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인터뷰의 재미는 어디서 오나

2016.03.16

by VOGUE

    인터뷰의 재미는 어디서 오나

    질문과 답 사이에 마음이 오간다. 가끔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가끔은 한바탕 크게 웃을 때도 있다. 말과 마음이 주고받는 드라마 쇼. 인터뷰의 재미는 어디서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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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는 비공개 영역이다. 질문자와 인터뷰이 단둘이 마주 앉은 현장에 또 다른 목격자나 증인은 없다. 기자가 쓰고 싶은 대로 써도 별도리가 없고, 수정, 편집, 심지어 왜곡도 왕왕 벌어진다. 대부분 지면 위주인 인터뷰에서 대화는 너와 나만 아는 얘기다. 하지만 최근 TV에선 이 비밀의 자리를 노출시키는 프로그램이 늘고 있다. 영화 저널리스트 백은하가 올레tv에서 진행하는 <무비스타 소셜클럽>은 진행자가 배우와 마주 앉아 연기에 대해 대화하는 내용이고, <섹션 TV 연예통신> 속 에릭 남의 코너도 인터뷰의 현장을 그대로 살린 프로그램이다. 과거엔 참조 화면이나 리포터의 멘트 영상 정도로 쓰인 인터뷰의 활약이 근래 활발해진 셈이다. 이젠 보여주기 위한 인터뷰가 대세다.

    에릭 남은 최근 인터뷰 스타가 됐다.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왔다 금세 잊힐 뻔했던 그는 내한 스타들과의 대화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화제의 인물에 올랐다. 바바라 팔빈, 맷 데이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헤더 막스, 미란다 커 등 리스트가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패리스 힐튼과는 단둘이 세단을 타고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웬만한 배짱 아니고는 민망하고 어색했을 상황인데 에릭 남은 자연스러운 토크쇼를 완벽하게 연출했다. 물론 보스턴 출신인 에릭 남의 언어 구사 능력이 상당 부분 도움을 줬겠지만, 상대에 대한 철저한 사전 조사, 적당한 유머, 호감 가는 말투가 적당히 어우러진 인터뷰였다. 그는 ‘김치 좋아하냐’고 묻지 않고 스타를 웃게 했고, ‘강남스타일’을 권유하는 추태를 부리지도 않았다. 그저 담백하고 심플했다. 보는 사람만큼 인터뷰이들도 기분이 좋았는지 아만다 사이프리드는 건네받은 오징어를 질겅질겅 씹으며 대화의 자리를 나섰고, 미란다 커는 ‘미란이’란 별명을 얻어갔다. 적절한 쇼맨십과 대화의 기술이다.

    인터뷰라고 다 대화가 주인공인 건 아니다. 질문과 답은 오가고 있음에도 결국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인터뷰도 있다. JTBC <뉴스룸>의 요즘 문화 인터뷰가 그렇다. 지드래곤, 강동원, 러셀 크로우, 김훈 작가 등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은 <뉴스룸>은 손석희와 스타들의 만남 그 자체가 이야깃거리인 경우였다. 배우, 가수가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했다는 사실과 사회, 정치, 경제 얘기만 하던 손석희가 연예인의 사생활까지 파고든다는 점에 기대감이 올라갔다. 하지만 실제 만난 순간 인터뷰가 이미 끝난 거나 마찬가지인 경우도 더러 있었다. 러셀 크로우, 알랭 드 보통과의 대화는 능숙하지 못한 진행자의 언어 실력으로 수차례 덜컹거렸고, 영화 개봉을 앞두고 출연한 강동원과의 인터뷰는 서로의 호감만 확인하고 끝이 난 꼴이 됐다. 손석희는 “출연하신 영화를 다 보진 않았습니다만”이라며 말을 꺼냈다. 자랑할 만한 얘기는 아니다. 게다가 처음엔 “<전우치> 속 역할이 가장 좋았다”고 하더니 영상을 확인한 후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속 사형수 역할이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질문자가 손석희가 아니었다면 꽤나 욕을 먹었을 장면이다. 나이 일흔의 여배우 윤여정이 수줍게 웃으며 진행자의 팬임을 고백하고, 김혜자 역시 “소녀 같다”는 얘기에 얼굴을 붉히는 장면은 분명 흐뭇한 맛을 줬지만, 사실 끝나고 남는 건 별로 없는 인터뷰였다.

    인터뷰의 단어를 풀어보면 ‘중간에서 본다(Inter-view)’ 정도가 될 거다. 시청자 혹은 독자와 인터뷰이 사이에서 관찰한 견해를 전달하는 역할인 거다. 하지만 그 ‘중간에서 보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어린 아이돌 스타의 경우 하나 마나 한 단답형 답변만 반복하고, 그마저 소속사의 요청으로 삭제되는 일도 있다. 하긴 어린 나이에 본인도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데 뭐라고 답할 게 있겠나. 늘 제한적인 시간 역시 인터뷰어를 곤혹스럽게 하는 요소다. 오히려 인터뷰어의 후기가 상대의 이런저런 면모를 구석구석 잘 전달해줄 때가 있다. 가령 지난 1월 10일 세상을 뜬 데이비드 보위에 대해 토니 스콧의 영화 <악마의 키스(The Hunger)>를 함께 한 피터 린드버그가 이렇게 썼다. “매번 작업한 사람들의 느낌을 노트해놓는다. 이 남자의 친절함, 힘, 스타일 그리고 지성에 개인적으로 감동받았다.” 질문을 던지지 않고도 끌어내는 이야기다. 때로는 관계가 훌륭한 답변을 끌어낸다.

    웃음을 위한 인터뷰가 있다. 공격하기 위한 인터뷰도 있고, 호기심으로 무장한 인터뷰 역시 있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영화 감독 인터뷰집 <부메랑>을 내며 감독당 10시간씩 다섯 번을 만났고, 정성일이 차이 밍량, 홍상수, 봉준호와 마주 앉으면 최소 1박 2일을 생각해야 한다. 인터뷰의 핵심은 아마도 서로에 대한 관심일 것이다. 인터뷰이, 인터뷰어 관계없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탐하는 작업이 인터뷰란 대화를 시작한다. 보통의 일상 속에선 갖기 힘든 시간, 좀처럼 만나기 힘든 타인의 내면. 사소하지만 내밀한 이 만남을 인터뷰가 주선해준다.

    에디터
    정재혁
    일러스트레이터
    JO SUNG H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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