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아이템

첼시와 디커 부츠의 영역 확장

2017.07.13

by VOGUE

    첼시와 디커 부츠의 영역 확장

    클래식 슈즈의 유행은 극단적으로 낮아진 플랫 슈즈와 또 다른 멋을 풍긴다. 그 가운데 싸이하이 부츠와 스노 부츠 틈에서 주춤하던 첼시와 디커 부츠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CHELSEA STEP (위부터)체인 장식 블랙 부츠는 카사데이(Casadei at Koon), 클래식한 브라운 부츠는 까르미나(Carmina at Unipair), 스터드 장식의 블랙 부츠는 처치스(Church’s at Boon the Shop), 반짝이는 스팽글 부츠는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옥스퍼드 슈즈를 닮은 진한 브라운 부츠는 처치스(at Koon).

    CHELSEA STEP
    (위부터)체인 장식 블랙 부츠는 카사데이(Casadei at Koon), 클래식한 브라운 부츠는 까르미나(Carmina at Unipair), 스터드 장식의 블랙 부츠는 처치스(Church’s at Boon the Shop), 반짝이는 스팽글 부츠는 럭키슈에뜨(Lucky Chouette), 옥스퍼드 슈즈를 닮은 진한 브라운 부츠는 처치스(at Koon).

    10여 년 넘도록 하이힐을 즐겨온 나는 결국 무지외반증과 종자골염, 부종 끝에 ‘족저통’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그리하여 하이힐과 눈물의 작별을 고해야 했다. 아찔한 고공 행진을 즐기던 내가 지상에 안착한 지 1년째 (정확히 1년 3개월 동안 단 한 번도 힐을 신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재활 치료와 동시에 찾아온 플랫 슈즈의 대유행이었다(동시대 유행을 즐길 수밖에 없는 운명). 하지만 1년을 하이톱과 스니커즈로 연명하자 그 유행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죄다 하이힐에 맞춰 조율된 길쭉길쭉한 팬츠를 포기하니 옷차림도 평범해지기 일쑤. 그러던 중 눈에 쏙 들어온 슈즈가 있었으니 바로 첼시와 디커 부츠였다.

    크리스찬 루부탱이나 피에르 아르디처럼 건축적이고 조형적인 구두를 선보이는 슈즈 메이커도 최신 컬렉션에 낮은 굽의 첼시 부츠를 추가했다. 생로랑, 루이 비통, 아크네 스튜디오 등에도 낮은 첼시가 잔뜩 등장했고, 서울 거리에도 가볍고 클래식하며 실용적인 첼시 부츠가 자주 포착되고 있다. 아시다시피 첼시 부츠는 영국 빅토리아 시대에 등장한 발목까지 오는 승마용 슈즈를 말한다. 발목 옆 라인에 넓은 고무 밴드를 넣은 게 특징. 슈즈 편집매장 ‘유니페어’에서는 스페인 브랜드 까르미나(Carmina)의 여성용 첼시가 지금 인기다. 영국, 이태리 브랜드보다 품질 대비 가격도 합리적이라고 강재영 대표는 전한다. “유난히 여성 고객들이 많습니다. 튼튼하고 오래 걸어도 편하다고 그러더군요. 역시 키가 크고 스타일리시한 여성들이 많이 찾죠. 그래서 큰 사이즈가 잘 팔려요.” 생로랑 매장에도 힐보다 2~3cm 굽의 첼시가 더 인기다. “첼시 부츠는 2013년 에디 슬리먼의 생로랑 시절부터 포함된 슈즈입니다. 유행을 타지 않아 고객들이 늘 찾는 아이템이죠. 하지만 블랙 컬러뿐인 데다 디자인이 한두 개가 전부라 인기 사이즈는 늘 부족합니다.”

    첼시 부츠를 늘 스타일링에 곁들인 럭키슈에뜨는 이번 시즌 반짝이는 소재로 화려함을 더했다. “룩의 완성은 슈즈잖아요? 쿨 & 클래식 룩엔 첼시가 ‘딱’입니다.” 디자이너 김재현 역시 플랫 버전과 힐 버전의 첼시 부츠를 신은 모습이 청담동에서 자주 목격된다. “크롭트 팬츠나 가죽 팬츠에 매치하면 중성적이면서도 멋지죠. 또 스커트와도 잘 어울려요. 한 켤레쯤은 꼭 갖고 있어야 하는 ‘머스트 해브’ 아이템입니다.”

    COWBOY INSPIRED 태슬 장식의 브라운 스웨이드 부츠와 블랙 프린지 장식 부츠는 생로랑(Saint Laurent), 블랙 스웨이드 부츠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스티치 장식의 브라운 스웨이드 부츠는 쟈딕앤볼테르(Zadig&Voltaire).

    COWBOY INSPIRED
    태슬 장식의 브라운 스웨이드 부츠와 블랙 프린지 장식 부츠는 생로랑(Saint Laurent), 블랙 스웨이드 부츠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스티치 장식의 브라운 스웨이드 부츠는 쟈딕앤볼테르(Zadig&Voltaire).

    한편 몇 년 전 미니멀리즘과 놈코어 룩이 패션 마이너리그에 머물던 플랫 슈즈와 스니커즈를 끄집어냈다면, 지난 시즌 70년대 트렌드는 편안한 굽의 디커 유행을 부추겼다. 가죽의 10개 단위를 의미하는 디커는 웨스턴 부츠를 짧게 변형한 슈즈다. 디커가 등장한건 오래전이지만 스트리트 믹스매치 룩이 대세인 요즘, 패션 거리에서 재빨리 전파되는 중이다. 사실 디커는 슬라우치 부츠, 웨지 스니커즈, 노엘 부츠를 잇는 이자벨 마랑의 히트작이다. 더구나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 알렉사 청, 케이트 보스워스, 미란다 커 등은 오래전부터 마랑의 디커를 신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찔한 데님 쇼츠나 나풀거리는 보헤미안 원피스에 발목까지 오는 디커 부츠로 꾸미지 않은 듯 멋을 낸 여자들의 스트리트룩은 패션 화보의 모델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높은 건 충분히 즐겼잖아요. 현실감과 실용성이 대세라는 게 신발에서도 느껴집니다”라고 마랑 매장의 스태프들은 전한다.

    생로랑 컬렉션에도 디커는 빠지지 않는다. “디커 부츠는 시즌과 상관없이 전개되는 ‘퍼머넌트’ 컬렉션, 그리고 매 시즌 트렌드에 맞춰 약간 변형을 주는 ‘시즈널’ 제품이 있습니다. 이번 시즌은 디테일 변화가 특징이에요.” 생로랑이 소재나 디테일로 변화를 줬다면 이자벨 마랑과 쟈딕앤볼테르 등은 클래식에 충실하다. 엷은 브라운부터 카키, 그레이, 블랙 등을 기본으로, 장식을 절제한 차분한 ‘어스 톤’의 컬러가 특징(청담동 이자벨 마랑 매장에는 블랙 컬러만 진열돼 있다). 3~6cm의 두툼하고 안정된 쿠반 힐, 뾰족한 앞코에 비해 넉넉한 볼 사이즈는 얇은 밑창과 힐 높이에 무척 예민한 내가 신기에도 충분히 편했다. 무엇보다 입구가 좁고 슬림한 첼시보다(착용이 수월하도록 발목 뒷부분을 작은 스트랩으로 고정했다) 신고 벗기가 편하다는 사실. 게다가 종아리가 날씬해 보였다.

    이렇듯 첼시와 디커가 사시사철 우리 여자들을 유혹하고 있다(특히 나처럼 하이힐로 인해 피해를 입은 여자들에겐 더더욱). 다소 남성적이긴 하지만, 그런 이미지가 스타일링에 반전과 재미를 선사하는 것도 첼시와 디커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특히 앞코가 날렵하게 빠진 루이 비통과 스티치 장식을 넣은 투박한 발렌시아가의 첼시는 미디 길이 스커트나 둥근 어깨의 코트와도 아주 잘 어울린다. 디커는 이자벨 마랑, 아크네 스튜디오, 끌로에 등에서 스타일링 아이디어를 더 얻을 수 있다. 이제 ‘족저통’으로 인해 감수해야 했던 스타일의 비참한 나날은 첼시와 디커 덕분에 잊었다. 이제 나에게 새로운 즐거움이 생겼다. 생로랑의 첼시나 이자벨 마랑의 디커를 신고 하이힐을 뻥 차버리는 것!

      에디터
      손은영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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