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컷 같은 A컷

snowcat20160112

완벽한 포즈, 완벽한 구도, 완벽한 포토샵! 광고는 한 시즌 동안 반복해서(요즘처럼 컬렉션이 자잘하게 쪼개진 때엔 길어봤자 넉 달이지만) 브랜드 이미지를 보여주는 매개체다. 그러니 모든 게 완벽해야만 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 시선이 향하는 방향, 각 모델의 위치와 팔을 꺾는 각도, 신체 비율까지 모든 게 어떤 황금율이나 공식에 따라 정확히 계산된 듯 보인다. 그러나 속속 공개된 이번 시즌 광고들은 죄다 뭔가 좀 모자라고, 하다 만 것 같고, 실수로 찍힌 사진처럼 불완전하다.

예를 들어 조그만 인스타그램 박스를 통해 올봄 셀린 광고를 처음 봤다면 공식 광고 이미지라는 게 믿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식의 꼼꼼하지 못한, 일명 ‘누끼 따기’는 패션계 종사자들의 매의 눈에 가장 거슬리는 실수 중 하나처럼 보였으니까.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모피의 미세한결까지도 집요하고 완벽하게 따기를 바라는 게 일반적이지만, 사진가 유르겐 텔러의 리터처는 아우트라인도 대충, 팔과 몸통 사이의 빈 부분도 그대로 두는 쿨한 면모를 발휘했다. 이 의도된 불완전함과 미숙함은 지난해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한 광고 패러디들을 연상케 한다. 늘 우아하고 고고한 척하는 광고를 비웃듯, 조악한 방식으로 조각내고 불쾌한 이미지를 합성해 기발하게 재해석한 것들 말이다. 한쪽에선 패션계에 유행하는 ‘90년대 적용’이란 의견도 있다. 패션을 동경하는 소녀가 잡지에서 맘에 드는 모델을 가위로 잘라 색종이 위에 스크랩하는 아날로그 방식 말이다. 어쨌든 결론은 늘 참신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피비 파일로의 감각이 이번에도 제대로 발휘됐다는 말씀.

몸의 일부를 자르거나 뒷모습을 찍는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 브루클린 길거리에서 찍은 샤넬 광고에는 모델 리네이지 몬테로가 초점이 맞지 않은 채 몸통의 절반이 댕강 잘려나간 컷도 있다. 데이비드 심스가 촬영한 마크 제이콥스 광고는 SNS에 맛보기로 올린 스케치 컷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 ‘옆에서 구경하던 PR이 스마트폰으로 몰래 찍어 올린 사진’이라고 코멘트를 달아주면 차라리 수긍이 간다. 머리 위는 잘리고 초점이 흔들린 라나 워쇼스키의 사진은 영락없이 촬영하다 말고 딴짓하다 딱 걸린 모양새. 에디 슬리먼이 젊은이의 뒤통수에 ‘집착’하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설마 생로랑 남성복 광고에서 고개를 푹 숙인 잭 킬머와 클라라 크리스틴의 정수리를 나란히 보게 될 줄이야. 뒤통수는 80년대 독일 대중문화에서 영감을 얻어 베를린에서 촬영한 구찌 광고에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사진가 글렌 루치포드는 모두가 잠든 밤, 몰래 호텔 아케이드로 숨어든 10대 무리에 동참해 고요한 복도를 뛰어다니는 어린 침입자의 뒷모습을 신나게 찍어댄 게 아닐까? 찰칵, 찰칵, 찰칵!

이런 새로운 시도의 가장 큰 요인은 SNS일 것이다. 광고를 풍자한 인스타그램의 콜라주, 실시간으로 찍어 올리는, 거칠지만 생생한 스냅챗 등등. 또 소셜 미디어 타령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거기엔 예상치 못한 순기능도 있다. 보이는 그대로의 순간을 포착한 사진에서 모든 것은 완벽하거나 예쁘지 않다. 그렇지만 기존 광고 사진에 비하면 훨씬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게 사실이다. 그동안의 A컷이 실현 불가능한 목표였다면, 이번 시즌 A컷은 자연스럽고 거짓이 없다. 처음엔 어리둥절하지만, 보면 볼수록 맛이 나는 사진. 올봄에 만끽하게 될 B컷 같은 A컷의 매력은 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