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IN BLOSSOM

2023.02.26

by VOGUE

    IN BLOSSOM

    〈은교〉 이후 김고은이 햇빛 환한 봄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성실한 배우의 자세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온 그녀가 유채꽃을 닮은 아름다운 영화로 돌아왔다. 싱그러운 젊음의 광채로 빛나는 김고은은 5월의 물푸레나무처럼 푸르다.
    꽃무늬 실크 카디건은 구찌(Gucci), 컬러 스톤 반지는 넘버링(Numbering).

    개봉을 앞둔 <계춘할망>은 김고은이 주연을 맡은 여섯 번째 장편영 화다. “시나리오를 읽지도 않은 채 덮어두고 있었어요. 어둡고 격한 영화를 자주 하다 보 니 감정적으로 힘들고 싶지 않았거든요. 연기하면서 많이 웃을 수 있는 맑고 명랑한 작품 을 하고 싶었어요.”
    작은 컬러 비즈 장식의 스팽글 원피스는 구찌(Gucci).

    “전 좀 배워야만 했어요. 무지한 상태에서 첫 영화를 찍었는데 제가 맡은 롤이 컸잖아요. 일단 선배님들과 같이 연기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만약 <은교> 직 후에 ‘치인트’를 했다면 지금에 비해 훨씬 1차원적인 홍설이 나왔을 거예요.”
    꽃 자수와 비즈로 화려하게 장식한 붉은색 레이스 드레스는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지금 당장 누군가에게 칭찬받길 원하지 않아 요. 잘하는 것만 하다 보면 제 연기의 스펙트럼은 딱 거기까지일 테니까요. 어쨌든 지금 까진 신인이었고 또 아직은 20대니까 부딪치고 깨지는 과정이 필요해요. 안 그러면 정말 뭔가를 보여줘야 할 때 멘붕 올 거 아니에요? 진짜 무너질 수도 있어요.”
    턱시도 칼라의 데님 베스트는 생로랑(Saint Laurent), 시폰 컷아웃 롱 드레스는 펜디(Fendi), 태슬 슬리퍼는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tzman).

    책상 위에 던져둔 <계춘할망>의 시나리오가 다시 눈에 들어온 건 출연을 고사한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때였다. 단숨에 엔딩까지 읽어 내려간 김고은은 엉엉 울었다고 했다. “스무 살 때부터 할머니랑 둘이 살았어요. 그런데 이건 제목만 봐도 할머니에 대한 얘기잖아요. 왠지 가슴 아픈 일이 있을 것 같고. 분명 읽고 나면 제가 하겠다고 할 것 같아 보기 두려웠어요.” 부모님을 따라 10년간 중국에서 생활한 김고은이 할머니와 같이 살기 시작한 건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였다. 할머니는 부모님을 대신해 보호자를 자처했다.
    꽃무늬 실크 카디건은 구찌(Gucci), 굵은 체크 프린트 피케 셔츠 드레스는 스텔라 맥카트니(Stella McCartney), 반지는 넘버링(Numbering).

    <계춘할망>은 지난여름에 촬영이 끝났다. 제주도는 김고은이 여행 삼아 종종 찾곤 하던 곳이기도 했다. “두 달 동안 기분 좋게 촬영했어요. 변덕스러운 날씨 때문에 쉬는 날이 많아 선배님들과 맛집도 많이 다녔고요. 제가 물회를 되게 좋아하는데 정말 원없이 먹은 것 같아요.” 윤여정과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만났다. 이 우아한 청담동 패셔니스타가 에르메스 버킨 백 대신 볼품없는 망사리를 옆에 끼고 새까만 잠수복 차림으로 바닷물을 와인 삼아 자맥질을 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선배님의 단골 레스토랑에서 첫 미팅을 했는데, 딱 뵙는 순간 ‘와, 진짜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윤여정은 촬영 내내 현장에 도시락을 싸왔다. 집밥을 그리워하던 김고은은 강아지처럼 그 옆에 착 달라붙어 대선배가 싸온 반찬을 집어 먹곤 했다. “제가 되게 많이 먹었어요, 죄송스럽게도. 히히.”
    컬러 비즈 장식의 스팽글 원피스는 구찌(Gucci).

    <은교> 이후, 김고은이 햇빛 환한 봄길만 걸어온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그보다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고은은 벌써부터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지금은 재미있는 연기를 하고 싶은 시기예요.” 김고은에겐 매 작품이 하나의 세계이며 깨뜨리고 나와야 하는 알이다. 5월의 푸른 어둠을 헤치고 작은 새가 날아간다. 두려움 없는 날갯짓으로, 더 큰 세계를 향해.

    김고은을 영화계에 데뷔시킨 정지우 감독은 드라마를 본 후 그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유정 선배에게 뽀뽀하고 집으로 가는 홍설의 뒷모습을 카 메라가 비추는데 정말 좋아 죽겠다는 감정이 보이더라. 김고은도 대단한 것 같고 그 모습 을 담아낸 이윤정 PD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간의 연기력 논란을 잠재우 는 확실한 한 방이었다. 김고은은 정 감독의 칭찬에 대해 쑥스러워했다. “팔은 안으로 굽 는다잖아요.(웃음)”

      이미혜(프리랜서 에디터)
      에디터
      윤혜정(인터뷰), 이지아(화보)
      포토그래퍼
      YOO YOUNG K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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