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와 최현석의 맛있는 인생 이야기

사진가 조선희와 인생 스타 셰프 최현석이 넉 달간 요리한 맛있는 인생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온 두 사람이 추억 속의 음식을 통해 들려주는 삶의 레시피. 〈카메라와 앞치마〉는 위로가 필요한 날,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따뜻한 음식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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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셰프에 대한 첫인상? 좀 재수 없었지.” “으하하하하. 저희 레스토랑으로 오세요. 맛있는 거 해드릴게요.” “너무 영혼 없이 말하는 거 아니유? 그냥 다 오래.” “하하. 사람들이 왜 저보고 말을 잘한다고 하는지 아세요? 제가 하는 말엔 힘이 있거든요. 한번 뱉은 말은 다 지킵니다.” 오랜만에 만난 두 사람은 모처럼 매운 수다를 쏟아냈다. 투박하고 거친 입담의 조선희가 툭툭 얘깃거리를 던지면 최현석은 칼날처럼 솔직한 답변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공통점이라고는 전혀 없을 것 같은 두 사람이 함께 책을 내기로 마음먹은 건 지난 6월이었다. 인물 사진을 찍는 일만큼이나 사람들과 먹고 마시며 떠들기 좋아하는 조선희는 우연히 편집자와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 음식을 주제로 한 책에 관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마침 최현석 셰프와의 짧은 인연도 있었다. 지인의 초대를 받은 한 주얼리 브랜드의 만찬 자리였다. 당시 최현석은 미슐랭 2스타가 독창적인 요리를 선보인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행사장을 찾았다. “TV를 잘 보지 않아 누군지 몰랐어요. 유명한 셰프라는 소개를 받고 같은 테이블에 앉았는데, 저보단 맞은편의 고소영 씨에게만 관심을 집중하더군요. 별로라고 생각했죠. 하하. 물론 그건 제 오해였어요.” 성격 급한 조선희는 책 얘기가 나오자마자 직접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로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기에 오히려 더 흥미로운 만남이 될 거라 생각한 것이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음에도 최현석은 단박에 제안을 승낙했다.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워낙 유명한 분이기도 하지만, 여느 사진가들과 느낌이 다르잖아요. 전 특이하고 남다른 걸 좋아하니까. 한창 스케줄이 많을 때였지만 무리해서라도 하고 싶을 만큼 욕심이 났어요.”

그 후로 두 사람은 매주 일요일마다 만나 온종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살림집을 겸한 조선희의 스튜디오가 만남의 장소였다. 아침이면 최현석은 싱싱한 재료를 잔뜩 싸 들고 조선희의 주방을 찾아와 앞치마를 두른 채 요리를 시작했고, 조선희는 이를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촬영이 끝나면 그 음식에 얽힌 각자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깨끗이 접시를 비웠다. 가끔은 와인도 한잔 곁들이면서. “우리 집 주방이 그리 넓진 않아 처음엔 좀 부끄러웠어요. 우리나라 최고의 셰프가 온다는데 너무 볼품없어 보일까 봐.” ‘허셰프’라는 별명을 탄생시킨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남의 집 냉장고 속 묵은 재료로 즉석에서 고급스러운 성찬을 차려내온 이 특급 요리사는 단 몇 분 만에 장미 젤리를 입힌 굴이며 초콜릿을 올린 푸아그라 같은 이름만으로도 멋진 요리를 요술 부리듯 척척 만들어냈다. “주방이 정말 잘되어 있던데요? 제가 요리를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서 정식대로 복잡하게 하는 건 잘 못해요. 그래서 빠른 거죠.” 허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한 말투로 최현석이 말했다. 이미 몇 권의 요리책을 낸 적이 있었지만 이런 식의 작업은 그도 처음이었다.

첫 번째 대화 주제는 면 요리였다. 그건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추억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솔직해지려면 아픈 얘기부터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야 빨리 친해지고 가까워지니까.” 스스로를 ‘왜관 촌년’이라 일컫는 조선희는 술을 한잔 걸친 날이면 유난히 면을 좋아하던 선머슴 같은 셋째 딸을 위해 간짜장을 사주던 아버지를 기억했다. 호텔 요리사였던 최현석의 아버지는 어린 새처럼 쉴 새 없이 입을 벌리는 자식들을 위해 종종 집에서도 목 늘어난 러닝셔츠 차림으로 프라이팬을 쥐었다. 유난히 명란젓과 면을 좋아하던 아버지를 떠올리며 최현석은 차가운 명란 크림 파스타를 만들었다. 1,000가지가 넘는 기발한 레시피를 개발하며 ‘크레이지 셰프’로 불려온 최현석은 서로 다른 추억의 맛을 하나의 요리로 재현해냈다. 조선희는 잔뜩 멋을 부린 화려한 플레이팅을 보여주는 대신 한 그릇 음식에 담긴 사람의 마음을 찍었다.

한 살 터울인 둘은 궁합이 꽤 잘 맞았다.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는 걸 알아채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비롯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서양 음식 중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게 스파게티인데 음식 얘기할 때도 통하는 게 많았어요.” 최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선희의 말을 이었다. “진짜 닮은 모습은 일할 때죠. 둘 다 비전공자이고 유학파도 아니다 보니 학습에 의한 것과는 좀 다른 결과물을 내는 것 같아요. 일에 대한 생각이나 태도도 비슷하고요. 그리고 성격도! 우리의 장점은 솔직하다는 건데, 단점 역시 지나치게 솔직하다는 거예요. 하하.” 책을 만드는 동안 그는 남들 앞에선 좀처럼 드러내지 않던 자신의 속내와 가슴 아픈 시간을 고스란히 털어놓았다. “푼수처럼 감춰둔 얘길 많이 꺼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약간 창피하기도 해요.” 조선희에게도 힐링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와 마주 앉아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한 식구가 되는 일이다. 가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어느새 둘은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담백한 한 권의 책이 완성됐다. <카메라와 앞치마>는 음식을 매개로 친구가 된 이들의 인생 이야기다. 열일곱 가지 메뉴를 담은 이 책의 부제는 ‘타인과 친구가 되는 삶의 레시피 17’이다. 일반적인 레시피 북과 달리 주인공은 음식이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조선희와 최현석, 이들의 지극히 사적인 역사다.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불안과 크고 작은 실수, 일에 대한 열정,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 등을 맛있는 요리로 풀어낸 <카메라와 앞치마>는 위로가 필요한 날, 마음의 허기를 달래주는 따뜻한 음식 같다. 두 사람의 진실된 이야기는 누군가의 차가워진 속을 덥히고 든든하게 채워주며 살아갈 힘을 준다. 진심을 담아 정성껏 요리한 책이 마침내 식탁 위에 올랐으니 이젠 맛볼 차례다. 단, 읽는 동안 몹시 배가 고파질 수 있으니 주의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