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와 젊음으로 중무장한 청바지 이미지

패션에서 가장 섹시한 아이템은? 요즘 유행하는 란제리 룩도 아니요, 쫙 달라붙는 라텍스 레깅스도 아니다. 뻔하지만 청바지다. 섹스와 젊음으로 중무장한 청바지 이미지.


얼마 전 반라의 아가씨가 남자의 눈을 가린 채 그의 어깨 위에 걸터앉은 사진이 공개됐다. 쉽게 말해 목말을 탄 토플리스 여자다. 이 사진은 뉴욕 여기저기에 도배됐다. 그렇다고 젖가슴이 노출돼 물의를 일으키진 않았다. 다른 게 더 눈에 띄었다. 지방시 로고와 ‘JEANS’라는 영문 철자다. 모든 것을 종합해보자. 지방시가 데님 라인을 발표하며 대대적으로 전개한 광고 캠페인이다. 패션 애호가들이 뉴욕에 머물고 있었다면, 이 포스터 앞에서 “역시!”했을지 모른다. 반면, 보수적 성향이라면 “왜 청바지 광고는 죄다 모델들이 벗고 있지?”라며 의문을 가졌을 법하다. 하긴 보수파가 아니더라도 다들 한 번쯤 청바지 광고를 보며 민망한 나머지 헛기침한 적 있을 것이다. 대국민 유니폼이자 일상복이된 청바지가 자신을 표현할 때 늘 ‘섹스 코드’를 활용하니 말이다.

사실 요즘 지방시에는 리카르도 티시와 그의 일당(카린 로이펠트, 머트 앤 마커스 등등)이 탐닉하는 성적 요소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니 토플리스 아가씨가 청년의 어깨에 가랑이를 벌리고 앉는 것쯤은 약과다. 그런 면에서 알렉산더 왕은 뉴욕 청년 문화에 집중하는 편이었지, 섹스와 직접적으로 연관짓거나 그걸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디자이너는 아니었다. 그러나 왕이 성에 눈을 떴는지 새로 발표한 ‘Denim X Alexander Wang’ 광고는 패션계에서 파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당신이 조카나 딸과 함께 잡지를 보다가 그 광고를 봤다면, 지방시 청바지 광고처럼 황급히 아이의 눈을 가렸을 듯). 그가 애지중지하는 모델 안나는 “더 벗으면 안 되나요?” 혹은 “다 벗고 싶어요!”라는 식의 노출증 환자처럼 청바지를 입고(‘안 입고’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폼을 잡았다. 그건 헬무트 뉴튼 이후 섹스 표현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진가 스티븐 클라인의 솜씨다. 로고 역시 ‘X’를 키워 패션 X등급을 공공연하게 나타냈음은 물론이다.

청바지와 섹스, 대체 둘은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왜 하고많은 옷 가운데 청바지가 음란 마귀에 씌인 걸까? 그저 광부들이 입던 작업복에서 비롯됐을 뿐인데 말이다. 이쯤에서 몇몇 장면을 더 엿보자. 패션에서 섹스 하면 톰 포드를 빼면 곤란하다. 90년대에 그는 남자가 여자의 체모를 면도하는 장면이나 발기된 성기가 도드라진 바지 차림의 남자 모델을 구찌 광고로 쓰곤 했으니까. 그가 얼마 전 시그니처 컬렉션에서 청바지 라인을 본격적으로 선보이며 자신의 주특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다 잠기지 않은 채 벨트로만 여민 남자의 청바지 ‘앞부분’은 롤링 스톤스의 71년 앨범 못지않게 야했다(심지어 생생한 ‘퍼’까지). 포드보다 먼저 청바지 광고에서 섹스를 활용한 선구적 인물은 캘빈 클라인이다. “청바지와 나 사이엔 아무것도 없어요”라고 속삭이던 80년대 소녀 브룩 쉴즈의 야릇한 속삭임을 누가 잊을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캘빈 클라인 청바지 광고 촬영 현장에서는 벗는 게 미덕이었고 남녀가 엉켜 있는 게 허다했다. 마크 월버그와 케이트 모스는 섹스 직전의 젊은이들처럼 보였고 이 방식은 현재까지 유효하다. 저스틴 비버와 라라 스톤, 그리고 젊은이들의 은밀하고 음탕한 문자메시지 대화까지 공개한 최신 버전까지.

어디 이뿐인가? 섹스와 젊음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독보적 영역을 차지한 사진가 테리 리처드슨과 에비수(아니나 다를까 모델 에니코의 엉덩이를 벗겨 촬영했다), 당대 청바지 혁명가 디젤(아예 대문짝만하게 ‘SEX SELLS’라는 문구로 도장을 쾅 찍었다), 젊음의 모든 것인 아메리칸 어패럴(상의 탈의한 채 청바지를 벗기 직전 아가씨의 사진에 ‘Jeans.’라는 단어의 마침표로 젖꼭지를 가렸다) 등등. 그리고 두 쌍의 남녀가 각자 청바지 차림의 옆 사람 엉덩이에 손을 갖다 대거나 그 안에 손을 집어넣은 일레븐파리, 여성 상위 체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게스와 베르사체, 데님이라는 직물보다 살갗이 더 많이 보이며 이제 막 성에 눈을 뜬 청춘들의 트루릴리전, 아베크롬비앤피치, 리플레이 등등. 모르긴 몰라도 이 기사에 자료 사진이 없다 한들, 읽는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리비도가 잠시 마비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80년대에 하이틴 로맨스나 2000년대 들어 야설을 읽는 것처럼).

청바지의 베드신을 실컷 엿봤으니, 수많은 패션 품목 중 왜 청바지 광고가 섹스 중독에 빠졌는지 다시 생각해보자(공개적으로 야한 상상을 해도 되는 시간!). 에로틱한 속옷 광고도 아닌, 지극히 건전한 청바지라는 물건을 앞에 두고 흥분되는 이유? ‘패션’과 ‘광고’가 각각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 가운데 어느 접점에서 일어난 절정의 순간 때문이다. 대중 광고가 말초신경을 자극해야 시선을 자극한다는 건 익히 아는 사실이다. 패션 역시 늘 인간의 본능을 건드려왔다. 각각의 그런 기질이 젊음의 상징인 청바지에서 만나 관능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덕분에 청바지는 섹스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신만만하게 드러내는 중이다. 그건 여자들이 더 잘 안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의 한 대목을 떠올려보시라. 수잔 서랜던과 지나 데이비스는 브래드 피트의 뒷모습, 특히 청바지를 입은 그의 엉덩이를 보며 낄낄댄다. 젊고 섹시하다는 게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