너무 웃겼죠. 진짜 힙합 앨범을 내진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그가 TV 무대에서 보여준 건 ‘진짜 힙합’이었다. <쇼미더머니 4>에서 그가 릴보이, 로꼬 등과 어울려 랩을 할 때 스웩은 터졌다.

사이먼 도미닉의 셀프 타이틀곡, 스윙스의 ‘A Real Lady’, 개리의 ‘조금 이따 샤워해’등. AOMG 안팎의 이 히트곡들 뒤에는 사실 한 남자가 있다. AOMG의 그레이다. 최근엔 잘생긴 힙합 뮤지션으로 광고, 예능까지 진출한 그지만, 그레이는 본래 무대 뒤에 있던 남자였다. 데뷔 싱글 <깜빡>을 내기 전 그는 슈프림팀, 자이언티 등 다수의 아티스트 곡을 프로듀싱했고, 지금도 꾸준히 협업을 하고 있다. “아직도 프로듀싱 비율이 더 많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무대 뒤에 숨어 있고만 싶진 않았어요. 프로듀서 느낌이 강하지만 뮤지션인 퍼렐도 있잖아요.” 스윙스의 ‘A Real Lady’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레이는 무려 여섯 곳의 에이전시 러브콜을 거절하고 AOMG에 둥지를 튼 케이스다. “(박)재범이한테도 연락이 왔어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역시나 재범이랑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단 느낌을 받았죠.” 그리고 그레이는 마치 자기소개라도 하듯 2013년 미니 앨범 <Call Me Gray>를 발표했다. AOMG로선 첫 스타트를 끊는 트랙이었다.

AOMG에는 우스개 표현으로 아들이 하나 있다. <쇼미더머니 1>의 우승자 로꼬. 다른 세 뮤지션들 사이에서 가장 늦게 AOMG에 합류한 로꼬는 사이먼 디를 아빠, 박재범을 형, 그레이를 엄마 같다 얘기했다. “재범이 형은 뒤에서 챙겨주고, 그레이 형은 보이는 데서 챙겨줘요. 쌈디 형은 바빠서 집엔 잘 들어오지 않는데(웃음) 들어오면 따뜻하게 대해주는 타입이에요.” 실제로 외동아들인 로꼬에게 이보다 든든한 패밀리도 없다. 그리고 이들은 실제로도 가족처럼 일하고 어울린다. “로꼬는 무대에서 멘트할 때 헛소리 많이 해요. ‘여러분, 저 오늘 샌드위치 먹었어요.’ ‘순하리 한 병 다 마셨어요.’(웃음) 같은 거.”(박재범) “재범이는 솔로 이후 행보가 멋있었어요. 그리고 사이먼 도미닉과 박재범이란 조합? 둘의 섹스가 신선하게 느껴졌어요. 우리 막 이러고 놀아요.(웃음)”(사이먼 도미닉) 서로에 대한 인상을 물었더니 돌아온 얘기들이다. 이 자연스러운 19금 농담만 들어도 네 남자의 관계가 대충 그려진다. 그레이와 로꼬는 홍익대학교 힙합 동아리의 선후배 관계이자 힙합 크루 비비드 크루의 멤버였고, 사이먼 도미닉과 그레이 역시 AOMG 이전부터 함께 음악 작업을 하던 사이였다. 그러니 당연히 궁합은 문제없다. AOMG는 연말에 2주년 기념 파티와 각종 공연을 할 것이고, 그레이는 새로 데뷔하는 엘로의 음반 작업에 착수한다. 음악적 신뢰로 뭉친 남자들의 기세는 거침없다.

미친 듯 날뛰는 무대에서와 달리 로꼬는 얌전하고 예의 바르다. 외모는 27세 나이에 비해 앳되고, 조곤조곤 얘기하는 말투는 래퍼의 것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고등학교 때까지 모범생이었던 로꼬는 일반적인 사람들의 진로를 밟을 예정이었다. 성적에 맞춰 골라 들어간 전공 역시 경제학. 하지만 고등학교 축제에서 경험한 무대의 희열이 그를 미치게 했다. 로꼬는 스페인어로 미친놈이란 뜻이다. “안정된 직업을 구하려고 했어요. 근데 동아리 활동을 하다 보니 음악이 좋은 거예요. 제가 표현하고 싶은 거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데 힙합을 하면 답답함이 해결됐어요.” 어린 가장으로서 겪은 생활고 역시 그가 힙합에 빠지게 된 이유일 것이다. 그는 꽤 오랜 시간 홍대 앞 새우튀김집 ‘미미네’의 청년이었고, AOMG 이전엔 소속사 문제로 마음을 썩이기도 했다. “우승 상금은 빚 갚는 데 다 썼고, 금전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래도 재범이 형이 남은 빚을 다 정리해주셨죠.” 하지만 상황이 반전된 지금, 데뷔곡 ‘See the Light’를 비롯, ‘감아’ ‘니가 모르게’ 등의 히트곡을 내놓은 로꼬는 내년을 목표로 정규 앨범도 준비 중이다.

AOMG에서 올해 나온 대표적인 음반 두 장에는 모두 호연한 자기 선언이 있다. 사이먼 도미닉은 셀프 타이틀곡에서 이름을 철자 하나 하나 발음하며 부르고, 박재범은 ‘Seattle 2 Seoul’에서 가수 인생 전체를 훑듯 노래한다. 이전과 다른 사이먼 도미닉, 새로운 박재범의 선언이다. 게다가 사이먼 도미닉은 쌈디란 이름으로 더 익숙하지 않았나. 그는 굳이 이번 앨범에서 풀 네임을 살려냈다. “이름은 되게 많았어요. MC 기석이, MC 케이아우타 등. 그러다 사이먼 도미닉으로 활동했는데 줄여서 쌈디라고 더 많이 불렸죠.” 그는 올해 자신의 생일 파티에서 ‘사이먼 도미닉’을 불렀고, 8월 그 선언의 곡으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20대엔 정말 일만 했어요. 그러다 더러운 꼴도 많이 봤고, 사람을 떠나보낸 적도 있어요. 매우 타이트하게 살았죠. 근데 이제는 여유가 생겼어요. 웃을 시간도 많아졌고, 눈물 흘릴 시간도 생겨나고. 이전엔 울지 않았는데 요즘엔 술 마시거나 얘기하다 울 줄도 알아요.” 슈프림팀으로 발매한 마지막 싱글 <그대로 있어도 돼>에는 “니가 있는 곳에 그대로 있어도 돼 / 잠시 어두워져도 불안해하지 마 Wherever”라는 구절이 나온다. 강한 척과 성공에 지쳐 내뱉은 속내였을 것이다. 사이먼 도미닉이 스스로 붙인 자신의 생일 파티 타이틀 ‘리버스(Rebirth)’ 처럼 그는 이렇게 서른의 문턱을 지나 재탄생을 다짐했다.

이제는 어엿한 레이블의 사장이지만 사실 박재범만큼 기구한 연예인 생활을 겪은 사람도 없다. 아이돌 그룹의 멤버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구설수에 휘말려 고향인 시애틀로 쫓겨나듯 돌아갔고, 이후 서울에 돌아와 간신히 뮤지션의 타이틀을 찾았다. 서울 물정 처음 경험하는 아이돌이 겪기에는 거나한 쓰나미였을 텐데 박재범은 부서지지 않았다. “실수할 수 있잖아요. 중요한 건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사람으로서 배우고 발전하는 거, 인생을 진행하는 게 중요하죠.” 그렇다고 박재범이 ‘곤조’를 굽힌 건 아니다. 그는 그렇게 당하고도 SNS에 손가락 욕 사진을 올리고, 문신 좀 그만하라는 팬들에게 “무슨 상관이냐”며 맞선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병신’ 역시 발매 전부터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부담스러웠다면 쓰지 않았을 거예요. 억지로 관심 받으려고 더 야하게 쓰지 않아요. 그냥 느끼는 대로, 제 삶이 힙합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의 노래에선 상대에 대한 악의보단 스스로의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집념 같은 게 들린다. “날 막으려고 지었던 벽은 / 쉽게 난 부쉈네 / 남들과 다르게 / 나는 솔직한 길을 걷네”와 같은 구절(‘Life’). 박재범은 18곡의 랩을 통해 비보이 크루 시절부터 지켜온 스스로의 철학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AOMG는 다소 ‘단신족’이다. 대부분의 아티스트가 170 언저리를 맴돈다. 당연히 콤플렉스가 아닐까 싶었는데 이들은 음악 때문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겠지만 그레이는 “테이프를 사 모아 듣다가 잠을 못 자 키가 안 컸다”고 말했고, 사이먼 도미닉은 “가사 쓰느라 수면 시간이 2시간을 넘지 못했다”고 했다. 키보단 음악, 충분한 수면보단 종이 한 장 꽉 채운 가사가 더 중요하던 남자들이다. “휴게소에 들러 가요 테이프 사는 거 좋아했어요. 테이프가 진짜 많았죠.”(그레이) 그리고 이들은 낮은 높이 대신 힙합의 세계를 얻었다. 그저 음악이 좋아 테이프 더미에 파묻혀 시간을 보내고, 잠을 줄여 랩을 짜던 날들이 아마도 지금의 AOMG를 만들었을 것이다. 단순한 디스와 욕설이 아닌 애정과 열정, 그리고 무엇보다 흥 넘치는 사운드. 2년 차 레이블 AOMG는 이제 고작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