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찬리에 방영 중인 예능 프로그램 〈배우학교〉에 이어 3월 말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로 활약을 앞둔 박신양. 5년 만에 안방극장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오랜만이라는 인사에 “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지만, 적어도 그의 복귀작인 ‘선생님’ 노릇은 꽤 납득이 간다.

박신양이 예능 <배우학교>에서 연기 ‘선생님’이 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몇 달 전 의상감독 조상경과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별별 수다를 떨던 중 충무로에서 일한 10년 넘는 동안 조상경을 자극한 단 두 명의 배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중 한 사람이 박신양이었다. “<범죄의 재구성> 때 함께 식사한 적이 있어요. 박신양 씨가 창호와 창혁, 일인이역을 했는데, 밥 먹는 내내 캐릭터 이야기를 했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창호는 이렇다, 창혁이는 이렇다, 둘은 어떻게 다르다 등등. 그 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배우들은 의상감독인 제게 옷 이야기만 해요. 그마저도 안 하는 경우가 많죠. 제게 캐릭터 이야기를 그렇게 진지하게 한 배우는 지금까지도 그가 유일해요.”(그렇다면 나머지 한 사람은? 배우 최민식이었다. 나는 <배우학교>를 보다가 혼자 픽 웃었다. 학생 중 하나였던 유병재가 자기소개 시간에 물색없이 최민식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다.)

어쨌든 <배우학교>를 기대한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이 말이 적어도 박신양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리라는 믿음, 그에 대한 확증이었기 때문이다. 조상경의 ‘증언’이 아니더라도, 박신양이 8년째 꾸려오고 있는 ‘펀(FUN) 장학회’의 존재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는 장학회란 후배들을 응원하는 미약한 방법일 뿐이라고 겸양을 떨었다. 그러나 이는 연기와 배우에 대한 박신양의 믿음이 응축된, 낯설고도 신선한 실천법이다. 재능에 대해서만큼은 판타지가 진실이 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타고났다’는 말은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범함의 세계로부터 차단하고, 격리시키고, 도망가는 용도로 쓰인다. 특히 ‘타고난 연기력’이라는 관용어는 배우들에게 최고의 신화다. 그러나 박신양은 애초에 신화 따위는 믿지 않았다. 그는 시청자들에게 편지를 썼다. “연기를 배우면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반가웠습니다. 배우가 어떤 훈련을 해야 진정한 배우가 될 수 있는지 알려주거나, 배우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세상에 영화와 드라마도, 배우도 무수히 많은데 말이지요…. 그래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결정했습니다….”

첫 회, 박신양의 문답 내레이션은 그간 알 길이 없었던 그의 연기 철학 요약본쯤 된다. ‘배우는 천진난만해야 한다’ ‘배우는 충동덩어리여야 한다’ ‘그 순간에 살아 있지 못하면 연기라고 할 수 없다’ 등의 ‘박신양’표 명언이 방송을 이끈다. 그런데 희한한 현상은 배우 지망생도 아닌 시청자들이 ‘과감하게 실수하자는 걸 목표로 잡자’ 같은 격려의 말을 자기 상황에 적용시킨다는 것이다. 스승이 사라진 시대의 멘토가 절실한 시청자들. 그러므로 ‘연기 미생’들이 실수하고, 혼나고, 배우고, 교감하는 <배우학교>가 ‘사제지간 성장 드라마’가 될 가능성은 농후하다. 그렇게 되면 박신양이 지금껏 한국 배우의 지형도에서 점해온 독특한 위치, 어떤 배우와도 비슷하지 않고, 어떤 분류로도 설명될 수 없는 고유함은 어떤 색을 띠게 될까? 물론 “tvN에 생길(지 모르는) 연예대상에서 예능 부문 신인상을 노리고 있다”는 농담 반의 바람이 이뤄진다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 말이다.

첫 회 유병재 학생에게 “촬영하러 왔나, 연기 배우러 왔나”라고 일침을 놓았어요. 신선한 혼란이었어요. 보는 입장에서도 예능과 리얼 다큐 사이 어딘가에서 헷갈리고 있었거든요.
제 입장에서도 가장 예측 불허한 지점은 과연 연기를 가르치고 배우는 걸 예능으로 할 수 있는가였어요.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이고 막연한 불안감은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셌어요. 긴장감이 느껴진 데는 선생이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상황 때문만이 아닌 다른 이유가 있었군요. 이 친구들과는 일면식조차 없었어요. 연기를 배운다, 가르친다는 건 양쪽 모두 솔직한 상황이 되지 않으면 다 거짓말이거든요. 촬영에 들어가면서 선택할 수밖에 없었죠. 진심으로 배우고 가르칠 것이냐, 배우고 가르치는 척할 것이냐. 그리고 제 선택은 당연히 뭐….

특히 우려한 건 무엇이었나요?
제작진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연기 교육을 한다는 게 생각보다 심각한 일이다, 많은 이들이 연기에 대해 그렇게 심도 있는 자기 검증, 고민, 회의를 안 한다, 그래서 어떤 질문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얘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심각하게 왔죠.(웃음)

보는 나도 덩달아 찔끔찔끔 진땀이 났어요. 왜 이 나이가 되도록 늘 선생이 아니라 학생에 감정이입이 되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명확히 답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해보지 않았다든지, 질문이 어렵다든지,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인사죠. 서로 연기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요. 적어도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게 좋았어요. 과정은 어려웠지만.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뀌었다”고 했어요. 선생님들께 배운 걸 복기하기도 했을 텐데요.
많이 생각나죠. 그분들을 만나지 않았으면 장학회를 꾸릴 생각도 안 했을 것 같아요. 가르치고 배운다는 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이라는 것도 알지 못했겠죠. 어쩌면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인지 모르겠어요. 행운아가 되기 위해서 모진 경험을 하긴 했지만 뭐, 아깝진 않아요. 굶어 죽고, 추워 죽고, 힘들어 죽을 뻔했지만요.(웃음)

어떤 선생님이 가장 많이 생각났나요?
동국대에 안민수 교수님이 계셨어요. 최민식 선배님, 한석규 선배님, 고현정, 김혜수, 채시라, 유준상까지 모두 제자였죠. 안민수 교수님은 정말 위대한 선생님이에요.(몇 년 전, 그는 이렇게 이야기한 바 있다. “나는 부끄러움이 많은 학생이었다. 연기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인데, ‘식사하셨어요?’ 같은 말도 못했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나를 솔직히 털어놓았고, 선생님도 애정 어린 지도를 해주셨다. 연기를 배우는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걸 배우는 게 아닌가.”)

연기 선생님에게 특히 필요한 덕목은 어떤 걸까요?
촬영을 끝내고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었어요. 힘들었니? 힘들었대요. 뭐가 힘들었니? 막 고민에 휩싸여 얘기해요. 실은 자기 연기에 대해서 이래라저래라 할 줄 알았대요. 이제껏 선생들이 원하는 걸 물어본 적도 없고, 잘못한 것에 대해서만 수백만 가지 지적하는 식이었다고요. 나도 못 만나본 건 아니지만 뭐, 그런 사람들은 선생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더 노력할 수 있는 자극을 줄 선생님들을 찾아다녔죠. 그래서 러시아까지 간 거예요. 끈질기죠.

8년 동안 많은 학생들을 봐왔어요. 이들의 생각이 어떻게 발전해나가는지도 봐왔죠. 말과 행동은 미래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거창해 보이지만 실은 간단해요. 생각은 미래이고 행동이에요. 잘 가르친다는 건 생각으로 행동과 미래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찾지 못했다면 안 돌아올 생각이었나요?
네, 그거밖엔 없었어요. 절실했어요. 알아주는 사람도 없었고, 믿지도 않았지만 그게 정확한 이유였어요. 사람들이야 그럴듯하게 얘기하려고 애쓰는구나, 했겠지만요.(웃음)

의도하지 않았지만 장학회를 꾸리고 있다는 사실은 이 프로그램에 신뢰를 줘요. 배우의 예능 안과 밖이 비슷한 결이라는 건 어느 때나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요.
장학회는 후배들을 응원하는 데 시간과 노력과 돈을 조금 들이는 거예요. 사실 그런 응원과 도움, 한국엔 없어요. 없다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니고, 없는 걸 당연히 여기기도 해요. 하지만 그 정도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이렇게나 없어야만 했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강하게 남았어요. 그렇다면 없는 세상에서 살 것인가, 만들기 시작할 것인가. 당시 내게 중요한 문제였나 봐요. 그래서 하자, 했죠.(웃음) 얼마나 떨렸는데요. 안 해본 일을 한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그렇게 8년 동안 많은 학생들을 봐왔어요. 이들의 생각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도 보아왔죠. 간단해요. 생각이 미래이고, 행동이에요. 생각을 물어보는 건 행동과 미래를 물어보는 거예요. 잘 가르친다는 건 생각으로 행동과 미래가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에서 힘을 얻기도 하겠죠?
그들이 대스타가 된 건 아니에요. 그걸 바라지도 않고요. 그런데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워요. 10년 안에 그 친구들이 할 일은 자빠지고 넘어지고 무르팍 깨지고 코피 나고 병원에 실려가는 거예요. 지쳐 쓰러져 있을 때 한 번쯤 일으켜줄 수 있는 선배들의 모임인 셈이죠. 그 시절 나에게 누군가가 그래줬더라면 조금은 덜 힘들었을 거고, 응원해준다는 사실에 기뻤을 테고, 선배들도 겪고 지나왔다는 것에 위로 받지 않았을까 했던 거지, 별거 하나도 없어요.

“연기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데, 어떤 의미였나요?
연기를 한꺼번에 하려고 하니 어려워 보이는데, 과학적인 연기론을 가진 나라에서는 1~2년 차에 쉽고 재미있는 방법을 써요. 나도 그렇게 배웠고요. 물론 예술성, 근면 성실, 몸과 마음도 모두 필요하지만 불가능하진 않아요.

연기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 자체는 언제 하게 되었나요?
배우다 보니 이런 배움을 혼자 가져선 안 된다 싶었어요. 한 번쯤은 학원을 차려 돈 받고 팔 생각도 해봤지만 그런 나 자신이 끔찍한 거예요. 가장 힘든 방식으로 배웠지만 조건 없이 가장 많이 나눌 수 있는 방식은 뭔가. 몇 년이 걸릴 것인가. 한 30년 걸릴 것 같더라고요. 무리가 돼도 8년 전에 시작할 수 밖에 없었어요. 한 일흔 살 정도까지 열심히 나눠주어야 하니까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 데다, 극 중 캐릭터가 아니라 본인 자체를 보여주어야 하니까요. 물론 요즘은 그렇게 인기를 얻기도 하지만. 모험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이런 건 생전 처음이죠. 그런데 아무 생각이 없어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에 대해 매우 무감각해요. 선천적으로 그런 데 취약한 사람이 있습니다.(웃음)

3월 말부터는 드라마 <동네변호사 조들호>로 만날 예정이에요. 아예 판권을 구입했다고요. 작품을 고를 땐 주로 어떤 걸 보고 판단하나요?
이 이야기가 필요했겠다, 이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겠다, 의미도 있겠다, 기획되면 아마 나는 출연하겠다, 이 드라마가 나오면 나도 보고 싶겠다….

조들호라는 캐릭터를 생각하면, 시청자들은 배우 박신양에게 기대하는 특별한 바가 있는 것 같아요. 어렵고 고된 방식으로 약자의 편에 서는 역할이랄까요. 특정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불편하진 않나요?
굳이 힘들게 노력해서 불의의 편에 서는 사람이고 싶진 않아요. 내가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그건 아닌 것 같고. 한 5년 전부터 이미 절친하게 지내던 작가님과 변호사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의견을 나누고 있었어요. 그러다 조들호를 만난 거죠. 저랑 닮았다고들 하는데, 그건 잘 모르겠어요.(웃음)

웹툰에서 매회 다른 법 조항을 다룬 에피소드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게 인상 깊었는데, 어떤 점이 특히 흥미로웠나요?
변호사로 나오는 영화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법 관련 이야기를 다루는 방식이 딱딱하지 않나 했어요. 딱딱하지 않게, 본질적인 얘기를 할 수 있겠다 싶어요. 물론 쉽지는 않을 거예요. 정통으로 멜로 하듯이 법정극을 해야 할테니까요.

송해성 감독의 차기작에 아내를 찾아나서는 남편 역으로 출연할 계획이라는 소식도 반가웠어요. 어쨌든 배우 박신양이 연기하는 악인을 볼 일은 요원하겠군요.
글쎄, 필요하면 하겠지요. 그런데 필요 자체가 잘 안 생겨나요. 배우는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이 역할, 저 역할 하는 건데 그 이야기가 악의 무리가 지구를 지배하는 이야기인 경우는 별로 없잖아요.

영화 <유리>를 보고 충격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27년 차 배우가 됐습니다. 연기나 배우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도 했나요?
연기가 이타적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물음에 결론을 내렸어요. 누구나 처음에는 이기적으로 출발해요.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말하죠. 시청자들의 행복, 관객들을 위해서라고. 연기를 시작하기 전부터 나를 계속 괴롭힌 질문이에요. 진짜 사람을 위하는 거냐, 어떤 방식으로 위해야 하나 등등.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연기는 정말 사람들을 위하는 것 같은 거예요. 처음엔 믿을 수 없고, 잡을 수도 없고,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훌륭한 선생
님들을 보면서 확신하게 되었어요. 선생님을 만난다는 건 단순히 연기를 배우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을 배우는 것이에요. 무서운 일이죠, 그게.

<배우학교>에 대한 다양한 반응 중 “나도 저 수업을 받고 싶다”는 게 있었어요. 슬프게도 점점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누군가에게 배우는 건 피차 부담스러운 일이 되고 있는 세상이니 말이죠.
사실 난 특별히 선생님이 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애들과 친구가 되는 거, 그게 즐거운 거예요.

그럴 리가요! 엄청 무서운 선생님이던데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해요. 누구든 속일 수 있는 직업이니까, 자기 자신조차도. 배우들의 친구 관계란 절대 용서해주지 못하는 어떤 지점이 공유되는 관계인 것 같아요. 난 무서운 친구도 될 수 있을 거예요, 아마.(웃음)

서로 한없이 용서해주는 게 아니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배우의 친구들이에요. 누구든 속일 수 있는 직업이니까, 자기 자신조차도. 배우들의 친구 관계란 절대로 용서해주지 못하는 어떤 지점이 공유되는 관계인 것 같아요. 난 무서운 친구도 될 수 있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