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베스트셀러 제조법

아무도 몰랐던 신인이 대박을 낸다. 지금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베테랑의 작품이 아닌 신인들의 데뷔작이다.

아무도 몰랐던 신인이 대박을 낸다. 지금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베테랑의 작품이 아닌 신인들의 데뷔작이다.

신데렐라 스토리는 잘 팔린다. 작품의 벼락같은 성공으로 갑부가 된 작가의 스토리는 그 자체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홍보가 된다. 그중에서도 ‘자비 출판’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영화 판권을 파는 경우는 설령 그 책이 작가의 첫 책일지라도 전 세계 판권 판매에 지대한 공을 세운다. 에바 레스코 나티엘로는 자신이 자비 출판한 소설 데뷔작 <메모리 박스>가 폴라 호킨스의 <걸 온 더 트레인>을 밀어내고 아마존 심리 스릴러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던 때의 기쁨을 <허핑턴포스트>에 쓰기도 했다. 그런데 <걸 온 더 트레인> 역시 폴라 호킨스의 스릴러 데뷔작이었다. 호킨스는 기자로 일하다가 불경기로 실직한 뒤 필명으로 로맨스를 썼으나 잘 풀리지 않았고, 스릴러로 방향을 틀어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이다.

지난해 줄리안 무어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긴 <스틸 앨리스>의 원작 소설 역시 자비 출판으로 세상의 빛을 본 뒤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5위로 데뷔했다. 작가 리사 제노바는 하버드 대학에서 신경학 박사과정 중에 만난 환자들과 자신의 할머니로부터 영감을 받아 소설을 썼다.

이렇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목록에 새로운 작가 이름이 늘고 있다. 소설의 경우, 모르는 작가보다 전작을 읽은 적 있어 ‘낯익은’ 이름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데, 왜 이런 책이 점점 눈에 많이 띌까? 이 분야의 최고 스타는 역시 <해리 포터> 시리즈의 J.K. 롤링이다. J.K. 롤링은 미국 경제 매거진 <포브스>에서 2011년 선정한 ‘맨손으로 억만장자가 된 여성 5인’에 이름을 올렸다. 첫 책이자 유작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래서 죽고 나서야 데뷔한 작가도 있다. <밀레니엄> 시리즈의 스티그 라르손이 바로 그런 경우. 스웨덴의 사회 고발 잡지 <엑스포>의 편집장으로 일하며 암살 위협에 시달렸던 그는 그저 쓰고 싶다는 생각과 반쯤은 노후 보장 차원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2004년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이듬해 스웨덴에서 출간된 뒤 영문판이 2009년 출간되면서 신드롬이 일었다.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는 것을 특별히 언급하는 이유는 보수적인 출판 문화 때문이다. <해리 포터> 시리즈가 출판사 열두 곳에서 퇴짜 맞았다는 것은 별 특별한 일도 아니다. ‘전작’이나 ‘수상 경력’ ‘유명세’ 없이 첫 책 출간 계약을 맺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소설의 경우, 이야기가 매력적이어도 소위 말하는 ‘문장력’에 대한 의구심이 있을 경우 출판이 보류되기 십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딘가 허술한 구석이 있어 보여도 발상이 기발하고 플롯이 재미있는 경우 기성 출판계에서는 경원시하지만 독자들에게는 확실한 선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당연히 대중적인 인기가 높은 장르 소설이 많을 수밖에 없다.

6남매의 둘째로 태어나 네 살 때 알게 된 남자와 스물한 살에 결혼해 세 아들을 낳아 키운 모르몬교도인 스테파니 메이어는 2003년 꿈을 꾸었다. 인간 소녀와 사랑에 빠진 뱀파이어가 그녀의 피를 갈망하는 내용이었다고 하는데, 그 꿈에서 영감을 받은 대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출간할 생각은 없었는데 소설을 읽은 여동생이 출간을 권유했다. 바로 <트와일라잇> 시리즈다.

글을 발표하는 방식이 다양해졌다는 것도 이런 변화의 이유가 되었다. 원고를 타이핑해 출판사에 보내는 식이 아니어도, 인터넷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한 팬픽의 창작과 소비가 일상화되었다. 그 수혜자가 바로 ‘엄마들을 위한 포르노’라고 불리며 전 세계에서 e-book 판매 기록을 세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다. E.L. 제임스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팬이었는데, 몇 번이고 그 시리즈를 반복해 읽은 뒤 앉은자리에서 난생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걸 쓰기 시작했다. 그녀가 쓴 것은 기본적으로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속편 격인 팬픽이었다. 2009년 초 책 두 권을 빠르게 완성한 그녀는 팬 픽션이 꽤 인기가 많다는 걸 알게 된 뒤, ‘스노우퀸스 아이스드래곤 (Snowqueens Icedragon)’이라는 아이스크림 이름 같은 필명으로 e-book 출간을 결정한다. 그 뒤 곧바로 쓴 책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다.

이런 작가들의 공통점 혹은 특징이 몇 가지 있다. 첫째, 보통 문학상을 수상하는 국내외 작가들의 이력을 보면, 한국이나 영미권이나 문예 창작에 해당하는 수업을 대학에서 수강한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툭 튀어나온 베스트셀러의 작가들은 그렇지 않다. 둘째, 첫 번째 책(시리즈)은 잘되는데 두 번째부터는 반응이 그만큼 따르지않는 경우가 많다. 셋째,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 그리고 대체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e-book으로 출간된 뒤 반응이 좋아 뒤늦게 종이 책으로 출간되는 일이 적지 않다.

출판사 편집자(아무리 많아도 독자보다는 극소수일 수밖에 없는)들의 기준으로는 평균에서 미달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독자들 다수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다는 것. 어찌 보면 더 큰 경쟁을 뚫고 유명세를 얻은 셈이니, 파급력이 큰 것도 당연할지 모르겠다. 한국에서도 베스트셀러였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을 쓴 독일 작가 넬레 노이하우스 역시 이런 공통점을 두루 지니고 있다. <백설공주에게 죽음을>은 <타우누스>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인데, 노이하우스는 남편의 소시지 공장에서 20년 가까이 일한 것 외에 책을 출간한 경력이 없었다.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아 시리즈 첫 책은 자비 출판했고, 이후 2009년 ‘타우누스’ 시리즈 신간 <너무 친한 친구들>은 독일에서 성탄 시즌 <해리 포터> 신간을 누르며 대박을 터뜨렸다. 콜린 후버의 <잃어버린 희망>은 자비 출판 최초로 <뉴욕타임스> 3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앤디 위어가 쓴 첫 장편 <마션>은 그의 웹 페이지에 연재된 뒤 자비 출판되고 영화화되었는데, 한국에서도 SF소설로는 이례적일 정도로 잘 팔렸다. 어쩌면 오랜 시간에 걸쳐 깊게 사유되고 공들여 제련된 문학 작품에 대한 일반 독자의 감식안이 무뎌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시대의 독자들은 순문학이라고 불리는 작품에서만 멀어지는 게 아니다. 그런 작품을 지탱하던 기존 출판 시스템으로부터 먼 곳에서, 독자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새 작가와 새 작품을 발굴해낸다. 21세기 베스트셀러 제조법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소설을 둘러싼 독자다.