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키워드, 어워드 – 책 편

2015년을 여덟 개 분야의 키워드로 분석했다. SNS를 달군 화제의 인물들과 올 한 해 문화·예술계 사건 사고에 대한 백과사전식 총정리. 그리고 객관적 자료와 주관적 잣대로 선정한 〈보그〉 어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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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쓰나미

작가도, 제목도 다른데 문장이 비슷하다. 올해 출판계는 표절 소동으로 스산했다. 국내 문단의 대표적인 작가 중 한 명인 신경숙이 꽤 오래전부터 해외 작품을 표절했다는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신경숙은 <전설>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 중 한 문단을 거의 반죽하듯 베껴 썼고, <작별 인사>에선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 중 두 문장을 시점만 바꿔 다시 썼다는 의혹을 받았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와 <엄마를 부탁해> 두 작품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2000년대 초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박민규는 책 출간 당시 일었던 표절 혐의를 13년이 지난 지금에야 인정했다. 한국 문단의 두 대표 선수의 표절 논란과 출판사의 석연찮은 대응에 독자들은 배신감을 느꼈다. 땅바닥까지 권위가 떨어진 한국 문학에 출구는 있는 걸까. 표절 쓰나미에 출판계가 신음 중이다.

페미니즘 베스트셀러

표절에 허덕이던 올해 서점가에서 의외의 인기 키워드는 페미니즘이었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여성주의 운동과 함께 언급되곤 한, 이제는 거의 사어가 아닌가 싶은 이 단어가 21세기 들어 다시금 주목받은 것이다. 2010년 ‘가르치려는 남자’를 뜻하는 ‘맨스플레인’이란 유행어를 만들며 미국에서 화제가 된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가 국내에 출간돼 1만 부 넘게 팔렸고, 커리어 우먼들의 가정 회귀 현상을 다룬 에밀리 맷차의 <하우스와이프 2.0>,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 등 페미니즘 관련 책이 연이어 나왔다. 올여름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발표한 상반기 인문학 서적 랭킹에서도 상위 50위권에 페미니즘 관련 서적이 열 권. 방송인과 개그맨, 작가 등 유명 인사들의 여성 혐오 발언과 함께 ‘여혐’ 논란이 일면서 때아닌 여성주의 바람이 서점가에 거세게 분 한 해였다.

시집의 르네상스

3년 전 무심히 잊혀 지나간 시 한 구절이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박준 작가가 2012년 쓴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가 tvN의 프로그램 <비밀 독서단>에 소개되면서 방송 직후 이틀 만에 3,000부나 팔린 것이다. 제목부터 독특한 표현만큼 다소 기이한 서정을 노래하는 박준 시인은 올해로 고작 서른두 살. 시집을 출판한 문학동네는 갑작스러운 수요에 휴일에도 6,000부나 인쇄를 돌렸다고 한다. 2012년 최연소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황인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 역시 기대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출간 3일 만에 1,500부가 모두 팔려나갔으며, 현재 5쇄까지 찍은 상태다. 1쇄 넘기기도 힘들다는 근래 출판계 아픈 소리를 고려하면 이례적인 흥행이다.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시 구절이 아닌, 일상과 내면을 섬세하게 도려내 써낸 듯한 젊은 시인들의 생생한 글귀. 서점가에 분 의외의 신선한 바람이다.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

실수인가, 의도인가. 오역인가, 왜곡인가. 출판계에 심심찮게 불곤 하는 번역 논란이 또 한 번 소란을 일으켰다. 한국경제신문에서 출간한 미국의 경제학 자 앵거스 디턴의 책 <위대한 탈출>이 본래 내용과는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방향으로 번역되었다. <위대한 탈출>은 경제 불평등을 미국의 상황을 바탕으로 성장과 균형 측면에서 서술한 책인데 국내 번역본은 불평등은 경제성장을 돕고, 필수적인 것이라 해석했기 때문이다. 물론 실수이거나 단순한 오역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위대한 탈출>이 출간된 건 지난해 9월. 당시 서점에선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재해석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뜨거웠는데, 이 ‘피케티 붐’을 잠재우기 위한 도구로 디턴의 책이 악용됐다는 거다. 결국 <위대한 탈출>의 오역 사실은 디턴 교수가 재직 중인 프린스턴대학에까지 알려졌고, 프린스턴대학은 출판사에 책 전량 폐기와 재번역을 요구했다. 서로 다른 두 언어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릴 수는 있지만, 일부러 길을 틀어버려선 안 되는 일이다.

★Vogue Awards Book★

기막힌 책 아이유의 노래 ‘제제’가 소아성애 논란에 휩싸이면서 모티브가 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가 다시 팔려나가고 있다. 출간된 지 40년도 지난 책이 가요계 난리에 다시 베스트셀러가 된 셈. 동녁 출판사는 판매 이벤트도 열고 있다. 그저 출판사만 신났다.
아쉬운 거짓말 핀란드 태생의 귀염둥이 월드 <무민> 작가의 삶이 거짓으로 치장한 채 소개돼 논란이 일었다. 토베 얀손 작가는 평생 레즈비언 파트너와 삶을 같이했는데 이를 국내 출판사가 작가 소개란에 평생 혼자 살다 죽었다고 쓴 것. 동성애자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기가 겁이라도 났나? 출판 자격을 고려해야 할 일이다.
올해의 초딩 한 초등학생이 쓴 동시집 <솔로 강아지>가 폐륜 논란에 휩싸이며 전량 폐기 처분됐다. ‘학원 가기 싫은 날’의 기분을 “엄마를 씹어 먹어/ 삶아 먹고 구워 먹어/ 눈깔을 파먹어”라 표현했는데 충격적이라며 출판사에 비난이 쇄도한 것. 폭력적이긴 하나 고작 초등학생의 창작물인데 어디까지 제동을 걸어야 하나. 아무튼 대단한 열두 살이다.
최고의 제목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요즘 같은 세상엔 거의 모두가 딱 이런 마음일 것이다. 제목 덕분인지 소설은 출간 넉 달 만에 4쇄를 찍고 대번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