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니를 해결해주는 마법의 파우더

구첩반상을 대체할 완벽한 파우더가 등장했다. 물에 타서 마시는 것만으로 끼니가 해결된다. 이토록 놀라운 마법의 가루는 삼시 세끼를 더 행복하게 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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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실리콘밸리는 백색 가루 열풍이다. 밀가루? 설마 백선생의 비법 가루 설탕? 브레인들의 식사를 대체한 건, 한 끼 영양소를 모두 갖춘 파우더 ‘소일렌트’다. 파우더를 물이나 우유 혹은 오일에 붓고, 흔들고, 마시면 끝. 식사 시간은 3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한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기에 너무 바빠 종이컵을 쥐고 거리로 나서던 뉴요커처럼, 밥 먹는 시간도 번거롭게 느껴진 일벌레들은 한 끼 밥상을 보틀 한 병에 담았다. 결정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회색 티셔츠만 입는 마크 주커버그처럼 대단히 ‘실리콘밸리적’이다.

기존에도 식사를 대체할 파우더는 있었다. 곡물 선식, 다이어트를 위해 들이켠 셰이크, 근육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단백질 파우더 등등. 소일렌트를 비롯한 식사 대용 식품이 이들과 다른 건, ‘완벽한 식사 한 끼’를 추구한다는 점이다. 단백질, 탄수화물, 비타민, 미네랄, 지방 등 한 끼에 섭취해야 할 필수영양소가 모두 들어 있어 이것만 먹어도 건강하게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어릴 적 상상하던 캡슐 식사에 가장 유사한 형태이자 식구들 끼니 챙기다가 지쳐 ‘밥 좀 안 먹고 살순 없겠느냐’ 푸념하시던 어머니들의 로망 실현이다. 그래서일까? 식사 대용 식품이 내세우는 건 구구절절한 영양소가 아니다. ‘소중한 시간을 가치 있게 쓸 수 있게 하는 간편하고, 건강하고, 합리적인 가격의 식품’이다. 세 사람이 걸어가면 한 명이 미식가인 요즘 세상에 이 메시지가 통했다. 소일렌트는 크라우드 펀딩으로 300만 달러를 투자 받았다.

소일렌트의 등장 이후, 유사한 식사 대용 식품이 쏟아져 나왔다. 소일렌트를 DIY하다 브랜드까지 론칭한 쉬모이렌트(Schmoylent)와 쉬밀크(Schmilk), 유기농 재료만 쓰는 암브로나이트(Ambronite), 필요한 칼로리만큼 조절해 마실 수 있는 휴엘(Huel)까지. 세심한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최초의 소일렌트는 ‘강바닥 진흙을 마시는 기분’보다 후한 평가를 줄 수 없는 맛이었으나 새로운 버전이 나오며 ‘밍밍한 팬케이크 반죽’같은 맛까지 진화했다. 최근에는 파우더를 물에 타는 수고를 덜어낸 음료형도 출시됐다. 패키지는 한결같이 도널드 저드가 환생해 디자인한 듯 극도로 심플하다. 쉬모이렌트와 쉬밀크가 홈페이지에 올린 사진은 식품이길 포기한 비주얼이다(공사장에서 삽으로 모래를 뜬 듯하다). 식사 대용 식품은 화학약품 분말의 혼합이니, 실상 정직한 패키지다. 맛도 맛이지만 사람마다 필요로 하는 영양소는 다른 게 사실이다. 식사 대용 식품 추종자들은 땅콩버터 파우더, 블루베리 등을 첨가해 이런저런 맛을 내기도 하고, 자신의 몸에 맞는 레시피를 만들어 공유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가장 궁금한 건 역시 ‘이 파우더가 진정 한 끼 식사를 대체 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이다. 소일렌트를 개발한 롭 라인하트는 일반적인 식사는 일주일에 두세 번만 하고 소일렌트를 하루 서너 번씩 마시며 지낸다. 그는 자신의 건강 상태를 수시로 웹사이트에 공개하는데 대부분의 수치가 정상 범위다. 예전보다 피부가 좋아지고 비듬이 줄었다는 결과를 공개하기도 했다. 한 달 동안 식사 대용 식품만 먹은 사람들도 썩은 달걀 냄새 나는 방귀를 종종 뀌지만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는 후기를 올린다. 운동을 겸한 경우, 예전보다 탄탄한 몸매를 얻은 사람도 있다. 정크푸드보다 건강한 끼니임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셈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복용했을 때 어떤 변화가 있을지 아직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FDA가 이들 식사 대용 음료를 식품 보충제가 아닌 식품으로 분류했으니 어느 정도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을까 믿어볼 뿐이다.

지난해 말 ‘한국형’을 내세운 식사 대용 식품이 상륙했다.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와디즈(www.wadiz.kr)를 통해 가능성을 점쳤는데 ‘랩노쉬’는 한 달 만에 1억원을 달성했고, 현재진행 중인 ‘밀스’ 역시 기세가 보통이 아니다. 호기심에 랩노쉬를 주문해 먹어본 결과를 말하자면 ‘삼시 세끼는 불가능, 하루 한 끼는 적당’ 정도다. 먹기 위해 살지 말라는 소크라테스의 명언을 거부하며 음식을 탐해온 신체임을 감안해야겠지만 320kcal를 함유한 300ml가량의 액체는 허기짐은 해소해줬지만 포만감을 주진 않았다. 다이어트 같은 명확한 목적이 없다 보니 뭔가 더 먹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왔고 ‘씹기 욕구’가 해소되지 않아 껌을 찾게 됐다. ‘밥을 먹었는데 배가 부르지 않다’는 물리적 느낌은 ‘완벽하게 영양소를 챙겨 먹었으니 괜찮다’라는 의식으로 상쇄됐다. 하지만 점심까지 공복 시간이 짧은 아침, 운동 가기 전 식사가 부담스러울 때, 그리고 정말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순간에 식사 대용 식품은 빛을 발했다. 살기 위해 입속에 구겨 넣는 삼각김밥에는 어차피 식사의 즐거움이 빠져 있다. 식사가 주는 결과물만 취하고 싶은 순간 식사 대용 식품은 훌륭한 인체 연료가 됐다.

음식물을 먹지 않고 에너지만 취하려던 인간의 시도는 일단 성공했다. 식사 대용 파우더의 다음 단계는 분명 더 간편하고 완벽한 캡슐일 것이다. 어릴 적 꿈꾸던 미래식이 눈앞에 놓였다. 다만 그 상상이 빠뜨린 게 있다면 여전히 일상적인 밥상이다. 미래가 도래했지만 다행히 우리는 음식과 식사가 주는 기쁨을 잃지 않았다. 간편하게 취할 것인가, 꼭꼭 씹어 얻을 것인가. 식사 대용 식품은 삼시 세끼에 선택지를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