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중독

순수하고 하얗고 치명적인 독! 혹시 단맛을 좇고 있나? 자칫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지 모른다. 뱃살, 잔주름, 불안으로부터 해방을 선사할 ‘노 슈가’ 라이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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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이 안 좋다는 얘기는 새롭지도 않다. 정서 불안, 면역력 저하, 장 기능 약화, 무기력증, 비만… 우울하니 그만하라고?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으니 괜찮다고? 내게 일어난 설탕 중독 연대기를 읽어보시길. 당신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스스로 지갑을 열어 초콜릿이나 케이크를 사 먹어본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단맛에 무감했다. 그러던 내가 케이크 한 판은 거뜬히 먹어치우게 된 것은 대학원 졸업논문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주경야독하며 24시간을 풀로 돌리다 보니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고 잠이 부족해 피곤했다. 정말이지 “당 땡긴다”는 말이 절로 터졌다. 피곤에 ‘쩔어’ 있던 그때 설탕의 유레카가 열렸다! 실수로 동료의 캐러멜마키아토를 마시게 된 것. 한 번의 흡입이었을 뿐인데,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졌다. 눈이 번쩍 뜨이며 활력이 넘치기 시작하는데, 여태 이런 기분을 왜 몰랐을까 싶었다.

WHY 스트레스 상황에 놓이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것이 단맛 수용체를 자극해 당이 ‘땅기게’ 만든다. 잠이 부족해도 단것이 먹고 싶다. “수면 부족이 단 음식 당김, 탄수화물 중독 등의 원인 중 하나라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자는 동안 분비된 렙틴 호르몬이 식욕을 억제하거든요. 반면 잠이 부족하면 식욕을 촉진하는 공복 호르몬, 그렐린이 증가하죠. 단것이 당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차움 푸드테라피센터 이기호 교수의 설명이다. 더 클리닉 청담 윤선미 원장은 단맛이 뇌 속의 쾌락 중추를 자극해서 기분을 좋게 만드는 세로토닌을 분비시킨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단것을 먹으면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됩니다.” 실제로 적당량의 설탕은 당 수치를 빠르게 올려 두뇌 활동을 돕고 순식간에 기운을 돋우는 에너지원. 그래서 바짝 오른 혈액 속의 당은 피로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과하게 먹지 않는다면 이 정도 인생의 단맛은 누릴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날 이후 퇴근길 내 모습은 좌 바닐라 아이스크림, 우 포테이토칩. 환상의 ‘단짠’ 밸런스를 즐기며 소파에 늘어져 있는 시간이 매일 조금씩 늘어나고 있을 즈음, 설탕 중독 자가 테스트를 하게 됐다. 결과는 설탕 중독. 설마 내가? 그러고 보니 체중은 3kg이나 불었고 피부는 탄력 없이 칙칙했다. 더 놀라운 건 이 모든 게 겨우 2개월 동안 일어났다는 사실.

WHY 설탕 중독은 정신과 진단명으로 명시되어 있는 병이다. 신체적, 심리적 원인에 의해 끊임없이 단것을 먹는 증상을 보인다. 마운트 시나이 의대 니콜 아베나 교수는 다큐멘터리 <생로병사의 비밀>을 통해 이렇게 설명했다. “단맛은 뇌의 보상중추 영역과 관계가 깊어요. 단걸 먹어 느끼게 된 긍정적 감정을 뇌의 해마 편도체가 학습하죠. 과다섭취의 이력이 있거나 짧은 기간에 집중적으로 당류를 섭취했다면 뇌는 더 큰 행복감을 위해 더 많은 당을 섭취하라고 명령해요”. 피부가 푸석해진 것도 이유가 있었다. WE 클리닉 조애경 원장은 “실제로 설탕이나 밀가루를 1~2개월 끊으면 피부가 좋아지는 경우를 많이 봐왔습니다”라고 떠올렸다. 설탕은 체내에서 콜라겐과 들러붙어 비정상적 반응을 보이는데, 그 결과 피부 처짐과 잔주름 같은 노화 징후가 나타난다.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그 스위트한 행복감조차도 ‘그닥’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 1~2시간 지나면 다시 불안과 초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손은 저절로 초콜릿 박스를 향하고 있었으니까. 감정의 기복을 들키며 못생겨지기까지 하다니! 벗어나야 했다. <하루 당분 20g의 기적>의 저자 조희진 PD, 2년째 노 슈가 라이프를 실천하며 영국 <보그>에 ‘설탕 없이 살기’ 칼럼을 연재한 니콜 모브레이처럼 일단 집에 있는 모든 단맛을 버렸다. 하지만 외식은 어쩌지?

WHY 당에 중독되면 세로토닌이 급격히 올랐다 떨어지며 감정이 널을 뛴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단맛을 제로로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완전히 단맛과 이별하긴 어려울 거예요. 다양한 형태의 당이 이미 식재료나 요리에 포함되어 있으니까요.” 이기호 교수의 설명이다. 케첩 한 스푼에도 4g 정도의 설탕이, 주스에는 무려 40g 정도의 당이 들어 있다. 윤선미 원장은 매우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줬다. “안 먹었다고 생각해도 이미 먹고 있으니 일부러 찾아 먹지 마세요. 특히 요즘 붐업되고 있는 디저트 문화는 최악이죠.” 제5의 맛이라 불리는 ‘감칠맛’은 설탕과 지방이 결합했을 때 강력한 위력과 높은 중독성을 보이기 때문.

자,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고? 천신만고 끝에 다시 초콜릿 바를 한 입 먹으면 속이 느끼해지는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혹시 단것을 끊지 못해 몸과 마음이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면, 영국의 스타 셰프 제이미 올리버의 TED 강연을 검색해보시라(2010년 올해의 명연설로 선정될 만큼 훌륭하다). 그의 안티슈가 캠페인 홈페이지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제이미가 “과당 음료에 20%의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외치는 이유에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프랑스와 캐나다, 멕시코 등 세계가 이미 비만세 명목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단맛, 우리도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How To Eat

직접 담근 청과 꿀, 올리고당을 조금씩!
과실을 발효해 만든 청에는 구연산이 풍부해 위장 질환을 완화하며 피로 해소에 도움이 된다. 열량이 설탕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아 혈당을 서서히 높이는 올리고당,프로폴리스 함유량이 높은 질 좋은 꿀도 비교적 괜찮은 단맛.

커피는 쓴맛에 마시자
커피에 들어간 단맛이 덜 느껴지는 건 쓴맛 때문이다. 쓴맛은 단맛 수용체의 작용을 억제해 더 많은 설탕을 섭취하게 한다. 쓴맛이 단맛을 속이는 셈.

음료수 경계령을 내려라
각설탕 한 개가 약 3g이라고 했을 때, 비타민 음료에는 각설탕이 여덟 개, 바나나 우유에는 아홉 개, 오렌지 주스 500ml에는 열두 개가 들어 있다. WHO의 하루 설탕 권고량이 각설탕 약 여덟 개인데, 한 병을 마시면 그냥 게임 셋!

달달한 간식은 3~4시경에
이 시간은 당을 조절하는 인슐린이 많이 분비되는 시간이다. 단것을 먹어야겠다면 이 타이밍에 맞추자. 가능한 제철 과일을, 당이 천천히 흡수되도록 갈지 않고 씹어 먹는 형태로 섭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