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움과 채움 사이

물건을 버리면 정말 마음의 평화가 찾아올까? 단샤리, 심플 라이프 혹은 미니멀리즘. 이름은 여럿이지만 결론은 하나다. 적게 소유할수록 더 행복해진다는 것. 하지만 현대판 디오게네스가 되는 길은 멀고 험하다.

IMG_0082-1

아파트 근처에 쓰레기처리장이 들어온다고 주민들이 궐기했다는 뉴스를 보면 가끔 이런 의문이 든다. ‘어차피 다들 쓰레기장에서 살고 있지 않나?’ 비난이 아니다. 나도 쓰레기장에서 산다. 현대인이라면 대개 그렇다. 인간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주거 공간은 관 한 짝 크기의 침실과 변기 하나짜리 욕실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고시텔이 아닌 이상, 우리의 집은 대개 그보다 크다. 나머지 공간을 채우는 건 생존과 하등 관계없는 물건들이다. 한때 설렘을 안겨줬으나 이제는 효용이 다한 장식품과 옷가지, 당장 피난을 가야 한다면 가차 없이 내버릴 여분의 생필품, 추억이 서린 자잘한 소품과 전자 기기, 요컨대 시간이 흐를수록 쌓이면 쌓였지 줄어들 리 없는 잡동사니들 말이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는 그 ‘물건님’들의 집세까지 내주지 말라고 조언한다. 한강이 보이는 150평 펜트하우스에 월세로 살 능력이 된대도 귀담아들을 다음 얘기는 이것이다. 단지 물건을 버렸을 뿐인데, 그의 체중도 10kg이 줄어들었다.

이 놀라운 다이어트 신화의 전말은 이렇다. 사사키 후미오는 원래 ‘메모지 한 장도 못 버리는 사람’이었다. 집에는 읽지 않는 책, 듣지 않는 CD, 입지 않는 옷이 넘쳐났고, 빈티지 카메라에 빠져 집 안에 암실을 꾸미기도 했다. 그는 물건과 취향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쓰고, 소유를 통한 일시적 만족을 행복이라 간주하는 보통의 현대인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물건을 내다 버리기 시작해 지금은 미니멀리즘 전도사가 됐다. 이제 그는 여섯 벌의 옷으로 춘하추동을 난다. 액상 비누 한 개와 무명천 한 장이 욕실 살림의 전부고, 접으면 소파가 되는 에어리 매트리스와 작은 밥상, 맥북 에어만 다소곳이 자리한 원룸은 산사의 선방 같다. 물건을 버린 후 찾아온 삶의 변화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10kg이나 줄어든 체중이다. 미니멀리스트들은 대개 물건을 버리면 집 안에 정체해 있던 기의 흐름이 좋아지면서 몸도 가벼워진다고 주장한다. 사사키 후미오는 여기에 심리학적 가설을 보탠다. 물건으로 인해 고민하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빼앗기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일이 없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줄었고, 그 덕에 과식과 과음을 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사사키 후미오는 최근 일본에서 불고 있는 미니멀리즘 열풍의 철학적 기반으로 불필요한 물건을 끊고(단행), 버리고(사행), 멀리하는(이행) 요가의 ‘단샤리’ 수행법이나, 스티브 잡스에게도 영향을 미친 동양의 선 사상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몸을 가릴 천 한 조각이 소유물의 전부였다는 자연학의 대가 디오게네스나, 도미니크 로로의 <심플하게 산다>가 증언한 유럽의 반소비, 탈자본주의 경향을 떠올리면 이런 진단은 느슨해 보인다. 그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새로운 생활 방식이 일본에서 유독 부상하는 구체적 배경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언급한 대목이다. 지진과 함께 집 안의 물건들이 흉기로 변해 당신을 덮치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소유냐 무소유냐 하는 것은 더 이상 철학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된다. 그리하여 요즘 일본에서는 직접 만든 발포 스티롤 집을 메고 다니며 이동 생활을 하는 아티스트나 토트백 하나 들고 여행을 다니는 블로거 등 최소한의 소유를 지향하는 미니멀리스트들이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환태평양 지진대를 아슬아슬 비껴 난 우리나라에선 실감하기 어렵지만, 물건이 주는 정신적 피로감이라면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삼시 세끼 밀가루만 먹고도 살이 안 쪄 고민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초근목피로 연명해도 코끼리처럼 피하지방이 쌓이는 체질이 있는 것처럼, 물건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안락을 느끼는 사람과 폐소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따로 있다. 후자에게 있어 쓰지 않는 물건은 쓰레기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최근에야 깨달았다. 위치 한 번 바꾸려면 인부를 불러야 하는 묵직한 가구가 인생의 족쇄처럼 느껴지고, 냉장고에 식료품이 가득 차면 얼른 먹어 없애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해서 소화가 안 되고, 모든 물건에 쓰임새를 부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드레스룸이 번잡해질수록 이것저것 껴입어 패션 테러리스트가 되는 사람. 예쁘지만 쓸모없는 물건 중 용인할 수 있는 것은 액자 정도가 전부고, 물건을 살 때의 만족감보다 버릴 때의 개운함에 더 크게 감화하는 사람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취향대로만 살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고, 체질은 후천적 습관에 가리기도 하는 법이라, 어느샌가 나의 공간은 미니멀리스트의 그것과는 아득히 멀어져버렸다. 요 몇 해 수납공간이 남아도는 집에 살다가 숟가락 하나까지 모조리 노출되는 작은 한옥으로 이사하면서 차제에 정리나 수납에 골몰할 게 아니라 모두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작정한 것은 그러니까 청빈을 다짐하는 선비의 결기 따위와는 하등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가능하면 봇짐 하나만 들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바람은 그러나 이번에도 이뤄지지 않았다. 2m짜리 행어 하나에 옷을 추려 넣은 것만 해도 마흔을 목전에 둔 싱글녀로선 선방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1톤 가까이 쓰레기를 내버려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이 있었다. 예컨대 독립 스프링에 라텍스 패드를 얹은 퀸 사이즈 침대와 거위털 이불, 생업과 연관된 대형 TV와 데스크톱, 세탁기와 냉장고, 아직 읽지도 못했거니와 전자책으로도 나오지 않은 서적, 취미 생활을 위한 화구와 기타 같은 것이다. 그래서인가, 이사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체중은 1kg도 빠지지 않았다. 요즘 나는 밤마다 석양 아래 황소처럼 우적우적 곱씹는다. 아직도 이렇게 짐이 많은데 대체 내가 버린 1톤 분량의 쓰레기는 다 뭐였을까. 기억도 나지 않을 그 물건들을 갖기 위해, 또 버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자원을 훼손했던가. 그리하여 이제는 물건을 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선물 받는 것조차 몇 배는 조심스러워졌다.

사사키 후미오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데 ‘버리기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미니멀리스트란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을 뜻하며, 모든 것을 버려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자동차건 피아노건 부피와 관계없이 미니멀리즘의 결정체라 봐도 좋다고. 중요한 것은 허영, 과시, 일시적 만족, 호기심 따위를 위한 소비를 자제하고 신변을 정갈히 함으로써 진정 소중한 것에 집중하는 태도다. 고백하건대 나는 아직 내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미니멀리즘의 대가들은 “버리고 후회될 물건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아직도 몇 년 전 충동적으로 내다 버린 다홍색 꽃무늬 드레스가 눈에 밟힌다. 말하자면 나와 나의 물건들은 현재 미니멀리즘의 연옥에 갇힌 상태다.

공자는 마흔을 불혹이라 했다. 오늘날 마흔 살 여자를 가장 미혹하는 것은 물건들이다. 군자의 도를 위해, 요즘 나는 미니멀리즘의 경구를 크레디트카드처럼 품고 다닌다. ‘이것이 정말 내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곧잘 ‘나는 어떤 사람인가?’로 가닿는다. 아직은 디오게네스를 꿈꾸는 도시의 폐기물 유발자일 뿐이지만 오십쯤엔 진짜 불혹에 도달하길 바라며, 밤마다 남은 물건들에게 말을 건다. 네가 없어도 나는 살겠지? 그리울까? 후련할까? 조금만 더 함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