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을 훌쩍 넘긴 푸시버튼 패밀리

푸시버튼’은 10년을 훌쩍 넘겼고, 톡톡 튀는 매력의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는 어느새 성숙한 하이패션으로 성장했다.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레이블의 일부와 같은 유쾌한 이들이 〈보그〉 앞에 모였다.

‘푸시버튼’은 10년을 훌쩍 넘겼고, 톡톡 튀는 매력의 젊은 디자이너 브랜드는 어느새 성숙한 하이패션으로 성장했다. 독특하고 사랑스러운 레이블의 일부와 같은 유쾌한 이들이 〈보그〉 앞에 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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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먼저 도착한 모델 이지가 휜 나뭇가지 같은 몸을 일으켜 꾸벅 인사하자, 디자이너 박승건은 다짜고짜 잔소리를 늘어 놓기 시작했다. 박승건은 여차하면 회초리 들 기세고 풀이 죽은 이지의 구부정한 몸은 점점 더 아래로 기울고 있다. 영락없이 엄마가 말 안 듣는 딸을 엄하게 잡는 모양새.

태평 하게 푸시를 품에 안은 곽두영 대표, 오자마자 옷 정리에 바쁜 한세나 디자인 실장, 스튜 디오를 한가로이 ‘산책’하는 모델 에이전시 ‘신화사’ 신귀란 이사, 긴 다리를 척 꼬고 앉아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은 모델 송경아. 누구도 이 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 지 않는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태평하게 푸시를 품에 안은 곽두영 대표, 긴 다리를 척 꼬고 앉아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은 모델 송경아, 오자마자 옷 정리에 바쁜 한세나 디자인 실장, 스튜디오를 한가로이 ‘산책’하는 모델 에이전시 ‘신화사’ 신귀란 이사. 누구도 이 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패션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삶을 동경하진 않아요. 소박하고 인간적인 게 좋 죠.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들도 다 그래요. 신귀란 이사도 낯을 몹시 가리는 편이고. 민호는 어릴 때부터 봐왔어요. 어리지만 착한 친구죠. 자기 일처럼 잘 도와주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봄 컬렉션 땐 네가 쇼에 서지 않았구나. 미안.” 조금 후에 도착한 모델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할 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패션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삶을 동경하진 않아요. 소박하고 인간적인 게 좋죠.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들도 다 그래요. 신귀란 이사도 낯을 몹시 가리는 편이고. 민호는 어릴 때부터 봐왔어요. 어리지만 착한 친구죠. 자기 일처럼 잘 도와주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봄 컬렉션 땐 네가 쇼에 서지 않았구나. 미안.” 조금 후에 도착한 모델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할 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이 묘한 조합은 각기 개성이 다른 구성원으로 이뤄진 모던한 가족 같다. 박승건은 독립 디자이너로 10여 년간 성실하게 자기 브랜드를 전개해왔고 최근 해외시장에서도 그에게 부쩍 관심을 보이 고 있다. 그동안 서울의 감각적인 컨템퍼러리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면, 하이엔드 디자 이너 브랜드로 올라서는 단계에 이제 막 들어선 시점이다.

이 묘한 조합은 각기 개성이 다른 구성원으로 이뤄진 모던한 가족 같다. 박승건은 독립 디자이너로 10여 년간 성실하게 자기 브랜드를 전개해왔고 최근 해외시장에서도 그에게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서울의 감각적인 컨템퍼러리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면, 하이엔드 디자이너 브랜드로 올라서는 단계에 이제 막 들어선 시점이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해요.” 박승건은 2003년 곽두영 대표와 함께 무작정 푸 시버튼을 론칭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전 재산의 90% 이상을 투자했 죠. 비싼 돈을 주고 한국 디자이너 옷을 사는 사람이 없던 시절이라 주위 반응도 다들 부 정적이었어요. 게다가 디자인은 키치하고 매장은 이태원에 있었으니,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죠.” 한세나 실장은 슈콤마보니 이보현 대표의 손에 끌려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해요.” 박승건은 2003년 곽두영 대표와 함께 무작정 푸시버튼을 론칭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전 재산의 90% 이상을 투자했죠. 비싼 돈을 주고 한국 디자이너 옷을 사는 사람이 없던 시절이라 주위 반응도 다들 부정적이었어요. 게다가 디자인은 키치하고 매장은 이태원에 있었으니,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죠.” 한세나 실장은 슈콤마보니 이보현 대표의 손에 끌려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2인자가 되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2인자의 위치에서 이 친구와 함께 근사한 걸 해내는 거죠!” 그녀는 소녀처럼 상기된 목소리로 신이 나서 설명했다. 곽두영 대표는 맞은편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순간 공효진의 나른한 말투가 떠올랐다. “셋이 합쳐야 푸시버튼이 돼요.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그 셋은 아마 영원히 함께일걸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2인자가 되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2인자의 위치에서 이 친구와 함께 근사한 걸 해내는 거죠!” 그녀는 소녀처럼 상기된 목소리로 신이 나서 설명했다. 곽두영 대표는 맞은편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순간 공효진의 나른한 말투가 떠올랐다. “셋이 합쳐야 푸시버튼이 돼요.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그 셋은 아마 영원히 함께일걸요?”

“가 장 맛있거나 제일 예쁜 건 나중으로 미뤄두는 편이죠. 처음 런웨이 쇼를 하기로 했을 때 도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보여주기로 했어요. 처음부터 볼 장 다 보면 그다음은 타들어 가는 일만 남을 테니까. 늘 90년대풍 슈퍼모델을 쇼에 세우고 싶었고 때가 됐을 때 경아 에게 피날레를 부탁한 거예요. 우리가 프린트를 절제하고 테일러링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기였죠. 해외 바이어들도 그 컬렉션을 계기로 우리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가장 맛있거나 제일 예쁜 건 나중으로 미뤄두는 편이죠. 처음 런웨이 쇼를 하기로 했을 때도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보여주기로 했어요. 처음부터 볼 장 다 보면 그다음은 타들어 가는 일만 남을 테니까. 늘 90년대풍 슈퍼모델을 쇼에 세우고 싶었고 때가 됐을 때 경아에게 피날레를 부탁한 거예요. 우리가 프린트를 절제하고 테일러링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기였죠. 해외 바이어들도 그 컬렉션을 계기로 우리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덜컹! 스튜디오 철문이 열리자 왁자지껄한 무리가 우르르 들이닥쳤다. 누군가 곱슬곱슬한 초콜릿색 털 뭉치를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작은 강아지는 무작정 안쪽을 향해 돌진했다(버튼, 어디 가니!). 제일 먼저 도착한 모델 이지가 휜 나뭇가지 같은 몸을 일으켜 꾸벅 인사하자, 디자이너 박승건은 다짜고짜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박승건은 여차하면 회초리 들 기세고 풀이 죽은 이지의 구부정한 몸은 점점 더 아래로 기울고 있다. 영락없이 엄마가 말 안 듣는 딸을 엄하게 잡는 모양새. 태평하게 푸시를 품에 안은 곽두영 대표, 오자마자 옷 정리에 바쁜 한세나 디자인 실장, 스튜디오를 한가로이 ‘산책’하는 모델 에이전시 ‘신화사’ 신귀란 이사, 긴 다리를 척 꼬고 앉아 특유의 자신만만한 미소를 머금은 모델 송경아. 누구도 이 분위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늘 촬영을 위해 모인 사람 중 그에게 한 번도 이런 ‘취급’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가족이 아닌 남이 나를 챙겨준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패션을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화려한 삶을 동경하진 않아요. 소박하고 인간적인 게 좋죠. 유유상종이라고, 친구들도 다 그래요. 신귀란 이사도 낯을 몹시 가리는 편이고. 민호는 어릴 때부터 봐왔어요. 어리지만 착한 친구죠. 자기 일처럼 잘 도와주거든요. 아, 그러고 보니 이번 봄 컬렉션 땐 네가 쇼에 서지 않았구나. 미안.” 조금 후에 도착한 모델 조민호는 어깨를 으쓱할 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왠지 심심해 보이는 그는 팀의 막냇동생처럼 바쁜 형과 누나 뒤를 어슬렁거리며 따라다니는 중이다. 이 묘한 조합은 각기 개성이 다른 구성원으로 이뤄진 모던한 가족 같다. 박승건은 독립 디자이너로 10여 년간 성실하게 자기 브랜드를 전개해왔고 최근 해외시장에서도 그에게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서울의 감각적인 컨템퍼러리 브랜드로 이름을 알렸다면, 하이엔드 디자이너 브랜드로 올라서는 단계에 이제 막 들어선 시점이다.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해요.” 박승건은 2003년 곽두영 대표와 함께 무작정 푸시버튼을 론칭하던 당시를 떠올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전 재산의 90% 이상을 투자했죠. 비싼 돈을 주고 한국 디자이너 옷을 사는 사람이 없던 시절이라 주위 반응도 다들 부정적이었어요. 게다가 디자인은 키치하고 매장은 이태원에 있었으니, 말 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죠.” 그는 그저 어디에 내놔도 부끄럽지 않을 예쁜 매장 하나 갖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고백했다. 친구들은 앤티크 가구점 사이에 새벽까지 불이 켜진 그의 작업실로 밤마다 불나방처럼 모여들었다. 한세나 실장은 슈콤마보니 이보현 대표의 손에 끌려 이곳에 발을 들여놓았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국내 패션 회사에 취직했을 무렵이에요. 당시만 해도 대기업에 들어가 연봉 많이 받으며 일하는 게 전부라고 여겼는데. 정신적 충격이었죠. 그냥 이 사람이 멋진 일을 하는 데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러나 번듯한 대기업 건물에 익숙해 있다가 주먹구구식 소규모 스튜디오로 출근한다는 건 쉬운 결심이 아니다. 그녀는 작은 비밀을 털어놓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2인자가 되는 게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2인자의 위치에서 이 친구와 함께 근사한 걸 해내는 거죠!” 그녀는 소녀처럼 상기된 목소리로 신이 나서 설명했다. 곽두영 대표는 맞은편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다. 순간 공효진의 나른한 말투가 떠올랐다. “셋이 합쳐야 푸시버튼이 돼요. 어찌나 죽이 잘 맞는지. 그 셋은 아마 영원히 함께일걸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셋은 지지고 볶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서 정말이지 찹쌀떡처럼 딱 달라붙은 건지도 모르겠다. 함께 일을 시작한 초기만 해도 헤드 디자이너 한세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박승건이 설명하는 컬렉션 주제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옥신각신하는 일이 다반사였으니까. “가령 이런 식이죠. ‘동이 트는 새벽 무렵, 한 여자가 얇은 슬립 드레스를 입고 남자 옷 같은 큼지막한 코트를 걸친 채, 한쪽 손에 여행 가방을 들고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어. 굵게 세팅한 머리는 이미 풀렸지만 화장은 여전히 진해. 밤을 위해 꾸민 것은 낮이 되자 낯설어 보이지. 커다란 가방에는 지난밤 그녀에 대한 것이 담겨 있고.’ 그런 애잔하면서 에로틱한 느낌을 살려 보이프렌드 핏 코트와 시즌리스 실크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는데, 그래서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종잡을 수가 있어야죠!”

박승건은 영화나 소설 속 한 장면 같은 이야기를 하며 답답해하고, 한세나는 소재, 컬러, 실루엣 등 구체적 힌트를 달라는 통에 한창 애를 먹었지만 이젠 아이디어를 주면 그걸 다양한 옷으로 ‘번역’하는 작업을 즐기는 수준에 도달했다. “요즘은 좀더 이야기해달라고 조를 정도예요.” 최근 몇 시즌 동안은 컬렉션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지난 시즌에야 방법을 찾았다며 안도의 한숨을 휴, 내쉬었다. “두 시즌 전만 해도 정말 지옥 같았죠! 한세나 실장 덕분에 온전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됐어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고 객관적 입장에서 스타일링까지 한다는 건 불가능해요. 게다가 쇼를 위한 배경음악, 무대를 어떻게 꾸밀지 구상하는 등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해야 할 일도 잔뜩 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좋은…” 그는 적절한 단어를 찾기 위해 잠시 머뭇거리다가 익살맞은 표정으로 말했다. “‘삼합’이에요!”

대체로 말없이 빙글빙글 웃는 편인 곽두영 대표는 푸시버튼이 지금까지 큰 부침 없이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종종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다른 독립 디자이너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게 그의 존재. 2인 구도로 시작했지만 곽 대표는 처음부터 전적으로 경영 관리를 담당해왔다. 게다가 그는 디자이너의 비전에 단 한 번도 이의를 제기한 적이 없다. “그때나 지금이나 푸시버튼 스타일이 굉장히 독특하고 어떤 면에서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어요. 상황에 맞춰 최대한 이익을 낼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게 제 몫이죠.”

때때로 시장성이 낮은 제품의 수량을 제한하거나 접근이 쉽도록 디자인 변경을 건의하기도 하지만, 패션 브랜드인 푸시버튼에서 디자인팀의 입김이 가장 센 건 당연한 일이다. “다른 디자이너들처럼 우리도 작업실 한쪽에 시즌이 지나 못 쓰는 옷감이 쌓여 있죠. 옆에서 관리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손해를 덜 보긴 하지만. 우리는 매 시즌 원단 80% 이상을 직접 개발해요. 자카드도 새로 짜고, 2011년 봄 컬렉션의 바나나 잎 프린트를 실크스크린 12도로 제작할 땐 정말 말도 마세요. 어마어마했다니까요!” 당시를 떠올리면 다들 넌더리가 난다는 듯한 표정이지만, 온갖 방식을 모두 시도해본 다음 더 완벽하게 실현하기 위해 집요하게 탐색하는 과정은 매 시즌 어김없이 반복된다.

국내에서 푸시버튼이 처음으로 선보이고 시장을 개척한 인조 모피도 예외가 아니다. 박승건이 반려견 푸시와 버튼이를 키우면서 진짜 모피를 쓰지 않게 된 건 잘 알려진 이야기다. “북미모피협회 NAFA와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동물의 몸에서 벗겨낸 형태 그대로인 가죽이 눈앞에 쌓이는데 아찔하더라고요. 그때 에코 퍼를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실행에 옮기는 과정이 너무 험난했습니다. 진짜 모피는 구하기도 쉽고 작업도 용이한 데 반해, 에코 퍼는 원단부터 주문 제작해야 하기에 훨씬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작업이에요. 검색하고 또 검색해서 제조사 세 곳을 찾았는데, 그 가운데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고 우리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해준 곳이 ‘경원’이었죠.” 인조 모피 전문 회사 경원은 최근까지 털 빠짐이 적고 촉감이 좋은 일본 수출용 원단을 박승건에게만 특별히 제공하기도 했다(몇 년 전, 멀티숍 ‘마이분’에서 열린 <보그> 인조 모피 프로젝트를 위해 우리는 푸시버튼에 도움을 청했고, 박승건이 소개한 경원에서 인조 모피를 제공받았다).

이렇듯 기본적 가치를 향한 숨은 노력은 ‘키치하고 빈티지스럽다’는 초기 이미지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2011년 가을 ‘퍼 이즈 오버’ 컬렉션의 반향에 이어 2013년 가을 ‘패-피’ 컬렉션은 패션계가 푸시버튼의 위치를 재점검하게 한 쇼였다. 그리고 이를 예감한 듯 박승건도 그동안 아껴둔 비장의 무기를 야심 차게 선보였다. “가장 맛있거나 제일 예쁜 건 나중으로 미뤄두는 편이죠. 처음 런웨이 쇼를 하기로 했을 때도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보여주기로 했어요. 처음부터 볼 장 다 보면 그다음은 타들어가는 일만 남을 테니까. 늘 90년대풍 슈퍼모델을 쇼에 세우고 싶었고 때가 됐을 때 경아에게 피날레를 부탁한 거예요. 우리가 프린트를 절제하고 테일러링에 집중하기 시작한 시기였죠. 해외 바이어들도 그 컬렉션을 계기로 우리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성장한 푸시버튼이 현재 스코어로 국내 디자이너 레이블을 욕심내는 이들에게 가장 먹음직스러운 사냥감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셋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나누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꽤 많은 곳에서 접근해왔어요. 1년 전엔 놀랄 만한 대기업의 제안을 거듭 거절한 적도 있죠. 늘 이슈가 되는 건 디자이너로서 제가 원하는 전개 방향이 뚜렷하고, 그에 있어서 타협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곽두영 대표는 소규모 기업에게 투자는 위험한 시도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어느 디자이너는 투자자에게 브랜드를 뺏기는 통에 서울 패션 위크 때 쇼를 돌연 취소했다. 그러고 보면 푸시버튼이 지금까지 자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그동안 투자자나 대기업의 브랜드 인수를 심각하게 고려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인지 모른다. 그래도 한세나 팀장은 대기업의 제안을 거절한 게 못내 아쉽고, 곽두영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머릿속이 복잡한 표정. 갑자기 둘이 말이 없어지자, 박승건은 복잡한 건 딱 질색이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우리가 자생을 잘해서 투자가 안 들어오는 건지, 투자를 못 받아 자생하게 된 건진 모르겠어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질문이죠. 지금까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며 실질적 판매를 이뤄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그동안 선례도 많아졌으니, 앞으로 들어오는 제안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검토할 준비도 돼 있죠.”

크게 욕심내지 않겠다는 듯 시원스레 말하지만, 최근 브랜드 성장 속도에 가속이 붙고 해외에 이름을 알릴수록 대형 자본의 필요성을 실감하는 중이라고 실토했다. 뉴욕 매장에서 바잉을 요청하거나 해외 셀럽 측에서 컬렉션 룩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오면 늘 뉴욕, 런던, 파리 중 어디에 쇼룸이 있느냐는 질문에서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겠다는 열망을 품은 건 아니에요. 한국을 기반으로 하더라도 그런 브랜드와 비교할 때 뒤처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죠. 하지만 브랜드가 노화되거나 필요성이 떨어지기 전에 한 번쯤은 해외 진출을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와, 디자이너 박승건의 연락에 설날 연휴의 큰집처럼 옹기종기 모인 멤버들은 다들 자기 일만으로도 충분히 바쁘다. 그러나 이들을 빼놓을 수 없는 건 나름의 방식으로 푸시버튼의 일부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패션계의 라이징 스타인 이지는 박승건이 김나영에 이어 두 번째로 만들어낸 신화적 패션 아이콘이자 송경아를 잇는 푸시버튼의 뮤즈다. 그녀가 봄 컬렉션 피날레를 장식한 직후 모두가 그녀의 존재를 궁금해했고 눈 뜨고 일어나니 세상이 달라져 있더라는 말처럼 매일 그녀는 새로운 패션계를 경험하고 있다. 신귀란은 한마디로 이 바닥에서 찾은 둘도 없는 친구다. 일로 보는 것보다 먹고, 놀고, 마시기 위해 만나는 횟수가 훨씬 많다. 친구 사이에 대해 굳이 구구절절 설명이 필요할까? 다들 촬영용 호라이즌 옆 모니터에 달라붙어 코믹하게 나온 신귀란 이사의 포트레이트 사진에 스튜디오가 떠나가라 박장대소 중이다.

그리고 오늘 촬영에 참여한 ‘셀러브리티’들. 사실 뮤지션 선우정아는 이 자리에서 푸시버튼과 가장 ‘체면 차리는’ 사이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 역시 끈끈한 사이가 될 전망. “패션 파티에서 만나 처음 인사하고 아직까지는 서로를 공식적인 자리에 초대한 게 전부예요. 어제 ‘대한포도주장미연합회’ 공연에 와주셨죠.” 평소 그녀의 음악을 좋아하던 박승건은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옛날 여가수의 노래를 알려줬고, 선우정아는 어제 공연에서 그 노래를 직접 불렀다. 어딘지 모르게 4차원의 기운을 풍기는 그녀는 푸시버튼을 음악에 비유해줄 수 있느냐는 의례적 질문에 열정적으로 답했다. “푸시버튼의 최근 컬렉션은 모두 봤어요. 미카 음악이 떠올랐는데, 거기에 굉장히 언더적인 소프트 록이 섞여 있죠. 좀 역설적 표현이지만 푸시버튼은 판타지한 동시에 일상적이니까요. 일렉트릭 기타 사운드, 늘어지는 드림 비트 같은 환상적인 색감의 사운드도 공존해야 해요.”

푸시버튼 3남매가 인복을 타고난 건 확실하다. 촬영장에서 이동휘를 보게 될 줄이야. 곽두영 대표와 디자이너 박승건은 살다 보니 별일 다 있다는 표정으로 “친한 동생이 잘돼서 좋고, 얼떨결에 그 덕을 봐서 더 좋다”는 간단명료한 소감. 이동휘와는 배우로 데뷔하기 훨씬 전부터 알고 지내온 사이다. <응답하라 1988>의 동룡이는 알고 보니 9년 전 싸이월드 시절부터 이미 패셔니스타였다. 뜨고 나서 갑자기 친해진 게 아닌가 싶었는데, 사진 찍는 걸 좋아하던 20대 청년은 온전히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그동안 푸시버튼과 엮이는 걸 정중히 거절해왔다. “한편으로 죄송하기도 했지만, 배우로 인정받게 됐을 때 당당하게 나서고 싶었어요. 그게 늘 잘 대해준 두영이 형과 승건 디렉터님한테 보답하는 방법이라고 여겼거든요. 이제 막 배우의 길에 들어섰지만 스스로도 제 직업이 배우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겨서 이번 기획에 기꺼이 참여하겠다고 했어요.” 그의 패셔니스타 명성은 싸이월드에서 인스타그램으로 이동했고, 그의 취향은 푸시버튼과 구찌, 크리스토퍼 케인을 넘나든다. 차분한 목소리로 “안전한 것보다 재미있는 게 좋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것보다 어느 한 군데가 흐트러진 게 좋다”니, 그는 내공이 예사롭지 않은, 타고난 내추럴 본 패셔니스타다. 방언 터지듯 술술 흘러나온 그의 패션에 대한 식견과 애정은 배우로서 그의 이미지를 위해 혼자 간직하겠다.

마지막으로, 빠질 수 없는 공효진. 박승건과 순수한 친구 사이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 관계를 끊임없이 의심받는 1인이다. 그만큼 그녀가 패션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우리가 친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정 부분 이해관계에 의해 얽혀 있다고 믿는 거 같아요. 그렇지만 승건 오빠는 제가 도움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죠. 의논할 대상이 필요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고 언제든 부담 없이 부탁할 수 있는 친구. 사람들은 늘 잘된 부분만 보지만, 친구니까 서로 도와주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아요.” 남들이 뭐라든 그녀는 우울하거나 기분이 처질 때 그를 찾아가고, 크리스마스 밤을 함께 보내며, 누구한테도 말 못하는 온갖 속내를 털어놓는다. 그리고 푸시버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도 속속들이 알고 있다. “푸시버튼은 소재나 핏, 실루엣 어디 하나 아쉬운 부분이 없다는 게 장점이죠. 옷을 좋아하고 많이 입다 보면 이건 이래서 아쉽고, 저건 저런 부분이 모자라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인데, 푸시버튼 옷은 지적할 부분이 없어요. 완성도가 높죠.”

열 명의 멤버는 부드러운 바람이 느껴지는 봄 컬렉션 룩으로 갈아입었다. 이번 컬렉션은 프린트를 배제하고 일상적인 하이패션을 표현하는 게 컨셉. 박승건과 한세나 실장은 충분히 디자인한 다음 그중에서 쇼에 선보일 옷을 골랐다. 바이어들에게는 디자인한 룩 전부를 제안해서 선택 가능항을 늘렸다.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거 같아요. 다음 단계에 가려고 하는데, 그 한 칸이 크게 느껴지네요. 레드 카펫의 폭이 긴 계단처럼, 그 한 칸에 오르고 나면 한동안 평지가 나오겠죠?” 촬영이 끝난 후에도 모두가 한참을 모니터 앞에 머물다 떠났다. 오늘 우리는 푸시버튼의 전반전을 돌아봤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