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현진의 작품은 그가 통과한 시간 자체다

죽었다 살아난 예술가의 몇 년이 그림과 노래에 담겼다. 백현진의 작품은 순간에 무섭도록 집중한 결과물이자 그가 통과한 시간 그 자체다.

죽었다 살아난 예술가의 몇 년이 그림과 노래에 담겼다. 백현진의 작품은 순간에 무섭도록 집중한 결과물이자 그가 통과한 시간 그 자체다.

백현진은 최근 두 달 동안 두 가지 ‘물건’을 세상에 내놨다. 방준석과 프로젝트 그룹 ‘방백’을 결성해 첫 앨범 <너의 손>을 발표했고, 2년 동안 작업한 그림을 모아 PKM갤러리에서 전시 <들과 새와 개와 재능>을 선보인다. 어어부 프로젝트부터 백현진의 까슬까슬한 음악을 듣던 사람이라면 방백을 두고 ‘변화’라고 말할 것이고, 초창기부터 그의 그림을 보던 사람이라면 이번 전시를 두고 ‘다시 만난 백현진의 세계’라고 말할 것이다. 우연히 비슷한 시기에 세상에 나왔지만, 실제로도 백현진은 입으로 음악을 흥얼거리고 손으로 붓질하는 작업 방식을 취해왔다. 물론 의도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 시대를 살면서 그에게 보이는 것 중 음률과 언어로 나와야 할 것과 그림으로 나와야 할 것의 속성이 달랐을 뿐이다. 혹자는 백현진을 두고 천재, 기인, 괴물이라는 표현을 쓰지만 그건 설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세상이 급한 대로 갖다 쓰는 단어에 가깝다. 백현진은 그저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는 물건을 세상에 내놓는다. 물건에 매뉴얼은 없다. 사용자에게 쓸모를 맡긴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물건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방백 앨범 재킷 사진이 잘 나왔다. 산에서 찍은 듯하다. 요즘 일주일에 3일 이상 가는 산이다. 연희동에 있는 안산. 노래하고 붓질하는 일은 곧 몸을 쓰는 일이다. 나이 먹으니 하루에 2시간씩 걸으면 일할 때 확실히 편하다.

이번 작품에는 얼굴 같은 그 무엇이 사라졌다.
예전 작품에 똥글똥글한 얼굴 같은 게 있었다. 좋아하는 선배이자 날 긴장시키는 유일한 화가가 황세준이다. 미술계에서 말하는 구분에 관심이 없는데 며칠 전에 그분이 전시를 보고 ‘구상’ ‘추상’ 중간을 ‘비구상’이라고 한다고 알려줬다. 예전에 내 그림은 ‘비구상’ 같았는데 이번에는 더 ‘추상’ 같다고. 내 그림에 굳이 태그를 붙이면 그 정도 된다는 걸 알았다. 나에게 그림은, 그냥 ‘보이는 어떤 것’이다.

전시 제목 ‘들과 새와 개와 재능’은 전시를 어떻게 포괄하나.
나는 스스로 어떻게 사는지 가끔 생각한다. 그냥 이렇게 저렇게 산다. 순간순간에 집중하려고 하고, 마음먹은 대로 안 된다고 낙담했다가, 으쓱했다가, 으쓱하는 것도 나이 먹고 할일이 아니라고 반성도 한다. 캔버스에서도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내가 사는 삶과 작업이 닮아야 한다고 믿는다. 평론가도 묻고 큐레이터도 묻고 진짜 잘 나간다는 디렉터들도 묻는다. “이번 전시를 몇 가지로 말씀해주세요”라는 질문은 ‘삶의 방향이 뭐예요?’라고 묻는 것 같다. 삶의 방향은 몇 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홍상수 감독이 영화에서 말하려는 게 뭐냐고 질문 받을 때마다 “한두 가지 소재로 접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듯 나도 그렇다. 관람객들은 “이렇게 봤는데 이게 맞나요?”라고 묻곤 한다. 내가 하는 작업은 퀴즈가 아니다. 맞고 틀리고가 없다. 보는 사람이 보는 대로 보는 게 맞다. 제발 그러길 희망한다.

작품을 보고 뭔가 즉각적으로 떠오르지 않을 때, 자신들이 포착하지 못한 감정을 작가가 갖고 있는 게 아닐까 묻는 경우가 많다.
차라리 ‘이 그림을 그릴 때 어떠셨어요?’라고 물으면 꼼꼼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뭔지 모르겠지만 계속이 생각, 저 생각 나고 멍하게 바라보게 되는 물건을 만들고 싶다. 하지만 그림을 보고 아무 생각이 안 난다면 내가 화가로서 실패한 거다.

예전엔 감정 중에 ‘분노’의 비중이 가장 높았고 그걸 표현해낸 작품이 많았다.
청년이었을 때 나는 분노 덩어리였다. 그 정도 분노가 있으면 보통은 절단이 난다. 실제로 마음도 그렇게 먹고 살았다. 살다가 죽으면 죽는 거지 그랬는데 다행히 친구들이랑 계속 농담하고 말 따 먹기 하면서 균형을 맞춘 것 같다. 분노와 농담의 힘으로 청년기를 통과한 것 같다.

이번에 전시한 그림은 최근 2년 동안 작업한 것이다. 그 기간 동안 감정 상태의 키워드를 꼽아본다면.
과수면. 우디 앨런 영화를 보면 늘 나오는 우울증이 나도 있었다. 1년 반, 2년 가까이 잤다. 그러다가 너무 한심해서, 허리가 아파서 간신히 일어나서 한 작업이 ‘죽었다 살아난’이다. 패턴처럼 보이는 걸 가지고 패턴이 될 수 없는 뭔가를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간신히 오일 페이퍼에 그림을 그리면서 이번 전시가 된 거다. 여기서 뽑아낼 수 있는 단어는 ‘낙담’ , 낱말은 아니지만 ‘냉소 같은 걸 걷어내려고 살았다’ 정도. 독한 입을 가졌다는 말을 듣고 살았는데, 냉소를 청소하려고 신경 쓰면서 보냈다. 그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고 방백의 곡을 만들었다.

삶에서 왜 냉소를 걷어내기로 했나.
할 만큼 했다. 술로 치면 마실 만큼 마셨다. ‘해봤자구나’도 있다. 하지만 냉소가 쓸데없는 거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수는 없다. 지금 내 문맥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청년들에게 냉소는 여전히 굉장히 유용할 거다. 나이 먹으니까 언어로 뭔가를 표현하는 게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러다가 이준규 같은 시인이 언어 다루는 걸 보면 이렇게까지 헛소리를 안 하고 일을 볼 수 있구나 감동적이다. 계속 들춰보다가 이번에 도록의 글도 부탁하게 됐다. 예전에는 이른바 글발 있는 평론가가 내 작업과 링크돼서 조금 더 힘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런 게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분간 혹은 앞으로 나에게 평론은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것 같다.

당신이 말하는 ‘Doing for Nothing’의 연장선인가.
작업으로 얘기하자면 덜 담아보려는 일이다. 별거 아닌 걸 위해 하는 것. 그런 그림을 정말 그리고 싶다. 감이 왔고 조금 맛을 봤다. 이번 전시도 그림에 대해 설명하기보다 ‘화가로서 앞으로 뭔가를 안 담는 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게 가장 공갈 안 치고 성의껏 내놓을 수 있는 문장이다. 이런 말을 하면 ‘그리지 마시죠’라고들 한다. 그래서 실제로 안 그려본 적도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 예술가에 대한 동경과 열망 같은 걸로 점철되어 형성된 사람이기에 아직은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못 견딘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뭐라도 하는 건데 뭘 하려고 하는 건 아닌 거다. 다행히 요즘에는 그게 밥벌이도 되니 운이 좋구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까불지 않고 일을 보려고 한다. 그림 그릴 때처럼 뭘 안 써보려고 한 곡이 방백의 ‘심정’이다. 가사를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하루 10시간씩 작업한다고 들었다. 부지런함이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깝겠다.
술을 2년 정도 안 마셨는데 그럼 그냥 작업실에 있는 거다. 노래를 흥얼대면서 그렸다 지우는 과정 속에 있었다. 나는 체계가 없다. 어떤 면에서는 체계가 더 없어졌으면 좋겠다. 시간도 일종의 약속 체계이니 시간마저 상관없이 살아보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이 열불을 낼 테니 이해를 구해야겠지만.

또 하나의 시도가 되겠다.
그냥 삶의 방향이다. 궁극적으로 어떤 노인이 되고 싶으니까 이러는 거다. 어떤 예술가, 화가, 가수가 되고 싶다는 얘기는 전혀 아니다.

그림을 그리며 동시에 곡 작업을 한다. 같은 감정이 방백의 음악으로 나온 걸까.
일정 부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솔로가 아니라서 방준석 씨, 참여한 뮤지션들이 모두 섞여 나온 작업이다. 95년부터 공연하면서 이 정도로 다 어우러져서 음악이 되는구나 강하게 경험한 건 처음이다.

합을 잘 이룬 거다.
준석이 형이 자신의 삶에서 그런 걸 원하는 것 같다. ‘합’ ‘삶’ ‘터’ ‘함께’ 같은 것.

방백 앨범을 두고 어른의 노래라고들 한다. 어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데 조심스럽진 않았을까.
세월호 사건 이후에 정신 좀 제대로 차리고 살아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낀 부분이다. 도대체 어른이란 뭘까. 우리가 어른으로 운 좋게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데 이래도 되는 걸까. 도대체 이런 시절에 어른이란 무엇인가가 화두가 된 것 같다. 친구들과 끊임없이 고민하다가 청년기에 작업하던 것과 다른 볼일도 보자 했다. 앞으로 이렇게 살겠다는 건 아니다.

어어부 프로젝트나 솔로 앨범과는 색깔이 많이 다르다.
음악이 따뜻하다는 얘길 들었다. 솔로 앨범 듣던 사람들은 적응이 안 된다고도 했다. 준석이 형이랑 쉽고 평범한 물건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올해 말에 낼 솔로 앨범은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물건이 나올 거 같다.

개인적으로 ‘다짐’ 가사가 많이 와 닿았다.
서른 넘은 사람들한테 그런가 보다. 가사를 보고 본인 얘기냐고 물어들 보는데 물론 내 얘기도 있다. 기본적으로 어떤 작가도 자기 얘길 온전히 글로 담진 못한다. 자기 얘기, 친구 얘기, 모르는 유형의 사람에게서도 나올법한 얘기 모두 차근차근 기록해본 거다.

당신의 음악에서 엉망진창, 쓸쓸함, 개차반 같은 감정은 모자란 자식처럼 보듬어줘야할 감정일까.
특별한 걸 찾아낸 게 아니고 대도시에 존재하는, 말 그대로 쓸쓸하고 엉망진창인 감정이다. 작업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서 환기하는 건 그런 감정은 기본 속성이고, 그게 꼭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거다.

사실 어제 솔로 앨범을 듣다가 순댓국을 먹으러 갔다. 여전히 순댓국을 즐겨 먹나.
권오상이라는 작가가 있다. 그 녀석이 말해줬는데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 내가 ‘밥 먹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더라. ‘순댓국 먹으러 가자’가 ‘밥 먹으러 가자’는 얘기였단다. 일주일에 대여섯 번은 먹은 것 같다. 영혼의 음식이라고 했다. 지금은 속이 많이 부대껴서 줄였지만 여전히 순댓국을 둘러싼 수많은 정서를 사랑한다.

당신 음악에서는 다른 곳이 아닌 서울이 보인다.
우디 앨런이 뉴욕에 대해 계속 얘기하는 걸 보고 되게 좋았다. 자기 동네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되게 예쁜 일이구나, 미덕 있는 일이구나 해서 서울 얘길 계속한 거다.

서울을 두고 징글징글하지만 어여쁘게 여기는 감정이 느껴진다.
서울이 그런 곳이지 않나. 한때 헬싱키에 자주 갈 때 나에게 헬싱키의 반대말이 서울이었다. 서울의 우중충한 도시 색깔이 견디기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왜 서울은 빨간색도 빨간색이 아니고 파란색도 파란색이 아닐까. 그러다가 언젠가부터 서울 색깔이 예뻐 보이는 거다. 우중충한 것도 괜찮고, 아닌 것도 괜찮고. 그래서 생각해봤다. 내가 왜 이럴까. ‘디자인 서울’로 서울이 예뻐진 걸까. 그럴 리가 없다. 그렇게 싫던 종로 간판이 왜 지금은 재미있어 보일까. 내가 바뀐 거다. 지금은 색깔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까지는 알았다. 색깔도 사람들이 정한 거지, 자연이라는 큰 덩어리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그림 작업할 때 컬러를 막 쓰는 거다.

전시 기간 동안 사운드 퍼포먼스 ‘면벽’을 진행한다. 일종의 전시 OST다. 사운드를 들으며 작품을 보니 그림을 그릴 때 마음이 저랬을까 싶더라.
실제 그림 그릴 때 작업실에서 듣던 사운드다. 시각과 청각은 진동으로 감각되는 것이다. 과학책에서 그렇다고 한다. 전시 오프닝에 한 할머니가 오셨는데 진동 때문에 색깔이 계속 달라 보여서 재미있다는 말씀을 하셨다. 현대미술이라는 허깨비가 보이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점이 있는데, 그분은 물리적으로 감각하여 지각한 걸 얘기하더라.

가장 편하게 느끼는 상태의 사운드인가 보다.
맞다. 일종의 엠씨스퀘어 같은 거다. 뇌과학자의 데이터를 따른 게 아니라 내 몸으로 임상 시험을 한 셈이다. 불편하더라도 감각적으로 재미있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체계가 없다. 규칙이 없다. 그럴 때가 있고 저럴 때가 있다. 뭘 더 잘해보려는 건 아니다. ‘궁극의 완성된 삶을 살아야지’가 아니라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보는 거다. 삶의 태도와 작업, 둘 사이 싱크로율을 좀더 높이고 싶다. 그렇게 살아버리고, 그렇게 일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