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활약하는 7명의 젊은 한국 디자이너 – ③ (PLYS, JI OH, SOONIL)

앤트워프부터 베를린, 뉴욕과 런던, 도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패션 도시에서 태어난 패션 코리아의 새로운 에너지. 해외에서 활약하는 젊은 디자이너 일곱 명을〈보그〉가 만났다. – ③편 (PLYS, JI OH, SOONIL)

PL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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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가까이 베를린에 살고 있는 이승준은 그 도시에서 자신의 라벨 ‘Plys’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긴 여름에도 해가 지고 나면 쌀쌀해요. 그래서 늘 스웨터를 갖고 다녀야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니트웨어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죠.” 차보다 자전거가 많은 도시에서 사람들이 입고 다니는 ‘사이클 기어’ 역시 매력적인 영감의 대상이었다. “공사장 인부가 입을 법한 네온 컬러의 워크 웨어와 라이크라 소재의 자전거 쇼츠 등을 니트로 풀면 어떨지 궁금해졌습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에서 남성복을 공부한 뒤, 예술 큐레이팅을 배우기 위해 패션의 꿈을 잠시 접었던 그에게 이런 호기심은 새로운 에너지가 되기에 충분했다. 물론 시작이 쉽진 않았다. 네온 컬러를 니트로 표현하기 위해 이태리에서 가져온 실을 한 올 한 올 염색하는 공정이 필요했고,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니트 제작업체를 찾아 헤매기도 했다. “수많은 테스트를 거쳤습니다. 100% 울을 사용해 조형적 실루엣을 완성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죠.”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결과물은 신선함 그 자체. 눈부신 컬러가 돋보이는 스웨터는 첫 컬렉션임에도 높은 완성도를 자랑한다. 세련된 감각의 룩북 역시 눈에 띈다. 다양한 아티스트(Tala Madani, TAL R), 뮤지션(Oneohtrix Point Never, Pepe Bradock), 그리고 디자이너(Helmut Lang, 지금은 사라진 Miu Miu의 남성복)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어린 시절 런던에서 인디 문화를 몸소 체험하고 지금은 베를린에서 젊음의 에너지를 느끼고 있는 디자이너가 펼쳐 보일 아이디어는 이렇듯 무궁무진하다. 충만한 호기심을 통해 여유롭게 시그니처 룩을 완성하는 법을 체득한 그는 지금도 진일보하는 중이다.

JI 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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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미국 ‘보그닷컴’, 등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띄었다. 스트라이프 코트와 날렵한 팬츠 수트, 넉넉한 실루엣의 드레스가 매력적인 디자이너의 이름은 ‘Ji Oh’. “열아홉살에 세인트 마틴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 파슨스에서 다시 공부하기 위해 뉴욕으로 왔죠.” 파슨스를 졸업한 그녀는 스타일리스트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패션 현장에 입문했다. 하나의 비주얼을 완성하는 스타일링은 매력적이었지만, 점점 더 자기만의 스타일을 담은 옷을 디자인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결국 2010년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딴 라벨을 시작했다. “편안함과 다양함을 추구하지만, 결국 세련된 멋을 지닌 여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녀의 옷에 담긴 중성적 매력은 디자이너 자신의 성향을 담고 있는 듯하다. 조용히 일에 몰두한 결과, 빠른 성과를 이뤘다. 첫 시즌의 컬렉션이 표지에 실리는가 하면, 다음 시즌엔 바니스에서 바잉할 정도. 아울러 하비 니콜스와 인터믹스를 비롯한 숍이 뒤를 이었다. 일곱 살에 아빠의 재킷을 입고 패션의 재미를 처음 깨달았던 소녀는 이제 뉴욕 패션계에서 자기 자리를 찾는 중이다. 자신의 옷으로 진열한 매장도 열길 원하고, 특별 프로젝트도 계획하고 싶지만, 사실 그녀의 꿈은 단순하다. “우리 모두 필요한 옷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동시에 늘 새로운 것을 원치 않나요? 사람들이 제 옷을 보면 당장 그 옷을 갖길 원해요. 그로 인해 그들은 자신을 대변할 만한 세상을 찾았다고 느꼈으면 해요.”

SOONIL

디자이너 권순일 Final2
“아무 준비도 없이 무작정 뉴욕 비행기 티켓을 끊었어요. 아무것도 정해진 게 없었죠. 학교는 물론 숙소도 없이 덜컥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뉴욕 트라이베카에 작업실을 두고 있는 디자이너 권순일은 처음부터 패션을 꿈꾸진 않았다. “부모님은 제가 자동차 디자이너가 되길 원했어요. 그래서 LA로 가긴 했지만 흥미가 생기진 않았죠. 그래서 뉴욕에서 이것저것 둘러보며 진정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게 바로 패션이었다. 패션이라면 즐겁게 일할 것 같았으니까. 좋은 인연과 행운도 잇따랐다. 친구인 모델 박지혜가 그의 파슨스 졸업 컬렉션 의상을 입은 모습이 전 세계 패션 파파라치에게 포착됐고, 자연스럽게 ‘Soonil’이란 이름으로 컬렉션을 준비하게 된 것. “처음부터 제 라벨을 시작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브랜드에 들어가 일하면서도 제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다섯 개 아이템 정도를 만들어 친구에게 선물하려던 일이 발전한 셈이죠.” 온화한 성품이 옷에도 따뜻함을 담아냈다. 노란색 데님 재킷, 핑크색 스웨이드 미니 드레스 등은 입기만 해도 마음 한쪽이 포근해질 듯 밝은 기운이 돈다.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건 제 스타일이 아닙니다. 색깔부터 실루엣까지 제 옷의 모든 요소가 여자들을 기분 좋게 만들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