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아이템

화장을 지운 한국 여자들의 진짜 살색은?

2016.03.16

by VOGUE

    화장을 지운 한국 여자들의 진짜 살색은?

    파운데이션 21호를 쓰지 못하면 죄책감을 느끼는 곳, 태닝 메이크업 아이템은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희고 화사한 얼굴의 나라. 바탕 화장을 지운 한국 여자들의 진짜 살색은?
    FINAL_182_눈썹
    얼마 전 <마이 리틀 텔레비전> 무대에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이 등판했다. 나와 절친인 그녀는 인품 좋기로 소문났지만, 재미는 참 없다. 게다가 그녀의 승부수는 ‘비포 & 애프터’. 과연 이 흔한 메이크오버 시연이 링 위의 모르모트 PD, 준비된 입심의 김구라와 경쟁할 수 있을까. 그런데 이게 웬걸? 정샘물은 2위로 전반전을 마무리했고 의외의 포인트에서 빵 터지고 말았다. 피부 톤을 너무 어둡게 메이크업한 것. 그리하여 포털 사이트 메인엔 ‘정샘물, 흙빛 메이크업에 당황’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장식됐다. ‘갓샘물’로 불리는 그녀가 이런 실수를 했을 리가 없는데. “메이크업은 조명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현장의 노랗고 어두운 조명 때문에 긴 생머리가 드리워진 턱 선의 색을 식별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생긴 거죠. 다시 돌아가도 그럴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목과 차이가 나는 색, 단지 자기가 갖고 싶은 얼굴색을 위해 밝은 컬러를 쓰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보거든요. 그런데 당신은 자신의 진짜 피부색이 뭔지 알고 있어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내 피부는 희지만 좀 붉고, 그래서 내가 주문하는 파운데이션 컬러는…”

    21호의 신화

    2년 전 코스맥스와 한국색채연구소가 한국 여성들이 자신의 피부색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조사했다(코스맥스는 전 세계가 러브콜을 보내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화장품 ODM 제조업체로 랑콤 쿠션도 이곳이 고향). 결과를 살펴보니 한국 여성들은 자신에 피부에 대해 ‘어둡지는 않다. 중간 아니면 밝은 편’이라 생각하며 붉은 기가 많은 것을 고민했다(바로 나다!). 게다가 윤기에 있어선 보통 ‘칙칙하다’고 인식했다. “결론적으로 국내 화장품 브랜드에서 우리에게 개발을 의뢰하는 베이스 메이크업 제품의 조건은 밝고 화사하며 붉은색을 보완하는 아이템이에요. 윤기는 기본이죠”라고 코스맥스 김성용 연구원은 말한다. “연령대별로 원하는 톤도 달라요. 2030 그룹은 두 톤 이상 밝고 불그스름한 핑크 베이스를 선호하고, 4050 그룹은 한 톤쯤 밝은색의 옐로 베이스를 좋아하거든요. 확실한 건 어느 연령층에 팔 제품이든 명도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이죠.” 그러고 보니 SK-II 메이크업 아티스트 윤규호 역시 같은 맥락의 고충을 토로한 적 있다.

    한국에는 ‘21호’로 대표되는 밝은 컬러 베이스에 대한 신화가 존재하는 듯하다고 말이다. “본인이 지닌 본연의 색을 살린 피부 표현이 훨씬 자연스럽고 생기 있어 보인다고 거듭 강조하고 설득해도 고객들은 21호를 포기하지 않아요. 색조 메이크업 제품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편인 반면, 이상하게도 파운데이션을 선택할 때는 고집을 피우며 양보하지 않더라고요”. 지나치게 밝은 컬러를 발라 얼굴만 동동 뜨는 한이 있어도 어두운 베이스 제품에 대해서는 용서가 없는 게 한국이라는 얘기다. “한국에 23호 이상의 진한 컬러, 즉 25호 같은 컬러를 만들어 출시하려는 업체는 없어요.” 김성용 연구원은 이렇게 전한다. “오히려 13호 정도의 아주 밝은색을 의뢰하는 업체는 많아요. 겪어보니 역시 한국은 밝은 컬러여야 하는 거죠.”

    내 피부의 온도

    베이스 얘기를 하다 보면 요즘 대히트 중인 쿨 톤, 웜 톤의 구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피부색 온도가 냉한 쿨 톤이냐 따뜻한 웜 톤이냐에 따라 잘 받는 색이 다르다는 이론으로 립스틱이나 아이섀도, 치크 블러셔를 고를 때 뷰티 카운터에서 자주 쓰인다. ‘감별’ 과정을 통해 퍼스널 컨설팅을 받는 기분을 누릴 수 있어 판매에도 효자다. 이니스프리는 파운데이션도 핑크 색소가 더 들어 있는 쿨 톤과 옐로 색소가 더 첨가된 웜 톤 제품을 구분해 전개하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파운데이션 BM 배이수에 따르면 톤 테스트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손목 안쪽의 핏줄이 녹색에 가깝거나 오렌지 컬러 혹은 골드 주얼리가 더 잘 어울리는 경우를 볼까요? 피부에 노란 기가 많아 보이거나 햇볕에 장시간 있으면 쉽게 타는 경향이 있다면 웜 톤에 속합니다. 손목 안쪽의 핏줄이 푸른색에 가까운 경우, 핑크 컬러, 실버 주얼리가 더 잘 어울리거나 피부에 붉은 기가 많다면, 그리고 햇볕에 장시간 있을 때 빨갛게 달아오르는 사람은 쿨 톤일 확률이 높죠.”

    문제는 한민족의 태생상, 적어도 파운데이션에서만큼은 쿨 톤 웜 톤 이론을 가져다 적극 활용할 만큼의 다양한 피부 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한국 여성들은 100% 웜톤 혹은 쿨 톤이라기보다는 웜에 가까운 뉴트럴 톤이거나 쿨에 가까운 뉴트럴 톤이 많은 편입니다. 완벽한 쿨 톤은 드물죠. 대략 반반의 비율을 가지고 있는 경우, 두 컬러를 다 써도 적절히 연출 가능한 뉴트럴 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윤규호의 설명이다. 쿨 톤과 웜 톤을 구분해 출시하던 이니스프리조차 웜 톤 제품만 압도적으로 많이 판매돼 한때 쿨 톤 파운데이션 제품을 단종시킨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이에 대해 정샘물은 “사실 쿨 톤과 웜 톤 구분이 좀 애매해요. 한 얼굴에 쿨 톤과 웜 톤이 모두 존재하니까요. 눈가, 코 주변, 입 주변은 쿨 톤이고 뺨, 귀, 입술은 웜 톤이에요.” 그러니 베이스 메이크업은 자기 피부색에 맞게 연출하고 얼굴을 잘 관찰해 쿨한 푸른 기가 더 많이 보이는 부분에 붉은 계열의 따뜻한 컬러를 쓰면 된다는 것이다.

    이제 살색에 있어 쿨 톤과 웜 톤 얘기는 접어도 되지 않겠냐고? 그게 또 말처럼 간단하지가 않다. 배이수 BM은 쿨 톤 제품을 단종했더니 매장에서 의외의 피드백이 오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자신은 웜 톤 피부지만 피부를 화사하게 표현하고 싶으니 쿨 톤 제품을 내놓으라는 요청이 지속적으로 증가했죠. 그래서 1월에 출시되는 스팀광 파운데이션은 쿨톤 21호를 함께 출시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하면 VDL의 정수연 ABM은 이번 시즌 출시된 ‘컬러 코렉팅 프라이머 03 세레니티’는 팬톤 올해의 컬러 ‘세레니티’에 해당하는 푸른색 메이크업 베이스라고 전한다. “피부 톤을 투명하고 차분하게 보정하는 제품으로 일명 ‘쿨 톤 메이커’로 지칭되는데 이 제품이 예상보다 세 배 정도 빠른 속도로 팔리고 있어 우리도 놀라고 있어요.” 이쯤 된다면, 한국에서 파운데이션 선택이란 자신의 원래 피부 온도와는 상관이 없는 게 아닐까? 진단 결과가 어떻게 나왔든, 서울 여자들은 그냥 표현하고 싶은 효과에 집중해 제품을 사들이고 있으니 말이다.

    23호여도 괜찮아

    ‘워너비 살색 21호’를 넘어 이제 쿨 톤 13호를 향하고 있는 화사함으로의 열망! 원래 인류 역사상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급이 존재하는 시대를 거쳐왔다면 그 사회에는 흰 피부에 대한 선망이 당연히 잔존한다. 햇빛을 보고 일하는 이들은 피부가 검고 거칠었으며 성 안에 앉아 자외선을 멀리한 귀족들은 창백할 정도로 하얬으니까. 귀족들은 더 높고 고귀한 신분으로 보이고 싶어 납이 섞인 분을 덧바르고 나중엔 납중독으로 인해 미치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2016년이요, 내추럴리즘이 주도하는 킨포크의 시대. 많은 메이크업 브랜드와 아티스트들은 진정 원초적인 나만의 살색을 대면하고 그에 맞춰 살아가라고 조언하고 있다.

    VDL 매장을 방문하면 피부 측정기처럼 생긴 기구가 눈에 띌 것이다. 미국 세계적인 색채 연구소이자 색상 회사 팬톤과 LG생활건강 컬러랩이 완성한 ‘컬러인텔 서비스’로, 진짜 리얼한 자신의 피부색이 측정된다. “2015년 한국 여성에게 가장 많이 측정된 피부 컬러는 ‘3Y07’, 즉 일반 파운데이션 호수로 환산하면 23호입니다. 전체 고객의 43%가 해당하죠. 그리고 90%가 노란 톤을 지녔고, 단 10%만 붉은 톤을 띱니다”. 붉은 기가 고민이라고 자가 진단하며 답한 한국 여자들에게 ‘진실’은 노란 기였다. 이에 대해 정샘물은 이렇게 설명한다 “수많은 여성들의 민낯을 봐온 저로선 하얀 메이크업을 향한 무조건적 열망이 좀 안타까워요. 지나치게 밝은 컬러에 집착하다 보면 얼굴이 커 보이고 나이 들어보이죠. 무엇보다 목선과 턱 선에 경계가 선명하게 지면서 칙칙한 얼굴을 커버한 티가 역력해질 뿐이에요.” 그동안의 화장법이 메이크업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볼썽사나워지는 모순과 악순환을 가져오고 있다니!

    다행히 요즘 ‘23호는 23호를 썼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돈오를 실천하는 현명한 여자들이 늘고 있다. 정수연 ABM은 컬러인텔로 자신의 진짜 살색을 인지시킨 뒤 어울리는 호수를 추천하면 전반적으로 호의적 반응을 보인다고 전한다. “특히 가로수길이나 강남, 홍대 인근처럼 젊고 변화가 빠른 지역의 고객일수록 자신이 인지한 피부 톤보다 어두운 결과를 받아도 실망하지 않고 잘 받아들이죠.” 흥미로운 사실은 오히려 어두운 컬러의 컨설팅 결과를 받았을 때 고객 신뢰도가 훨씬 높았다는 것. 화장품에 관심이 많은 일부 고객의 경우, ‘매장에서는 컬러를 일부러 밝게 권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정직한 호수를 권할 때 더 신뢰가 간다’는 반응이다.

    만약 컬러인텔 서비스 없이 피부 톤에 딱 맞는 파운데이션을 찾고 싶다면? 목선에 주목하시길. “베이스 제품을 턱과 목 경계선에 선을 긋듯 바른 뒤 살짝 실눈을 떠보세요.” 정샘물은 컬러가 튀지 않고 내 피부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면 그거야말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파운데이션 컬러라고 조언한다.

    화사함은 ‘개취’

    이쯤에서 내 얘기로 돌아가자. 분명 내 피부색은 희고 붉은 기가 있다. 그런데 30대 후반이 되자 노화로 인해 대사가 둔화되고 피부 단백질에는 불투명하게 때가 끼었다. 피부 톤은 칙칙해졌고 전처럼 21호가 어울리지 않게 된 것. 하지만 나는 여전히 21호를 구입한다. 늘 환하게 빛나 보이길 원하니까. 누군가는 내게 23호를 쓰면 더 건강해 보일 거라고 귀띔했지만 평소 모노톤 옷을 즐기며 비비드한 생기보다 ‘우아한 창백’을 선호하는 취향은 피부색과 별개의 문제다.

    23호로도 화사해 보이고 싶은 내 욕망을 실현할 방법은 없나? 이런 고민에 대해 전문가들은 여러 솔루션을 던졌다. 첫 번째. 컬러 코렉팅 프라이머. 색상은 건드리지 않고 자신이 괴로워하는 피부의 톤만 잡아주는 것이다. 만약 붉은 톤이 고민이라면 그것을 중화시키는 그린, 칙칙한 노란 기가 많다면 핑크나 퍼플을 선택해서 톤을 제로 세팅한다. 두 번째는? 하이라이터. “자기 피부색으로 피부 화장을 마친 뒤 화사한 아이 브라이트너나 하이라이터 등으로 V존 안쪽의 눈가, T존, 콧대, 입가 주변을 터치하면 얼굴이 좀더 어려지고 작아 보여요.” 정샘물의 조언이다. 마지막 방법은 좀더 직관적이고, 그래서 명쾌하게 느껴진다. 메이크업 아티스트 전미연은 “21호를 쓰고 싶으면 쓰세요.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죠. 대신 얼굴 중심에만 바르면 됩니다.” 그녀는 밝은 파운데이션으로 가운데부터 터치해 가장자리는 거의 두께감이 없도록 메이크업하는 게 관건이라고 전한다. “하이라이팅하듯 화장하는 거죠. 가장자리에 두께감이 없으니 자신의 살색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결국 가운데만 튀어나와 보이는 입체 메이크업의 효과까지 있어요.”

    서울의 살색을 대면하는 것과 서울의 취향을 구현하는 건 좀 다른 얘기다. 우리는 노란 23호 피부색을 가졌지만 화사함을 추구한다. 지금 세계를 장악한 K-뷰티, 한국 베이스 제품의 윤기와 화사한 발색, 백탁 없는 투명함은 우리의 취향이 디렉션한 결과다. 그러니 두 톤 밝게 살든 적절히 동시대적이든, 가면 쓴 것처럼 어색하게 파운데이션을 턱 끝까지 바르지 않겠다고 약속만 하면 되지 않나? 서울의 살색이 아닌, ‘서울의 살색 취향’을 우리가 지지하고 있으니까.

    (왼쪽부터)은은한 광이 지속되는 이니스프리 ‘앰플 인텐스 파운데이션’. 일명 ‘복숭아메베’로 불리는 돌풍의 주인공 샤넬 ‘르 블랑 라이트 크리에이터 브라이트닝 메이크업 베이스 SPF 40/PA+++’. 수분 광채와 커버력을 동시에 갖춘 SK-II ‘1분 살롱 파운데이션’. 컨실러와 리퀴드 파운데이션의 듀얼 텍스처 정샘물 ‘에센셜 스타실러 파운데이션’. 아시안의 피부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에스티 로더 ‘퓨처리스트 아쿠아 브릴리언스 리퀴드 파운데이션 SPF 15/PA+++’.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텍스처 조르지오 아르마니 ‘마에스트로 글로우 파운데이션 SPF 30’.

    (왼쪽부터)은은한 광이 지속되는 이니스프리 ‘앰플 인텐스 파운데이션’. 일명 ‘복숭아메베’로 불리는 돌풍의 주인공 샤넬 ‘르 블랑 라이트 크리에이터 브라이트닝 메이크업 베이스 SPF 40/PA+++’. 수분 광채와 커버력을 동시에 갖춘 SK-II ‘1분 살롱 파운데이션’. 컨실러와 리퀴드 파운데이션의 듀얼 텍스처 정샘물 ‘에센셜 스타실러 파운데이션’. 아시안의 피부를 위해 특별히 개발된 에스티 로더 ‘퓨처리스트 아쿠아 브릴리언스 리퀴드 파운데이션 SPF 15/PA+++’. 무게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텍스처 조르지오 아르마니 ‘마에스트로 글로우 파운데이션 SPF 30’.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HWANG IN 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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