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의 제왕

최근 강풀 원작의 애니메이션 〈타이밍〉과 윤태호 원작의 영화〈내부자들〉이 개봉했다. 작품마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자들의 관심을 받아온 웹툰 거장들이지만 이들이 만들어온 스토리텔링의 세계는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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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두 작품이 나란히 스크린에 걸렸다. 하나는 강풀 작가 원작의 애니메이션 <타이밍>이고, 또 다른 하나는 윤태호 작가 원작의 영화 <내부자들>이다. 삼성의 자본으로 만들어진 JTBC에서 노동 투쟁을 다룬 최규석의 <송곳>을 드라마로 내보내는 이 시기에, 유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나오는 건 딱히 흥미로울 것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풀과 윤태호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현재 강풀은 역대 웹툰 작가 중 가장 많은 작품이 영화화되었으나 정작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한 작가이며, 윤태호는 강우석 감독의 영화 <이끼>, tvN 드라마 <미생> 단 두 작품만 영상화되었지만 두 작품 모두 흥행에 성공한 흔치 않은 케이스다. 예전에 영화 판권이 팔렸음에도 이제야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타이밍>과 이병헌, 조승우라는 특A급 배우들이 캐스팅된 <내부자들>은 멀티유즈에 있어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는 강풀과 윤태호의 현재를 제법 잘 보여준다. 또한 이미 웹툰으로는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두 스토리텔러의 스타일의 차이를 드러낸다.

당장 올해 연재된 강풀의 <무빙>, 그리고 윤태호 작가의 <파인>을 보자. 부모 세대의 초능력을 물려받은 아이들과 역시 비슷한 초능력을 지닌 북한 공작원들의 대결을 그린 <무빙>은 간만에 강풀 특유의 멀티플롯이 다시금 빛을 발한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이 된 <타이밍>이나 그 후속작 <어게인>, 그리고 ‘그분’을 암살하는 이야기인 <26년> 등은 모두 특별한 능력자나 나름의 재주와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의 목적을 위해 뭉쳐 문제를 해결하는 구조다. <무빙> 역시 하늘을 나는 능력이 있는 주인공 봉석의 이야기로 시작해, 또 다른 능력을 지닌 희수, 강훈, 그리고 그들의 부모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내다가 각각의 톱니바퀴가 하나로 맞물릴 때 이야기는 가속페달을 밟는다. 굳이 비교하자면 <오션스 일레븐> 시리즈 같은 잘 만든 케이퍼 무비가 강풀의 그것과 가장 흡사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윤태호의 <파인>도 언뜻 보면 케이퍼 무비에 어울리는 이야기다.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보물선에서 값비싼 도자기를 건져오기 위해 설계자 타입의 건달 오관석과 물주, 골동품 전문 사기꾼, 반건달인 선장, 목측 전문가 등이 한데 모인다. 하지만 서로가 각자의 사연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각자의 능력을 합치는 강풀의 세계와 달리 <파인>의 악당들은 당장의 이익을 위해 서로 반목하고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판세를 조율하던 나름의 안티히어로 관석이 극약을 넣은 소주를 마셔 입에 거품을 물고 늘어지는 장면은 최소한의 낭만이나 자비조차 느껴지지 않아 서늘하기까지 하다. 범박하게 요약해 <무빙>을 비롯한 강풀의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생산적이라면, <파인>이나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 모두가 죽어나간 <이끼>에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은 파괴적이다. <내부자들> 역시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원작은 결말이 나지 않았다.

이것은 정서의 문제이자 또한 플롯의 문제다. 스스로 성선설을 믿는다고 하는 강풀의 경우 사람들의 선의가 선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테마를 각각의 능력자들이 모여 선한일을 행하는 플롯으로 구현한다. 이것이 나이브해 보이지 않으려면 각각의 사연이 모이고 또 그들의 협업이 이뤄지는 과정의 ‘합’이 정교하게 맞아떨어져야 한다. 잘 만든 서양 장르영화나 미드에서 볼 수 있을 이런 플롯의 합에 영화 제작자들이 환호하고 빠짐없이 판권을 사들인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토록 정교한 플롯은 그중 하나의 장치라도 빼거나 바꾸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망작이 된 영화 <아파트>, 그리고 플롯의 정교함보다는 정서적 힘이 강해 영화로도 상당히 잘 이식된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비교해보라. 러닝 타임의 한계 안에서 단순화하거나 변형된 플롯은 원작만큼의 재미를 주기 어렵다. 윤태호 역시 어떤 면에서는 인간의 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강풀과 반대로 악인들의 갈등과 그들 스스로의 자기 파괴적인 양상을 그려낸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합이 아닌 갈등이다. <이끼>와 <파인>은 문명을 지워낸 공간 안에서 인간들이 어떤 잔혹함을 드러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필요한 건 촘촘한 설계가 아닌 문명의 탈을 벗을 수 있는 환경이다. 그 환경만 만들어지면 윤태호의 악당들은 최소한의 위선조차 내던진 채 오직 탐욕을 위해 부딪칠 수 있다. 둘 다 뛰어난 스토리텔러임에도, 강풀과 비교해 윤태호의 그것은 좀더 날것의 느낌이다. 우열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다만 영화 <이끼>가 그러하듯 그러한 환경을 제시하는 것에만 성공하면 그 욕망이 격렬히 부딪치는 방식은 좀더 자유롭게 표현될 수 있다.

물론 <미생>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는 이들이 모인 원 인터내셔널은 윤태호의 여타 작품과 비교해 긍정적인 기운으로 넘쳐난다. 하지만 그가 강풀처럼 인간의 선한 본능을 믿는 건 아니다. 그보단 잘 만들어진 시스템의 합리성을 믿는다. 강풀이 어떤 고난에도 불구하고 선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면, <미생>은 어떤 조건 아래서 합리적으로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할 수 있다. 다시 환경의 문제로 소급해보자면 주어진 환경 안에서 캐릭터를 가지고 노는 방법은 드라마 <미생>이 그러하듯 어느 정도 유연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결국 강풀의 작품이 창작자가 철저히 설계한 세계라면, 윤태호의 세계는 어떤 흥미로운 환경과 인물들이 만났을 때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관찰 일기에 가깝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에 우열은 없다. 중요한 건 방식이 아닌 개인의 기량이며, 강풀과 윤태호가 각각의 방식에 있어 거장의 위치에 올랐다는 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전히 영상화에선 윤태호가 유리하겠지만, 그건 작가 탓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