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임민욱의 <만일의 약속> 전

임민욱은 세월의 흙에 덮여 잊힌 슬픈 역사의 무덤 앞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삼성미술관 플라토에서 열리는 〈만일의 약속〉전은 분단 이후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이념적 갈등과 그로 인한 비극에 대한 미술가의 깊은 애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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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 작가라고 불리는데 정작 미디어 아트란 게뭘까? 이 시대에 현상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며 제게 미디어가 직감적으로 다가왔던 순간을 짚어본 적이 있어요. 박정희 대통령 장례식 생중계 장면과 백남준 작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 그리고 1983년 이산가족 찾기 방송이었어요.” 임민욱 작가의 <만일의 약속>전이 열리는 삼성미술관 플라토 앞에선 울 준비를 해야 한다. 전시의 중추 역할을 하는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을 볼 때면 울컥하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든 탓이다. 작가는 서둘러 세월의 흙을 덮어버린 채 잊고 살았던 역사의 무덤 앞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그곳엔 이름 없는 망자들의 생생한 얼굴과 과거로부터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오늘을 사는 그 가족들의 한숨 섞인 사연이 있다.

2014년 광주 비엔날레에서 임민욱은 한국전쟁 당시, 국가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보도연맹 사건) 희생자들의 유골이 담긴 컨테이너를 유가족들과 함께 통째로 옮겨왔다. 수만 명 이상이 살해당했지만 아직까지도 진상 규명이 이뤄지지 않아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컨테이너 유골함이었다. “그야말로 그악스러운 작업이었죠. 말로는 표현할 수조차 없는 힘든 주제를 재현이고 뭐고 없이 정면에서 그냥 보여준 거니까요. 애도가 불가능한 사회에서 미술이란 무엇인지 묻고 싶었습니다.” 당시 그는 학살 생존자 할아버지의 나무 지팡이에서 중국 신화집 <산해경>에 나오는 가슴에 구멍이 뚫린 사람들이 사는 ‘관흉국’을 떠올렸다. 전설의 그 나라에선 신분이 높은 사람을 막대에 꿰어 어깨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했다. ‘가슴의 구멍’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슬픔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이는 이산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수십 년이 흘렀음에도 해결되지 않은 갈등과 충돌을 목격한 작가는 이 비극적인 역사의 연원을 파헤치기 위해 직접 발로 뛰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1983년 KBS가 주관한 이산가족 찾기 방송 현장을 모티브로 한 2채널 영상 작업 ‘만일 (萬一)의 약속’의 마주 보는 두 화면에선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얼굴과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분할 화면 속에 갇힌 기막히게 닮은 얼굴들은 반가움과 의혹이 뒤섞인 눈빛으로 핏줄의 진위를 확인하려 애쓴다. 자세히 보면 한쪽은 하얀 스크린이고, 반대쪽은 검정 벽이다. 하나는 어둠 속으로 투사되고 다른 하나는 반사되는 이미지인 셈이다. 미묘하게 어긋나며 돌고 도는 순환의 관계이기도 하다. “막 의심하죠? 끝까지 흉터나 점 보여달라고 하고. 영화 <국제시장> 같은 거죠. 1·4 후퇴 때 헤어진 분들 중엔 자기 이름도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어릴 때 월남해 형제인데도 서로 경상도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를 쓰기도 하고요.”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과 비교하면 아주 먼 옛날 얘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가슴 아픈 현실이다.

“참 이상한 것 같아요. 시대가 변했는데도 여태 침묵으로 지내는 가족이 많거든요. 저번에 아트선재센터에서 했던 ‘비(碑)300-워터마크를 찾아서’라는 부제를 단 전시도 그런 케이스예요. 인민군이 300명을 학살했다는 팻말을 보고 기념비에 이름이라도 새겨주고싶어 철원 DMZ에서 작업을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그게 아닌 거예요. 처형당한 게 아니라 북에 잡혀갔어요. 아버지가 실종된 한 자매는 연좌제에 걸려 아들의 취직에 문제가 생길까 봐 이산가족 찾기 신청도 안 했대요. 하지만 말을 못한다고 해서 아버지의 존재가 어디 가겠어요? 그리움이 절절하던걸요.” 실종, 이산, 죽음을 비롯한 사라짐에 대한 얘기는 오래전부터 작가가 관심을 쏟아온 주제다.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장소에 대한 애도를 담은 ‘포터블 키퍼’ 시리즈, 냉전 이데올로기에 휩싸여 희생당한 고문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불의 절벽’ 시리즈 등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공동체 바깥으로 지워진 존재들을 환기시키는 일련의 작품을 플라토 전시장 곳곳에서도 볼 수 있다.

이산가족 찾기 방송을 보고 난 후에 맞닥뜨리게 되는 ‘허공에의 질주’는 가상의 방송국이다. 숲처럼 푸른 공간 속에 늘어선 의인화된 영상 장비는 뭔가를 한창 촬영 중인 듯한 모습이다. 죽은 나무가 능동적인 지미집으로 살아나기도 하고, 검은 깃털로 속을 채운 반사판은 블랙홀처럼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신기루와도 같은 이 신비로운 풍경은 묘한 슬픔을 자아낸다. 그리고 카메라맨 앞 허공에선 분장실 거울처럼 알전구가 박힌 주거용 컨테이너가 위태롭게 매달린 채 큐 사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작가는 현장 사무소나 임시 주택으로 사용되는 이런 주거 컨테이너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한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규격화된 선박 컨테이너와는 크기도 재질도 다르다. 이는 지난 광주 비엔날레에서 공개한 납골당 컨테이너와 같은 형태다. “유가족들이 보상 문제로 아귀다툼을 하는 와중에 누군가는 해골을 들어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그 모든 게 너무도 극적이었어요. 일종의 절망적인 상황이 표현된 것이기도 해요.”

전시장 입구엔 자본주의의 상징인 규격화된 선박 컨테이너가 설치돼 있다. ‘시민의 문’이라 명명된 이 붉은 컨테이너 틀은 플라토의 글라스 파빌리온에 상설 전시 중인 로댕의 ‘칼레의 시민’과 ‘지옥의 문’ 사이에 위치한다. 우연의 일치지만 컨테이너엔 ‘GOLD’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스피커가 내장된 이 황금 문에선 교통방송 라디오처럼 유행가가 흘러나온다. 같은 공간에서 지옥을 경험 중인 로댕 조각 작품의 고통스러운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한가로운 노랫가락은 멈출 줄을 모른다. 작가가 들려준 많은 사연 중엔 보신탕용 개 사육지로 변한 민간인 학살 발굴지에 관한 얘기도 있었다. “파헤친 현장 바닥에 향을 꽃아주고 왔는데 2~3개월 후에 다시 갔더니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싹 덮였어요. 그 위에 다시 파 심고, 배추 심고. 아마 사진을 보면 더 기가 막힐 거예요.”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만일의 약속’에서 만일은 30년이 넘는 오랜 시간, 혹은 기약할 수 없는 만남에 대한 간절한 바람을 뜻한다. 꼭 지키고 싶은 어떤 것에 관한 의지일 수도 있다. 사라져가고 잊혀가는 연약한 존재들을 향한 작가의 약속이기도 하다. 아무도 찾지 않던 무덤에 비로소 애도의 꽃 한 송이가 놓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