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사운드스케이프 예술가

2017.11.27

by VOGUE

    사운드스케이프 예술가

    더 많은 걸 보려고 안달인 시대,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있다. 소리로 보는 풍경 사운드스케이프를 담아내는 이들은 시간의 기록자이자 소리의 조련사 그리고 내면을 표현하는 예술가다.

    시선 너머의 소리SUNG KI WAN 우리는 시선이 닿는 앞쪽 정보만 잘라서 뇌 에 신호를 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버리곤 한다. 시각에 압도당한 자체 편집이다. “‘죽어라 앞만 보고 달려라’가 세상의 메시지인데 소리는 그렇지 않아요. 소리는 뒤를 복 원하지요. 전체를 지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듣기예요.” 3호선 버터플라 이 기타리스트이자 시인 성기완은 오랫동안 소리를 채집하고 만져왔다. ‘서울 사운드 아 카이브 프로젝트’에서는 티켓 부스, 한강철교, KTX 등 서울역을 대표하는 소리 서른세 개를 아카이빙하는 등 서울 소리를 기록했고, 덕수궁의 아늑한 소리를 담기 위해 차 마 시는 퍼포먼스, 마루를 이용한 즉흥연주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광복 70주년 기 념 전시에서 7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를 공중에 띄운 작업은 공간 속에서 소리를 바라보 는 시도였다. 그는 있는 그대로 소리를 채집하기도 하지만 나서지 않는 관여도 한다. 본 질에 더 가깝게 가기 위한 방향성이다. “최근에는 ‘소리 항아리’ 작업을 했어요. 세월호 사건 이후 안산 단원미술관에서 아티스 트 몇몇이 마음을 모으는 전시를 했거든요. 주변에서 임신 중이거나 출산 경험이 있는 분 들을 인터뷰했고 그 소리를 항아리에 넣었어요. 항아리는 자궁을 연상시켜요.”

    시선 너머의 소리 SUNG KI WAN
    우리는 시선이 닿는 앞쪽 정보만 잘라서 뇌에 신호를 주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버리곤 한다. 시각에 압도당한 자체 편집이다. “‘죽어라 앞만 보고 달려라’가 세상의 메시지인데 소리는 그렇지 않아요. 소리는 뒤를 복원하지요. 전체를 지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듣기예요.” 3호선 버터플라이 기타리스트이자 시인 성기완은 오랫동안 소리를 채집하고 만져왔다. ‘서울 사운드 아카이브 프로젝트’에서는 티켓 부스, 한강철교, KTX 등 서울역을 대표하는 소리 서른세개를 아카이빙하는 등 서울 소리를 기록했고, 덕수궁의 아늑한 소리를 담기 위해 차 마시는 퍼포먼스, 마루를 이용한 즉흥연주 등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해 광복 70주년 기념 전시에서 70년대를 대표하는 노래를 공중에 띄운 작업은 공간 속에서 소리를 바라보는 시도였다. 그는 있는 그대로 소리를 채집하기도 하지만 나서지 않는 관여도 한다. 본질에 더 가깝게 가기 위한 방향성이다.
    “최근에는 ‘소리 항아리’ 작업을 했어요. 세월호 사건 이후 안산 단원미술관에서 아티스트 몇몇이 마음을 모으는 전시를 했거든요. 주변에서 임신 중이거나 출산 경험이 있는 분들을 인터뷰했고 그 소리를 항아리에 넣었어요. 항아리는 자궁을 연상시켜요.”

    소리에 천착해온 시간은 어떤 소리도 음악으로 변신 시키는 힘을 지니게 했다. 화장실에 한 명이 더 들어 옴으로써 미세하게 변하는 화장실 환기팬의 음정, 엄 청 춥던 어느 겨울 갑자기 얼음이 녹으면서 동네에 가 득 울려 퍼지던 소리. 성기완에겐 이 모든 소리가 행복 이다. 소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 다. “제 좌우명 중 하나가 ‘예술은 앉은자리에서’예요.  얼음 녹는 소리로 가득한 동네 소리를 담았다면 오늘 예술 하나 한 거죠. ‘물소리야, 고마 워. 공연 잘 봤어’라고요.”

    소리에 천착해온 시간은 어떤 소리도 음악으로 변신시키는 힘을 지니게 했다. 화장실에 한 명이 더 들어옴으로써 미세하게 변하는 화장실 환기팬의 음정, 엄청 춥던 어느 겨울 갑자기 얼음이 녹으면서 동네에 가득 울려 퍼지던 소리. 성기완에겐 이 모든 소리가 행복이다. 소리는 우리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제 좌우명 중 하나가 ‘예술은 앉은자리에서’예요. 얼음 녹는 소리로 가득한 동네 소리를 담았다면 오늘 예술 하나 한 거죠. ‘물소리야, 고마워. 공연 잘 봤어’라고요.”

    최근 그는 방황하던 청춘기, 자신이 택시 소리, 고등학생들의 등하교 소리, 지하철 소리 를 녹음해서 솔로 앨범에 담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일상 소리의 녹음은 그에게 묘한 위안을 줬다. 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에 집중해서 살고 있다는 증거에서 오는 위안일 테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지금의 우리와 그때의 우리를 겹치게 해 준다. 올해 그는 룸톤(Room Tone)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방에서 발 생하는 소리로 키보드를 연주해보는 프로젝트다. 소리는 전체의 이면을 말하고, 성기완 은 소리 속에서 소리의 이면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일상성’이라는 키워드가 있 다. 그가 그려내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일상을 낯설게 봄으로써 일상을 가장 일상답게 만 들어준다. 오늘도 성기완의 하루는 대문을 ‘탕’ 닫는 소리에서부터 시작한다.

    최근 그는 방황하던 청춘기, 자신이 택시 소리, 고등학생들의 등하교 소리, 지하철 소리를 녹음해서 솔로 앨범에 담았다는 걸 깨달았다. 당시 일상 소리의 녹음은 그에게 묘한 위안을 줬다. 이는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에 집중해서 살고 있다는 증거에서 오는 위안일테다. 사운드스케이프는 순간을 고스란히 담고 지금의 우리와 그때의 우리를 겹치게 해준다.
    올해 그는 룸톤(Room Tone)으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방에서 발생하는 소리로 키보드를 연주해보는 프로젝트다. 소리는 전체의 이면을 말하고, 성기완은 소리 속에서 소리의 이면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속에는 ‘일상성’이라는 키워드가 있다. 그가 그려내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일상을 낯설게 봄으로써 일상을 가장 일상답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성기완의 하루는 대문을 ‘탕’ 닫는 소리에서부터 시작한다.

    덕수궁 프로젝트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덕홍전. 2012년 12월 16일 오후 3시. 궁 밖은 시끌시끌한데 궁 안은 고요하다. 어떤 날카로운 소리도 아스라이 바꿔주는 건 돌담. 덕수궁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 위해서 일부러 움직여본다. 마루를 두드려보고, 차를 따라보고, 걸어가본다.

    덕수궁 프로젝트
    서울시 중구 세종대로 99 덕수궁 덕홍전. 2012년 12월 16일 오후 3시. 궁 밖은 시끌시끌한데 궁 안은 고요하다. 어떤 날카로운 소리도 아스라이 바꿔주는 건 돌담. 덕수궁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기 위해서 일부러 움직여본다. 마루를 두드려보고, 차를 따라보고, 걸어가본다.

    도시의 소리 산책가JEON KWANG PYO 김정호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 며 땅의 모양을 종이에 그렸다면, 전광표는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채집 해 ‘소리 지도’를 만든다. 지명, 위치, 방향이 담겨 있는 평면적인 지도는 그의 소리를 더 해 살아 있는 ‘지금’이자 소리가 담기던 ‘그때’가 된다. 종로에는 공공 기관, 대형 서점, 극 장도 있지만, 딸기를 6,000원에 파는 상인과 신세계이발관도 있음을 ‘사운드 오브 서울 www.soundofseoul.com)’은 들려준다.

    도시의 소리 산책가 JEON KWANG PYO
    김정호가 조선 팔도를 돌아다니며 땅의 모양을 종이에 그렸다면, 전광표는 도시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소리를 채집해 ‘소리 지도’를 만든다. 지명, 위치, 방향이 담겨 있는 평면적인 지도는 그의 소리를 더해 살아 있는 ‘지금’이자 소리가 담기던 ‘그때’가 된다. 종로에는 공공 기관, 대형 서점, 극장도 있지만, 딸기를 6,000원에 파는 상인과 신세계이발관도 있음을 ‘사운드 오브 서울 www.soundofseoul.com)’은 들려준다.

    공연 사운드 디자인 일을 하는 그가 서울의 소리를 채집하기 시작한 건 2007년이다. 모 든 장소는 고유의 소리를 갖고 있고 서울이 단순히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만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시작이었다. “소리는 빛보다 느리지만 내부를 표현해줘요. 태아 와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감각도 청각이잖아요. 모두가 서울이 시끄럽다고 생각하지 만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소리가 많아요. 그런 소리를 채집해서 소리를 매개로 소통하고 싶었어요.” 시작은 종로여야 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시간축이자 서울이 시작된 곳. 사대문에서 출발해 동서남북으로 확장되었듯, 그의 작업도 서울의 개발 방향을 따 라간다. 이는 전광표 개인의 기억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 친구들과 다니 던 길을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어 붐 마이크를 들고 걸었다.

    공연 사운드 디자인 일을 하는 그가 서울의 소리를 채집하기 시작한 건 2007년이다. 모든 장소는 고유의 소리를 갖고 있고 서울이 단순히 바쁘고 시끄러운 도시만이 아니라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시작이었다. “소리는 빛보다 느리지만 내부를 표현해줘요. 태아와 바깥세상을 연결해주는 감각도 청각이잖아요. 모두가 서울이 시끄럽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소리가 많아요. 그런 소리를 채집해서 소리를 매개로 소통하고 싶었어요.” 시작은 종로여야 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시간축이자 서울이 시작된 곳. 사대문에서 출발해 동서남북으로 확장되었듯, 그의 작업도 서울의 개발 방향을 따라간다. 이는 전광표 개인의 기억을 따라가는 길이기도 했다. 청소년 시절 친구들과 다니던 길을 사운드 디자이너가 되어 붐 마이크를 들고 걸었다.

    그렇게 담긴 소리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보다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 려준다. 지도라는 대단히 이성적인 매체에 감성을 불어넣은 셈이다. 전광표 작가는 소리 에 어떤 편집도 더하지 않고, 소리 지도 재생 플레이어는 스크롤도 되지 않지만(잠시 멈 춰 서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심어놓은 장치다) 소리 지도에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고 이는 제목으로도 드러난다. 그가 서울 소리 지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소리로 꼽는 건 ‘경동시장의 하모니’다. 자신의 물건을 팔기 위해 상인들이 목청껏 외치는 목소 리. “과일은 싱싱할 때 팔아야 가장 이윤이 많이 남으니 경쟁이 치열해요. 하지만 밀집되 어 있다 보니 경쟁 상대와 겹치지 않게 굉장히 개성적인 목소리로 장사를 해요. 그 소리 가 그렇게 조화롭게 들리더라고요. 자기 리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 세 상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 싶었어요.”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도시예요. 서울에는 우리를 일깨우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시끄럽다는 건 뭔가가 잘 안 굴러간다는 의미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인데 서울을 감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을 넘어 국가와 국가 그리고 전 세계 소리 채집이 그의 다음 목표다. 한편으로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소리 채집으로 세상에 좀더 재미있는 소통이 많아지길 바란다. 사람에게도 소리가 있다면 전광표가 내는 소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좋은 울림일 것이다.

    그렇게 담긴 소리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보다 장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지도라는 대단히 이성적인 매체에 감성을 불어넣은 셈이다. 전광표 작가는 소리 에 어떤 편집도 더하지 않고, 소리 지도 재생 플레이어는 스크롤도 되지 않지만(잠시 멈춰 서야만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심어놓은 장치다) 소리 지도에는 그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고 이는 제목으로도 드러난다. 그가 서울 소리 지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소리로 꼽는 건 ‘경동시장의 하모니’다. 자신의 물건을 팔기 위해 상인들이 목청껏 외치는 목소리. “과일은 싱싱할 때 팔아야 가장 이윤이 많이 남으니 경쟁이 치열해요. 하지만 밀집되어 있다 보니 경쟁 상대와 겹치지 않게 굉장히 개성적인 목소리로 장사를 해요. 그 소리가 그렇게 조화롭게 들리더라고요. 자기 리듬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사는 것. 세상을 사는 지혜가 아닐까 싶었어요.”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이면을 들여다봐야 하는 도시예요. 서울에는 우리를 일깨우는 모습이 담겨 있어요. 시끄럽다는 건 뭔가가 잘 안 굴러간다는 의미거든요. 우리가 살고 있는 곳 인데 서울을 감지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서울을 넘어 국가와 국가 그리고 전 세계 소리 채집이 그의 다음 목표다. 한편으로 긍정적이고 재미있는 소리 채집으로 세상에 좀더 재미있는 소통이 많아지길 바란다. 사람에게도 소리가 있다면 전광표가 내는 소리는 다른 사람을 위한 좋은 울림일 것이다.

    서울의 숲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 199-15. 2014년 11월 21일 오후 2시 29분. 신세계백화점과 남대문시장 사이 건물을 허물고 나니 드러난 서울의 뒷모습. 환풍기는 숲 속 바람처럼, 남대문로를 지나는 버스의 경적 소리는 새소리처럼 들린다.

    서울의 숲
    서울시 중구 회현동1가 199-15. 2014년 11월 21일 오후 2시 29분. 신세계백화점과 남대문시장 사이 건물을 허물고 나니 드러난 서울의 뒷모습. 환풍기는 숲 속 바람처럼, 남대문로를 지나는 버스의 경적 소리는 새소리처럼 들린다.

    세운상가의 사운드트랙JO EUNG CHEOL 지난 2월 14일 예술 전시 공간 800/40에는 세운상가, 대림상가, 청계상가, 을지로, 청계천 소리가 가득 찼다. 작곡가 조응철(작곡가로서 조승우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이 자신에게 제한된 시간을 주고 주변 소리를 채집해서 5분 24초가량의 작품(https://vimeo.com/156951452)으로 버무려낸 것. 치익치익, 뚜벅뚜벅뚜벅, 지잉지잉지잉, 컹컹컹…. 기계음, 작가의 발자국 소리, ‘사장님’ 외침, 개 짖는 소리 등은 반복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며, 역행하기도 했다. 소리는 마치 버튼이 달린 악기처럼 존재했고 조응철은 디제이처럼 ‘소리가 가진 매력’이라는 주관적인 잣대로 소리를 연주했다. 매일같이 음을 만지는 뮤 지션이 동일한 방식으로 소음을 만졌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까 확인하는 작업물이라고 해야 할까. 재구성된 소리는 익숙하고 낯선 중의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세운상가의 사운드트랙 JO EUNG CHEOL
    지난 2월 14일 예술 전시 공간 800/40에는 세운상가, 대림상가, 청계상가, 을지로, 청계천 소리가 가득 찼다. 작곡가 조응철이 자신에게 제한된 시간을 주고 주변 소리를 채집해서 5분 24초가량의 작품으로 버무려낸 것. 치익치익, 뚜벅뚜벅뚜벅, 지잉지잉지잉, 컹컹컹…. 기계음, 작가의 발자국 소리, ‘사장님’ 외침, 개 짖는 소리 등은 반복되기도 하고, 축소되기도 하며, 역행하기도했다. 소리는 마치 버튼이 달린 악기처럼 존재했고 조응철은 디제이처럼 ‘소리가 가진 매력’이라는 주관적인 잣대로 소리를 연주했다. 매일같이 음을 만지는 뮤지션이 동일한 방식으로 소음을 만졌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까 확인하는 작업물이라고 해야 할까. 재구성된 소리는 익숙하고 낯선 중의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음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처 음 음악을 공부할 때는 관심사가 오로지 ‘음’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 록 음 자체보다는 소리를 사용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게 느껴졌거든요. 초등학교 시절 책에서 봤던 피에르 셰페르, 아르코 미술관에서 경험한 김준 작가의 소리 채집 작품, 우연히 들었던 팟캐스트 ‘소리엽서’와 같은 경험도 자극이 되었지요.” 세운상가의 소리라고 하면 그 공간이 담고 있는 긴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조응철 작가의 소리 채집 출발점은 의미보다 기능이 앞선다. 을지로4가 역에서는 큰 공간이 울리는 소리, 청계천에서는 탁 트인 공간의 소리가 채집되었고,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지배하는 기계 소리와 자동차 소리 를 완화시켜줄 수 있는 소리로 청계천 요우커 소리가 채집되는 식이다. 오히려 이 작업에서 그가 발견한 건 소리의 의외성과 다면성이다. 기계 소리를 녹음하려던 녹음기에는 물 떨어지는 소리, 음악 소리도 담겼다.

    “음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 수 있을까 궁금했어요. 처음 음악을 공부할 때는 관심사가 오로지 ‘음’에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음 자체보다는 소리를 사용한 스토리텔링이 중요하게 느껴졌거든요. 초등학교 시절 책에서 봤던 피에르 셰페르, 아르코 미술관에서 경험한 김준 작가의 소리 채집 작품, 우연히 들었던 팟캐스트 ‘소리엽서’와 같은 경험도 자극이 되었지요.”
    세운상가의 소리라고 하면 그 공간이 담고 있는 긴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조응철 작가의 소리 채집 출발점은 의미보다 기능이 앞선다. 을지로4가 역에서는 큰 공간이 울리는 소리, 청계천에서는 탁 트인 공간의 소리가 채집되었고,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를 지배하는 기계 소리와 자동차 소리를 완화시켜줄 수 있는 소리로 청계천 요우커 소리가 채집되는 식이다. 오히려 이 작업에서 그가 발견한 건 소리의 의외성과 다면성이다. 기계 소리를 녹음하려던 녹음기에는 물 떨어지는 소리, 음악 소리도 담겼다.

    “의도한 것보다 좋은 소리가 만들어질 때 굉장히 놀랐어요, 을지로4가에서 채집한 소리는 그 자체로는 특별한 느낌이 없었 는데 잘라서 구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신비로운 소리가 됐거든요.” 그의 작업에 영감을 준 소리 공학자 피에 르 셰페르는 뮤지크 콩크레트를 단순한 실험이나 센세이셔널리즘을 넘어 오르 페우스 같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수단으 로 삼았다. 조응철의 24시간 소리 실험은 이를 향한 첫 번째 시도였고 소리는 그 자 체로 서사적 흐름과 기승전결을 이룰 수 있음을 보여줬다. 과거에는 흥미로운 멜 로디가 생각나면 녹음했는데 이제는 주변의 재미있는 소 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그는 앞으로 물소리와 모닥 불 소리를 채집해 또 하나의 트랙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한국어 속 다양한 억양을 이용한 합창곡도 구상하고 있 다. 소리와 소음의 경계, 음악과 소리의 구분을 정한 건 사 람이다. 소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우리 역시 그렇다. 감 각되어오던 소리를 조응철은 감각될 수 있게 만든다. 세상 에 소리 풍경은 이렇게 늘어가고 있다.

    “의도한 것보다 좋은 소리가 만들어질 때 굉장히 놀랐어요, 을지로4가에서 채집한 소리는 그 자체로는 특별한 느낌이 없었는데 잘라서 구간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신비로운 소리가 됐거든요.” 
    그의 작업에 영감을 준 소리 공학자 피에르 셰페르는 뮤지크 콩크레트를 단순한 실험이나 센세이셔널리즘을 넘어 오르페우스 같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조응철의 24시간 소리 실험은이를 향한 첫 번째 시도였고 소리는 그 자체로 서사적 흐름과 기승전결을 이룰 수있음을 보여줬다. 과거에는 흥미로운 멜로디가 생각나면 녹음했는데 이제는 주변의 재미있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는 그는 앞으로 물소리와 모닥불 소리를 채집해 또 하나의 트랙을 만들어볼 생각이다. 한국어 속 다양한 억양을 이용한 합창곡도 구상하고 있다. 소리와 소음의 경계, 음악과 소리의 구분을 정한 건 사람이다. 소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우리 역시 그렇다. 감각되어오던 소리를 조응철은 감각될 수 있게 만든다. 세상에 소리 풍경은 이렇게 늘어가고 있다.

    24시간 레지던시 서울시 중구 을지로 157 대림상가. 2016년 2월 14일 오전 9시~오후 2시. 한때는 중심에 있었지만 서서히 밀려나 잊힌 스타처럼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는 한때의 번영과 활기가 무거운 일상 속에 갇혀 있다. 그 피로감을 잠시 내려놓은 일요일. 기계음 사이로 생명체의 소리가 선명해진다.

    24시간 레지던시
    서울시 중구 을지로 157 대림상가. 2016년 2월 14일 오전 9시~오후 2시. 한때는 중심에 있었지만 서서히 밀려나 잊힌 스타처럼 세운상가와 대림상가는 한때의 번영과 활기가 무거운 일상 속에 갇혀 있다. 그 피로감을 잠시 내려놓은 일요일. 기계음 사이로 생명체의 소리가 선명해진다.

    통섭의 소리KIM CHANG HUN & JEON YOUNG KI 생각의 여백을 채워주는 감각이 청각이라 고 한다면 ‘카르마 DMZ 사운드스케이프’는 우리 대부분 이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DMZ를 가장 가깝게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눈 내리는 임진강 하구, 지뢰를 품 은 아름다운 습지, 정전의 흔적 안동철교… 눈을 감으면 바람은 귓가를 간질이는 듯하고 숨을 들이마시면 코끝에 청량한 공기가, 손을 뻗으면 시릴 듯 차가운 냇물이 닿는 듯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과 같은 마음이 되었 을 때만 보여주는 그들의 속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소리 를 담고자 DMZ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라온레코드 김창훈·전영기 감독이 그려내는 사운 드스케이프는 소리로 담는 사진이자 풍경화다.

    통섭의 소리 KIM CHANG HUN & JEON YOUNG KI
    생각의 여백을 채워주는 감각이 청각이라고 한다면 ‘카르마 DMZ 사운드스케이프’는 우리 대부분이 한 번도 밟아본 적 없는 DMZ를 가장 가깝게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눈 내리는 임진강 하구, 지뢰를 품은 아름다운 습지, 정전의 흔적 안동철교… 눈을 감으면 바람은 귓가를 간질이는 듯하고 숨을 들이마시면 코끝에 청량한 공기가, 손을 뻗으면 시릴 듯 차가운 냇물이 닿는 듯하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과 같은 마음이 되었을 때만 보여주는 그들의 속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소리 를 담고자 DMZ까지 거슬러 올라갔던 라온레코드 김창훈·전영기 감독이 그려내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소리로 담는 사진이자 풍경화다.

    영화 동시녹음 엔지니어인 이들이 소리 풍경을 담기 시작한 계기는 다소 극적이다. 제주 도 사려니숲에서 촬영을 마친 어느 날이었다. 평소였다면 촬영이 끝난 즉시 이동했을 텐 데 이날은 달랐다. 누구도 쉬었다 가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스태프 10여 명은 약속이나 한 듯 30분 가까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새가 화답했고 나무가 흔들 렸다. 해가 질 때쯤 ‘다시 이곳에 와서 녹음을 해야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왔다. 그들 이 들은 건 자연의 숨소리 혹은 인사말인지도 몰랐다. 다음 해 3월, 김창훈·전영기 감독 은 다시 제주도를 찾았고 그해 첫봄이 한 장의 CD에 담겼다.

    영화 동시녹음 엔지니어인 이들이 소리 풍경을 담기 시작한 계기는 다소 극적이다. 제주
    도 사려니숲에서 촬영을 마친 어느 날이었다. 평소였다면 촬영이 끝난 즉시 이동했을 텐데 이날은 달랐다. 누구도 쉬었다 가자고 말하지 않았지만 스태프 10여 명은 약속이나 한 듯 30분 가까이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고 새가 화답했고 나무가 흔들렸다. 해가 질 때쯤 ‘다시 이곳에 와서 녹음을 해야겠다’는 느낌이 강하게 전해왔다. 그들이 들은 건 자연의 숨소리 혹은 인사말인지도 몰랐다. 다음 해 3월, 김창훈·전영기 감독은 다시 제주도를 찾았고 그해 첫봄이 한 장의 CD에 담겼다.

    “소리를 채집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소리를 담아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어요. DMZ에서는 소리가 건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마도 통제 상황이라 흐름이 원 활하지 않아서인 것 같았어요. 도피안사에서 우연히 비를 만났고 이를 피하는 도중 범종 소리를 들었어요. 범종이 울리자 새소리, 바람 소리, 빗소리 모두 일순간에 사라졌고 범 종이 멈추자 다시 소리가 살아났어요. 카르마는 그렇게 나왔어요.” 사운드스케이프는 이들에게 자기를 마주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소리에만 집중하며 10분, 20분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만의 무언가를 넘어서는 상황을 경험한다. “완전한 사운드를 만나면 자신의 모습이 또렷해져요."

    “소리를 채집하는 과정에서도 어떤 소리를 담아야 할 것인가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어요. DMZ에서는 소리가 건강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마도 통제 상황이라 흐름이 원활하지 않아서인 것 같았어요. 도피안사에서 우연히 비를 만났고 이를 피하는 도중 범종 소리를 들었어요. 범종이 울리자 새소리, 바람 소리, 빗소리 모두 일순간에 사라졌고 범 종이 멈추자 다시 소리가 살아났어요. 카르마는 그렇게 나왔어요.” 사운드스케이프는 이들에게 자기를 마주하는 시간을 선사한다. 소리에만 집중하며 10분, 20분 있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자신만의 무언가를 넘어서는 상황을 경험한다. “완전한 사운드를 만나면 자신의 모습이 또렷해져요.”
    경기도 연천군 군남면, 군사분계선 4km 지점. 2014년 12월 15일 오후 4시. 반쯤 언 강 언저리에 두루미들이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도피안사(倒彼岸寺)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군사분계선 13km 지점. 2016년 5월 27일 오후 6시. 사찰에서 만난 빗소리 그리고 범종 소리. 타종 순간의 굉음 후 묵직한 배음이 이어진다.

    도피안사(倒彼岸寺)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군사분계선 13km 지점. 2016년 5월 27일 오후 6시. 사찰에서 만난 빗소리 그리고 범종 소리. 타종 순간의 굉음 후 묵직한 배음이 이어진다.

    포 사격장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사분계선 20km 지점. 2015년 10월 2일 오후 1시. 훈련의 흔적으로 어지러운 포 사격장. 포성의 여운이 바람에 각인되어 있다.

    포 사격장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 군사분계선 20km 지점. 2015년 10월 2일 오후 1시. 훈련의 흔적으로 어지러운 포 사격장. 포성의 여운이 바람에 각인되어 있다.

      에디터
      조소현
      포토그래퍼
      CHA HYE KYUNG , COURTESY OF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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