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초대된 최재은

최재은 작가가 시게루 반과 협업한 DMZ 프로젝트 ‘꿈의 정원’이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됐다. 시간과 공간, 자연과 인간이 쓴 역설적 텍스트로서의 DMZ를 건축 언어로 읽는 이번 작업은 비엔날레가 끝나도 끝나지 않을 꿈의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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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본관 작가로 참가한 그녀는 20년 후 건축 비엔날레에도 참가하게 되면서, ‘승효상, 조민석에 이어 세 번째로 본 전시에 초청 받은 예술가’라는 수식어를 더하게 됐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인 DMZ 프로젝트 ‘꿈의 정원(夢의 庭園 / Dreaming of Earth)’. 지난 30여 년 동안 국경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독자적 인 미학을 선보여온 그녀가 가장 거대한 작업에 돌입한 셈이다.

“<보그>에서 오셨다고요? 20년 전인가, 마쓰모토 히로코라는 전설적인 모델이 있었는데, 그분과 파리 <보그>의 인터뷰를 한 적 있어요.” 서울과 도쿄, 베를린 등지에서 활발하게 활동해온 작가 최재은이 멋스럽게 낡은 페도라를 벗으며 말했다. 이날은 그녀가 5월 28일부터 열리는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에 참가한다는 소식이 발표된 직후였다. 1995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일본관 작가로 참가한 그녀는 20년 후 건축 비엔날레에도 참가하게 되면서, ‘승효상, 조민석에 이어 세 번째로 본 전시에 초청 받은 예술가’라는 수식어를 더하게 됐다. 게다가 이번 작품은 지극히 ‘한국적’인 DMZ 프로젝트 ‘꿈의 정원(夢의 庭園 / Dreaming of Earth)’. 지난 30여 년 동안 국경과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독자적인 미학을 선보여온 그녀가 가장 거대한 작업에 돌입한 셈이다.

“최근에 두물머리라는 데를 갔어요. 겸재 정선이 그림을 그린 곳이죠. 거기엔 남한과 북한으로부터 흘러온 한강 물이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강물이 휘몰아치듯 융합되는 모습이 너무 감동이었어요. 자연이나 생태계는 이미 모든 게 융합되어 있었던 거예요. 이 풍경을 일요일 새벽부터 촬영해서 3 채널로 보여줄 생각이에요.” 이 영상은 그녀가 이번 건축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DMZ 프로젝트를 상징할 것이다. 인간의 불필요한 욕망에 의해 갈라지며 생긴 땅인 동시에 그 훨씬 이전부터 자연이 서로 만나던 생태계, DMZ를 예술적으로 은유하는 한 편의 시다. 작가를 만나러 가기 전, DMZ라는 땅에 대해 생각해봤다. 고등학교 때 현장학습갔던 어렴풋한 기억과 함께 ‘비무장지대’라는 다섯 글자로 분쟁을 의미하는 곳. 그 수를 파악할 수도 없는 전쟁 희생자들의 영혼이 꽃이 되어 피는 곳. 60년간 출입 통제구역으로 인간의 발길이 끊겼던 곳. 덕분에 생태계가 보존되어 6,000여 종의 생물이 서식하는 보고가 된 곳. “DMZ는 상상의 세계예요. 총성 소리, 바람 소리, 꽃향기가 수십 겹 역설의 레이어를 만드는 곳이죠. 전문가들이 가봤다고는 하나, 그 안에서 어떤 스토리가 펼쳐지고 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야말로 꿈의 정원인 거지요.”

‘꿈의 정원’은 작가가 길어 올린 역사적, 예술적 장치로 가득하다.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을 DMZ에 걸쳐 있는 평강고원으로 삼은 건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던 궁예의 궁예도성을 복원하고자 하는 제안에 다름 아니다. “궁예가 아소카처럼 폭군 이미지인데, 건축을 보면 그렇지 않아요. 궁예도성은 ‘평지성 건축’이라고, 평민들과 어우러지는 건축이거든요.” 궁예도성을 옆에 두고 남북한을 연결하는 총 13km 거리 왕복 보행로가 펼쳐진다. 중요한 건 열세 개에 이르는 정원을 품은 보행로를 지면으로부터 3~6m 떠 있는 형태로 구현할 예정이라는 것. “기존에 없던 제3의 공간을 만들고 싶어 공중 정원의 개념을 가져왔어요. 자연을 인간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뢰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죠.” 그리고 군사분계선 근처에 높이 20m 높이의 바람의 탑을, 보행로 양 끝에는 DMZ의 멸종 위기 식물의 종자를 보관하는 종자 은행을 마련한다. “이런 과정에서 남북의 예술가와 건축가가 함께 연구도 하고 복원도 하는 공간이 되는 꿈”을 품은 이 청사진에 가능성을 더하는 건 바로 친구이자 동료인 시게루 반이다.

“토목적인 공법을 피하자는 데 먼저 합의했어요. 콘크리트, 철근 등을 모두 배제한 거죠. 간단해 보이지만 실은 시게루 반이 해온 것 중에서 가장 고차원적이고 순수한 방법이 될 거예요.” 인도주의적 건축 언어로 그보다 더 인간적 삶을 사는 시게루 반은 최재은에게 더할 나위 없는 존재다. “그 친구가 종이를 건축의 재료로 가져와서 집을 지었잖아요. 저는 86년부터 종이를 세계 곳곳의 땅에 묻어 배양하는 작업(‘월드 언더그라운드’)을 했고요. 그도 대나무를 많이 사용하는데, 저도 김수근 선생의 경동교회 옥상에 대나무로 대형 설치 작품(‘동시다발’)을 선보인 바 있죠. 반은 재앙이 닥친 곳이라면 어디든 뛰어가서 집을 지어주는 사람이고, 난 그런 그를 존경해요. 그러니 ‘우리 작가 대 작가로 이런 거 한번 하자’라는 제안에 덮어놓고 ‘너무 재미있겠다!’ 하고 합류할 수 있었겠죠.” 최재은은 그가 매년 연하장을 잊지 않는 친구라는 사실, 시게루 반이 2014년 프리츠커 상을 받았을 때 축하 전보를 보내며 15년 만에 닿은 인연, 주차장을 개조해 작은 사무실을 만든 그가 귀엽다는 이야기 등을 덧붙였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는 최재은과 시게루 반의 협업의 단서를 내놓는 첫 번째 무대가 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건축가이자 사상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의 주제인 ‘Reporting from the Front’, 세상이 여러 문제에 직면했을 때 건축이 맨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테마는 DMZ 프로젝트를 든든하게 지지한다. “이번 전시에서 DMZ의 땅덩이를 뚝 잘라 갖다놓을 거예요. 설치미술처럼 보일 수도 있겠죠. 그리고 왜 이 땅이 생겨났는지부터 이야기할 겁니다. 그러려면 러일전쟁부터 들어가야 해요. 38도선, 얄타회담, 포츠담회담 등 강대국이 개입하면서부터 우린 이미 갈라지기 시작했으니까요. 과거 우리나라를 둘러싼 역사적 생태계에 대한 아카이브를 보아 영상을 재구성하는 거죠.” 최재은은 순리대로 생존하고 진화해온 생태계와 불필요한 욕망으로 얼룩진 역사를 철저히 대비시켜 인간사를 조롱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생태계의 사진 옆에 얄타회담 중 담배를 피우는 스탈린의 모습을 나란히 두는 식. “이걸 보면 아마도 인간이 얼마나 이상한 동물인지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비엔날레의 여부와 상관없이 ‘꿈의 정원’은 오래 사유하고 진화해온 결과물이다. 2014년 ‘리얼 DMZ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인간의 경계와 자연의 경계에 대한 작품, 그리고 99년에 만든 다큐멘터리 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세기에 인간 사회가 만들어낸 경계란 게 무엇일까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아홉 살인 문근영 양을 캐스팅하고 아우슈비츠에서 촬영을 시작했죠.” 영상은 통일 후 베를린의 모습, 히로시마 원폭 문제를 거쳐 판문점에서 문근영이 시를 읽는 장면으로 점철된다. “남북한이 마주한 바로 앞에 3~5cm 너비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더군요. 노란 꽃이 피어 있었고 개미들이 왔다 갔다 했죠. 불현듯 이건 아니다 싶었죠. 모든 생명이 자유롭게 오가는 곳에서 인간만이 깨진 경계선 하나 두고 수십년 동안 총구를 들이대고 있다는 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다 싶었어요.” 최재은 작가는 정치나 폭력(전쟁) 같은, 해결할 수 없거나 혹은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를 작가가 떠안아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예술가의 비정치성은 사고나 사상을 유연하게 하는 가장 정치적인 장치 아닌가?

혹자는 ‘꿈의 정원’을 두고 “과연 현실 가능한가?”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맥 빠지게 하는 경직된 정치 상황이 잊을 만하면 대두됐으며, 앞으로 없을 거란 보장도 없다. 그럴 때마다 최재은은 짤막한 시를 써두고 읽었다. ‘무엇이 두렵습니까! 빛이 있고, 물이 있고, 바람이 부는데요!’ 사회, 정치적인 문제, 지뢰 문제, 하다 못해 대나무를 다른 흙에 이식하여 키워내는 과정 등 해결해야 할 것이 쌓여 있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는다. “현재로선 현실화된다는 전제하에서 밀어붙이기는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꿈을 꾸는 거죠.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하는 꿈. 때마다 닥치는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작업 자체가 작품이에요.”

DMZ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존재하되 가지도, 보지도 못해 머릿속에서는 이미 죽은 땅. 객관성을 빙자하며 과거와 미래 모두를 외면한 건 아니었을까? “DMZ는 촌스러운 사람들이나 얘기할 것 같죠. 하지만 주관적이어야 해요. 객관적으로만 이 문제를 대한다면 그야말로 비극으로 남을 거예요.” 그녀는 독일 통일 즈음, 양 진영 아티스트들의 열망이 모두 통일을 향하던 그 상황을 기억한다. “진정으로 평화와 예술에 영향을 끼친 분들에게 DMZ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인터뷰도 구상 중이에요. 첫 번째 인터뷰이였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 선생이 투병 중이라 중단되었지만,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DMZ의 상황뿐 아니라 남북문제와 통일에 대한 화두를 자연스레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어쩌면 남북이 싸운다는 뉴스만 들었을 전세계 비엔날레 관람객들에게 DMZ의 본질을 알린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은 매우 실천적인 기록이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최재은은 일본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꽃이나 식물을 자르는 행위에서 출발하는 이케바나의 관습을 뒤엎고, 이사무 노구치의 돌조각 위에 흙을 쌓고 씨앗을 뿌려 식물이 자라는 그 시간 자체를 작품으로 선보였다. 이후에도 시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을 작품화하여 전 세계에서 선보이던 그녀는 이제 DMZ에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또 다른 차원의 시간을 기다린다. 그녀가 종종 얘기해온 “시간을 깊이 연구하면 치유가 된다”는 철학을 미래에 각인하는, 어쩌면 고단할지도 모를 긴 여정이 시작됐다.

“전 작가를 이렇게 정의 내리고 싶어요. 유명과 무명, 잘 팔리고 안 팔리는 건 결과물이에요. 결과가 좋다고 작가이고, 나쁘다고 아닌 건 아니잖아요? 설사 버림받는 작업이라 해도 끝까지 할 수 있는 게 작가예요. 작업을 안 하고 살면 나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요. 죽을 것 같아.(웃음) 아무것도 날 즐겁게 해주는 게 없어요, 그 이외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