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를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스튜디오 전체에 울려 퍼졌다. 언젠가부터 줄곧 한예슬은 누군가의 워너비로, ‘로코 퀸’으로 세상에 각인되어 있었다. 솔직함과 당돌함으로 종종 사람을 놀라게 하던 그녀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안다. 그때 한예슬은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지만, 지금 그 이상의 한예슬은은 또 다른 ‘한예슬다움’을 찾아가고 있다. 뒷모습이 없으면 생의 아름다운 곡선도 없다는 사실을 한예슬의 뒷모습을 보며 떠올렸다.

이번 화보에서 한예슬의 뒷모습 컷은 없다. 그러나 고개를 돌린 어느 컷에서 이 현장을 관망하던 나는 불현듯 미셸 투르니에의 책 <뒷모습>을 떠올렸다. “사람은 자신의 얼굴로 표정을 짓고손짓을 하고 몸짓과 발걸음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그렇다면 그 이면은?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라는 대목. 등을 보인 채 뒤쪽을 응시하는 그녀의 모습에서는 몸으로부터 코끝으로 뻗은 선의 힘이 드러난다. 그컷 이후로는 단발머리도, 색을 걷어낸 입술도, 살짝 흘기는 눈빛도 모두 뒷모습처럼 느껴졌다. 태생적으로 언제나 화려한 앞모습으로 대중의 시선에 각인된 셀러브리티, 한예슬의 이면으로서의 뒷모습이다.

“그렇게 보였을 것 같아요. 이번 화보가 제게는 새로운 시도였거든요. 처음으로 이렇게 브리프스타일의 옷을 입고, 다리를 내놓은 채 화보를 촬영해본 것 같아요.(웃음) 액세서리도 최대한 들어낸 채 오버사이즈재킷을 입는 식으로 매니시한 느낌을 연출한 게 좋았어요. 가끔씩은 저도 담백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화려함이 제 생명력 아니겠어요? 절대 쉽게 포기할 수 없어요.(웃음)” 그리고는 스튜디오 전체에 울려퍼지는 특유의 유쾌한 웃음소리. 한예슬의 웃음은 말보다 강력하다.

장장 몇 시간 동안 앞모습을 보고 있었음에도 난데없이 뒷모습이 떠오른 건 최근 종영한 드라마 <마담 앙트완>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예슬은 이른바 콜드리딩(Cold Reading), 탁월한 통찰력으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가짜 점쟁이 고혜림 역을 맡았다. 그녀는 로맨스의 중심에있는 동시에 주변 인물들의 진심을 이어주는 충실한 메신저 역할을 한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공식을 따랐을지언정 드라마는 점점 코믹 요소를 거두었고, 그 보폭에 따라 고혜림은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존재감을 발휘했다. 고혜림은 능청스럽게 엉터리 불어 연기를 하는 중간에도 망설이거나, 갈등하거나, 고민하거나, 공감하는 뒷모습을 내보였다.

“끝나고 보니‘아, 그런 세상에서 내가살았지?’ 잠깐 꿈꾼 것 같은 느낌에 만감이 교차해요. 이번 고혜림 역은 몸에 억지로 맞춰 만들어내려하기보다 평소에 느낀 대로 솔직하게 표현해서 좀 편안했어요. 또 이번 드라마는 심리를 중요한 모티브로 사용하다 보니 사람들을 이해하고 다가가려는 휴머니즘이 강했죠. 허무맹랑하다기보다는 리얼리티가 살아있었다고나 할까요. 게다가 심리라는 게 정말 어메이징하게 재미있잖아요? 제가 그런 만큼 시청자분들도 관심을 보일 거라는 기대가 있었죠.”

드라마가 끝난 후 배우가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한다는 건 용기 있는 일일지 모르겠다. 시청률의 숫자와 평가의 정도, 혹여 기대와 다른 결과가 배우로 하여금 마음의 빗장을 걸어 잠그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담 앙트완>이 두 가지 측면에서 썩 흡족한 결과를 냈다고는 볼 수없다. 그러나 정작 한예슬은 크게 개의치 않아 보인다.

“결과를 시청률로만 따지자면 아쉽죠. 하지만 현장에서는 즐거웠어요. 저희끼리는 시청률에 대해 거론한 적 없어요. 그냥 좋은 사람들과 놀러 나오는 느낌으로 촬영하다 보면 하루하루가 수월하게 지나갔어요.” 개인적으로 난 ‘한국에서 연기하며 사는 사람’의 위대한 능력 중 하나는(시청률에 함락되지 않고) 끝까지 현장을 지키는 초심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마음 상해봤자 의미 없어요. 이게 끝은 아니잖아요. 저는 이 드라마 이후로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갈 거잖아요. 여기에서 배우고, 다음에 또 배우고, 하나하나 차곡차곡 밑거름으로 쌓이면 분명히 더 좋은 기회가 올 거예요. 작품이 성공한다는 건 나도 잘해야겠지만, 운도 좋아야하고, 타이밍도 좋아야 하고, 배우들이나 감독님, 작가님과의 호흡도 맞아야 하고, 시대의 트렌드에도 부합되어야 하고, 그런 게 있잖아요? 결국 마음을 비워야해요.배우는 멘탈이 아주 강해야 한답니다.(웃음)”

한예슬의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상대를 무방비 상태로 만드는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다. 그만큼 그녀의 고유한 존재감은 뭐라 표현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분명한 건 한예슬은 쉽게 훼손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청률에도, 일련의 사건에도, 작품성에 대한 평가에도, 심지어 연인의 존재에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 재단할 수 없는 그녀만의 솔직함과 당당함은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릴지언정 자꾸 궁금하고 보고 싶은 대상으로 스스로를 만들어버린다. 드라마 자체의 반응과는 상관없이 방영 내내 패셔니스타로서 그녀의 면모는 회자되었고, 방송이 끝나기도 전 한예슬은 숱한 러브콜을 받았다. “그래도 더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더 많이! 이걸론 만족할 수 없어요.” 한예슬이 또 웃는다, 한예슬답게.

우리는 지난 2012년 가을, 어느 미술관의 전시 화보로 만난 적이 있다. 그녀는 모 주얼리 브랜드의 아트 피스에 현대적 미학을 불어넣는 뮤즈로 초청되었다. 나는 티아라에 드레스를 걸친 모습과 한껏 들뜬 모습이 ‘한예슬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 드라마를 보면서 ‘한예슬답다’는게 새삼 궁금해졌다. 다른 차원의 ‘한예슬다움’이 시작되고 있다는 예감도 들었다.“전 저만의 색깔이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따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제 느낌대로, 맞다고 생각하는 제 방식대로 나답게 살아가려는 모습이 리얼해보이는 거 아닐까요? 솔직함일 수도, 당돌함일 수도 있겠죠. 아니면 자신감? 매사 늘 자신 있어, 이런 느낌보다는 적어도 사람들 앞에 나설 때 절대 위축된 모습은 보여주기 싫은 고집, 그런 걸까요?”

드라마 한 편이 끝난 지금 현재로는 그녀를 한예슬답게 만드는 것도, 한예슬답지 않게 만드는 것도 연기에 대한 골똘한 고민이다. “연기는 너무 어려워요. 분명 제발 평균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A는 커녕 C라도 받았으면 좋겠다 하던 시절에 비해 나아지긴 했을 텐데 왜 항상 많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는지… 해석이 좀 복잡해졌기 때문일까요? 난 그 부족하단 느낌이 너무 싫어요. 뭘 해도 엑설런트이고 싶은데 연기는 나를 힘들게 만들어요. 나를 너무 작게 만들어요.” 그렇다고 데친 시금치마냥 있다면 한예슬이 아니다. “뭔가를 창조해야 하는 일에는 끝이 없어요. 언제 내가 정체하느냐, 포기하느냐 그 문제겠죠. 실력은 느리든, 빠르든 어쨌든 얻게는 되어 있단 말이에요. 포기만 안 하면 돼요. 그런데 어떨 땐 견딜 만하다가도, 죽을 만큼 힘들 때도 있거든요.‘난 이제 절대 다시 하면 안 돼, 끝!’ 이러다가도 ‘아니야, 한 번 더 해야 해’ 그럴 때가 있거든요. 고통과 쾌락은 끊임없이 순환되는 것 같아요.” 노력해서 발전한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연예계라는 경쟁 사회에서 삶의 흐름을 따라 자연스럽게 내려놓을 때가 있을 거라 인정하는 것, 양면적이면서도 일맥상통한 이 얘기가 한예슬의 현재를 만들고 있다.

얼마 전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한예슬이 화제가 된 바 있다. 허구의 대사가 아닌 현실의 말을 하는 그녀는 어딘지 노련해 보였다. “방송도 못 봤어요. 요즘엔 별게 다 쑥스러워요.” 4년 전에도 그랬나? 모를 일이다. 다만 그녀가 변화했다. “예전 같으면 ‘대중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네, 특히 한국에서는요!’라고 했을 거예요. 이젠 속으로만 말해요.(웃음)”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을 당황하게 하거나, 종종 예의 없다는 오해를 받던 한예슬은 거침없이 발언하지 않고도 자기 이야기를 하는 법을, 적어도 왜사람이 그래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 같다.

뒷모습이 없다면 생의 아름다운 곡선도 없다. 그때 한예슬은 미워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웠지만, 지금 그 이상인 한예슬은 또 다른 ‘한예슬다움’을 찾아가고 있다.다만 “감독님들, 작가님들, 제가 터닝 포인트를 만들도록 도와주신다면 평생 그 은공을 잊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며 깔깔 웃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같으니, 부디 용기 있는 자라면 한예슬을 훔치시길. 그것이 ‘우아한 냉혹’이어도 좋고,‘다크 엔젤’이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