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디자인 인생 30주년을 맞은 드리스 반 노튼

2017.07.12

by VOGUE

    디자인 인생 30주년을 맞은 드리스 반 노튼

    1986년 영국, 한 청년이 트럭에 실은 옷을 친구들과 함께 선보였다. 여섯 명의 친구는 ‘앤트워프6’로 불렸고, 그중 한 명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디자인 인생 30주년을 맞은 드리스 반 노튼을 〈보그 코리아〉가 만났다.

    1986년 영국, 한 청년이 트럭에 실은 옷을 친구들과 함께 선보였다. 여섯 명의 친구는 ‘앤트워프6’로 불렸고, 그중 한 명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다. 디자인 인생 30주년을 맞은 드리스 반 노튼을 〈보그 코리아〉가 만났다.
    드리스 반 노튼의 2016 F/W 초대장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터 질 버튼. <보그 코리아>를 위해 오일 페인팅으로 드리스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2016년 3월 2일, 파리 패션 위크 둘째 날. 스모 키 아이의 여자 그림을 든 멋쟁이들이 하나둘씩 생라자르 역 주위로 모여 들었다. 수묵화 같은 그림의 정체는 패션쇼가 시작되자 알 수 있었다. 런 웨이 모델들의 눈이 초대장의 그림처럼 검게 칠해져 있었으니까.

     2016년 3월 2일, 파리 패션 위크 둘째 날. 스모키 아이의 여자 그림을 든 멋쟁이들이 하나둘씩 생라자르 역 주위로 모여 들었다. 수묵화 같은 그림의 정체는 패션쇼가 시작되자 알 수 있었다. 런웨이 모델들의 눈이 초대장의 그림처럼 검게 칠해져 있었으니까.

    드리스반노튼이 2016 F/W 컬렉션을 선보인 다음 날, 는 파리 쇼룸에서 그 를 다시 만났다. 올해로 30년째 디자인 인생을 맞은 그의 화법은 여전히 명료하고 막힘이 없었다.

    드리스 반 노튼이 2016 F/W 컬렉션을 선보인 다음 날, <보그 코리아>는 파리 쇼룸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올해로 30년째 디자인 인생을 맞은 그의 화법은 여전히 명료하고 막힘이 없었다.

    Vogue Korea(이하 VK) 이번 컬렉션은 지난 시즌과 어떤 게 다른가?
    Dries Van Noten(이하 DVN) 나는 ‘스토리’로부터 시작한다. 그런 뒤 컬렉션에 쓰일 색감을 정한 다음 옷감을 모으고 옷의 구성 요소를 정한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패션쇼는 하나의 ‘극장’과 같다. 조명, 음악, 모델들이 런웨이를 걷는 방식, 헤어, 메이크업이 스토리에 따라 결정된다. 파리에는 쇼를 발표할 만한 아름다운 장소가 참 많다. 시청, 남성복 컬렉션을 발표한 오페라극장, 어제 쇼장이었던 생라자르 역 인근 건물 등등. 컬렉션에 따라 장소도 달라진다. 그러니 6개월마다 열리는 쇼는 매번 다를 수밖에.

    VK 그러고 보니 식탁이 무대가 되는 것처럼 획기적인 런웨이 연출도 많았다. 그에 비해 어제 런웨이는 극도로 간결했다.
    DVN 이번에는 사운드트랙를 결정하는 데만 몇 주를 할애했다. 2016 F/W 컬렉션은 모피, 자수, 색깔 등이 몹시 호화롭고 부유한 느낌이기에 런웨이 장치로 주의를 요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명은 어둡게 연출했고, 나머지 에너지는 사운드트랙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당신도 들었겠지만, 사운드트랙 초반에는 심장박동 소리가 나온다. 단눈치오의 시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또 20세기 초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발레 뤼스를 위해 작곡한 ‘봄의 제전(Le Sacre du Printemps)’을 샘플링했다. 발레 뤼스 역시 내가 영감을 받은 마르케사 루이사 카사티와 절친한 사이였다. 덕분에 사운드트랙에서도 컬렉션 전반에 영향을 끼친 단눈치오와 카사티의 영향을 느낄 수 있다.

    VK 우리에게 알려진 마르케사 루이사 카사티의 이미지는 꽤 패셔너블하다. 그래서 많은 디자이너들이 영감을 얻는 인물이다.
    DVN 존 갈리아노가 카사티에 영감을 받아 선보인 옷(1998 F/W) 역시 매우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는 그의 옷과 달리 매일 입을 만한 옷을 원했다. 이번 컬렉션은 카사티의 여성성과 단눈치오의 남성성 사이에 위치한다. 두 명은 동시대를바라보는 관점이 꽤 달랐다. 카사티는 살아 있는 예술이 되고자 했고, 단눈치오는 세상에서 가장 ‘데카당스’한 인물이 되길 원했다. 그래서 이 둘을 조합하는 게 관건이었다.

    VK 여성성과 남성성의 사이라고 하니, ‘성 유동성(Gender Fluidity)’의 관점에서 묻고 싶다. 요즘 몇몇 패션 브랜드에서 여성복과 남성복 컬렉션을 함께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DVN 여성적 요소를 남성복 컬렉션에 추가하고, 남성적 요소를 여성복에 추가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나에겐 여전히 남성복과 여성복 컬렉션은 별개다. 내 머릿속은 먼저 남성복 컬렉션을 떠올리고, 그다음으로 여성복을 생각한다.

    VK 이번엔 일러스트레이터 질 버튼(Gill Button)과 초대장 작업을 같이했다.
    DVN 버튼은 1,000장이 넘는 초대장을 오일과 잉크를 사용해 하나하나 전부 손으로 그렸다.

    VK 당신이 직접 인스타그램을 통해 그녀를 발견했다고 들었다. 인스타그램을 직접 하는지 몰랐다.
    DVN 당연히 인스타그램을 하고 수시로 들여다본다. 인터넷과 연결되는 거라면 뭐든 한다. 나는 과거를 사는 사람이 아니다. 가끔 사람들은 내가 정원에서 풀이나 가꾸는 남자로 여기는데, 나는 지극히 동시대적인 인물이며 ‘지금’을 살고 있다. 인스타그램이야말로 아주 흥미로운 세계다.

    VK 혹시 인스타그램 중독 수준인가?
    DVN 그렇진 않다. 되도록 많은 것에 중독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 가드닝은 제외하고! 하하.

    VK 나는 당신의 패션쇼를 직접 관람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는 스마트폰, 인터넷 등으로 당신의 패션쇼를 지켜본 사람들도 많다. 당신의 런웨이 사진을 본 사람들이 뭘 느끼길 원하나?
    DVN 쇼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강인한 여성(Powerful Women)’과 ‘꿈(Dream)’을 느꼈으면 했다.

    VK 강인한 여성과 꿈을 내포한 이번 컬렉션을 준비하며 수십 년 이력의 베테랑 디자이너인 당신에게도 힘든 점이 있었나?
    DVN 이번 컬렉션 자체가 도전이었다. 알고 보니 카사티를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지나치게 많이 담으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일상에서 쉽게 입을 만한 옷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코스튬처럼 보이지 않도록, 카사티와 단눈치오의 이야기를 균형 있게 담는 게 중요했다. 카사티에서 받은 영감은 애니멀 프린트로 표현했는데, 브랜드의 기존 감성과 연결되도록 레벨을 조절했다. 애니멀 프린트는 자칫 저렴해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애니멀 프린트를 화려하게 표현하기위해 자카드 패턴을 사용했다.

    VK 그렇다면 카사티 이야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웠던 건 뭔가?
    DVN 그녀의 삶 전체다! 그녀는 당대에 가장 부유한 여인 중 한 명이었지만, 말년에는 돈도 없이 쓸쓸하게 죽었다. 하지만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감을 주고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폴 푸아레, 레온 박스트, 에르테 등도 그녀로부터 후원을 받은 아티스트였다.

    VK 관객들은 쇼가 끝난 후 디자이너가 어디서 영감을 얻었는지 알게 된다. 이번 컬렉션처럼 카사티 같은 구체적 인물이 배후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DVN 그래서 패션쇼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사전 정보 없이 전달하는 사실이 꽤 흥미롭다. 때때로 쓰인 정보를 보고 ‘무엇을 봐야겠다’는 태도로 패션쇼를 관람하는 것보다 모두 다르게 해석하는 쪽을 선호한다. 리뷰가 나온 뒤에도 사람들은 각자의 시선으로 컬렉션을 해석할 것이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를 이미 본 사람들의 리뷰를 다 읽진 않으니까.

    VK 지금 당신에게 가장 영감을 주는 대상은 뭔가?
    DVN 어떨 때는 책, 어떨 때는 카사티의 라이프스타일, 어떨 때는 음악, 기억, 영화 등등. 예술가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엔 프랜시스 베이컨 전시가 흥미로웠다. 예술가가 예술을 통해 자기 감정을 표현하듯 나 역시 패션쇼를 통해 감정을 표현한다. 지난 남성복 컬렉션에선 예술가 웨스 윌슨(Wes Wilson)과 협업했다. 그 컬렉션은 1960년대 후반 샌프란시스코, 베트남 전쟁 유니폼 등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렇듯 어떤 것이든 영감을 주는 대상이 된다.

    VK 영감의 근원만큼 당신의 컬렉션에서 눈에 띄는 건 다채로운 패턴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패턴의 마술사’라고 부르는 걸 들은 적 있나?
    DVN 사실 나에게 있어 컬렉션을 시작하는 첫 단계는 옷감이다. 자카드 패턴도 좋아하지만, 솔리드 혹은 반짝이는 옷감도 좋아한다. 울, 면, 실크 등을 섞는 것도 좋아하고 옷감이 색깔과 만났을 때 어떻게 표현되는 지 결과를 보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같다.

    VK 옷을 가까이서 보니, ‘번아웃(섬유를 부분적으로 녹이는 기법)’ 기법이 돋보였다.
    DVN 번아웃 소재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기법 자체는 정말 까다롭다. 녹은 부분이 바스락거리기에 옷감을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흰색 포플린(씨실이 날실보다 두꺼우며 광택이 도는 소재)을 사용하는데, 얇은 실을 촘촘히 직조해 옷감 위 약물이 녹았을 때 투명하게 비치지 않도록 조치했다.

    VK 당신은 백스테이지에서 이번 컬렉션을 ‘모든 스포츠 활동에서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도 설명했다.
    DVN 단눈치오는 옷에 미친 사람이었다. 어디든 전부 다른 옷을 입고 나갔다. 영국에 테니스 경기를 보러 갈 때는 직접 자신이 운동하지 않더라도 완벽한 테니스 복장을 갖춰 입고 갔다. 크리켓 경기를 보러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운동복뿐 아니라 파자마 컬렉션도 대단했다. 그런 성향이 이번 컬렉션에도 영향을 끼쳤다.

    VK 당신은 여전히 앤트워프 작업실에서 일한다. 당신이 가장 잘 아는 지역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작업한다는 건 남다른 의미를 지닐 것 같다.
    DVN 앤트워프에서는 파리를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다. 파리는 사방이 패션으로 둘러싸인 곳이다. 그러니 앤트워프에서는 패션 세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 또 앤트워프는 대도시가 아니기에 뭔가에 쫓기며 살지 않아도 된다.

    VK ‘앤트워프6’ 컬렉션을 선보인 지 꼭 30년이 지났다. 아직도 당신을 보며 앤트워프를 찾거나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키운 이들이 참 많다.
    DVN 나 역시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출신이다. 시간이 지나 학교가 발전한 게 아니라, 내가 학생일 때도 좋은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다.

    VK 10년 전, 오뜨 꾸뛰르가 아닌 레디투웨어를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매장에서 살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 적 있다. 지금은 몇몇 브랜드가 기성복 쇼를 통해 선보인 옷을 바로 판매해 화제다. 이런 흐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DVN 컬렉션 사이클에 맞추는 게 나에게 중요하다. 쇼를 선보인 뒤 바이어, 기자, 고객 등으로부터 받는 반응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 때문이다. 나에게 컬렉션이란 디자인에서 시작해 영감에 따라 옷의 형태를 만든 다음 패션쇼를 발표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다. 이 모든 단계가 통합돼 하나의 컬렉션을 완성한다. 나는 이 사이클을 사랑한다.

    VK 현재 대기업의 배후 없이, 드리스 반 노튼은 전 세계 500개 매장에서 판매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건 뭔가?
    DVN ‘유기적’, 즉 모든 게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이다. 물론 우리도 사업 계획 같은 게 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더 도약하고 싶다. 그러나 2018년에는 이 정도의 매출을 올려야 한다는 식으로 나 자신을 몰아붙이고 싶지 않다. 지난 30년간 드리스 반 노튼은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성장해왔다. 건강한 방법으로 말이다. 때로 패션 브랜드에선 일하는 사람들을 몰아붙인다. 좋은 의도 아래, 강제로 뭔가를 만들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드리스 반 노튼이 다른 패션 브랜드와 다르다는 건 아니다. 다만 30년 전 브랜드를 시작할 때처럼 지금도 많은 친구들과 함께 일하고 우리의 방식대로 조금씩 성장했다. 조직화된 대형 패션 하우스가 되진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업 방식을 고수하고 싶다.

    VK “패션은 지금 일어나는 일의 반영이다”라고 당신은 말해왔다. 지금 드리스 반 노튼의 패션은 어떤 것을 반영하나?
    DVN ‘정직함’이다. 나는 ‘살아남을 수 있는’ 옷을 만들고 싶을 뿐, ‘패션’을 만들고 싶진 않다. 패션은 6개월마다 변한다. 그래서 오래 입을 만한 옷을 만들고 싶다. 부디 사람들이 내 옷을 통해 자신의 개성을 더 표현할 수 있기를.

      에디터
      남현지
      일러스트레이터
      GILL BUTTON
      포토그래퍼
      JAMES COCHRA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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