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미식

계서(鷄黍)에 연포탕, 설하멱적(雪下覓炙)과 간장게장. 미식을 탐하는 인류의 역사는 유구하다. 육해공 가리지 않고 맛난 걸 탐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삼시 세끼 이야기.

계서(鷄黍)에 연포탕, 설하멱적(雪下覓炙)과 간장게장. 미식을 탐하는 인류의 역사는 유구하다. 육해공 가리지 않고 맛난 걸 탐했던 조선시대 사람들의 삼시 세끼 이야기.

조선시대 가정생활서 <산림경제>에는 게장을 담그는 방법이 무려 일곱 가지나 소개되어 있다. 지게미에 게를 넣어 담그는 ‘지게미 게장’,큰 병에 게를 넣고 보릿가루, 누룩가루로 숙성시키는 ‘법해’,양념 천초에 게를 오랜 시간 담가 둬 완성하는 ‘게젓’ 등. 만드는 방법도 게장에 더하는 재료도 다양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 못지않게 게장을 사랑했는데 특히 세종의 총애를 받았던 학자 서거정은 계절 가리지 않고 게장을 찾았다. 그는 심지어 게장에 대한 사랑 고백의 시를 두 편 남기기도 했다. “눈이 가득한 강의 둔덕에 얼음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이때의 게장 가격은 더욱 비싸구나/ 손으로 게를 쪼개 들고 술잔을 드니/ 풍미가 필탁의 집게를 이기는구나.” 게장을 먹고 싶은 마음과 철이 아니라 값이 비싸진 게에 대한 애절함이 묻어나는 시다. 그는 조선시대 독보적인 맛 사냥꾼이었다.

조선시대 최초의 요리사는 태조 때 등장한다. 신분은 천하지만 성실해 태조의 사랑을 받았던 이인수는 상의중추원사란 직함으로 사옹에서 요리를 했다. 그는 365일 태조의 밥상을 관리했고, 다른 지역으로 정벌에 나설 때도 함께했다. 그리고 이 직함은 숙수로 이어진다. 요리뿐 아니라 왕실에서 쓸 채소를 재배하는 일도 담당했던 이들은 온갖 기술로 화려한 음식을 만들어냈다. ‘모로계잡탕’과 ‘부어증’,붕어를 삶아 만든 요리, ‘황자계혼돈’이라는 만두 등이 그 메뉴다. 숙수는 돼지, 소, 닭 구분 없이 모든 손질에 능해야 했으며, 인간의 오장육부도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남자들로만 구성된 숙수는 조선시대 최상위 요리사 집단이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이규보의 시에는 소의 다양한 활용법이 나와 있다. 평소 그는 소고기를 놓고 난로회를 벌일 정도로 소고기 마니아였는데, 그가 쓴 시 구절에는 소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가득하다. “소는 커다란 밭을 능히 가니/ 많은 곡식을 키워낸다네/ 곡식이 없으면 사람이 어떻게 살까?/ 사람의 목숨이 여기에 달렸다네.” 소를 도살하는 게 불법이었음에도 사람들은 소고기를 애용했고, 달단화척, 신백정, 반인 등이 등장하며 시장도 번성했다. 자주 해 먹는 요리는 지금의 불고기. ‘설하멱적’이라 불리는 이 음식은 소고기를 얇게 저며 불판에 구운 걸로 양반들은 추운 겨울날 난로를 끼고 앉아 고기를 구웠다. <홍재전서>에는 난로회의 풍경을 묘사한 시가 나온다. 모여 앉은 다섯 명의 양반들이 젓가락을 놀려 고기를 구워 먹고,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매각갱재축’이란 시를 완성하는 그림이다. 조선시대의 소고기 사랑은 양반, 서민 구별 없이 대단해서 배탈이 잦아 고생했던 정조는 끝내 고기를 끊지 못했다.

조선에서의 미식은 힘과 권력의 과시이기도 했다. 화려하고 진귀한 음식으로 자신의 힘을 자랑하기 좋아했던 일부 선비들은 취향과 상관없이 음식을 탐했고, 로비를 하면서까지 지역의 특산물을 먹으러 다녔다. 이들은 스스로의 식탐에 대해 매우 당당했는데 특히 허균은 성리학의 심성론에 반기를 들며 “먹는 것과 성욕은 사람의 본성이다. 나는 평생 먹을 것만 탐한 사람이다”라고 했다. 주변으로부터 ‘천지간의 괴물’이라 불리며 꽤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허균이 쓴 <도문대작>은 조선시대 최초의 음식, 식재료 품평서다. 허균 못지않게 음식에 조예가 깊었던 사람은 다산 정약용이다. 그는 시를 통해 음식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는데, <다산시문집>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다. “조촐하게 술상을 마주 대하네/ 궁벽한 해변이라 친교 중한데/ 문장도 아름다운 노인 계시네/ 알겠노라 소염통 구워 먹는 게/ 부추밭 가꿈보다 낫다는 것을.” 여기서 구워 먹는다는 염통은 우심적이다. 당시 사대부들은 우심적을 가장 좋아하는 요리로 꼽았고, 서거정은 <필원잡기>에서 “우심적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다”라고 썼다. 소에 대한 사랑이 극진했던 시대다.

허균과 정약용, 이인로와 서거정, 그리고 김문과 추사 김정희. 조선의 미식가는 수두룩하다. 이들은 금육령이 떨어져도 고기를 탐했고, 중국에서 식재료를 구해가며 미식을 즐겼다. 이한이 쓴 <요리하는 조선 남자>에는 인정사정 보지 않고 회를 먹는 모습이 나온다. 횟감으로 사용된 생선으로 전을 부치기도 하고 찜을 하기도, 누르미를 해 먹기도 한다. 수육, 찜, 누르미, 순대 등 고기를 활용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다산 정약용은 전국 각지를 돌며 일종의 ‘맛 지도’를 만들어냈다. 그는 조선 후기 식재료에 대한 전문가였고, 조선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였다. 정약용이 남긴 말 중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정약용은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쌈을 싸서 먹는 것과 절여서 먹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묻기에, 나는 ‘나의 입을 속이는 법이다’”라고 한 일이 있다. 결국 미식은 음식을 대하는 태도고, 먹는 자의 욕심이 음식과 만들어내는 조화다. 조선의 삼시 세끼 속에 인류 미식의 역사가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