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 김구라에 대한 보고서

김구라가 만개했다. TV를 틀면 나온다. 독설과 비호감의 대명사였던 그는 어떻게 채널을 장악하게 됐나. 부동의 스타 MC 구라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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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김구라는 주방에 선다. 백종원이 지휘하는 <집밥 백선생>의 ‘학생’ 출연진 중 1인이다. 수요일마단 <라디오 스타> 원탁에 앉아 입담을 과시하며, 목요일엔 인테리어를 새로 마친 스타의 방을 안내한다(<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주말이 되면 채널 장악률은 더 높아진다. <복면가왕> <마이 리틀 텔레비전>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 등 공중파, 케이블, 종편 구분 없이 활보하는 김구라의 모습은 시청률을 먹고사는 오락과 개그의 포식자 같다. 그는 패널 자리에 앉았다가도 무대 정중앙에서 MC를 보고, 동료 개그맨들과 로케이션을 돌며 프로그램을 하기도 한다. 유재석, 전현무, 신동엽 등 대부분의 메인 MC들이 안방 주인 노릇만 하는 것과 다르다. 특히 시청자들의 사연을 듣고 얘기하는 포맷의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서 김구라는 MC였다가 패널이 된다. 프로그램 오프닝 땐 유재석 옆에서 함께 진행을 하지만, 본편이 시작되면 계단을 내려와 패널석에 앉는 것이다. 보기엔 다소 기이한 방식인데, 이는 김구라의 역할이 무대 중심뿐 아니라 게스트석 한쪽에서도 무리 없이 어울린다는 얘기다. 심지어 김구라는 김성주가 사회를 보는 <복면가왕>의 패널 자리 하나도 마다하지 않는다. 자리를 가리지 않는 남자다.

김구라의 연예 인생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SBS 공채로 데뷔했지만 꽤 오랜 시간 무명으로 묻혀 있었고, 먹고살기 위해 황봉알과 함께 하던 욕설과 음담패설 범벅의 프로그램 <시사대담>은 후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방송인으로서 입지를 다진 후엔 가정사 때문에 공황장애를 앓았다. 웬만해선 다시 일어나기 힘든 사건 사고였다. 하지만 김구라는 과도한 감정이입을 유도하며 사연 팔이를 하지 않았고, 숨기는 거 없이 스스로의 잘못이나 아픔도 그대로 드러냈다. 이혼을 결정한 이후 <라디오 스타>에 나와 던진 멘트는 “외기러기가 되었습니다”였고, 아내가 남긴 17억이나 되는 빚을 얘기하면서도 “다작해서 갚아야 한다”고 했다. 돌직구, 독설로 불리지만 김구라는 스스로에게도 돌직구, 독설을 던지는 유형인 셈이다. 심지어 김구라는 MBC 연예대상이 끝난 직후 어느 인터뷰에서 “내가 연예대상 탄 데 불만 갖는 사람이 있다”고도 했다. 떨떠름한 상황이나 애매한 감정을 에두르지 않고 그대로 뱉는다. 거침없는 막말 토크 <라디오 스타>의 골조는 사실 김구라가 완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데뷔 24년 차 방송인 김구라에게 단도직입의 솔직함은 우여곡절 많은 질펀한 연예계를 살아나가는 방식이다.

사실 김구라의 개그는 무리수 투성이다. 예의에 어긋날 때도 많고, 매너 따위 챙기는 일이 별로 없다. 저러다 싸움 나는 거 아닐까 싶은 위험한 장면도 곧잘 연출된다. 지난해 4월 시사 토론 프로그램 <썰전>에 아나운서 오정연이 출연했을 때, 그는 대놓고 전남편 서장훈에 대한 이야기를 던졌고, <집밥 백선생>을 시작하면선 백종원에게 “백 사장님이라고 불러야 하나. 선생이라 불러야 한다면 ‘님’자를 붙이지 않겠다”고도 했다. 타인의 민감한 구석은 김구라 앞에서 비밀이 되지 못하며, 나이순의 에티켓은 유효하지 않다. 출연자에 대한 과한 상찬으로 범벅인 전현무의 <히든싱어>, 철저하게 인기와 서열순으로 움직이는 유재석 주도의 <무한도전> 같은 프로그램과는 좀처럼 어울릴 수 없는 예능인이다. 하지만 이 무리수 가득한 화법이 실제로 물의를 일으키는 일은 없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만큼 상대에게도 솔직함을 권유하는 직설이기 때문이다. 개그와 예능에서 의례적인 ‘어르신 스타 챙기기’, 선배 ‘님’ 호칭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 아닌가. 김구라는 어쩌면 과한 배려로 점점 물러지는 예능 세계에서 시청자의 답답함을 해결한 유일무이 개그맨인지 모른다. 그는 민망하게 예의 바른 상황에 독설을 날린다.

하지만 김구라에게 독설보다 더 큰 무기는 ‘잡학다식’이다. 유재석, 신동엽, 전현무 중 유일하게 시사 프로그램(<썰전>)을 진행하는 김구라는 연예, 요리, 사회, 문화, 정치 등 모르는 게 거의 없다. 뭐든 대충 다 안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 <무비 스토커>에선 부편집장 역할을 톡톡히 했고, <라디오 스타>에선 지식 자랑을 비판하는 윤종신에게 “야구는 유틸리티 맨, 농구는 포드와 가드를 함께 하는 선수를 스윙맨”이라고 한다며 자신의 팔방 지식을 다시 한 번 자랑했다. 북한 정권의 실세 흐름이나 집값 문제, 그리고 1980년대 할리우드 사정 등 보통 예능에 등장하지 않을 법한 얘기도 그는 오락 프로그램에서 뜬금없이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잡학다식은 요즘 버라이어티하게 변화하는 방송 포맷과 찰떡같이 맞아떨어진다. 인터넷 방송 형식을 그대로 가져온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가장 먼저 데려온 것이 김구라였고, ‘덕질’ 권장 프로그램 <능력자들>의 주인장이 된 것 역시 김구라다. <썰전>에서는 진지한 시사 토론자고, <동상이몽, 괜찮아 괜찮아>에선 재치 있는 상담가며, <복면가왕>에선 가면 속 주인공을 알아맞히는 예리한 감식안의 패널이다. 그는 정통 토크쇼든 별종의 새로운 포맷이든 대충 다 잘 적응한다. 불규칙 다종 방송인의 스펙이다. 김구라는 아마 계속 더 확장할 것이다.

지난 연말 SBS 연예대상 시상식. 전날 MBC에서 연예대상을 수상한 김구라가 이번엔 프로듀서상을 받았다. 그는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밝혔는데 웬걸, 소감의 절반이 PD들 이름이었다. 그는 “개편 때마다 방송국에서 조직도를 보내온다”며 기수별로 PD들 이름을 호명했다. 함께 작업한 PD들부터 퇴사한 PD까지. 누가 언제 승진하고 부서 이동을 했는지도 꿰고 있었다. 물론 ‘프로듀서상’인 만큼 선정자인 PD에게 감사를 전하는 게 당연한 일이겠지만, 아마 김구라보다 더 오랜 경력의 예능인도 이만큼 방송국 조직에 능통하진 않을 듯하다. 그는 타 방송에서도 종종 방송국 내부의 이모저모를 얘기한다. 일반 기업의 사원이 회사의 내부 사정을 훑듯 방송국 사원처럼 일하는 것이다. 김구라는 어느 인터뷰에서 “나는 MBC의 아들이 아니라 파트너다”라고 했다. 모두가 ‘OOO의 아들’이 되겠다며 외치는 예능 판에서 남다른 자기 인식이다. 그는 방송국의 개그 노동자 김구라이기도 한 것이다. 김구라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의 마인드로, 괜한 사탕발림이나 칭찬 세례 없이 모두가 까발려지는 솔직함의 독설로 우뚝 섰다. 그 직설의 꽃이 지금 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