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무대에서 만나는 손열음과 신지아

공기를 두드리는 소리와 울리는 소리.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가 한 무대에 선다. 건반과 현이 어우러질 무대를 앞두고 두 연주자를 만났다.

신지아가 입은 검정 드레스는 에스카다(Escada), 로즈 골드 소재의 뱅글과 링은 모두 제이에스티나(J.Estina), 하이힐은 본인 소장품. 손열음이 입은 블랙 앤 화이트 드레스는 퍼블리카 아틀리에(Publicka Atelier), 진주 귀고리와 반지는 제이에스티나, 에나멜 소재 구두는 에스카다.

신지아가 입은 검정 드레스는 에스카다(Escada), 로즈 골드 소재의 뱅글과 링은 모두 제이에스티나(J.Estina), 하이힐은 본인 소장품. 손열음이 입은 블랙 앤 화이트 드레스는 퍼블리카 아틀리에(Publicka Atelier), 진주 귀고리와 반지는 제이에스티나, 에나멜 소재 구두는 에스카다.

촬영을 위해 모인 스튜디오.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는 홍콩에서 오는 길이었고,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서울 시내 호텔에 막 체크인을 마친 상태였다. 손열음과 신지아는 올 한 해 그 누구보다 바쁘게 움직인 클래식 스타일 것이다. 손열음은 7월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그간 염원이라 얘기한 하프시코드 연주를 마쳤고, 12월 초엔 자신을 세상에 알린 곡과도 같은 차이콥스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KBS 교향악단과 함께 무대에 올렸다. 심지어 봄엔 모 일간지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 에세이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를 펴냈다. 리스트의 광시곡에 버금가는 템포다. 신지아 역시 만만치 않다. 지난 3월 3년 만의 앨범 <칸토 안티고>를 발매한 그녀는 여름부턴 KBS의 클래식 방송 <더 콘서트>의 MC를 맡았으며, 10월부턴 홍콩, 베이징, 상하이 등을 돌며 첼리스트 정명화, 그리고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공연을 했다. 신년을 맞이하는 12월에도 둘은 공연 준비로 여념이 없다. 먼저 12월 24일에는 KBS <더 콘서트> 특집 녹화를 위해 둘이 합을 맞출 예정이며, 손열음은 3년 만의 독주회 리사이틀을, 신지아는 새해맞이 공연을 할 계획이다. “지난해는 특히 9월부터 3개월이 정말 바빴던 것 같아요.(손열음)” “열음 언니도 저도 너무 바빠서 아직 <더 콘서트> 레퍼토리를 짜지 못했어요.(신지아)” 우리에게 들려주는 음악의 선율은 우아하기 그지없지만 연주자들의 노동은 꽤나 험난하다.

손열음과 신지아는 학교 선후배 관계다. 둘 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2년 선배인 손열음은 독일 하노버국립음악대학에서, 신지아는 국내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손열음은 다섯 살, 신지아는 세 살, 둘 다 매우 어린 나이에 악기를 시작했고, 신동으로 불린 케이스다. 그리고 별다른 부침 없이 세계적인 연주가가 되었다. 손열음은 2009년 반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 2위에 이어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도 2위에 올랐고, 신지아는 롱 티보, 퀸 엘리자베스 등의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근래 아시아 연주자들이 클래식 무대에서 강세인 점을 감안해도 눈에 띄는 성적이었다. “저는 좀 탄탄대로였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1년에 한 번씩 콩쿠르 나갔고, 최선을 다했고, 노력한 만큼 좋은 성적이 나왔죠.(신지아)” 하지만 이들의 연주가 무미건조한 탄탄대로를 걸어온 건 아니다. 손열음은 매번 의외의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궁금케 하고, 신지아는 클래식 밖으로도 대범하게 나와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한다. 그러니까 손열음의 레퍼토리엔 쇼팽이나 리스트, 베토벤 외에도 스트라빈스키, 니콜라이 카푸스틴, 샤를 발랑탱 알캉 같은 게 있다는 얘기다. 그녀는 안전하게 빤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손열음은 한때 재즈 피아니스트 곽윤찬을 찾아가 재즈 주법을 배우기도 했다. “그냥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발굴하면서, 탐험하는 느낌으로 연주하는 데 재미를 느끼는 거 같아요. 전형적인 곡, 인기 있는 곡도 물론 안 할 수 없지만, 많이 안 알려졌더라도 제가 좋아하고, 좋은 곡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손열음)” 신지아 역시 자신의 재미를 가장 큰 기준으로 바이올린의 현을 켠다. “새로운 형태의 협업을 하다 보면 느껴지는 게 많아요. 물론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 작업이어야겠죠.(신지아)” 실력을 갖춘 자만이 할 수 있는 대범한 선택이다.

검정 드레스는 에스카다(Escada).

검정 드레스는 에스카다(Escada).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기 전까지 손열음은 사실 아티스트라기보다 다소 공학도 같은 모습이다. 말도 군더더기 없이 명확하고, 목소리도 당당하며, 행동거지도 깔끔하다. 그리고 실제로 기계에도 관심이 많은 그녀는 자신의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기계에 관심이 있는 건 맞지만 홈페이지는 그냥 어쩌다 만든 거예요.(웃음) 제작 업체를 알아봤더니 다 너무 비싸더라고요.” 심지어 그녀의 책 <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에는 피아노를 매우 기계적인 동시에 구조적으로 서술한 대목이 있다. 손열음은 피아노 피치가 낮게는 440hz부터 높게는 455hz까지 나뉜다는 걸 설명한 뒤 최근 추세가 442hz로 맞춰지는 경향이란 걸 언급하며 자신은 “내 시대의 ‘도’ 느낌”을 주는, “땅바닥을 밟고 내는 음계 느낌”의 440hz를 선호한다고 썼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가 피아노의 브랜드나 연산을 기준으로 악기를 가리는 것과 달리 손열음은 소리의 자세를 고려해 피아노를 고른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녀의 피아노엔 허풍이 없고, 단호함이 있으며, 명징해서 아름답다. 손열음은 자주 사용하면 소리가 뒤섞인다는 이유로 오른쪽 페달의 사용도 최소화한다. 리듬과 멜로디가 재지하게 흘러가는 카푸스틴의 변주곡 같은 곡에서도 그녀는 괜한 허세를 부리거나 쓸데없이 흐느끼는 순간이 없다. ‘강력한 타건과 화려한 테크닉’은 사람들이 손열음을 설명하며 가장 먼저 꺼내 쓰는 수식어다.

신지아에게 2013년은 작은 전환의 해였다. 이전까지의 이름인 신현수를 지우고 새로운 이름 신지아로 개명했기 때문이다. “해외 활동을 많이 하는데 ‘현’이란 발음이 항상 문제였어요. 저를 불렀는데 알아듣지 못 하는 일도 많았죠.” 그리고 이렇게 바뀐 이름은 신지아의 음악 세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이전까진 남성적이고 강하다는 이미지가 강했다면 신지아가 된 후엔 보다 여성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현수일 때는 보이시하고 중성적인 게 하나의 포인트였어요. 머리도 짧았고, 학생 같은 느낌이 있었죠. 당시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 같은 거 하면 정말 잘 어울렸어요. 근데 그 머리와 이미지로 슈베르트 같은 거 하면 잘 안 맞는 느낌이 있었죠.” 신지아는 학생 시절 걸음걸이가 남자 같다며 지도 교수에게 혼난 적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신지아가 걸음걸이나 행동거지로 지적당할 일은 없다. 그녀는 누구보다 로맨틱한 선율을 뽑아내고, 애절한 사운드를 울려낸다. 특히나 올 초 발매한 앨범 <칸토 안티고>는 어쿠스틱 기타의 쓸쓸한 소리를 현의 절절함으로 품어낸 작품이었다. 기타리스트 이성우, 올리버 파르티시 나이니와 함께한 <칸토 안티고>에서 신지아는 남미 지역의 노스탤지어와 한이 어울린 풍경을 애처롭게 연주했다. “제 사운드가 좀 진해요. 아름다워도 그냥 아름다운 게 아니라 찢어지는 아픔?(웃음) 고통스러운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칸토 안티고>는 예전에 제가 영화음악 공연에 카메오 출연한 걸 보신 기타리스트 선생님들이 제안해주셔서 했던 건데, 새로운 소리와 어울리는 법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죠. 기타 소리가 정말 작거든요.” 신지아는 2014년엔 세월호 희생자 추모 무대에서 국악단과 협연을 하기도 했다. 소년을 닮았던 풋풋한 소녀가 어느새 아픔도 품을 줄 아는 성숙한 연주자가 되었다.

패턴이 어우러진 드레스는 퍼블리카 아틀리에(Publicka Atelier), 귀고리와 반지는 제이에스티나(J.Estina).

패턴이 어우러진 드레스는 퍼블리카 아틀리에(Publicka Atelier), 귀고리와 반지는 제이에스티나(J.Estina).

손열음은 독서광이다. 악보 챙겨 암보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 그녀는 꾸준히 독서를 한다. 그것도 <논어> <신학대전>과 같은 완독하기 버거운 종류다. “역사에 관심이 많아요. 특히 20세기를 좋아하는데 그 시대는 역사적으로 이전까지의 모든 것이 해체되면서 현시대와 전 시대를 딱 연결해준 시기 같아요. 그 시기에 꽂힌 적이 있거든요. 제1차 세계대전 무렵, 1910년대부터 50년까지랄까요? 시간만 있다면 제대로 배우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니 책 보며 익힐 뿐이죠.” 그리고 그 1910년대는 손열음의 건반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이 시대에 대한 애착을 자주 밝혀왔던 그녀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 러시아 음악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등의 음악에 자주 매달린다. 음악적으로 중세, 근대와 전혀 다른 새로움이 탄생했다고 일컫는 시기다. 손열음은 오는 2월부터 시작하는 독주회에서도 20세기 곡으로만 채운 레퍼토리로 공연하겠다고 했다. 확실히 탐험과 발굴의 호기심이 만들어낸 리스트다. “3년 만의 독주회이기도 해서 포부가 좀 있었어요. 관객들이 뭘 좋아할까? 어떤 걸 듣고 싶어 할까? 고민 많이 하다가 이번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 이 시점에 안 하면 아쉬울 것 같은 거 하자고 생각했어요. 지금이 1910년대로부터 딱 100년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손열음은 지금 시대의 전환기와도 같았던 역사의 한 막을 꺼내 자신의 새로운 막을 그려보려 하는지 모른다.

29와 30. 신지아와 손열음은 모두 서른 문턱에 있다. 그리고 이 나이는 음악가에게 다소 난해할 수 있는 시기다. 신동 탄생이란 화려한 환호성에 들썩이던 10대를 지나 스테디한 연주가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가 갈리는 때이기 때문이다. 콩쿠르의 나이 제한 역시 스물 후반 언저리에 걸려 있다. “콩쿠르가 주는 동기부여는 확실히 있어요. 하지만 그것도 과정이에요. 저는 명확한 목표를 세워놓고 음악을 하려 하면 뭔가 틀어질 것 같거든요. 그냥 좋아서 택한 음악이니까, 죽을 때까지 한다는 마인드 컨트롤이죠.(신지아)” “예전에 정경화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진짜 이 연주를 잘해야 다음 연주가 온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고요. 잔인하지만 그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손열음)” 그래서 이제 동력은 자신의 천운에 대한 믿음이다. 손열음은 1910년대 역사 이야기를 한참하다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가를 물으니 무려 3세기나 전의 모차르트라고 말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음악이란 느낌이 있어요. 지상의 것이라기보다 천상의 것이랄까요. 그런 걸 동경하게 돼요.” 신지아가 가장 좋아하는 사운드의 바이올리니스트로 꼽은 건 소아마비로 휠체어에 앉아 연주하는 이츠하크 펄먼이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소리와 상처를 뛰어넘은 사운드. 보이진 않지만 확실히 존재하는 어떤 결정체를 향해 나아가는 음악은 가끔 종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