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꽃에서 위로와 치유를 보는 장 미셸 오토니엘

2016.03.16

by VOGUE

    꽃에서 위로와 치유를 보는 장 미셸 오토니엘

    상처가 아물어 꽃이 됐다. 세상의 아픔을 품어 안은 꽃이다. 장 미셸 오토니엘은 꽃에서 위로와 치유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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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한가운데 ‘검은 연꽃’이 피었다. 둥근 구슬을 알알이 엮어 만든 꽃이다. 주위엔 금빛, 보랏빛 연꽃이 더 있고, 네 개의 벽면엔 캔버스에 잉크로 그린 또 다른 ‘검은 연꽃’ 다섯 송이가 피어 있다. 설치 작품이 다섯, 평면 작품이 다섯. 정갈한 구성의 정원이다. 3월 27일까지 국제갤러리에서 프랑스 설치 작가 장 미셸 오토니엘 개인전이 열린다. 처음으로 자연 형상을 한 작품으로 구성한 전시고, 국내에선 2011년 회고전 [My Way] 이후 5년 만이다. 타이틀은 <검은 연꽃(Black Lotus)>. 장 미셸 오토니엘의 인장 같은 유리구슬을 이번엔 알루미늄으로 바꿔 사용했고, 다소 동양의 색채도 느껴진다. 금속 소재를 사용해 육중해 보이지만 화려한 색감의 구슬이 서로를 반사해 가볍게 느껴지며, 정적인 동시에 활발하다. 그는 “꽃의 숨은 의미나 상징은 매력적인 것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고 전시 설명 자료에 썼다. 꽃을 통해 바라본 세상이다.

    <검은 연꽃>은 장 미셸 오토니엘이 과거 사적 경험에 기반한 작업에서 좀더 추상적이고 관념적 영역으로 이동한 결과다. 그의 대표작 <상처-목걸이(Le Collier-Cicatrice)>(1997)는 성소수자들의 내면적 상처와 아픔을 엮어 만든 빨간 목걸이였고(오토니엘 본인이 동성애자며, 이 작품은 1997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난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침대 프레임을 색색의 거울 유리구슬로 둘러싼 <나의 침대(Mon Lit)>(2003)는 사적인 역사를 반추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1990년대 말 공개한 <사제복(Priest’s Robe)>과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Self-Portrait)>은 차마 들춰내기 힘든 자신의 경험을 드러낸 작품이다. 사랑과 성직 사이에서 갈등하던 성직자 남자 친구가 갈등을 이겨내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힘들어하던 오토니엘은 슬픔을 보듬으며 한 점의 그림과 한 점의 설치 작품을 만들었고, 2011년 첫 회고전 [My Way]를 통해 공개했다. 힘없이 쓸쓸하게 걸린 <사제복>과 거세게 떨어지는 댐의 물줄기 사이를 조심스레 걷는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의 한 남자는 보는 순간 마음을 움직인다. 그리고 이 치유의 작업은 <검은 연꽃>에서 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위로로 확장된다. <검은 연꽃> 연작은 세상의 상실과 부재 그리고 고통을 품어 안는 시도다. 상처가 시가 됐다.

    Q 연꽃을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연꽃에 흥미를 가진 건 언제부터인가?
    A 연꽃에는 이미 관심을 갖고 있었고, 전시는 3년 전 부터 기획했다. 국제갤러리와 새 전시를 하기로 결정한 후 한국에서 사 모은 기념품을 다 꺼냈다. 그게 작업의 시작이었고 베르사유 작업(<아름다운 춤(Les Belle Danses)>(2015), 베르사유 궁전 내 연못에 설치한 거대 분수 작품) 끝나고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Q 기념품을 사 모았다는 건 평소 한국에 관심이 있었다는 얘긴가.
    A 나는 여행할 때 늘 현지 문화와 연결되길 원한다. 지금까지 한국에 세 번 왔고 매번 이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했다. 전시하는 장소를 이해하는 건 중요하다. 물론 대개는 아트 관련 이야기를 통해서지만.

    Q 이번 전시는 다섯 편의 평면 작품과 다섯 편의 조형 작품으로 구성됐다. 기준이 있었나.
    A 평면 작품이 조각 작품의 그림자, 거울 역할을 하도록 의도했다. 그래서 각 조각마다 페인팅을 대응하게 배치했다. 이 전시는 국제갤러리 3관에 맞춰 계획됐다. 그래서 미리 작품을 어떻게 배열할지 구상할 수 있었다. 3D 프린터로 소형 미니어처를 제작한 뒤 시뮬레이션하는 작업도 했다.

    Q 개인적으론 페인팅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붓을 사용하진 않았을 텐데 동양 수묵화의 느낌이 났다. 드로잉 작업도 꽤 해온 걸로 알지만 전시를 통해 공개하는 건 처음이다.
    A 사실 드로잉은 매우 오랜 시간 해왔다. 전시를 몇 번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적합한 방법을 찾기 힘들었다. 이번 드로잉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잉크가 번지는 듯한 느낌, 파도가 부서져 튀어 나가는 물방울느낌을 재료 자체가 주는 효과를 살리며 표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금박을 입힌 뒤 검은 석판화 잉크로 작업했다.

    Q 당신의 전작은 빨강, 보라, 노랑 등 단색의 화려함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번엔 검정이다. 검정은 수많은 컬러 중 하나지만 다른 색과는 다른 카테고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흑’의 영역이랄까.
    A 나에게 컬러는 매우 드라마틱하고 로맨틱하다. 검정은 극적이며 서정적인 느낌을 준다. 연꽃은 본래 백색 아닌가. 하지만 나는 그 반대되는 어둠의 상징 검정을 사용해 꽃의 본래 속성에 변형을 가했다. 상충되는 두 개의 결합. 그런 의미에서 검은 연꽃을 주제로 삼았고, 검정이 주는 강렬한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Q 초반의 유황, 지푸라기부터 당신의 인장과도 같은 거울 유리구슬, 그리고 이번엔 알루미늄까지, 다양한 재료를 선택하고 사용하는 기준은 뭔가.
    A 우선 유리와 알루미늄의 차이는 작품을 어디에 전시할 것인가에 따라 갈린다. 외부에 할 것인가, 내부에 할 것인가. 가장 중요한 건 물적 특성을 잘 표현하는 거고, 누구나 아는 일상적 재료를 쓰려고 한다. 현실에서 미를 창출하는 거다.

    Q 어처구니없는 질문 하나 하겠다.(웃음) 작품의 구슬은 하나씩 붙인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연결되게 제작한 건가?
    A 안에 메탈 바가 있다. 실제 목걸이처럼 구슬을 알알이 꿴 거다. 전시가 끝나면 다시 해체해 상자에 넣어 다니는데 재조립에 꽤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이 구슬 장수 같다고 한다.(웃음)

    Q 당신의 작품은 미학적 영역뿐 아니라 수학적, 과학적 영역에도 걸쳐 있다. 영감과 감각만으론 완성할 수 없는, 그러니까 연구소와 공장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다. 이런 부분 역시 적성에 맞나?
    A 수학자, 엔지니어와 일하는 거 좋아한다. 기하학, 건축, 구조학 모두 필요하다. 작품의 균형을 맞추거나 변형이 필요할 땐 그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팀으로 일하는 거고 전문가 집단과의 작업 속에서 지식을 습득한다. 이제는 그들이 얘기하는 걸 이해할 수 있는 정도는 됐다.

    Q 지난해 베르사유 궁전 정원 연못에 거대한 분수 작품 <아름다운 춤>작업을 했다. 작업 기간이 이번 전시 구상과 겹쳤을 것 같은데, <아름다운 춤>이 <검은 연꽃>에 준 영향이 있나.
    A 베르사유 작업을 하면서 이번 작업의 큰 그림을 구상했으니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다. 먼저 시공간을 정지시킨 듯한 느낌. 이번 전시를 보면 공중에 매달린 작품, 벽에 걸린 작품 등이 있지 않나. 현실을 벗어난 느낌을 내려고 했다. 또 <아름다운 춤>에서 피사체가 빛, 물에 반사되게 만들었는데 <검은 연꽃>에서도 투영과 반사를 주요 모티브로 삼았다. 비춘다는 건 세상 자체에 대한 메타포다. <검은 연꽃>의 전시 작품은 구슬이 관객을 비추고 또 다른 구슬이 그 비춤을 비춘다. 계속적인 반영 작용이다. 연꽃의 모티브와도 통한다. 연꽃은 세계를 담아내고 내포하지 않나. 내 작품이 세상을 담길 원했다.
    Jean-Michel Othoniel installation view K3_1

    Q 정원은 당신 작품에서 주요한 모티브다. 이번 전시 역시 굳이 얘기하면 연꽃이 핀 사각의 정원이다. 당신에게 정원은 어떤 의미인가.
    A 창작 아이디어의 장소다. 정원에 들어가면 다른 세상에 들어간 느낌이다. 정원은 나에게 만들어진 장소이자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별도의 세계다. 정원에서 작품 전시 준비를 할 땐 정원과 교감할 수 있는, 서로 대화할 수 있는 식으로 작업한다.

    Q 분리됐다, 독립적이라는 게 중요한 건가?
    A 그렇다. 프레임을 제공하는 거다. 자유를 느끼게 해주는 프레임이다. 전시관 역시 마찬가지다. 독립적인 프레임의 의미다.

    Q 2011년 파리 퐁피두 센터에서 첫 회고전 를 열었다. 타이틀 자체가 그간의 작업을 정리하는 뉘앙스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오토니엘의 새로운 챕터로 보면 될까.
    A 새로운 단계라 하기엔 좀 그렇고 그냥 연속이다. 개인전을 계속해오다 회고전으로 [My Way]를 한 거고 이후엔 다시 개인전을 하고 있다.

    Q 그간 사적인 상처, 아픔을 보듬으며 작업해왔다. 당신에게 과거의 고통은 어떤 의미인가.
    A 상처는 나를 강하게 해줬다.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해 상처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내 마음이 성장할 수 있다. 이제 상처로부터 자유를 얻어 한 발짝 앞으로 나왔고, 영성과 영적인 걸 추구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상처 과정을 공유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다.

    Q 2000년대 초 작품을 통해 개인적 아픔을 공개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직자 남자 친구의 얘기였는데 개인적인 부분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망설임은 없었나.
    A 그 얘기를 하기까지 20년이 걸렸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상처를 끌어안는 것보다 얘기하고 앞으로 나가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대한 스스로의 명확성을 위해 공개가 필요했다. 무엇보다 자유를 갈구했다. 사적이고 숨겨진 부분을 끌어내면서 개방적 자세를 취할 수 있었고 나만의 비밀에서 벗어났다.

    Q 일상적으로 취하는 레퍼런스가 궁금하다.
    A 무엇이 리얼 월드인지, 무엇이 리얼리티를 반영하는지, 리얼리티가 무엇에 영향을 끼치는지, 그리고 실제 삶의 아름다움은 어디에 있는지. 이런 것들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려고 한다.

      에디터
      정재혁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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