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계에 펼쳐진 인테리어 스타일

패션이 우리를 자기 집으로 초대했다. 웅장한 브로케이드로 마감한 응접실, 새틴과 레이스로 치장한 침실, 그리고 향수를 자극하는 꽃무늬 장식 부엌까지. 패션계에 펼쳐진 인테리어 스타일.

“그날 저녁, 돌이 깔린 반지하층의 식당은 베르메르가 인정할 만한 장면처럼 보였다. 17세기 네덜란드 쪽매붙임 찬장은 멋진 배경이 됐는데, 찬장 맨 위엔 블루와 화이트의 델프트 도자기가 장식돼 있었다. 등이 높은 태피스트리 의자는 17세기 접이식 테이블 둘레에 놓여 있고 테이블에는 골풀 식탁 매트에 중국에서 수입한 도자기가 세팅돼 있었다. 우리가 새우를 넣은 수프, 오를로프 송아지 요리, 와인에 졸인 배 요리를 즐기는 동안 은주전자는 촛불을 반사했고, 물감을 칠한 나무새와 푸른 녹을 입힌 토분에 심은 밝은 색상의 앵초는 테이블 풍경을 완벽하게 만들었다.”

18세기 즈음 네덜란드가 배경인 소설의 한 장면으로 읽히는 이 문단은 지난해 6월 미국 <보그>에 실린 피터 코팽 인터뷰의 일부다. 오스카 드 라 렌타의 새 주인이 된 코팽이 직접 꾸민 노르망디 별장에 대한 묘사다. 패션 디자이너 인터뷰였지만, 정작 기사는 그가 진두지휘한 인테리어 설명에 다 집중했다. 별장은 물론 파리에 있던 타운하우스, 그리고 막 이사를 끝낸 웨스트빌리지의 아파트까지. 말하자면 앤티크와 인테리어 애호가를 직접 만난 듯 착각을 선사하는 심도 있는 인터뷰였다. 심지어 드 라 렌타와 대면한 순간에도 코팽은 패션 이야기 대신 제임스 1세 시대 초상화와 조지 왕조 시대 의자에 대해 토론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에피소드까지.

 

이제 패션 디자이너는 단순히 그가 만든 드레스와 코트로만 정의할 수 없다. 그 인물이 어떤 취향을 지녔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다. 한때 디자이너의 예술 사랑(마크 제이콥스의 현대 예술 컬렉션, 미우치아 프라다의 재단을 통한 후원 등등)이 주목을 끌었다면, 이제 인테리어 스타일이 디자이너의 취향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이태리 전통 수공예를 현대적으로 접목하는 구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또 어떤가. 로마 외곽에 자리한 ‘치비타 디 바뇨레조’라는 마을의 폐허가 된 수도원을 재건해 자신의 취향대로 꾸몄다. 모더니스트 라프 시몬스는? 앤트워프에 미드 센추리 모던 가구로 가득한(조지 나카시마와 이태리 세라믹 아티스트의 작품) 현대적인 저택을 소유하고 있다. 미래적 상상력으로 충만한 니콜라 제스키에르는? 80년대 미래주의자인 멤피스 가구 틈에서 패션의 미래를 고민한다. 다시 말해 디자이너들의 집이 그들이 선보이는 런웨이와 직결되는 시대.

이런 경향을 가장 잘 보여준 건 지난 2월 런던에서 가을 컬렉션을 선보인 어덤 모랄리오글루다. 그는 캣워크에 모델하우스처럼 다양한 인테리어를 갖춘 무대를 준비했다. 50년대 응접실을 컨셉으로 여덟 개의 공간을 각기 다르게 꾸민 것이다. 거기엔 빈티지풍 벨벳 소파, 독특한 도자기 램프, 타자기가 놓인 책상, 낡은 잡지, 레코드 플레이어와 이국적 식물을 심은 화분, 스칸디나비안 커피 테이블 등이 진열돼 있었다. 자신의 옷을 입는 숙녀에게 어울리는 공간을 디자이너가 미리 제안한 것이다. 덕분에 할머니 옷장에서 꺼낸 듯한 샤넬풍 트위드 수트, 브로케이드와 기퓌르 레이스의 미니 드레스가 이 공간에서 더 빛났음은 물론이다.

특정 인테리어 공간에서 더 빛을 발한 컬렉션이야말로 패션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난가을엔 소파, 혹은 쿠션 커버에나 등장할 듯한 브로케이드, 다마스크를 활용하거나 오래된 저택의 벽지를 닮은 프린트를 그대로 옮긴 듯한 옷이 다양하게 등장했다. 예를 들어 토리 버치는 모로코 카펫에서 힌트를 얻은 프린트로 히피풍 드레스를 선보였고, 매리 카트란주는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한 인테리어에서 가져온 프린트를 컬렉션 곳곳에 숨겨놓았다. 드리스 반 노튼과 스텔라 맥카트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탐낼 만한 브로케이드를 맘껏 활용했다. 심지어 런던의 젊은 엔진인 마르케스 알메이다마저 다마스크 소재로 빅토리안 저택의 응접실에 어울릴 법한 드레스를 고안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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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컬렉션이 고전적 응접실에 대한 오마주였다면, 이번 봄기운은 침실의 문을 활짝 여는 데 성공했다. 올봄 가장 강력한 트렌드로 떠오른 ‘란제리 드레싱’은 침실 인테리어를 싹 바꾸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킬 만하다. 레이스 슬리퍼와 섬세한 새틴 캐미솔 톱, 은은한 광택의 파자마 점프수트로 구성된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보면 시폰 커튼이 휘날리는 캐노피 침대가 떠오른다. 섬세한 레이스와 깃털이 휘날리는 그물 망사 톱, 은은한 패턴의 새틴 가운을 선보인 지방시는 또 어떤가. 농염한 검정 새틴으로 침실을 도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또 모던한 실루엣의 슬립 드레스와 파자마 팬츠를 입은 캘빈 클라인 모델은 시멘트 바닥과 커다란 통 유리창이 자리한 미니멀한 침실에서 아침을 맞는 기분.

 

새로운 봄과 인테리어의 상관관계에서 가장 독보적인 컬렉션은 언제 어디서든 가장 이슈인 베트멍이다. 가장 독특한 시각으로 인테리어 요소를 패션에 도입했으니까. “앞치마와 드레스로 제작한 장미 무늬 플라스틱 식탁보는 우리 할머니께 바치는 거예요.” 뎀나 바잘리아는 80년대에 엄마가 입었을 법한 PVC 코팅 앞치마와 식탁을 보호하기 위해 깔곤 하던 플라스틱 식탁보를 드레스로 둔갑시켰다. 지난가을 전 세계 멋쟁이들을 열광시킨 꽃무늬 그런지 드레스처럼 2016년 봄 베트멍 꽃무늬 앞치마 역시 또 한 번 패션 열풍을 예고한다. 그렇게 된다면, 이제 응접실 패션과 침실 패션에 이어 부엌 패션이 주목받는 시대가 열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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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디자이너라면 그 옷을 입은 사람을 어디론가 데려갈 수 있어야 한다. 루이 비통의 미래적인 가죽 재킷은 SF영화 속 세트장(실제로 쇼가 시작되기 전 게임 속 거실 영상이 재생됐다)으로 우리를 초대했다. 또 랄프 로렌의 시원한 스트라이프 드레스는 햄프턴의 해변 별장을 연상시킨다. 한때 패션 디자이너들은 피리 부는 사나이처럼 우리를 이끌고 클럽, 갤러리, 혹은 대자연으로 떠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소란스러운 바깥세상과 연결되는 대문을 걸어 잠근 채, 집 안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덕분에 우리는 편안한 응접실 소파나 은밀한 침실에서 이 패션을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