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의 소설, 작가 이상우

취향을 저격하는 젊은 작가가 나타났다. 이질적 활력으로 소설의 한계를 돌파하고 있는 문제적 작가 이상우의 낯선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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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이 나타났다! 2011년 문학동네신인상 당선작으로 <중추완월>이 선정된 것은 일종의 사건이었다. 강제로 기억과 후각을 잃은 채 시체를 처리하며 살아가는 남자가 등장하는 이 소설은 공허가 깊게 깔린 가운데 관능과 광기가 출렁이는 일종의 ‘신누아르’였다. 낯설다 못해 해석 불가한 스토리는 물론, 고개를 갸웃거리다 기어코 매료되고 마는 기이한 감성, 감각과 기억을 깨우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문장은 그야말로 ‘전혀 새로운’ 종류였으니, 평단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풀려야 할 비밀 같은 작가”라고 했고, 누군가는 “이것저것 따지기 전에 이미 포로가 됐음을 당혹스럽게 시인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했으며, ‘한국문학의 뉴 웨이브’나 ‘한국 소설의 스타일리스트’라는 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오히려 침착하게 이상우를 즐긴 것은 독자들 쪽이었다. 그의 소설은 상투성 짙은 문학에 심드렁하던 이들의 취향을 정확하게 저격했다. 이해하기보다 감각하는 소설이 나타난 것이다. 독자들은 스토리를 좇으며 분석하는 대신, 잠언으로 채워진 예술영화를 보거나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현대음악을 듣듯 이상우를 읽었다.

떠들썩하던 데뷔 후 4년이 흘렀고, 그간 이상우가 발표한 여덟 편의 단편이 담긴 소설집 <프리즘>이 마침내 출간됐다. 재미있는 건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평단과 독자를 우아하게 희롱하고 분분한 해석을 낳으며 화제가 됐음에도 1988년생이라는 사실 말고 작가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공식적으로는 첫 인터뷰.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 중의 하나라는 사진 촬영까지 마친 그를 앉혀놓고 호구조사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인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집에 서재가 있어서 자연스럽게 책과 친해졌어요. 어머니가 동네 도서관 사서셨거든요. 중학생 땐 그저 다른 흔한 애들처럼 무협 소설에 빠져 있다가 고등학생이 돼서야 비로소 다양하게 읽게 됐죠. 계산해보면 아마도 오히려 남들보다 독서량은 적은 편일 거예요. 그래도 글을 쓴다면 반드시 소설이어야 한다고 여겼고 대학도 서울예대 문창과 하나만 지원했습니다.”

이상우의 글에서 남다르게 돋보이는 건 영화와 음악과 패션을 능수능란하게 주무르는 독특하고 신선한 감성이다. “외동이라 남들보다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요. 중학생 때부터 혼자 여행을 다닐 정도였어요.” 그는 카페에 앉아 자기 세계에 빠지고 그 공상을 무대로 대략의 맥락을 정한 뒤엔 그 맥락을 배신하면서 글을 써나간다. 대담한 용기다. 보통의 작가들과 달리 책에 ‘작가의 말’도 쓰지 않는다. “작가의 말을 읽는 건 좋아해요. 근데 지금까지는 제 말을 스스로 믿을 수 없다는 느낌이 들어요. ‘말을 위한 말’은 하고 싶지 않아서랄까요.” 자신에 대한 고집과 집념을 느끼게하는 얘기다.

스물세 살에 데뷔한 작가는 20대 후반이 대부분 그렇듯, 치열하게 젊음을 관통하는 중이다. 자연스레 풍기는 청춘의 내음을 숨길 수는 없다. 릭 오웬스와 앤 드멀미스터와 레키쇼를 좋아하는 그는 ‘마법사 같은 고깔모자와 치렁치렁한 검은색 옷’을 입을 줄 알고, 부드럽게 물결치는 머리를 근사하게 매만질 줄 안다. 영화와 패션과 음악을 능수능란하게 주무르는 그의 소설은 취향에 근거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제가 좋아하는 것의 부분부분이 소설마다 녹아들어 있을 겁니다. 패션과 음악, 영화에 호기심이 많아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추상적인 것이라 말로 명확하게 설명하는 건 불가능해요. 건반에서 ‘미’라는 음계를 친다고 할 때, 그게 어떤 소리인지는 알아도 어떤 것이라고 말로 설명할 수는 없잖아요? 게다가 지난 몇 년 사이 저는 많이 변했습니다.”

‘후장사실주의(Analrealism)’란 말이 있다. 후장은 우리가 아는 그 후장(Anal)이 맞고,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스러운 탐정들>에 등장하는 ‘내장사실주의’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무도 그 정확한 뜻을 설명하지 않는 이 그룹에는 이상우가 포함된다. 또래의 작가 박솔뫼와 정지돈, 오한기를 비롯해 평론가 강동호, 서평가 금정연 등도 속한 이 그룹은 일종의 동인지 격인 <후장사실주의: 1호>까지 펴냈다. “한국 ‘문단문학’에 염증 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까요? 그들과 교류하면서 문창과에 다니는 동안 스스로 버린 것들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질러도 되겠다.” 후장사실주의자가가 된 그의 작품은 확실히 더욱 새로워졌다. 8비트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추는 인물을 좇아 시종일관 몽롱한 장면이 펼쳐지는 에서는 줄거리 자체가 사라지며 문장의 주체가 모호해졌고, <추리 추리 하지 마 걸>과 <벨보이의 햄버거에 손대지 마라>를 거치는 동안에는 인물과 시점이 무차별적으로 교차하며 ‘모든 것이 있지만 아무것도 없는’ 소설의 형태를 보이더니, 가장 최근작인 <프리즘>은 평론가들로 하여금 ‘이를 소설이라 할 수 있는가’를 두고 격론을 펼치게 만들었다.

물론 모두가 괴물의 탄생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서사를 파괴한 작가’라거나 ‘독자를 고려하지 않는 소설’, ‘자아도취에 빠진 작품’이라는 평도 이어진다. “서사가 없다는 평가를 받는 작가들이야말로 서사를 장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을 위해 줄거리가 명확하고 속도감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이야말로 독자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상우는 지난해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우리 가족 모두 힘든 한 해였어요. 너무 가난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두렵고, 취향이 멈출까 봐 두렵고, 시민 윤리에 뒤처지지 않을까 두려웠어요.” 그래서 그는 작은 그림 하나를 그린다. “인터뷰가 끝나면 나루세 미키오의 회고전을 볼 생각이에요. 제가 할 일을 해나가면서 다음 소설, 읽을 만한 소설을 써내면서 조금씩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야죠.” 이상우는 오늘도 카페에서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하루를 보낼 것이다. 후장사실주의 작가의 새로운 탄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