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재능 넘치는 모자 디자이너 – RANGGAN

2016.03.16

by VOGUE

    재능 넘치는 모자 디자이너 – RANGGAN

    “나는 모자가 안 어울려서”라는 말은 이제 그만! 누구나 한 번쯤 써보고 싶은 모자가 여기 있다.
    <보그>가 만난 재능 넘치는 모자 디자이너 4인 ▷ ① RANG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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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OGUE KOREA(이하 VK) 어떻게 해서 모자를 만들게 됐나요?
    JO SEO HYUN(이하 JSH) 고백하자면, 저는 패션 자체를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순수하게 모자라는 아이템이 좋았죠. 셀 수 없이 많은 모자를 사 모으던 중, 이건 어떻게 만드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패션 디자인에 무지했기에 사람의 손에서 모든 것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뿐이었죠. 그래서 본격적으로 일본에서 모자 제작에 대해 배웠습니다.

    VK ‘랑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JSH 학창 시절, 내 브랜드를 만든다면 어떤 이름이 좋을지 고민한 적 있어요. 누구나 발음하기 쉽지만 한국적 이름을 쓰고 싶었죠. 늘 구전설화, 특히 인어의 전설에 대한 판타지가 있어서 고려시대부터 전해내려오던 설화 속 주인공인 인어 ‘랑간’이 떠올랐어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그리고 인어, 혹은 용처럼 실존하지 않는 존재에 대한 설렘을 닮은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담았습니다.

    VK 모자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뭔가요?
    JSH 처음 모자를 만들기 시작했을 땐 패션쇼, 전시, 혹은 화보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다시 말해 일상에서 쓸 만한 모자는 아니었죠. 2년 전, ‘랑간’을 론칭하고 편집숍에서 판매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의 작업 방식을 그대로 적용할 순 없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꾸뛰르적 요소는 유지하고 싶었거든요. 평범해 보이는 아이템을 조금씩 다르게 비틀어보는 방식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작은 발상으로 재미를 주는 거죠. 스트리트적인 요소들에서도 많은 영감을 얻고 있어요.

    VK 처음 만든 모자를 기억하나요?
    JSH 첫 수업 시간에 만든 ‘테이프 모자(Braid Hat)’예요. 하나의 선으로 입체적인 모자를 만드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 기다란 띠를 모자 틀 위에 칭칭 감아 완성하는 거였죠. 지금 떠올려보면 약간 유치하지만, 일생일대의 첫 모자라는 의미를 담아 모자 위에 한글로 ‘시작’이라 적었어요. 이때부터 제가 만든 모든 모자에 번호를 매기고 있는데 이 1번 모자를 시작으로 어느덧 1,000번까지 이르렀습니다. 물론 모든 작업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VK 어떤 사람들이 ‘랑간’을 쓰길 원하죠?
    JSH 100명 모두가 최고라고 하는 모자보다, 99명이 별로라고 해도 단 한 명이 맘에 들어 하는 모자를 제작하는 게 목표입니다. 기본적으로 고정관념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겁니다.

    VK 액세서리로서 모자는 어떤 역할을 하죠?
    JSH 어찌 보면 모자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그만인 아이템입니다. 패션쇼의 경우, 옷 자체가 주인공이기에 모자는 필요 없을 수 있죠. 하지만 모자를 더할 때, 옷이 덜 부각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옷이 더 빛날 수 있다고 봅니다. 좀 흔한 표현을 사용하자면, 모자야말로 스타일의 완성!

    VK 많이 대중화되긴 했지만, 모자는 여전히 스타일링하기 어려운 아이템이에요. 모자를 ‘잘’ 쓰는 노하우가 있나요?
    JSH 모두에게 똑같이 통하는 노하우는 없어요. “난 모자가 안 어울려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건 자신에게 맞지 않는 모자를 써서 안 어울리는 겁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모자는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을 수 없어요. 가령, 베레 하나만 보더라도 어떤 방향으로 형태를 잡느냐에 따라 쓰는 방법이 실로 다양합니다. 흔히 모자의 ‘표정’을 잡아가는 거라고 표현하는데, 여러 모자를 다양한 방식으로 써보는 게 중요해요.

    VK 어떤 종류의 모자를 가장 좋아하나요?
    JSH 순수하게 좋아하는 거라면 ‘웨딩 햇’. 섬세한 레이스와 여러 장식을 더해 꾸뛰르적으로 작업하고 싶죠. 한국에 수요가 없다는 게 아쉽죠. 가장 작업을 많이 하는 건 여러 소재를 조각조각 이어 만드는 봉제 모자입니다. 소재와 형태의 제한이 없어서 무궁무진하게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요.

    VK 모자를 정말 멋지게 소화하는 인물은 누군가요?
    JSH 조니 뎁! 자신만의 스타일이 확고해서 누구보다 멋져 보이죠.

    VK 특별히 좋아하고 존경하는 모자 디자이너가 있나요?
    JSH 작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일본 모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키오 히라타(Akio Hirata)를 존경합니다. 50~60년대에 활동한 뒤에는 후배 양성에 힘썼는데, 학창 시절부터 괜찮다고 느낀 모자 디자이너들은 전부 히라타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언젠가 가르침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필립 트레이시나 스티븐 존스 같은 창의적인 디자이너들도 물론 대단하지만, 오랜 세월 장인 정신을 지켜온 디자이너들을 좀더 닮고 싶어요.

    VK 모자와 관련해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나요?
    JSH 어릴 때부터 모자를 좋아해서 많이 모았지만, 또래 친구들이 좋아하는 나이키, 스투시 같은 브랜드 제품을 사진 않았어요. 10여 년 전부터 황학동 벼룩시장에 다니며 500원짜리, 1,000원짜리 모자를 찾아냈죠. 그렇게 하나씩 둘씩 모은 게 지금은 100개도 넘었지만, 각각 어떤 상황에서 무슨 생각으로 구입했는지 여전히 기억합니다. 때론 맘에 드는 모자를 먼저 산 뒤, 거기에 어울릴 옷을 사기도 했어요.

    VK 올겨울, 꼭 준비해야 할 모자는 어떤 건가요?
    JSH 모자를 만들거나 쓸 때 가장 기본은 베레입니다. 베레 만드는 법을 터득하면 어떤 모자든 만들 수 있죠. 마찬가지로 베레에 익숙해지면 어떤 모자든 어색하지 않게 쓸 수 있을 겁니다.

    VK ‘랑간’은 어떤 브랜드로 성장하고 있나요?
    JSH 진심으로 좋아서 시작한 일을 진심으로 좋아서 계속해서 잘하고 있구나, 라고 고객들이 보셨으면 좋겠군요.

      에디터
      임승은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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