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메이커- 비주얼스 프롬

유튜브 시대 뮤직비디오 감독들의 세대교체. 요즘 SNS상에서 화제가 되는 뮤직비디오의 주인공들은 케이블TV와 인터넷이라는 감각의 제국에서 자란 80년대생 감독들이다. 디지페디, 이기백, GDW, 비주얼스 프롬. 독창적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네 팀의 비주얼 메이커들을 만났다.비주얼스 프롬

예술의 경계, 비주얼스 프롬

밴드 혁오의 등장과 함께 이슈가 된 건 그 이국적인 질감의 뮤직비디오였다. 기존 인디 밴드와 차별화된 혁오의 음악처럼 신선하고 감성적인 영상을 선보인 비주얼스 프롬(Visuals From.)은 상업 예술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오가는 비주얼 창작 집단이다. 정진수 감독을 중심으로 사진 작업을 하는 심규호, 디자인 담당 박신영, 영상 작가로 활동 중인 촬영감독 이행갑 4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주얼스 프롬에 대한 소개를 부탁한다.
촬영감독을 제외하곤 모두 홍대 예술학과 출신의 88년생 친구들이다. TV를 거치지 않는 메타 미디어들, 그러니까 비메오와 유튜브 같은 매체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자란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작업은 주로 영상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그래픽과 디자인, 사진까지 시각 매체 전반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Visuals From.’이라고 이름 지었다.

혁오의 뮤직비디오 대다수가 비주얼스 프롬의 작품이다.
어떻게 시작됐나? 오혁과는 학교 선후배 사이다. 초기엔 나(정진수) 혼자 작업을 했다. 데뷔 전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밤중에 뭔가 노래를 만들어 보내오면 내가 영상을 만들어주고, 그걸 각자 비메오나 사운드 클라우드에 올리는 식이었다. 반대로 내가 미술관에서 영상 설치 전시를 할 땐 오혁이 그에 맞는 음악을 만들어주기도 했고. 공식적으로 작업을 같이 한 건 ‘위잉위잉’ 때부터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건 프라이머리와 혁오의 ‘공드리’ 덕분이다.

비주얼스 프롬의 뮤직비디오는 혁오의 음악만큼이나 신선하다.
두 팀 사이에 공유되는 감성을 뭐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 어릴 땐 가요를 듣고 자랐다. 근데 대학에 가 해외의 다양한 문화를 접하다 보니 국내 시장에서 만들어지는 콘텐츠가 다소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걸 직접 만들기로 한 거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의 염증을 느꼈던 것 같다. 음악이든 영상 분야든 뭔가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 생길 무렵, 마침 우리의 작업물이 나오면서 운 좋게 맞아떨어진 게 아닐까? 행운을 등에 업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지금 누구의 뮤직비디오를 촬영 중인가? 지코의 신
곡을 작업하고 있다. 미국 중서부의 풍경과 잘 맞물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쪽으로 오게 됐다.

원래의 작업실은 어디인가?
옥인동 언덕 위에 작은 작업실이 있다. 지대가 높아서 인왕산과 남산이 모두 보이는 조용한 공간이다. 건물 옥상에 있는데 꽤 넓어 여름엔 종종 거기서 수박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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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 외에 또 어떤 작업을 진행해왔나?
지난해 아르코 미술관에서 열린 <즐거운 나의 집> 전시에 작가로 참여했고, 현대카드의 밀라노 디자인 페어를 위해 ‘Money’라는 개념 을 은유하는 10장의 사진 연작을 작업했다. ‘Something to Someone’ 시리즈처럼 우리만의 단편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비롯, 각자 개인 작업도 하고 있다. 주로 해외에서 작업이 이뤄지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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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외국의 자료를 레퍼런스 삼아 작업을 하자니 카피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차라리 제작비가 늘고 남는 게 줄더라도 현지에서 직접 경험하며 작업하는 게 우리와 클라이언트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방향일 것 같더라. 현재까지는 긍정적이다. 이렇게 먼 길을 돌아오다 보면 한국에서의 작업도 더 깊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다.

영상 외에 다른 작업을 병행함으로써 얻는 이점이 있다면?
일단 여러모로 생각할 시간이 더 많아진다. 마감 기간이 덩달아 길어진다는 단점도 있긴 하지만. 흐흐. 영상의 프레임 안팎을 넘나드는 다양한 장르적 즐거움이 우리 창작의 원동력
이기도 하다.

비주얼스 프롬 멤버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영상 감독, 혹은 미술가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창동 감독님을 존경하고 그 분의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각자 취향이 다르지만 여기서 교집합이 발생하는 신묘함이 있다. 해외 출장을 가면 꼭 시간을 내어 다 같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돌아다닌다. 미술가 중에는 에드워드 호퍼, 최근엔 사울라이터의 사진을 인상 깊게 보았다.

홈페이지 메인 화면을 장식한 사진도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같은 느낌이다.
최근 파리에 촬영하러 갔다가 루이비통 파운데이션 출구에서 찍은 사진이다. 벽의 도장과 조명의 조합만으로 단순한 공간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만들어내더라. 절제된 컬러 팔레트가 보여서 찍어둔 것인데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과도 잘 어울린다 싶어 홈페이지 메인에 걸어두었다. 조명을 받는 작품이 아니라 구석 공간의 디테일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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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스튜디오 자체적으로 중·단편 영화를 만들어보려 한다. 그리고 책도 한 권 준비 중이다. 물론 지금까지처럼 클라이언트와의 작업도 이어지겠지만, 내년엔 일보단 각자의 작업 세계를 확장하는 데 좀더 집중하려 한다. 개인적인 욕심은 전시장과 같은 오프라인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길 바란다는 것. 코스(Cos)나 에르메스 같은 패션 브랜드와 비주얼 작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

비주얼스 프롬의 목표는 어디까지인가?
우리가 만든 것들이 업계는 물론 많은 사람에게 재미있는 시도로 받아들여지면 좋겠다. 나무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서 어느 날 돌아보니 가지가 무성한 모습이면 뿌듯할 것 같다. 큰 나무들은 수없이 많은 작은 곤충과 미생물의 복합체나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그런 존재가 물과 공기, 햇빛 같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을 토대로 탄생한다는 게 참 경이롭다. 그런 모습으로 계속 작업을 해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