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 멘키스가 품평한 2016 F/W 파리 패션위크 – 정체성에 관한 의문

디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공석으로 남아있는 채로, 랑방도 마찬가지며 에디 슬리먼이 생 로랑을 떠나 다시 사진작가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흉흉한 루머가 도는 가운데 파리 컬렉션은 점점 더 어디선가 빌려온 정체성의 전시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는 다음의 낡은 브랜드들이 볼품없었다는 뜻은 아니다. 때론 정반대의 것이 진실일 수도 있다

메종 마르지엘라: 갈리아노가 해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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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존 갈리아노가 자신의 열정적인 광기와 마르지엘라의 고매한 엄숙함을 잘 조합해 훌륭한 컬렉션을 만들어냈다.

꽤나 오랜 시간이었다. 나는 이 두 정반대의 영혼이 맺어지는 건 절대 있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었다. 갈리아노에겐 장식에 대한 강렬한 욕구와 패션적 광기의 기질이 있었고 마르지엘라는 우아한 재단과 예술적인 재생이란 유산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그러나 갈리아노는 짠!하고 이 컬렉션을 내놓았고 솔리드 울코트나 스웨터와 매끄럽고 번들거리는 소재 간의 믹스는 매우 효과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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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리아노의 야성적인 기준에 의해 의상의 정상적인 정도는 차이를 두고 있었다. 두꺼운 니트로 만들어진 암워머는 팔꿈치까지 닿았고, 단순한 톱과 스커트에는 기이한 무지갯빛이 감도는 등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흥미로운 효과들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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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인사조차 하지않고 은둔하고 있는 갈리아노는 쇼 노트를 통해 그가 메종 마르지엘라의 디자인적인 요소와 테크닉을 이해하기 위해 공부했다고 말했다. “전통적인 질서는 감정 및 인간적인 결함의 효과 때문에 방해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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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브릭을 별안간 끼워 넣거나 소재를 벌리거나 뜯어내는 의미가 아주 잘 설명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정교하고 명랑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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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가 생긴 이래 갈리아노는 마틴 마르지엘라의 전통과 맺은 관계를 즐기게 된 걸까. 어쩌면 이들은 만나기까지 한 듯 하다. 경로에서 벗어났던 훌륭한 디자이너 갈리아노는 분명 제자리로 돌아온 듯 보였다.

꾸레주: 편안한 옷 여남은 벌

올해 초 앙드레 꾸레주의 죽음은 우주여행을 꿈꾸던 1960년대의 그늘에서 젊은 패션을 고안해냈던 디자이너를 다시 주목 받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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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꾸레주를 잇기 위해 자신들의 브랜드를 포기한 디자이너 듀오 아르노 바양과 세바스티앙 메예르는 이미 지난 시즌에 메시지를 던졌다. 바로 ‘베이직’이었다. 각이 진 미니스커트와 크롭트 바이커 재킷, 통이 좁은 팬츠, 그리고 무채색과 혼합된 비비드한 컬러 등 똑같은 의상 아이템을 매개체로 이 듀오는 무대 배경으로서 각 카테고리에 커다란 사진들을 채워 넣었다.

IMG_0918만약 이 모든 게 온라인 쇼핑몰의 스크린 샷처럼 보였다면? 사실 바로 그게 의도였다. 꾸레쥬 옷의 1/3은 ‘씨 나우 바이 나우’ 라는 최신 트렌드에 맞춰 곧장 판매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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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옷들은 진정 꾸레주다웠다. 패션계에 있는 모든 이들이 알듯, 패스트 패션 기업이 개입하기 전까지만 그 창조물을 보유할 수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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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디자이너들은 새천년 이후 기술 혁명을 통해 살아가면서, 그저 요람 속에서나 기지개를 펼 수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디자인을 현대화할 수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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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방식으로 제작하고 팔 수 있다는 건 좋은 감각이다. 나는 꾸레주의 60년대가 인기를 얻길 바란다. 그러나 현 세대의 느낌과 감정을 더 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과거로부터 기술적으로 새로이 변신한 스마트 패션보다는 말이다.

안토니 바카렐로: 소재보다 더 눈에 띄는 가십

만약 에디 슬리먼이 생 로랑을 떠난다면, 그가 과연 그 자리로 가게 될까?

개인적으로,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안토니 바카렐로 쇼의 프론트로에서 벌어진 토론의 주요 의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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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 바카렐로는 여느 때처럼 섹시 파워 우먼 룩을 선보이고 있었다. 바카렐로가 선보이는 관능적인 스포티 스타일은 이미 베르수스 라인의 디자이너로 그를 발탁한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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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가 그 익숙한 블랙과 살색의 퍼레이드를 뒤에 남긴 채 떠날 거라는 신호들이 있었다. 그의 컬렉션에는 심지어 반짝이는 슬래시 팬츠, 올리브그린의 테일러드 팬츠, 그리고 전면과 중앙이 빨간색과 파란색 꽃잎으로 장식된 스웨터나 스커트까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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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하얀색 퍼는 우리에게 익숙한 검은색의 딱 달라붙는 의상들에 더해졌다.

바카렐로가 보내는 주요 메시지는 여전했다. 벌거벗은 다리들은 하이힐 위에서 균형 잡고 있었고 드레스들에는 쇠붙이 장식품이 달려있었다. 이번 시즌엔 모델들이 반짝이는 보석들을 달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눈길을 끌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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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바카렐로는 아직 자신의 모든 걸 내놓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마도,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더 큰 무대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자크무스: 모양으로 놀아요

모든 것들이 타협없이 직선이나 곡선으로 되어 있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러면 디자이너 시몬 포르트 자크무스가 만드는 희한하게 어린아이 같은 세상을 만나게 될 것이다. 

LVMH로부터 특별상을 수상한 이 디자이너는 그 상금을 지혜롭게 쓴 듯하다. 이전까지 그가 선보이던 작업에서의 의도적인 틈새와 구멍들이 채워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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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구성을 한 것이지요.” 자크무스는 백스테이지에서 자신의 디자인을 가져와 바디라인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만든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틀로 형상을 만든 숄더 스트랩은 어깨 위에서 굽어져 옷걸이 같은 효과를 냈다. 또는 수트 재킷은 너무나 오버사이즈여서 마치 골판지를 잘라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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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신나고 어린아이 같은 옷들의 향연은 둥글거나 네모진 구두 굽들을 포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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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정도 데자뷰를 느꼈음을 인정해야만 하겠다. 특히나 초기 마틴 마르지엘라의 스퀘어 컷이나 카와쿠보 레이가 선보이던 절개와 해체의 긴 역사를 되짚어보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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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6세의 나이에 자크무스는 진심 어린 순수함을 가지고 있으며 그의 작품들은 매혹적이다. 꼿꼿하게 선 케이프 드레스와 같이 어떤 옷들은 그저 사랑스럽다.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물었다.

제 작품은 네모와 동그라미예요. 그래서 나는 이러한 모양과 디자인 등을 강조하려 노력했죠. 수많은 옷을 상상해내고, 그걸 입어보고, 꼴라쥬를 하는 어린이들이 있고, 그걸로 재미있게 놀고 – 그런 아이디어였어요.” 그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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